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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

다들 벙 쪘을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미누만은 안잡혀갈 줄 알았다고 해야하나? 뭔가 그 사람은 계속 한국에 머물 사람같았다.

어제 친구한테 얘길 듣고, 참 허무하고 답답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달려가서 화성보호소 문을 막고

설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 먼 타국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단말인가.

오늘 아침,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그 좁고 차가운 방 안에서 미누는 무슨 생각을 할까..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

이런 국경, 정부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학교에서 민족, 민족성에 관한 수업을 듣는데 계속 미누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아. 너의 민족, 국적이 결국 너의 계급이 되는 지랄맞은 세상같으니.. 너무 창피해.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이 일을 창피하게 여기는 것

자체부터 창피해.

무슨 이벤트야? 걸핏하면 단속 강화 이러면서 싹 다 잡아들이고, 뭔가 잘 해보려는 생각은 안하고 그냥

보이는 눈엣가시 처리하듯 싹 다 단속해서 보내고. 씨발놈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걸까..

미누 없인 상상도 하기 힘든데..

아.. 미누가 하던 썰렁한 아저씨 농담이 그립네..  밥은 잘 먹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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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떠나다..

2일 밤 터키항공으로 출국, 한국 시간으로 오전 11시 30분경(터키 시간 5시반) 이스탄불 도착.

지금 다섯 시간동안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 정말 어리버리의 절정을 보여주며 지난밤 나는 얼마나 쌩쑈를 했던가.

짐도 짐이고, 들어갈 때도 느긋하게 있다가 공항내 기차 타야한다는 것도 모른채(흥, 근데 아무도 말 안해줬잖아!)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서 배웅 나온 사람들이랑 포옹도 못하고 들어와버렸네..ㅜㅜ

막 뛰어서 갔더니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더군. 첨에 알려준 어떤 사람이 비행기 못탈거라고 겁 줘서

완전 눈앞이 하얘지고 막 그랬는데..

 

여기 앉아있다보니 터키 사람들 말하는 것이 뭐, 경상도 사람 말투같기도 하고, 자꾸 나한테 말 거는건가.. 이러면서 쳐다보게되네.. 음식 하나 시켜서 먹었는데 토스트 무지허니 맛 없고 얇고 짜디짠 소세지만 그득하던.. 근데 방금 전 네이놈에서 세계 3대 음식 천국 '터키'라면서 메인에 떴던 것은 무엇인가!

지금 장난해?

아, 이제 또 슬슬 사람 구경하다가 떠날 준비 해야겠다. 나의 이 어리버리 빈틈 투성이 삶이 헝가리에선 또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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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사람들

대만 출신 활동가 친구와 지난 일요일 영화를 보았다.

캐릭터.

그야말로 액션 캐릭터인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팅윤.

사장이랑 월급 달라 얘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쪽은 베트남 말만, 한쪽은 한국말만 하는데, 제대로 소통 불가한 이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어쨌거나 사장노무시끼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뭘 달라고 하냐며 배 째라 이런 식.

암튼, 여친을 찾겠다며 길을 나서는, 거기다 돈까지 갈취하는 팅윤, 대단혀~

솔직히 여친이 돈에 팔려 한국이란 나라로 가버리는 걸 넋놓고 보고있어야만 하는 남성들이 얼마나 많을것인가...

진욱.. 정말 나같아도, 아니 그냥 다른 시골에서 온 사람이라도 그 아파트촌에 들어서면 헷갈릴 수밖에 없을거 같다. 이 아저씬 무슨 속이 그렇게 좋아서 첨 보는 외국인 이것저것 다 도와주고 돈 내줘, 맞고있는 사람 구해줘... 팅윤과 달리 이 사람은 정부에서 집까지 받고 휴대폰 받고 돈 받는 처지라서 어쩐지 더 불안해보이더라.. 그렇다고 별로 행복해보이지도 않는 그, 뭔가 가슴 한 구석이 휑하더라. 과연 이 사회에서 복닥거리며, 싸우면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장면, 기억에 남는다. 여관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서로 아픈 구석이 다르기 때문에 말 안통하는 대화 속에서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그들..팅윤은 오직 사랑하는 여자 생각 뿐이고, 진욱은 중국에 팔려간, 미친듯이 찾았지만 찾지못해 죄책감으로 남은 여동생 생각뿐. 서로 완전 다른 얘기 하면서 같은 생각하는 줄알고 울던... 웃겼지만 어찌 웃을 수만 있으리..ㅡㅜ

 

대만 출신이라 이 친구랑 이주노동자 얘기하면 아주 흥미롭다. 대만은 한국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고, 하지만 또 다른 면도 꽤 있기 때문에... 뭐 그래도 이주노동자들 억압하는 거 마찬가지ㅡㅡ.

최근 이주노동자 관련 영화가 제법 나오고 있어(특히 이 여름!) 아주 흥분된 상태다. 반두비는 누구랑 볼 지 심지어 고민까지 하고있다. ㅎ 여러번이라도 보겠다. ㅎㅎ 19금이라니, 젠장할!

편견과, 억압과, 무조건적인 비난에 맞서 싸워야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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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휴~~~~~ 정말 다행이다. 그녀의 이혼 소송 판결이 났다. 아, 지난 일주일 맘 졸인걸 생각하면 식은땀이 날 정도다...;;; 1년이 걸렸다. 판사는 지난 금요일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원고(한국인 남편)는 피고(베트남출신 여성, 나의 옛 동료)에게 위자료 2700만원 지급할 것,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은 피고에게 가고, 원고는 210만원 지급(? 잘 이해 못함), 원고는 피고에게 2024년까지 양육비 매달 30만원 지급할 것, 피고는 매달 1회 토요일(아마 셋째주였던 듯)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후 5시까지 원고에게 자녀를 면접할 수 있게 한다. 예~!! (참, 어이 없게도 이 여성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남편쪽에서 먼저 소송을 제기해서 저쪽이 원고, 이 여성쪽이 피고가 되었다. 남편쪽에서 원하는 것은 양육권과, 정말 어이없게도 위자료 3천만원.) 분명, 6월 12일 재판장에서 내 귀는 이렇게 들었다. 들으면서 그렇게도 바랐던 친권과 양육권이 이 여성에게 와서 옆에 앉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었다. 2주 전에 이미 판결이 날 예정이었지만 판사는 판결을 미루고 조정을 한번 더 열었다. 이 여성은, 오직 양육권만 주어지면 된다고 했다. 판사는 원고측에 양육권을 포기하겠는가 물었고 그들은 포기 못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양육권을 갖는 대신 이 여성이 자립할 수 있도록 위자료조로 아파트 전세금이라도 주겠는가 물었고 그들은 그것도 못주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포기 안하겠다고. 결국 조정 실패. 12일 최종 판결을 들으러 재판장에 갔고 난 아무래도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그녀를 대신해 내 온 정신을 집중해 판사가 그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재판장에서 나오자마자 수첩에 내용을 적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우린 이겼다! 그런데, 재판장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내가 옳게 들었는지 너무 의심스러워지는 거다. ㅜㅜ 원고랑 피고 이런 말도 익숙하지 않아서 갑자기 머리가 막 복잡해지는 거다. 아, 바보..그래도, 양육권이 저쪽에게 갔다면 이 여성한테 양육비를 청구하진 않겠지, 그러니 내가 들은 게 맞을거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오늘 그녀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법원에서 판결문이 법률구조공단 변호인에게 발송되었고 그곳에서 이 여성에게 전화를 해주었단다. 내가 들은 게 다 맞단다. 아....! 정말 다행이야... 저쪽에서 분명 항소를 하겠지만 그래도 첫 판결이 이렇게 났으니 엄청 큰 변화는 없겠지... 센터를 그만두며 그녀의 일을 끝마칠 수 있길 바랐지만 약간 지연되었고, 그만둔 후에도 그녀와 함께 법원에 다녀야했다. 그래도, 잘 돼서 정말 다행이다. 맘이 놓인다. 그 판결이 난 후 이 여성은 밥을 두 그릇씩 먹는다고 한다. ㅎㅎ 그걸 본 딸아이가 "엄마 왜 그렇게 많이 먹어?" 이런다는데, 그 끔찍했던 결혼생활, 지난한 소송 과정을 끝내고 이제 사랑하는 딸아이와 맘 놓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밥이 막 넘어갈 수밖에. 정말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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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아닌것이 없구나..

모든 인간관계가 결국 정치나 매한가지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요번 행사를 준비하며 어쩌다보니 내가 안봐도 될 꼴을 많이 보게 된다. 대표가 가야 할 자리에 대신 내가 갔더니, 어디랑 어디는 함께 세를 합친다고 하고, 또 어디는 우리를 또 무지 견제하고, 또 종교색까지 언급하며 난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를 들어야했던 상황. 에효... 어른들이 왜들 그러시는지...(어른이라 그런가?) 비슷한 일 하는 사람들이 연대하기보다는 견제하고, 시는 시대로 엉뚱한 생각만 하는 것 같고, 또 시에서 곧 시작할거라는 사업 때문에 서로 눈치보며 떡고물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꼴이라니... 그 사람들 얼굴을 보며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완전 고문인데, 내 기분대로 '전 관심 없는데요. 됐거든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대표가 가기 싫어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어. 이건 뭐, 고통분담 하자는건지. ㅋ 할 일만 하고 살 수 있게 되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나야 곧 떠날 몸이지만, 저 모습을 보고나니 영 마음이 안놓이기도 하면서 걱정 되고 또 어서 떠야지 이런 생각도 들고..쩝. 더 있다간 진흙탕에 발을 담그게 되거나 완전 쌩까거나 하게 될 것 같은 느낌. 안타까워...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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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

아래 내용은 한국인 브로커(혹은 사기꾼)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호언장담하며 파키스탄 사람들(이 노동자의 친구, 친척들)을 한국에 데려와 일하게 해주겠다고 사기 치는 상황을 녹취해 풀어놓은 것의 일부. 아직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 많은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사기 칠 생각이었다면 완전 종적을 감출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도 않았고. 사실 이 사람이 오랫동안 이 파키스탄 사람이랑 그 나라에서 일을 같이 해온 사이이고 한국에 올 수 있게 해주기도 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40명 이상되는 사람들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것인지. 어쨌거나 경찰에 고소해놓은 상태이고 이 내용을 증거로 제출하였다. 사기꾼 새끼. 심지어 이 사람은 위장결혼까지 약속하고 돈을 챙겼다. 앞으로 파키스탄이랑 사업을 크게 할 예정인데 이 파키스탄 노동자가 필요하니 한국에 있으라며. 물론 결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일 하며 이런 사기 사건, 외국인 납치사건까지 맡으며 아주 못볼 꼴을 많이 본다. 이 사기꾼 나도 몇번이나 만났는데 외모는 털털한 시골 아저씨같이 생겨가지고 말은 천상유수. 궁지에 몰리니 미등록인 이 노동자를 경찰에 신고해버리기까지 했다. 젠장. 이 노동자는 그 사기꾼을 만날때마다 이렇게 녹음을 해두었다. 은행 송금지로며 그 사기꾼이 써놓은 메모까지 보관해두는 치밀함을 보여주며.. 자기도 약속하는 걸 보며 뭔가 불안했겠지. 그런데 그렇게 꼼꼼한 사람도 이렇게 속아넘어가는 건 한 순간인가 보다. 누군가에게 가장 간절한 것이 무엇인지 알면 사기 치는 것도 참 쉬울 수도 있겠다 싶어.. 한 가지 재미있는 것.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어를 잘 몰라도 출입국과 노동부를 아주 잘 안다. 저렇게 법무부는 몰라도 출입국하면 아! 하고 알아차리는 거지. ㅎ 뭐, 당연한 거지만..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이라도 퇴직금, 월급, 잔업, 야간, 주간 이런 단어들은 정확하게 알고 쓴다. 주)사: 한국인 사기꾼, 노: 이주노동자 ================================================================= 사: 그리고 한 가지만 알고 있으라고. ...나오는 사람들(일반 브로커)하고 나하고는 틀려. 똑같이 하는 거 아니라고. 알람: 예 사: 첫 번째, 나는 법무부에서 줘서 하는거라고. 노: 법무부가 뭔데요? 사: 출입국관리소, 그 위에가 법무부야. 출입국관리소도 법무부 밑에 있는거야. 노: 예.. 사: 여기 법무부, 그 밑에 출입국관리소, 그리고 또 밑에 다른 부서. 다음에, 여기 한국에 있는 회사 있지? 나같은 사람. 이 회사에서 파키스탄으로, 인도네시아, 인디아... 모든 것을 여기서 컨펌 주고.. 나는 여기에 다이렉트야. 알았어? 노: 예 사: 파키스탄에서 라이센스가 있어야 돼. 노: 예 사: 난 그런 거 필요 없이 한다고, 알았어? 비자는 여기서 비자를 바꾼다고. 노: 예. 사: 그 다음에, 이번만 이렇게 해. 다음부터는 파키스탄에 회사를 만들어서 할거야. 그럼 회사에서 내가 이번주 내에 계약서를 만들어서 파키스탄으로 내가 보내줄거야. 내일 모레 12일날, 노: 네. 사: 12일날. 한국 사람이 나온다고. 그때 나오면 사인해서 라이센스 만들기 위해서 노: 네. 사: 또 내가 요번에 갖고온 거는 내가 다이렉트로 해주는거라고. 이건 소문나면 안돼, 절대로. 누구한테 얘기하면 안돼. 그 다음에. 노: 그거는 걱정하지 마세요. 사: 잘 들어, A(파키스탄에 있는 회사 공장장)한테도 얘기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 파키스탄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한테 돈 주고 간다.. 하면 절대 안되는거야. 그럼 그 사람 못가, 진짜로 못가. 노: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 내가 나오라고 할 때도 다시 인터뷰를 할거야. 그때 “너 돈 주고 가냐?” 라고 물어봤을 때 돈 주고 간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안돼. ------(중략)------- 사: 너하고 정확하게 얘기해야 돼. 나중에 문제 안나오게. 내가 너한테 천 사백만원 받았던가? 노: 예. 사: 이게 몇 명이야? 노: 열 한명하고 지금 세 명. 저번에 하나 친구가 줬잖아요, 천 오백 불로. 그.. 사: 잠깐만, 조금 있다 얘기하자, 잠깐만. 노: 예. 사: 네가 나한테 천이백 주고, 이백 나 먼저 주고, 천 이백 보내주고 천사백 보내줬구나? 노: 예. -----(중략)------- 사: 네 결혼 문제는 조금만 더 기다려. 왜그러냐면 그 여자애가 옛날 남자하고 서류가 깨끗하게 아직 안끝났어. 조금만 기다리면 해줄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문제는 내가 책임 지고 100% 책임지고 해줄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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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아

필리핀 노동자 두 사람 때문에 고용지원센터에 갔다가 소식 하나를 듣고 허거덕. 이젠 출입국관리소에서 경찰도 모자라 노동부와 손 잡고 미등록노동자 단속에 나선다고 한다. 마침 내가 만나러 갔던 고용지원센터 직원이 그 단속 현장에 있어서 만나지도 못했다. 그의 동료 말에 따르면, 수갑까지 받는다고 했다. 며칠 전 우리 센터에서 임금체불로 소송이 진행중인 인도네시아인이 단속때 잡혔는데 이게 바로 출입국과 노동부의 합동 단속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지역 업체들 명단 속속들이 알고있을 고용지원센터와 출입국의 협력 속에 아주 잘도 잡아들이시겠습니다. 젠장. 고용지원센터 저 사람은 우리가 검토해달라는 건 미적미적 계속 미루면서 저런 일에나 동참하고 있다니. 성질나. 필리핀 노동자 두 사람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게 되었다. 다.행.히. 뭐, 회사에서 이 사람들한테서 돌려받아야겠다며 떼어가겠다는 돈이 있긴 한데, 두 사람도 동의했으니 뭐.. 치사하지만. 이 두 사람이 로또 당첨되면 나 필리핀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는데 히히, 걍 댁들 일이나 잘 해서 잘 사쇼. ㅋㅋ 말이라도 고맙소. 산재처리 때문에 꽤 오래 끌었던 네팔 미등록 노동자의 산재건 진행은 잘 되어간다. 회사에서 해줬어.. 내용이 그리 중차대한 건이 아니라서 그냥 회사로 돌아가라고밖에 할 수 없었던 필리핀 사람. 회사가 5인 미만이라서 잔업수당을 일반 시급이랑 똑같이 줘도 무방하다. 작년 3개월간 잔업수당을 안 준게 있긴 한데 그것도 딱 한 시간씩..;;; 급기야 이 사람은 회사 밥이 너무 맛이 없으니 아침, 저녁을 돈으로 지급하게 도와달라고 했으나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 ㅡㅜ 배까지 아프다고 하니 일단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뭐... 혹시 이렇게 넘겼는데 나중에 심각한 위장병 이런 거 있는 거면?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쩝. 근데, 제발 좀 무슨 문제 있으면 일요일에 오거나 하지... 꼭 평일에 일 다 제쳐두고 우리 센터로 오면 대략 난감... 어떻게 보면 그들이 믿을 곳은 이런 센터밖에 없어서 그런 거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런 센터보다는 그들의 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요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사업장 변경 건으로 시작해 결국 너무나 심각한 감정 싸움으로 치달은 스리랑카 노동자 건은 고용지원센터에서도 지지부진하고 해서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신청을 했다. 아무리 봐도 거기보단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을것 같은데 대표가 그리 하라하니.. 안되면 또 거기도 해봐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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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또 한 사람이 잡혀갔다. 출입국 단속반이 공장으로 쳐들어와 인도네시아 노동자를 잡아갔다는 얘기를 고향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센터 동료로부터 전해들었다. 인도네시아 사람, 온 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처음 직장을 옮길 때 구직기간 2개월을 넘기는 바람에 미등록 노동자가 되었다. 이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아무리 직장을 구하려 고용지원센터에서 준 알선장을 들고 다녀봐도 안써주면 어쩔 수 없는 거다. 두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하루하루 속만 타들어가는 느낌일 게 뻔하다. 최근 이 사람은 예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체불된 임금이 있어서 센터 동료와 법원에 다니고 있었다.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는데도 사업주가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민사건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동료는 나에게 혹시 출입국에 잡혀가면 바로 강제출국 당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지난주 목요일에 잡혀갔다는데 오늘 전화통화까지 했다면 아직 안전한 거겠지. 그래도 다행히 임금체불 건이 있으니 출입국에 일시보호해제 신청을 해서 사건 해결시까지는 G-1 비자로 변경해 밖으로 나오게 해봐야겠다. 꼭 돼야할텐데...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있을까.. 계속 불안 불안하겠지.. 우리가 집회때마다 외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의 길은 아직도 멀고 먼 얘기인걸까? 얼마나 긴 싸움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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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지 마세요

지난주 수요일 아침, 필리핀 노동자 두 사람이 센터에 찾아왔다. 문제는 공장내 폭행. 전날 저녁 술에 취한 공장장이 일하고 있던 두 사람을 때렸다. 괜히 일하는 사람에게 와서 불량 내지 말라며 시비를 걸었던 모양이다. 불량 아니라고 대답하자 이때부터 목을 조르고, 박치기로 눈을 때리고. 옆에서 그러지 말라고 한 사람한테까지 와서 주먹으로 때리고 박치기로 또 머리를 때리고. 이 사람들이 피해서 식당이며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는데도 계속 쫓아오며 심한 욕설을 해댔단다. 한 사람의 목엔 목이 졸려 손톱 자국이 여러개 남아있었다. 또 박치기로 맞은 눈에는 흉터가 남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귀 뒤쪽을 맞았는데 흉터는 없었다. 상담을 한 뒤 사진을 찍어두고 두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 진단서를 받아오게 했다. 한 사람은 흉터가 남아 진단서를 받아왔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받아오지 못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사업장 변경. 처음엔 이런 일이 있었는데 바로 사업장 이동 시켜주겠지 했다. 별 이상한 일이 다 생 겨도 사업주의 서명이 없이는 사업장 이동을 할 수 없는것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 고용허가제의 실체이다. 일을 시키지 않는 한이 있어도 사업주가 마음만 먹으면 서명을 하지 않은 채 못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 피 말리게 하는 이놈의 법. 회사에 전화했더니 과장이란 사람이 전화를 받아서 당시 사건을 설명했다. 그 공장장이란 사람이 아주 만취해서 공장에 들어와 난동을 부렸고 한 사람을 때렸고 본인도 공장장을 말리다가 입술이 찢어졌노라고. 그러나 그것은 어쩌다가 생긴 일일뿐, 특별히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서. 그 공장장은 너무 취해서 다음날 아침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두사람이 사업장 변경을 원한다고 했더니 정 그렇다면 옮기게 해줘야겠지만 우선 얘기부터 해보자고 한다. 센터로 오겠다고 해서 같이 만나기로 했다. 처음 두 사람은 회사 사람 어느 누구도 만나고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난 분명 이 둘이 회사 사람들과 얘기해야 할 문제이므로 함께 얘기해보자고 제안했고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다. 과장 한 사람만 올 줄 알았더니 사장, (문제의) 공장장까지 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려운 발걸음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기분 풀고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식으로 얘기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냐, 어떨땐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들한테 더 잘해줄 때도 많았다며... 사실 공장장은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두 사람의 방으로 가서 사과하려 했으나 두 사람이 전날 밤에 이미 떠나고 없더라고만 얘기했다. 그리고 나중엔 두 사람 표정이 영 누구러들질 않아 화가 났는지 자기가 그동안 쌓인 게 많아서 폭발한 것 같다며 이 두 사람 탓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굳은 표정에 전혀 변화도 없이 그저 그들과 내 말을 들으며 이 공장에서 일할 생각 없다는 말만 했다. 사장이 그렇다면 5월 말까지만 일해달라고, 안그러면 사업장 변경 신고서에 서명해줄 수 없다는 협상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을 했다. 이렇게 공장에 나오지 않으면 무단이탈로 출입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며. 헐.. 하루 이틀로는 신고 못하거든요. 대체 대화하러 온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워... 암튼 뭐, 결국 나는 다시 한번 이들과 얘기해보겠다며 돌아가시라고 해야했다. 두 사람과 나만 얘길 했다. 전혀 생각에 변화 없는 두 사람. 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흉터가 확실하게 있지만 또 다른 한 사람이 문제였다. 이는 내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가끔 생기는 문제인데, 나는 불안한 거다. 혹시라도 한 사람만 변경하고 또 한 사람은 못할까 봐. 미안하면서도 그들에게 5월까지만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고용지원센터에 사업장 변경을 위한 진정을 냈을 경우 한 사람만 받아들여진다면... 그러나 두 사람은 확고했다. 필리핀에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장에서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제발 우리를 도와달라고도 했다. 아....ㅜㅜ 이 둘에게 이 회사에서 일하며 좋았던 적 없었냐고 물었다. 그래도 3년 넘게 일한 회사인데... 그랬더니 단 한 순간도 없었단다. 저렇게 신사적으로 말하는 과장도 공장에서 일할 때에는 항상 입에 욕을 달고다닌다고 했다. 자신들을 그저 일하는 기계 취급밖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자주 보아온 광경이었다. 회사에서는 몇년 간 같이 일한 이주노동자들이 그 회사를 아주 좋아하고 본인들을 존경할거라 생각하지만, 자신들이 가끔 하는 욕설쯤이야 별것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그런 욕 때문에 가슴에 분노만 쌓아가고 회사 높은 양반들을 아주 경멸한다는 것. 그런데도 회사 사장들은 얘기하지, 이주노동자들이 배신한다고.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다음날 과장이 또 센터에 찾아왔다. 이 사람은 자꾸 나에게 저 이주노동자들 얘기만 듣지말고 정확히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는 듯이 얘기하며 5월 말까지만 일할 수 있게 설득해달라고 한다. 그래, 시도는 해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똑같았다. 결국 나와 이 필리핀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사업장 변경신고서에 서명해주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고용지원센터에 제출할 진정서를 작성했다.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해 두 사람이 공장으로 돌아갈 생각 없으니 사장에게 얘기해달라고 했다. 부디 사업장 변경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 하고. 안되면? 바로 고용지원센터로 진정 넣는거다. 대체 사장은 무슨 생각인지 5월 말까지 일하지 않으면 공장장이 경찰에 고소당하는 일이 있어도 사업장 변경은 못시켜주겠다며 똥배짱이다. 아마 이 두 사람이 재고용 되어 돌아온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일이 생겨 회사에 아쉬울 것 없으니 저렇게 나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된다. 술에 취한 사람이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에 들어온 것 하며, 이렇게 말도 안되는 사람이 그 공장장으로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괜한 배짱 부리는 것. 그리고 자기 아들이 이렇게 맞았어도 저렇게 별것 아닌 일이라 말할까. 한국 공장에서 일하려면 폭행에도 이렇게 무뎌져야 하는건가? 그것도 나이 드신 어르신이 세상 가르쳐주려는 시도였다고 감사하게 여기며? 여기-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을 모아 만든 스탑크랙다운의 노래. http://blog.naver.com/seefeelthink?Redirect=Log&logNo=40024329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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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하나의 우연에서 시작된거야.

그때가 언제였던가... 작년 1월 세계행동의날 집회 때였지. 나는 돌멩이와 함께 집회 장소로 향했고 풀과 꽃도 거기 있었어. 집회 무리 맨 뒤에 서있던 한 외국 여성에게 돌멩이가 물었지. '너 저 사람이 하는 말 이해하니?' '아니' 나중에 우리쪽으로 온 풀이 그녀에게 물었어. '혹시 우리 만난 적 있지 않니?' 그녀는 '글쎄다.. 없는 거같은데' 그때 다가온 꽃, '허.. 그게 바로 네가 여자들한테 작업 거는 방식이로군'이라며 한껏 비꼬았어. 이에 당황한 풀은 아니라며 변명했지만 그 후로도 얼마간 꽃에게 구박을 받아야했지. 이렇게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나와 이 유러피언 여성 나무는 두달쯤 후부터 더 친해 졌는데 이 친구 학교 얘길 들은 후부터 난 너무 흥분했고 이 학교 사회학&인류학과에 지원해보리라 다짐했지. 생각만 했지 준비는 별로 안했던 나였어. 10월이 되고 11월이 되자 영어셤 점수부터 연구계획서, 이력서, 글 샘플 등등을 준비해야 했지만 난 영어셤 점수부터 낑낑대고 있었지. 에휴..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에라~ 모르겠다 걍 해보자,이런 맘에 계속 가봤는데 다행히 영어 점수도 잘 나왔고 글 쓰는 것도 나무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쳤지. 겨우겨우 해서 3월에 지원했고, 그간 나무가 날 너무 칭찬해줘버려서(네 주제는 거기서 먹힐 수밖에 없다, 그간의 네 경력 너무 훌륭하다 등) 난 좀 기대는 하고있었지. 아~ 떨려 4월이 와버렸잖아...결국 이메일이 온거야. 내가 글자를 잘못 읽어서 full fellowship인 줄 알았는데 full tuition waiver였던거라. full fellowship이면 싹 면제에 용돈까지 나오는건데.. 그래도 이게 어디냐. 그 비싼 등록금 대는 건 상상도 못할 상황인데. 생활비만 대면 돼.. 그래서, 난 헝가리로 간다. 왠 공부? 진짜 공부 하고싶거덩~ 나같이 어중간한 애가 공부나 잘 할 수 있을까? 석사 후엔... 흠~ 계속 공부 하고싶은데... 왜 헝가리? 간지나잖아 ㅋ(이런 말밖에 못해 ㅋ) 내가 이런 시간을 보내는동안 돌멩이는 거북이섬에 다녀오더니 아기가 생겼고 풀과 꽃 역시 거북이섬으로 가더니 결혼을 해버렸네. 아이구머니나. 완전 놀랍게도 우리의 유러피언 나무, 결혼 얘기할때마다 썩소를 날리던 나무가 결혼을 결심해버렸구나! 나무와 나무의 그도 또 하나의 집회에서 만난 거잖아. ㅎ 아 무슨, 한국은 랜드 오브 매리지냐ㅋ 그 하나의 우연이, 우리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는구나. 결혼 축하해, 나무. 우리 부다페스트에서 결혼식 파티 잼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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