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국민의례 좀 하지말자~

2011/09/17 14:19

아니 이건 뭐 3.1절이나 광복절 행사장이면 또 몰라...프로야구 시작하는데 애국가는 왜 부르나? 중고생들 축제 마당에서 국기에대한맹세는 왜하나? 염병할. 이렇게 애국가를 불러재껴야 애국심이 용솟음치나? 얼마전 딸아이의 학교 음악회갔는데 그 자리에서도 국민의례하더라. 얼마전 시민주권 창립식에 갔는데 거기서도 국민의례...ㅠㅠ 보는 눈이 많아서였겠지만...그래도 '국민'대신 '시민'을 내세우는 단체에서 국민의례... 너무 슬펐다는..

 

사실  '국민'이라는 단어 자체도 싫다.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있긴 있다. 우리사회가 용납을 못해서 그렇지..ㅠㅠ 난 되도록 시민이란 단어를 쓴다. 어쨌든! 국민의례 그만 좀 합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렇지만 말이야...이런 좌우 양날개 은유 혹은 프레임에 한나라당 너희들이 은근슬쩍 들어오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어. 너희들같은 수구, 파시스트들이 좌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꼽사리 끼는 건 정말 화가나. 좌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찌도 필요하다? 전두환파시즘도 필요하다? 광주학살도 필요하다? 미국의 침략전쟁도 필요하다? 4대강삽질도 필요하다? 중용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공정과 불공정의 중용을 추구할래? 정직과 사기의 중용을 추구한다?

 

난 진보/보수 프레임 사용을 매우 신중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프레임은 좃선찌라시의 프레임이다. 리영희씨가 좌우 양날개 은유를 사용했을 때 오른쪽 날개에 설마 학살자 전두환을 포함시켰겠나? 보수건 진보건 기본이 필요한 법. 그건 논리야. 삼단논법이라는 최소한의 기본 로직이 확보되지 않은 자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거지. 그래서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야. 이넘들은 그냥 암덩어리지. 미국산 쇠고기 위험하다!! 고 소리치다가 1년뒤 안면 싹 몰수하고 미국산 쇠고기 아~주 안전하다..고 지껄인 넘들이야. 위장전입,논문표절,부동산투기 등등 뭐 하나만 걸리면 야차같이 달려들던 넘들이 정작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나서는, 뭐, 우리 너무 깐깐하게 하지말자...라고 지껄이던 넘들이야. 이런 넘들을 지지하는 개자식들은 도대체 뭐냐???

 

민주당이 보수지. 다만 워낙 보수란 말이 부정적이다 보니 나는 양심적보수, 또는 합리적보수란 표현을 쓸 뿐이야. 마치 일제강점기때 민족주의자란 표현이 워낙 닳고 닳아서 심지어는 일제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치만 하자고 했던 넘들도 자신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하다보니 비타협적민족주의자란 표현을 만들었던 것처럼. 진보? 글쎄.. 향후 제대로된 진보/보수 양립 체제가 갖추어졌을 때 지금의 민노/진보신당이 진보에 속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들을 진보의 맹아..정도로 보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진보/보수..이거 정말 조심히 써야해. 저들에게 자신들을 합리화시키는 무기가 되면서 무엇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정당한 논리를 제공하는 꼴이되거든. 어제 어떤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한넘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은 오세훈이 지지했고, 자신이나 자기 아버지나 정치적 성향이 한나라당이라는 걸 말하는 걸 보니 솔직히 슬펐다. 그넘은 예전에도 재정건정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무상급식 반대했던 무뇌아였어. 무뇌아니까 말이 안통하겠지? 4대강에 쏟아붓는 돈은 안보이나봐. 한강르네상스에 쏟아붓는 돈은 안보이나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정재정과 국가재정을 동일시한다는... 가정재정은 수입은 고정되어 있고 지출은 가변적이지. 그래서 가정재정이 어렵다...하면 대부분 아! 지출을 줄여야한다. 뭐 이런 생각을 하지. 근데 국가재정? 이건 수입도 가변적이다. 즉, 국가재정이 어렵다..하면 지출을 줄이자! 이것만 답이 아니지. 수입을 늘이자. 이것도 답이지. 어떻게? 증세말이야. 한나라당이 지난 3년동안 부자들 세금을 100조원이상 깎아줬어.  있는 돈은 몽땅 강물에 쏟아부었지. 그리고나선 돈없으니 복지를 줄이자! 씨바 그런데 저들의 저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같은 시민들 주둥아리에서 듣는 그 참담함이란....염병할 그 새끼가 부자라면 또 몰라. 씨바 나보다 못사는 새끼가 국가재정을 걱정하면서 복지를 늘리면 안된데..ㅋㅋ 그리스꼴 난데..ㅋㅋ 온갖 전쟁놀음에 돈 왕창 쏟아버리고 돈없으니 복지를 줄이자...ㅋㅋ

 

한 나라의 민주화가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지 심리적인 측면만은 아니다. 전 세계가 이토록 고통받는 원인 중의 하나는 미국 사회의 민주역량이 너무 약한데 있다. 2차대전 이후 영국이 그 많던 식민지들을 자진해서 포기한게 인도적 이유가 아니었지. 국내의 복지 수요을 감당하기 위해서 군비를 줄일 수 밖에 없었던 거야. 영국 노동자들의 투쟁 덕이었던 거지.

 

좌우가 필요하다...그래서? 베를루스코니도 필요하니? 뭇솔리니도 필요하니? 명박이도 필요하니? 전두환이도 필요하니????? 아..씨바 무슨 말이 통해야 말이지...ㅠ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리를 열받게 하는 것

2011/08/20 23:31

중국 하이난성으로 여행간 두 여성이 현지 가이드에게 성희롱 및 추행을 당한 내용을 접했다. 사건 발생 후 한국 여행사 본사에 항의를 했고, 모부장이 전화를 해서 "남은 기간 편의를 봐줄테니 잘 지내고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이야기햐자"고 했단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태도가 싹 돌변해서 증거있느냐..뭐 이런 식? 피해 여성들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도 법적 대응하겠다..뭐 이런 반응.

 

아주 종종 우리는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의 상황에서 더 큰 모멸감과 분노를 느낀다. 내가 저 피해여성이라면 현지 가이드보다 본사사람들의 태도에 더 열받을 것이다. 성폭력의 경우도, 이건 내가 뭐라 판단하기 힘들지만, 성폭력 자체보다 그 폭력에 결부된 다양한 상황들이 더 절망적이지 않을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눅들어야 하는 엿같은 상황같은 것 말이다.

 

미국산소고기, 천안함 등등의 경우를 보자. 이 사건들도 그 자체보다는 그 상황에서 보여준 한나라당정권과 수구언론의 태도가 정말 사람을 열받게 했지 않은가? 우리를 무슨 세살짜리 어리애 취급하는 그 모멸스러운 태도들. 뭐라고 문제제기를 하면, '너 전문가냐?' '니가 뭘 안다고 떠드냐?'는 반응들.

 

백혈병 자체보다 백혈병 발생에 대한 삼성의 태도, 성노예 자체보다 일본정권이 보이는 태도들.  결국 그들의 그런 태도는 패해자들이 과거에 겪었던 고통을 끊임없이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존칭 어미 '시'를 폐지하자.

2011/08/18 19:35

좀 과격한, 또는 황당한 주장 되겠다.

 

"아~ 이 제품은 만오천원 되십니다." 뭐 이런 말 많이 듣는다. 여기저기서 이와 관련한 많은 지적을 하고 있다. 저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사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습관처럼 나오는 것일 뿐. 그래, 습관이다. 사람하고 바쁘게 이런저런 말 하다가 혹시라도 반말할까봐 두려워 그냥 전부 존칭을 써버리는 것이다. 저런 표현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 한번 가상 실험해봐라. 천천히 생각하면서 말 할때는 괜찮지만 바쁘게 수시로 말할 때 은근히 신경쓰인다. 결국 일종의 risk 관리 되겠다. 존칭과 비존칭을 정확히 구사하는데 수반하는 골치아픔과 깐딱 실수해서 존칭을 써야할 때 하대를 써 버림으로써 발생하는 치명적인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그~냥 전부 존칭으로 씨부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최악의 경우(존칭을 써야할 때 하대해버리는 경우)는 피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예 들어보자 :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라는 문장을 보자. 체언+조사, 용언+어미의 형태이다. 죄다 존칭이다. 좀 너무하다는 느낌이다. 꼭 저렇게 모든 음절을 죄다 존칭으로 해야 하나 싶다. 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천천히 움직이던 시절에는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산업사회다. 아, 산업사회라 해서 인간관계의 기본이 무시되도 괜찮다..뭐 이런 주장하는 것 아니다. 다만 산업사회에 걸맞는 존칭을 정립하자는 것이다.

 

산업사회에 걸맞는 존칭, 이 문제에 대해 국어학자들의 책임이 참으로 크다. 그들의 책임이 절반을 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글이 우리의 말과 글을 지배하기 시작한 게 대충 백년이라고 보았을 때 처음 절반은 일제 강점기의 수렁이었고 뒤 절반은 미군 강점기, 전쟁, 굶주림, 독재 등등으로 점철되면서 우리 말에 대한 어떤 정체성 혹은 미래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혼란스럽고 어찌보면 사치스러웠을 것이다. 한다는 것이 고작해야 소위 이미 굳어진 말들을 어거지로 우리말로 바꾸자는 식이었다. 70년대 잠깐 그런 적이 있었다. 또 국어학자들 우리말에 대해 이야기하면 거의 무조건 "원래 우리말은..." 뭐 이런 식이다. 원래 이러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기준을 잡고 중심을 잡는 것,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 언어도 변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1945년 이후 국어학자들이 뭐 이런저런 주장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게 관철되었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건 45년이후 우리는 우리말에 대한 어떤 전략적 대응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45년 이전 상황이 일제 강점기라는 너무나 혹독한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적절한 전략을 갖지 못했다. 예를 들면 보자. 45년 이후 우리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근 영어다. 즉, 영어가 우리말에 밀려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목은? 그래. 영한사전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상당한 기간동안 우리나라 영한사전은 영일사전을 그냥 뺐겼다. 참 쉬었을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이야 일어는 외국어도 아니었을 터이니 조일사전놓고 순서하나 빼먹지 않고 그냥 한글로 옮기면 되는 거였다. 이과정에서 일본식 한자가 해방이후 태어난 세대들에게도 학습된다. 아.. 너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이건 나중에 다시 쓰겠다. 존칭, 호칭, 인칭대명사, 맞춤법 등등...

 

내가 말한 적절한 전략이란 해방이후 우리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걸맞는 문법, 어법을 정립하는 것이다. 그중 지금 말한 존칭의 문제도 포함된다. 존칭을 줄이자. 이게 내 주장이다. Better later than never다. 각급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언론등을 통해 홍보 및 실천을 하면 개선할 수 있다. 처음에 예로 든 문장에서 존칭과 관련한 조사 및 어미를 제거하는거다. "아버지가 말씀했다" 뭐 이렇게 되겠다. 물론 어감상 '시'를 안쓰면 이상한 경우도 있다. 다만 큰 줄기에서 '시'를 쓰지 말자는 거다. 그렇게 교육하고 공공매체를 통해서 실천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우리말에서 존칭을 줄여나가야 한다. 우리말. 존칭이 너무 많다.

 

한사람은 하대하고 한사람은 존대하고. 이렇게 해서 제대로 대화가 되겠나? 호칭도 없애거나 방식을 바꿔야 하고, 적절한 2인칭 대명사도 도입해야 하고, 입과 귀가 알아듣지 못하는 맞춤법도 손질해야한다. 그냥 저절로 변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저 거대 중국의 글자도 바꾸는데 이건 아주 약과다. 무슨 글자 모양을 확 뒤집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표기와 어법을 바꾸는 것인데 나는 결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예 하나만 들자.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명박대통령은..." 뭐 이런다. 이것을 "대통령 이명박씨는...."으로 바꾸자는 거다. 이게 어렵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영화 : 세 얼간이

2011/08/15 16:57

먼저, 나 이 영화 아직 안봤다. 따라서 이 글은 이 영화에 관한 것은 아니다.

 

어떤 글을 읽었다. 이 영화에서 뮤지컬 4개를 짤랐다는 것이다. 원래 상영시간 3시간이 너무 길어서 노래 4곡을 잘라 2시간 반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를 망쳐놨다 어쨌다... 답글들도 대부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

 

인도 영화 원래 길~다. 중간중간 뜬금없이 노래 나온다. 인도영화 특징이다. 문제는 이를 상영하는 상업적 공간에서 어떻게 실현되느냐의 문제다.

 

다른 이야기 해보자. 우리가 원래부터 에스프레소 마셨나? 아니다. 첨에는 커피둘, 설탕둘, 프림 둘 넣어서 마셨다. 그러다가 초이스라는게 나왔다. 제법 향이 좋았다. 그리고 원두커피라는게 나왔다. 뭔가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마침내 지금처럼 동네 곳곳에 커피전문점, 온갖 종류의 커피들이 판을 치고 있게 되었다. 문화라는게 이런거다. 피자 이야기 해보자. 우리가 처음부터 마리게리따니 고르곤졸라 먹었나? 피자헛 스타일의 두껍고 느끼~한 것 먹다 어째어째해서 조금씩 이것저것 먹다보니 지금처럼 엄청 다양한 피자집들이 들어서게 된거다. 세상이 이런 거다.

 

originality 그래 인정한다. 보통사람들은 모르는 어떤 깊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자꾸 상업화되고 단순화된체 세상에 소개되는 게 참 싫을 것이다. 나도 그런 부분 있다. 아니, 아주 많다. 인도 영화. 그래 나름 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영화를 울나라에 안착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인도영화를 극장에 그냥 들입다대면 되는 걸까? 현재의 상황에서 첨부터 오리지날 인도영화를 틀어대면 사람들이 뿅! 갈까? 위험한 생각이다. 어쩔 수 없다. 첨에는 타협할 수 밖에 없다. 대중들을 조금씩 교육시키고 길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과정을 성공리에 진행하면 나중에는 짜르라 해도 짜르지 않게 된다. 노래 4곡을 짤랐다고 비판하는 대신 2시간 반으로 줄일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게 더 좋다.

 

좀더 큰 틀에서는 일종의 쿼터제가 도입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독점금지 뭐 이런거 말이다. 한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을 제한해야하고, 권역별(예를들어 북미, 유럽, 아시아 같은) 스크린 쿼터제 같은 것도 나오면 좋겠다.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나를 슬프게 한 사진 ㅠㅠ

2011/08/15 11:40

재단이라지만 그래도 상업광고는 상업 광고지유..ㅠ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D-war

2011/08/14 16:08

일단 제목에 대한 내 오해 하나. '더 워'가 아니고 '디 워'라고 표기한 것에 대해 일종의 통쾌함이 있었다. 미쿡인들의 발음상 '더'가 맞는데 일부러 '디'로 비틀었다고 착각했었다. 마치 서태지가 공연 도중 "Are you wanna dance?"라고 했을 때 느끼는 통쾌함과 같은 것이었다. center를 시종일관 centre로 쓰는 고집같은 것.(물론 이경운 둘다 통용되는 것이지만) 씨바..뭐 영어가 니네들 것만이냐..하는 밑도끝도 없는 괜한 오기같은 것. 뭐 사실 괜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언어는 끊임없이 흐르니까... '적과 내통하다'는 의미로 쓰였던 collaborate가 유럽넘들이 cooperate 대신 이 단어를 시종일관 써버리니 미쿡넘들도 이젠 협력하다는 의미로 둘다 쓰고 있듯이. sexual harassment를 일본넘들이 '세쿠하라'라고 발음(혹은 축약)하자 이젠 미쿡넘들도 좀 길다 싶은 sexual harassment대신 세쿠하라를 쓰기 시작하듯이. 또 아니? 언젠간 '두 유 와나 댄스' 뿐만아니라 '아 류 와나 댄스'도 쓰이게 될지?ㅋㅋ

 

그런데 아니었다. The war가 아니고 D War였다..ㅋㅋ 미리 말하자면 난 이 영화 보지 않았다. 첨에는 볼려고 했다. 봐주는게 예의(?)인 것 같았다. 뭐 고생많이 한 것 같고..나름 괜찮은 성과물을 만든 것 같고. 이제 시작인데뭐.. 헐리우드 최고 수준에 비교해서 자학하는 건 지나치니까.. 뭐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난 읽지 않을 확률이 거의 100%이면서도 가끔씩 책을 사곤 한다. 아.. 이런 책을 만들다니..하는 일종의 경외감에서. 예를 들면 작가정신에서 출판한 모비딕같은 책말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공공도서관에서 사줘야 하는데, 안 사주니 뭐 나라도 사줘야 겠다...하는 이상한 심보. 반올림등에 후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뭐 삼성노동자들한테 엄청난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도 아니면서 그닥 부담되는 액수도 아니고, 그렇게라도 안하면 너무 울적하고 해서.... 같은 이유로 경향신문이나 시사IN을 구독한다. 읽는 것은 고작 두어꼭지. 매일 빼놓지 않고 읽는 것은 해당 신문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한 바둑.ㅋㅋ 그렇지만 뭐랄까...정기구독하는 게 왠지 그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서... 2008년 이후론 소고기 안 먹는다. 왜? 그냥...빈정상해서~ㅋㅋ 그리고 미안해서. 같은 이유로 진보신당에 후원을 하곤 했다. 요즘은 안한다. 예전에 진보신당 게시판에 '너무 그렇게 앞뒤가리지 않고 비판만 하지마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통일전선아니냐? 상대가 아무리 맘에 안들어도 무슨 사상검증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심하지 않느냐? 당신들이 그럴 때마다 후원금 낸 것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이런 글을 썼는데, '돈 돌려 줄테니 갖고 떠나라' 뭐 이런 식의 답변이 왔다. 그래서 다음부턴 안간다.

 

다시 D-War. 그런데 이 영화 안봤다. 심형래가 너무 심하게 울겨먹더라.."나 무지하게 고생했다. 씨발. 충무로에서 나 무지하게 홀대받았다.." 뭐 이런 식의 드립들...ㅠㅠ 씨바..한두번이지 수십번 우려먹는데... 질려버렸다. 게다가 내가 너무너무 혐오하는 애국주의 마케팅까지... 결정적으로 내가 보기전에 너무 유명해져 버렸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봐버렸다..ㅋㅋ 뭐랄까.. 내가 보기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면 괜해 보기싫어지는 하여튼 이해할 수 없는 놀부 심보같은 게 발동했다.

 

재밌는건 나중에 진중권씨와 pro D-War 진영간의 말다툼이었다. TV 토론프로에까졍 나와서 설전을 벌였는데 보는 내내 웃겼다. 저렇게 같은 대상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자기 이야기만 씨부릴 수도 있을까..ㅋㅋ 며칠 후엔 진중권씨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오금이 저리는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였다. 헉.. 순간 사정하는 줄 알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옛 친구같은 정겨움..ㅋㅋ

 

진중권은 영화를 텍스트(좁은 의미의)로 이해하고 있었다.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은 영화를 소리와 이미지의 결합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영화를 텍스트로 이해하니 플롯이 나오고 마키나가 나오고 하는 거다. 반대진영 사람들은 영화를 텍스트로 이해하지 않는다.ㅋㅋ 물론 난 pro D-War 진영에 대해서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거의 불신지옥 개독 수준의 광신도 집단이었으니까. 그냥 난 두 진영의 말싸움이 재밌었다.

 

영화는 소리와 이미지의 결합이다.(http://blog.daum.net/aprilfool) 그 결과 우리의 머릿속에 텍스트가 만들어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커피

2011/08/13 13:17

여전히 차를 즐기는 사람도 많고 지역도 많지만 그래도 커피가 단연 tea franca라는데 의의를 달기는 힘들다. 강렬한 향기, 다양한 맛과 조리법(?) 등등, 다른 차 종류가 따라잡기에는 꽤나 힘들어보인다.

 

커피와 차(녹차, 홍차 기타 등등)의 특징중에서, 전문가가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그러나 조금엉뚱한 데에 있다. 바로 커피는 물에 녹는다는 것이다. 아~ 물론 물에 녹도록 가공을 했겠지. 아니면 에스프레소 등과 같이 초스피드로 엑기스만 쏘~옥 뽑아서 담아주든가. 어떤 식이든, 커피는 다 마시면 남는게 없다. 회사에서 마시는 봉지커피만 해도 그렇다. 아주 간단하다. 물론 홍차맛이 나는 봉지차도 있긴하다. 홍차인지 설탕물인지 구분하기가 조금 힘들지만~ㅋㅋ

 

집에서 마시는 차는 대부분 티백의 형태이다. 우려먹는 방식? 아.. 너무 힘들지 않는가? 그게 차의 매력이라고? 글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차를 꼭 우려먹는 방식으로 즐겨여만 한다고 고집해서는 안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물론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그렇게 즐기면 된다. 그렇지만 그런 방식을 사람들이 다 따라하기는 힘들지 않는가? 하여, 차도 커피처럼 물에 쉽게 녹일 수 있는 형태로 가공이 되어야 한다. 아마 부분적으로 그런 게 이미 나와 있을 것이지만 쉽게 찾기 힘든걸로 보아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 것으로 생각한다.

 

집에서 티백에 있는 차를 마시면 조금 귀찮다. 조금만 오래 담가놓으면 써진다. 따라서 물에  담가놓고 적당한(!) 시간 후에 꺼내야 한다. 그 꺼낸 티백을 놓아둘 장소도 필요하다. 아니면 버리든가. 귀찮다... 커피는? 간단하다. 왜? 물에 녹으니까! 맛? 별로 변하지 않는다. 온도에 따라 느낌이 조금 달라지긴 해도 크게 문제될게 없다.

 

아니면 에스프레소처럼 차도 수증기를 이용해서 추출하는 법도 괜찮을 것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커피는 볶은 경우 그냥 먹어도 맛있다. 가끔 에스프레소 시키면서 볶은 콩을 조금 그냥 달라고 해서 먹는다. 별로 안쓰다. 맛있다. 차는 이게 안된다.. 이런 차이들이 양자간 소비지형도에 크게 기여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가 그랬지? 무엇을 만드는가 보다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커피를 즐기는 방식, 차를 즐기는 방식. 여기에 주목해야 하는거야. 커피는 좃도 모르는 대중들이나 즐기는 거고 우리같은 품격있는 사람들은 차를 즐기는 거라고? ㅎㅎ 저 포도는 실거야...하면서 돌아서는 여우가 떠오르지? 아니면 아Q의 정신승리법? ㅋㅋ 진건 진거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어륀지? 오렌지?

2011/08/09 19:58

몇년전 어륀지에 관한 말, 우스개, 풍자, 비꼬기 등등이 이었다. 그 말을 한사람의 행실(국보위 위원, 명박이따까리)을 제외하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사실 아주 오래된 현상이며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논쟁이다.

 

혹시 아이오딘이란 말 들어봤나? 좀 나이든 사람은 '요오드'로 배웠으나 요즘 학생들은 '아이오딘'이라고 배운다. 세상이 주로 아이오딘이라하니 우리도 따라서 아이오딘이라고 하는 것이다. 크게 문제될 게 없다. 학교에서 요오드라 했다가 무슨 학회같은데 가서 아이오딘이라고 하면 헛갈리지 않은가?

 

風 : 이 한자 어떻게 읽나? 그래 '풍'이다. 뜻은? 그래 바람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천년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한자를 '바람'이라고 읽었다. 그런데 당시 선진국(송나라)으로 유학갔다온 사람들 야그가 "사람들아! 송나라 사람들은 이 한자를 '풍'이라고 읽는다. 우리도 '풍'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2천년 전에 중국 발음에는 '어두자음군'이란 게 있었다. 초성에 자음이 두어개 연속 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중국 주변 지역의 언어를 연구한 결과이다. 즉, 우리말을 포함해 중국 주변의 언어는 일종의 고대 중국어의 화석같은 구실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자음이 영어식의 consonant인지 우리식의 닿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consonant는 홀로 소리가 나지만 닿소리는 그렇지 않다.) 어쨌든 당시 중국어에는 초성에 자음이 연속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발음했는지는 지금으로선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당시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우리나라 사람? 이상타 대충 고.백.신 등등의 사람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은 자음 두개를 연속으로 발음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연속된 자음이 오는 경우에는 중간에 살짝 모음을 끼워넣어서 읽는 수밖에.... 즉, 風의 고대 중국 발음은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PLAM 뭐 이런 식이 되겠다.(혹은 ㅍ람) 문제는 우리는 ㅍ과 ㄹ을 연달아 발음할 수 없었으므로 중간에 모음을 하나 넣어서 '바람(혹은 파람)'이라고 읽었던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 바람이라고 읽어왔는데 난데없이 선진지식인이라는 자들이 '이런 무식한 것들~ 이 글자는 '풍'이라고 읽어야 한단 말이야! 이걸 '바람'이라고 읽으면 선진국사람들이 못알아 듣지!'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우라질~ 넘들이 알아듣든 말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람~ 뭐 이런 식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결국 타협을 본게 '좋다! 풍은 음이요 바람은 뜻이다' 뭐 대충 이렇게 된게다. 이런 식으로 고대 중국어 발음이 고려시대 전후에 뜻으로 그리고 동시에 순수한 우리말로 둔갑한 경우는 매우 많다.

 

오렌지. 이 단어는 orange와의 관련에서 이해할 필요가 없다. 오렌지든 orange든 그 단어들이 가리키는 사물의 이름으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오렌지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당근 orange와 깊은 관련이 있었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른거지. 그동안 orange를 발음하는 미쿡 혹은 영쿡넘들의  방식이 조금 바뀐거지. 그래서 지금 들어보니 어륀지로 들리는 거지. 그렇다고 우리도 그 과일의 이름을 어륀지로 바꿔야한다? ㅋㅋ 소가 웃다가 코뚜래가 빠질 주장이지. 이젠 양놈들이 그 과일을 뭐라 부르든 상관이 없어졌어.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 ORANGE가 형태 및 발음이 엄청 바뀌어 버린 경우를 상상해보자. 형태는 ULOMK가 되고 발음은 뭐 대충 '울럼크'가 되었다고 하자. 그때가 되면 우리 아이들은 'ULOMK'가 우리말로 뭐지? 하고 물으면 '오렌지요!'하고 답할 것이다. 사전에는 ULOMK : 발음은 울럼크, 뜻은 오렌지...ㅋㅋ 그때가 되면 사전이 필요없어질려나?

 

어륀지... 이 말을 들었을 때 명박이와 그 주변 사람들의 철학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알겠더라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눈꼽만큼의 고민과 이해가 보이지 않아. 그저 모든건 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잇속. 이것말고는 없는거야.

 

언어.... 우리끼리의 소통이 더 중요한가? 외부와의 소통이 더 중요한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우리나라 나이

2011/08/08 19:53

우리나라 나이는 참 재밌다. 태어나자마자 한살이다. 이걸 많은 사람들은 뱃속에서의 기간으로 오해하면서 생명존중의 표현이라고 말하곤 한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우리나라 나이의 본질은 아니다. 우리나라 나이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첫번째 특징은 사실 이 두번째 특징에서 비롯된다) 새해 첫날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이를 한살씩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나이는 햇수를 세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종의 연호(年號)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력기원부터 이야기해보자.

 

서력기원은 예수가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해를 기준으로 해서 연도를 세고, 예수는 2010년 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즉, 서기 2011년이라함은 '주께서 오신 해를 기준으로 하여 2011년'째 되는 해라는 뜻이다.(AD2011=Anno Domini 2011) 여기서 재밌는 것은 예수의 생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가 3월 2일에 태어났든, 7월 9일에 태어났든 아무 상관이 없다. 태어난 해가 AD1년이 되는 것이다. 또한 AD1년은 예수가 태어난 날부터 시작하여 다음해 생일전까지를 뜻하지 않는다. 예수가 태어난 해의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가 전부 AD1년이다. 즉, 예수가 태어난 해의 12월 1일은 BC1년 12월 1일이 아니고 AD1년 12월 1일인 것이다. 따라서 AD2년은 예수탄생 1주일 뒤에 시작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해를 세어서 금년은 AD2011년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나이 셈법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태어난 날짜와 무관, 태어난 순간 1년, 관심대상과 별개로 1년이란 기간이 존재한다. 즉, 예수 혹은 개인들의 탄생과 무관하게 새해첫날과 그해 마지막날이 존재한다.)

 

이런 방식의 연도셈법은 우리나라(혹은 동아시아) 역사에 아주 흔한 것이다. 세종 24년, 중종 5년 뭐 이런 셈법말이다. 여기서 간단한 퀴즈하나! 세종은 1418년 왕위에 올랐다. 그렇다면 세종1년은 1418년인가? 아니면 1419년인가? 달리 말하면 1418년은 태종18년일까? 아니면 세종1년일까? 아니면 둘다일까? 일단 둘다는 아니다. 태종18년 혹은 세종1년 둘중 하나면 취한다. 1418년 즉, 왕위에 오른 해(즉위년)를 1년이라 부르는 방식을 '즉위년칭원법'이라 하고 즉위한 해 다음해를 1년이라 부르는 방식을 '유년칭원법'이라 부른다. 즉, 왕위에 오른 해를 전(前)왕의 해로 보느냐 새 왕의 해로 보느냐의 문제다. 삼국시대에는 즉위년칭원법을 따랐다. 그러나 유교의 이념이 자리잡은 고려, 조선시대에는 유년칭원법을 따랐다. 일반적으로 새왕은 전왕의 아들이므로 아들이 아버지의 해를 지운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진 것이다. 태조처럼 역성혁명을 일으킨 경우는 예외다. 또 있다. 세조, 중종, 인조처럼 정변에 의해 왕위에 올라서 굳이 전왕을 예우할 필요가 없는 경우. 1506년 반정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르며 1506년은 중종1년이 된다.(연산군 12년으로도 기록되는데 같이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1506년이 중종1년이다.) 마찬가지로 인조반정이 일어나 인조가 왕위에 오른 1623년이 인조1년이다.

 

우리나라 나이셈법은 일종의 연호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가 2001년에 태어났다고 하자. 그러면 그해(2001년)를 AH1년이라 부르는 식이다.(Anno Honggildong 1) 만약 2005년에 김철수가 태어났다면 2005년은 AK1년(Anno Kimchulsoo 1)이면서 동시에 AH5년(Anno Hong 5)이 된다. 즉, 우리나라 나이는 사람 개개인을 세상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년칭원법이 아니라 즉위년칭원법을 택하고 있다. 개개인을 부모의 무엇으로 보기보다는 개체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통쾌하지 않은가?

 

결국, '홍길동이는 금년에 11살이다'라는 말은 '홍길동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해를 세면 금년은 11년째 되는 해이다'라는 뜻이다. 말이 길어지니 줄여서 홍길동이 나이가 열한살이다라고 해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전차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자 마자 한살이라 부르는 것이고, 새해 첫날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나이를 한살 더 먹는 것이다. 금년은 AG(Anno Gynacosmos)몇년일까...? 한국전쟁은 BG(Before Gynacosmos)몇년에 일어났을까? ㅎㅎ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