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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1
    1월의 책들(3)
    hongsili
  2. 2009/01/26
    영화 세 편(4)
    hongsili
  3. 2008/12/21
    그들의 포스... ㅡ.ㅡ(4)
    hongsili
  4. 2008/10/31
    끝나지 않은 가을(1)
    hongsili
  5. 2008/10/09
    생활 예술?(8)
    hongsili
  6. 2008/10/01
    안개(2)
    hongsili
  7. 2008/09/03
    책 몇 권
    hongsili
  8. 2008/08/02
    책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의 [불안](6)
    hongsili
  9. 2008/07/04
    혁명의 기록들(5)
    hongsili
  10. 2008/06/15
    심각한 책과 그렇지 않은 영화(3)
    hongsili

2월의 책과 영화

벌써 3월이다. ㅡ.ㅡ 이제 세월의 흐름에 둔감해질 때도 되었건만, 문득문득, 여전히 놀란다! #1. 조한상 지음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책세상 2009

후배라고 대전에 내려왔는데, 서로 애틋하게 챙겨주는 사이는 아니고, 뭐 모른척 지내기도 웃기고... 그냥 만나서 수다만 떨기에는 둘 다 한가하지는 않고.... 비어가는 머리를 채워야겠다는 문제의식은 있고.... 이런 오묘한 사정이 결합하여, 얼마전부터 해미와 간이 강독 모임을 하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2주에 한번 정도 맛난 차를 마시며 책이야기를 해보자는... 첫번째 책으로 이걸 골랐다. 몇 년전부터 그 답을 알고 싶었다. 도대체 공공성, 그 실체가 묘연한 이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지... 저자가 지적한대로, '공공성'이라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쓰이는데, 소위 '개념의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그 누구하나 정확한 의미를 정의하지 않은 채 남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1장에서 짚어준 공공성 개념의 역사와 핵심 의미요소에 대한 설명은 유용했다. 인민/공공복리/공개성이라는 3대원칙은 상당히 명료하고, 개별 사안에서 과연 이것이 공공성에 부합하는가를 판단하는데 유용한 잣대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공공성과 국가공권력이 어떻게 등치되었는지, 그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혼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는 남아있다. 계급분할이 현존하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공공복리'라는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공공 public'은 과연 누구? '선의'에 기반한 시민사회가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되는겨? 어쩌면 논의는 다시 롤즈의 정의론으로 돌아가, 가장 취약하거나 힘없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는 편익이 공공성이라고 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ㅡ.ㅡ 첫술에 배부르랴. 어쨌든, 이제 이렇게 논점들이 정리되고 토의가 본격적으로 (?) 시작되었으니 좀더 심화된 연구결과들이 빨리(?) 나와서, 우리같은 어린양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참,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사법관에 의한 헌법해석의 독점을 비판한 부분.... 격하게 공감했다. 헌법해석의 민주화라...


#2. 이영희 [역정-나의 청년시대] 창작과 비평사 1988

링크된 그림은 2006년도 한길사 저작집에 포함된 것이고, 내가 가진건 창비의 오래된 책... 예전부터, 평소의 행적을 볼 때 자서전을 쓰실 분 같지는 않은데 무슨 연유일까 좀 궁금했었더랬다. '책을 내는 변명의 말'을 보면 이에 대한, 그야말로 변명이 나온다. "혁명가는 지나온 혁명이 그 인간의 전기이다"며 자전 쓰기를 거부했다는 모택동과 주은래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본인 책의 독자들에게 대한 도의적 의무감에서 이 글을 썼다는.... 엄혹했던 시절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많은 대학생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저서를 통해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후의 실천적 삶의 과정에서 당한 시련과 고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쁨과 동시에 무거운 부담을 느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1980년에 다시 구금되면서 다시는 지적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전망 하에,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지적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연배에게서 동류를 찾아보기 힘든 선생의 까칠함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혼란과 야만의 시대에, 지식인이되 금전이라는 물질적 자본과 학연이라는 사회적자본을 갖지 못한 이의 삶이란... 뭐 글쎄... 약간의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 시대를 살아온 동년배 어느 누가 쉬운 삶을 이어왔을까마는, 갖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지적으로 사상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대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후학들에게 귀중한 경험인 것 같다. #3. 이병훈, 윤정향, 김종진, 강은애 지음 [양극화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 환경미화원에서 변리사까지] 창비 2008

이 책은 희망제작소의 '우리시대의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된 시리즈물 중 제 5권에 해당한다. 책의 구성이나 접근 방법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생생한 내러티브를 이렇게 조리있게 재구성하여 문제의식으로 정리해낼 수 있다니... 나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들이다. 그런데,결정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첫 페이지 소개글이다. "...또 삼성은 '우리시대 희망찾기'의 연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기금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런 걸 병주고 약준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ㅡ.ㅡ #4.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지음 [라피끄 - 팔레스타인과 나] 메이데이 2008

아마도 이 책의 미덕은 그 '눈높이'와 에 있는 '다양한 결'에 있는 것 같다. 국제정세 분석과 통계자료만 나열되었더라면, 그것이 아무리 최신의 자료이고 정치한 분석이라 해도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역사와 정치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적 삶 - 이를테면 검문소, 난민촌 생활, 노동, 물 문제 -을 마치 우리옆에 있는 것처럼 그려내고, 또 사람들의 흔한 오해 -홀로코스트, 테러리스트/자살테러, 부르카 - 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방식이 참 좋았다. 결국 연대의 시작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네'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주변에 많이 선물해야겠다. 올해의 생일선물로 당첨 ㅎㅎㅎ 국제연대활동이 쉽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꾸준하게 활동해온 팔연대 활동가,회원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음... #5. 노영석 감독 [낮술] 2009

영화보다가 웃겨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홍보 카피에 "술과 여자의 공통점, 남자라면 거절할 수 없다"라고 쓰여 있어서 저건 또 무슨 마초적 발언? 했는데...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간다 ㅎㅎㅎ 그 찌질함과 팔랑귀... 근데 그게 너무 낯익은 설정과 상황이더라는... 누구는, 이 영화가 수컷들의 심리보고서라고 평을 하기도 했던데, 적절한 지적이다!!! 음, 어쩌면 영화의 배경이 강원도 정선이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우리 서클에서 정선으로 엠티를 갔던 적이 있었다. 정말 그 때 굉장했더랬다. 이틀 밤을 꼴딱 새며 마시고, 아침에는 해장술, 오후에는 체육대회... 무슨 극기훈련 ㅡ.ㅡ 사실, 당시에, 아침에 일어나 우리 너댓명이 해장술로 맥주 한 박스 먹는 걸 옆에서 본 신입생 하나가 도망가기도 했었다 ㅎㅎㅎ 이 영화가 중반 이상으로 넘어가면, 관람객들은 주인공과 함께 숙취를 경험할수밖에 없다. 빈 속에 보면 위험한 영화다.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내내 웃다가 나올 수 있는 영화이지만, 한 가지 교훈은 있다. "낯선 곳에서의 과잉 친절을 조심하라!!!" ㅎㅎㅎ 영화를 본 자만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세상살이가 무료하신 분들께 강추!!! #6. 아리 폴만 감독 [바시르와 왈츠를] 2008

드디어 보게 되었다. 근데 먼저 본 친구들 말대로, 착잡하다... 최근의 가자 지구 공습 사건이 없었으면, 좀더 감동하면서 볼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반딧불의 묘]를 보면서 가졌던 그 미묘한 감동과 반감의 갈등은 이 영화에서도 재현되었다. 그냥, 이스라엘 사람들 - 자신들을 돌아보는 성찰적 영화라고 단정해버리면 참 괜찮은 영화인데... 영상이나 음악이나, 구성방식이나, 또 침착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 하지만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분리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나마 이런 성찰적 움직임마저 폄훼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알겠으나, 그리고 극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상' 혹은 '객체'로 그려진 것도 일견 이해할 수 있으나, 나의 즉자적 감정은 영화를 여전히 '변명'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 올해의 가자 학살을 돌아보는 이런 류의 영화가 또 나올까? 이제 족한 것 같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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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책들

서로 어울리지는 않으나 흥미로운 책 몇 권의 기록을 남긴다. #1.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웅진지식하우스 2007

키득거리면서 읽되 쌉싸름한 각성을 주는 책... 이런 거 보면 진중권의 글솜씨란 참... 가볍건, 무겁건, 한국인 혹은 한국사회를 낯설게 보기로 객관화시켜 현재의 질서와 습속이 얼마나 괴이하고 폭력적인가를 드러내는 글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물론 읽는 사람이 많아야... ㅡ.ㅡ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표현들 남겨둔다 *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열정과 이해관계]에서 앨버트 허슈만은 (정념을) '이해관계'라고 답한다. 이해관계란 궁정에서는 정치적 이익을, 시장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가리킨다. 여기서 모든 정념의 즉발적 표출을 단 하나의 정념, 즉 물질적 소유욕으로 억누르는 근대인의 전형이 탄생한다. 중세인이 질주하는 야생마라면, 근대인은 소유욕이라는 엔진에 계산능력이라는 핸들을 단 자동차다. 이렇게 미래의 이익을 위해 순간의 격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계산하는 근대인, 그런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라 부른다. * 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 죄책감은 죄를 짓는 순간 발생하나, 수치심은 그것이 드러나는 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 * 공포는 판단을 마비시킨다. 말도 못하는 아기들에게 원어민 선생 데려다가 영어를 가르치고, 이제 겨우 두세살 먹은 아기들에게 철학 수업을 받게 하는 '광기'는 공포에서 나온다. 공포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하루종일 과외공부를 시키거나, 영어발음을 좋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부리를 잘라내는 '잔혹극'도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 한국인의 신체가 아무리 그로테스크해 보여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바로 그 몸이다. 다만 그 신체는 급조된 근대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 오늘의 고통을 제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한국인의 몸을 이루는 세 가지 역사적 층위가 최적의 배합을 이루도록 재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존재의 미학, 즉 요소들을 선택하는 테크네(techne)와 그것들을 배치하는 메트릭(metrik)이다.


#2. Joe Haldeman [Forever Free] Millenium 1999

말하자면 Forever 시리즈 삼부작의 최종편이자, 직접적으로는 Forever War 의 후일담 소설이라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더만 할배께서는 이 글을 안 쓰셨어야 했다 ㅜ.ㅜ SF 소설에게 '안드로메다'로 간다는게 욕은 아닐진데, 마지막 장은 정말 이 소설이 안드로메다로 직행하고 있구나 하며 한숨만 푹푹 쉴 밖에... 주제 자체는 심오하다. 심지어 창조주로부터도 독립한 'forever free'라니... 하지만 이건 아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차마 쓰지는 못하겠으나 (누가 읽기는 하려나) 그 어처구니없음이라니... 할배... 너무 섭섭하고 속상해요.... ㅜ.ㅜ #3. 스타니스와프 램 [사이버리아드] 오멜라스 2008

[솔라리스]에 완전 반했던지라, 오멜라스의 램 시리즈 1편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완전 만족!!! 일리아스의 로봇판 버전인 사이버리아드 - 호쾌한 범 우주적 스캔달과 해괴한 만담, 엽기적 행각...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인간 사회, 지식인, 지배계급에 대한 비틀리고비틀린 풍자... 엄청난 신조어와 패러디 용어가 많아서 번역이 정말 어려웠을텐데, 문맥도 살리고 글맛도 살리고, 번역자 송경아의 능력에도 새삼 감탄했다. 조카 다람쥐가 딱 좋아할만한 스토리인데, 아직 초딩 3학년이 보기에는 불가능하다는게 아쉬울 뿐... 램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는걸!!! 이 분은 어쩜 이렇게 박학다식한걸까??? #4.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후마니타스 2008

술자리에서나 논하던 이야기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지식인, 특히 대학생태계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가장 '핵심적' 질문을 책의 앞부분 고병권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는 (1980년대 지칭) '어느 계급 편에 설 것인가'를 물었지만, 지금은 '어느 계급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식은 권력이나 부가 될 수도 있고, 투쟁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사회적 상징자본을 넘어서 구체적일 물질적 부와 정치적/사회적 권력까지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직업이 교수 말고 어디 흔하겠나? 이제 그러한 물질적 토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식을 결정하고 있으니, 본능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봐야겠다. 이 책이나, 최근 읽은 다른 사회학 논문은 한결같이 대학사회의 미국 편향을 비판하고 있다. 논문은 교수사회의 내면화된 국가주의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별도의 현상이 아니며, 성찰없는 학문적 자세가 그 본질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다 친미적/시장적 시각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리영희 교수도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최장집, 신광영 교수도 소위 미 주류 대학 출신이다. 문제는 얼마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한국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느냐 하는 능력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국가주의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음을 꾸준히 내면화한 범생이들의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미국의 과학자들, 특히 NAS에 속한 최고의 생물학자들이 기독교 신자인 경우가 드문 것에 비해 한국의 과학자들 사이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결국, 기존의 것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의심 없는, 즉 성찰없는 모범적(!) 학습행위가 이러한 문제의 근간이 아닐까? 소위 한국사회 최고 엘리트들의 문제를 달랑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단정해버리기는 뭐하지만, 달리 다른 답도 잘 모르겠다. 근데 좀 슬프지 않나? 가장 자유롭고 회의적인 이성을 가졌을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모습이 이렇다니... 아참, 한국 사회 지식인의 이념적 지도를 그리면서 리영희 교수를 언급한 부분은 참 인상적이었다. "'해방된 사회에서 동창생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만사에 불편했다'고 되뇌고 했던 그는 평생 누구와 무리지어 세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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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편

이번 설 연휴에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올라왔다. 논문과 칼럼을 비롯한 각종 원고들!!! 노트북에 책이랑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역에 도착해보니, 옷보따리만 안들었지, 영락없는 상경처녀... ㅡ.ㅡ 그러면서도, 밀린 영화를 꼭 보고야말겠다는 야심찬 결의를 했더랬다. 그리하여, 어제 그제 낮에 계속 영화를 보러나갔다. #1.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2008년 작

그저께, 모처럼 4인방이 모여 감상. 언론과 각종 개인 블로그들에서의 평은 더할나위없는 상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찜찜한은 도대체 무엇? 한마디로, 영화가 지나치게 매끈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도시 생활의 피로를 절감하면서 부쩍 증폭된 향수를 가진 이들, 딱 그들이 원하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공사판 장양은 저 9남매를 위한 영화라고까지 '막말'을 했다. ㅡ.ㅡ 농약치고 트랙터로 모심는 옆논의 모습과 철저하게 대비되는 할아버지네 농사모습, 할배할매는 물론, 마을주민과 자식들가지 모두 만날 때마다 소이야기만 하는 모습, 우시장의 부감슛까지... 원래 나는 이 영화가 그냥 '다큐'인 줄 알았었다. 물론 다큐라고 연출이 없지야 않겠으나, 이런 인간극장 식의 감정고양 매끈 연출이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더구나 엔딩 크레딧은 이땅의 모든 아버지들과 소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하니, 도대체 그 뒷바라지 한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죄다 어디로 가신게냐??? 물론, 이 모든걸 덮어줄만한 진실의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화된 관절로 한발한발 걸음을 옮기는 소의 애달픈 모습,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기어다니면서도' 소를 챙겨주는 할아버지의 모습, 이 둘을 향한 궁시렁쟁이 할머니의 애틋함 - 그래도 삶은 지속되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 사이의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라는 그 서럽고도 애잔한 진실을 내 어찌 폄훼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죽어라 40년 동안 일만 하다가 스러져간 소는, 할배 할매의 사랑으로 행복했을까?


#2.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타셈 싱 감독, 2006년 작

결국 못 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보게 되어 어찌나 다행인지... 아마도, 내 평생 본 판타지 영화 중에 최고??? 우선, 그 초현실적인 영상 - 매 장면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뛰어넘고 있었다. 사실, 오프닝 씬에서부터 나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음악은 또 어떻고?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거니, 꼬마 알렉산드리아의 감정 연기는 정말... 꼬마아이는 실제로 영화를 찍으며 영어도 배우고, 빠진 앞니도 새로 나고, 그리고 성장했단다. 꼬마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해... 현실과 허구를 연결하는 빼어난 내러티브와 세상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은근히 귀여운 유머들... 이 감독은 전세계축구 스타들이 공차기로 연결되었던 그 유명한 펩시 광고를 찍은 양반이다. 그렇게 수 년 동안 돈모으고 개인재산 팔아서 이 영화를 찍었단다. DVD가 출시되면 꼭! 장만해두어야겠다... 안 보신 이들.... 어여 보세요. 정말 강추예염... #3. [렛미인] 토마슨 알프레드슨 감독, 2008년작

사실, 친구 M과 함께 이 영화를 본 건 작년 말이다. 여행 떠나는 날 오전에 잠깐... 이것도 금방 극장에서 내릴 줄 알고 서둘러봤는데, 의외로 여태 상영 중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감정은 좀 복잡미묘하다. 인간세계, 혹은 학교라는 정글로부터 외면받은 소년소녀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에 빠져가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리고 눈과 피, 푸른 어둠... 이 서늘하고도 강렬한 이미지도 잊혀지기 어려운 아름다움.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좋은 걸까? 주인공 하나 살리기 위해 전 부대가 몰살당하는 헐리우드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이 영화의 플롯은 뭐가 다른 걸까? 본인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 딸 이엘리를 위해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또 신분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얼굴에 염산을 붓고,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인 후 빌딩에서 떨어지는 이엘리 아빠의 모습이나, 뱀파이어로 변한 자신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마을 여인의 모습이 그리 쉽사리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건말건, 둘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더래요... 이건 아니잖아??? 우쨌든, 누군가 초대해주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는 뱀파이어의 모습 ('나를 들어가게 해줘: let me in')은 비단 그 세계뿐이 아니라, 인간 세계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누군가 마음을 열고 불러주기 전까지는, 억지로 혹은 강제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니 말이다 ㅡ.ㅡ 이거 같이 보러갔던 친구랑 '바시르와 왈츠를'도 함께 보자고 했었는데 어찌나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지... 영화 내려버릴까봐 걱정일세!!! 혼자 가서 몰래 보면 배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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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포스... ㅡ.ㅡ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지향 중 하나가 '여한없는 삶'이다. 물론, 세상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나, 최소한, 충분히 할 수도 있었던 선택을 미적거리다 놓친 후 두고두고 아쉬워하지는 말자는 거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김광석 콘서트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못 보게 된 것이, 여한을 남긴 일례가 되겠다. 작은 즐거움과 행복을 유예하지 않는 삶도, 학습과 노력, 심지어는 남들에게 우습게 보일지언정 결단(?)을 요구하기도 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런 여한 박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늘 내가 감행한 도발은 대구까지 자우림 콘서트를 보러갔다온 일이다 ㅎㅎㅎ


아주 오래전부터 한번 꼭 보고 싶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기회를 놓쳤던 게 어언 몇 년이던가... 2008년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십장생 같은 일들만 생기는 줄 알았는데, 막바지에 뜻하지 아니한 수확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콘서트 장에서 생긴 일이다. 내가 예매한 좌석에 음향장비가 세워지는 바람에 (이런 황당한???) 주최측에서 자리를 바꿔준거다. 무대 바로 밑으로 ㅎㅎㅎㅎㅎㅎ 이게 웬 떡이냐!!! 그네들의 유쾌한 등장... 사실, 공연에 가서 열렬히 호응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사람들 열광해서 일어나도 마지막에 죽지못해 겨우 일어나는 수준 .... 근데, 오늘 두 시간 거의 내내 서 있지 않을 수 없었더랬다. 심장의 리듬이 리셋되는 기분이랄까? 아우.. 정말 그 대단한 포스!!! (근데 두 시간 지나고 나니까 노친네들이 왜 디너쇼 가는지 알겠더라... 발바닥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ㅎㅎㅎㅎㅎㅎ) 김윤아의 카리스마야 진즉 간파하고 있었지만, 막상 가까이서 대면하고 보니 정말 그 포스가... 자신을 폭발시키는 에너지와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그 내공이 감히 범접할 수가 없더라. 주변에서 기 세다는 사람을 수 없이 보았지만 (심지어 나보고 기가 세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쫌...), 이렇게 압도당하는 느낌은 처음인 듯... 내 옆에 있던 범생이 스타일 두 남학생은 김윤아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완전 자지러지더라... 윤아 누나 눈에서 나온 레이저 맞고 감전된 귀여운 강아지들 같았음 ㅎㅎ 완전 귀엽더라니!!! 저렇게 다른 이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다니... 본인들도 행복할거야... (타인들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는 이들이 꼭 스스로 불행한 건 아니겠지만서도 ㅎㅎㅎ 심지어 거기에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도 있는데 뭐 ㅎㅎ) 나도 2008년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주변 사람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듬뿍 나눠주리다. 그러려면 내일 보고서 원고 마무리부터 깔끔하게 하여 공동연구자 샘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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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가을

이라고 제목은 썼으나 웬지 훌쩍 끝나버린 이 느낌은 뭐냐??? 모름지기, 단풍과, 책과, 따뜻한 차가 함께 해야 할 계절이나 그렇게 하지 못한채, 그렇게 어영부영 흘러가고 있다. 요즘 포스팅이 뜸한지라 통 근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몇몇 지인의 컴플레인을 접수하여 오랜만에 몇 자 적는다. 빅 브라더 빅 시스터들 ㅡ.ㅡ 포스팅이 뜸했던 건,바쁘기도 했지만, 국제정세부터 시작하여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말문이 턱 막힐만한일들이 끊이지 않아, 그야말로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문을 닫고 살다보니,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ventilation 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블로그라는 반쯤 공개된 공간에 뭔가를 풀어놓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심오한 메타포를 통해 역경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으면야 좋겠으나, 그건 뭐 미션 임파서블.... 서론이 길었다. 책 이야기다. #0.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후마니타스 2008

 

 

우선 저자의 놀랄만한 성실함과 열정에 일단 대찬사 한번 보내드리고...짝짝짝!!! 예전에 프레시안에 기사 연재할 때도 흥미롭게 읽었더랬다. 책은 다소 딱딱했던 신문기사에 비해 훨씬 재미있고 쉽게 쓰여있었다. 나는 부동산 4계급이다. 조금만 마련하면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 ㅎㅎㅎ 대안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이다. 대한민국 국민 치고 부동산, 교육 문제에 한 마디 거들지 못할 사람 없겠으나 (실제로는 줄기세포에서 세계 경제위기까지 ㅡ.ㅡ) 불평하고 '싹 다 갈아엎어야 돼' 하기는 쉬어도 이렇게 세심하게 대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이 대안 자체도 래디컬하다고 비판받을 소지는 차고 넘친다. 점진적 토지 국유화라니...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 하지만 가정해보자. 손낙구 씨가 한반도를 쩍 갈라 물길을 파자고 이야기하고, 리만브라더스가 토지 국유화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상황을.... 다시, 전자는 허무맹랑한 뻥이 되고, 후자는 화들짝 놀랍긴 하지만 임박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현실성"이란 그런 것이다. 아, 이제 답은 알겠는데..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팀이 준비하고 있는 의료사유화 관련 책 준비에 참고하라며 후마니타스 대표님이 친히 하사하신 은전이다. 주신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직 우리 원고 마감을 못 시켜, 책상 위의 이 책을 볼 때마다 심한 죄책감... ㅡ.ㅡ)


#0.주제 사라마구 [눈뜬 자들의 도시] 해냄 2007

전편 [눈먼 자들의 도시]가 좋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은디, 나는 눈뜬 자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전작에서, 모두가 눈먼 그 시간과 그 장소에 대한 생생한 묘사, 인간에 대한 공포 등이 매우 흥미롭기는 했으나, 주인공(?)인 의사 부인의 영웅적 풍모, 혹은 성녀의 이미지가 좀 '전형적'인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훨씬 경쾌하고 훨씬 풍자적이다. 그리고 대놓고 정치적이다. 옮긴 이는 이 소설의 결말이 상당히 비극적인 것처럼 평가했는데, 글쎄올시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이토록 발랄하고 완강한 저항이 있으니, 몇몇 등장인물이 비극적 말로를 상황 전체에 대한 비관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할배 어쩜 이리 젊은 감각을... 하면서 놀라고는 했다. 중간에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있었다. "...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몇 달 전에 세미나했던 책 (Cultures consequences)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청년기에는 급진적이었던 학자들이 나이가 들면, 보수로 회귀하고 마치 그것을 당연한 사회화/성숙 과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건 Power Distance 가 높은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권력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그 권력에 닿기를 애타게 소망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이지, 당연하거나 보편적 현상은 아니라는... 그런 면에서, 나이 90을 바라보는 할배의 이런 날카로운 지적은 멋지삼!!! #0.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이레 2002

허접한 감성에세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J 샘의 추천으로 읽게 된 [Status Anxiety]를 통해 작가의 마력(?)을 뒤늦게 깨닫고 읽게 된 책이다. ".. 또 가계에 파탄을 일으킬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긴 여행이 열대의 바람에 살짝 기울어진 야자나무 사진 한장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정말, 이렇게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몇달 몇 년을 꿈꾸다 실행에 옮기는 여행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 가판대에서 집어올린 잡지의 표지사진 하나가 발단이 되어 자신도 예상치 못한 거대스케일의 여행을 떠났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는... 나 같은 경우는, 일명 앙코르와트 사건과 울릉도 사건이 대표주자 되시겠다 ㅎㅎ "...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이백 퍼센트 동감...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연연해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여행 길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차와 승객 드문 시외버스를 선호... ".. 훔볼트의 흥분은 세상을 향해 올바른 질문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해준다.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파리를 보았을 때 약이 올라 파리채를 휘두를 수도 있고 산을 달려 내려가 [식물지리론]을 쓰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다 ㅎㅎㅎ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삶도 똑같이 압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게 바로 내가 늘상 목말라하는 호연지기... 문제는 약효 지속기간이 너무 짧다는... 알랭의 눈을 통해 보들레르를 다르게 보게 되었고 (예전에는 자기애 환자 취급 ㅎㅎ), 에드워드 호퍼의 강박과 플로베르의 세상에 대한 '짜증'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담 보바리' 첫 장에,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글을 보고 얼마나 세상에 시달렸으면..하고 연민을 가졌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했던 듯... 그리고 러스킨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똑같은 이유로, 러스킨은 데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들어있지만 끄집어내어 표현하지 못했던 조각들을 이렇게 쏙쏙 와닿는 말글로 대신 적어주다니... 이래서 작가가 필요하다... #0. 스타니스와프 렘[솔라리스] 오멜라스 2008

영화가 원작 소설을 그대로 그려내기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돌아보니 영화가 쫌 심하게 왜곡.... 소더버그 영화야 워낙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원작에 충실한 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영미 작가들과는 또다른 기묘한 분위기, 의식과 인식에 대한 도저한 질문들이 정말 읽는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책이다.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자꾸 몰아넣어 마치 스스로 켈빈이 되어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 같은 동화 현상....ㅡ.ㅡ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보면, 2차원의 인식틀이 3차원의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점이 XY 평면 떠나 Z축으로 이동하는 순간, 2차원자의 눈에서, 인식 세계에서 그 점은 '사라지는' 것이다. 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식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고, 우리에게 관찰되는 현상은 '사라짐'인 것이다. 전혀 다른 인식의 틀과 방법을 가진 존재들이 조우했을 때, 과연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해는 고사하고 서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비단, 이는 외계행성 솔라리스와 지구인 사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지구별 (별? 은 아니지) 작은 한국사회에서도 도대체 불가해한 이 상황들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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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예술?

며칠 전에 미국에 계신 '나무와 숲'님한테 내년도 달력을 선물받았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구입한 거라고 친히(!) 소포로 보내주셨다. 아마도 우편요금이 달력값 두 배는 들었을 것으로 짐작... 샘.. 쌩유 ~~~ ------------------------------------------------------------------- 고마운 맘을 전달하고자 아직 3달 (겨우 세달 남았다!!!) 남은 달력을 미리 걸고 설정 삼아 사진을 한장 찍어보았다. 그리고, 찍는 김에... 사망을 목전에 둔 내 디카로 집안에 있는 다른 작품(?)들도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생각이 들어, 나름 이것저것 찍어보았다. 조명도 그렇고 배치도 그렇고... 별다른 설정 없이 그냥 대충 찍었다. 귀/찮/아/서/ * 먼저 방문에 걸어본 프리다 칼로 달력이다. 보풀이 신년 연하장과 함께 보내주었던 프리다 칼로 마우스패드까지... 어쩌다보니 한 셋트가 되었다 ㅎㅎㅎ 프리다의 포스가 하도 엄청나서 눈마주치면 깜딱 놀랄 지경...


* 왼쪽의 '생각하는 고양이'는 아바나의 골목 갤러리에서 사온 것이고, 오른쪽 그림은 (사진상 잘 안보이지만) 모래를 뿌려 만든 멕시코 전통 문양으로 내평생 본 박물관 중 쵝/오/라 할 수 있었던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에서 구입한 것이다. 액자는 동네 마트에서 5천원 주고 산 것. 배경에 좀더 질감 있는 종이를 깔았으면 좋았을 걸, 우글쭈글하다... ㅎㅎ * 집들이 때 선물받은 스탠드와 벽시계... 마티스 그림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데다, 바늘도 아주 유려하게 움직이는 첨단 멋쟁이 시계...조명도 의자 색깔이랑 어울려 은근 멋지다... (저 아래 지저분한 식탁 풍경이 안 나와 정말 다행) * 작년엔가... 서울 역사 박물관 앞에서 친구들 만났다가 충동적으로 (?) 관람하고 구내매점에서 구입한 엽서. 춤추는 모습과 색감이 진정 예술이다!! 근데 옆에 굴러다니는 CD case 의 노라 존스 모습은 어째 호러...ㅡ.ㅡ * 역시 집들이 때 선물받은 앤틱 스타일의 하얀색 협탁과, 검은 색/노란 조명이 인상적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6월에 시카고 학회 갔다가 아트 인스티튜트 들러 구입한 미니도판... 의자와 액자, 은근 부조화 속에서 공허함이 극대화된다고나 할까... 후진 후방 조명 때문에 사진찍는 모습이 그대로 다 비쳤다... 저건 뭐냐.... * 작년 브라질 출장 갔을 때 시장에서 구입한 목각 패널, 오스트리아 벨데베레 미술관에서 샀던 에곤 쉴러의 '소녀와 죽음' 엽서.. 그 옆에는 역시 집들이 선물로 받은 지구본이다. 어두워지면 야광으로 별자리가 나타난다. 울 엄마는 저 목각의 할매/할배가 왜 담배를 꼬나물고 있냐고 싫어하신다 ㅎㅎ * 나름 탄생 별자리인 '게자리'를 형상화한 퍼즐이다. 울 오빠가 '저 여자는 왜 먹을 거 위에 올라앉아 있냐?"고 해서 모든 이들을 홀딱 깨게 만들었던 문제작... 아름다운 꿈을 꾸겠노라 침대 발치에 걸어두었지만, 여전히 갈락틱 스페타클 어드벤처... * 쿠바에서 친구가 된 오리엘비스가 한국에 오면서 선물로 가져온 영화 포스터.. Julia 의 설명에 의하면 저 영화 '저개발의 추억'이 엄청난 수작이란다... 꼭 봐야 한다는데 아직 기회가 없네... 그나저나 이 양반들한테 연락한다는게 벌써 몇 달이 지났네... * 집들이 선물로 JK가 건내준 선물이다. 인도네시아 출장 길에 사온 것이라는데, 평소 그녀의 귀차니스트 행보를 볼 때, 저걸 들고 대전까지 왔다는 것은 가히 칭송받을 만한 일이다. 화장실 맞은 편 벽에 걸어두었는데, 볼일 보고 나올 때마다 깜딱깜딱 놀란다... ㅎㅎ * 액자는 많은데, 전세 집 벽에 못을 박을 수도 없고, 딱히 장식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저 멋진 그리스 조각 엽서는 세탁기 위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옆에 나란히 놓인 세제들의 모습이 참... 남자 머리채를 잡고 있는 여신의 모습과 세탁기가 어째 묘하게 어울린다는??? * 시계 선물에 딸려온 부록이다. 곧, 저런 황량한 날들이 돌아올 것이다. 이미 마음은 저렇다... 배경으로 꽂혀 있는 Du Bois 의 평전... 결심한지 2년이 넘도록 표지 한 장 넘겨보지 못했구나..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걸까? * 미국을 떠날 대 SY 와 JY 이 선물해준 것이다. 셔틀버스에 내려 걷곤 했던, John's gate 모습이다. 과연 저 시절이 내 인생에 존재했기나 한 건지 요즘 의심스럽다... 어쨌든,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 포르투갈의 세라믹은 그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올해 초 리스본에 출장갔을 때 샀는데, 행운을 상징하는 수탉이 아침마다 나의 상쾌한 하루를 열어주길 바라며 방문에 걸었으나 효과는 없다. 나의 에너지를 앗아가는 건지, 자도자도 졸립기만... 원... 하나하나 돌아보니 이런저런 사연들과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동안 잃어버린 많은 엽서와 그림과 포스터들... 그들과 함께 내 삶의 일부도 사라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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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무언가와 마주치면 파블로프의 개 마냥 자동재생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조용하게 비내리는 오후에는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가 자동재생되고 '별'을 보면 한 때 남한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모 단체가 자동연상되는 등... 안개가 낀 날이면 어김없이 기형도의 '안개'가 떠오른다. 양념처럼 무진기행도 ... 아침 알람 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항상 밤에 숨겨두고 잔다 ㅎㅎㅎㅎ) 문득 밖을 내다보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그 황망한 와중에 기형도의 시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알람을 찾아 품에 안고 따뜻한 이불 속으로 잠시 몸을 숨겼다 눈 뜨니 해가 쨍쨍..... ㅡ.ㅡ -------------------------------------------------------------- 안개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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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몇 권

읽은지 오래되서 기억도 잘 안나지만... 기록없이는 기억도 없다는 안타까운 자가진단에 따라 이렇게 쪽 메모라도 남겨둔다. #0. 권셩현, 김순천, 진재연 엮음.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후마니타스 2008

주변에서, 7월 중 생일인 사람들 대부분에게 모두 이 책을 선물했다. 소박한 꿈에 대한 '소박한' 응원이라고 생각해서... 우리가 바라는 건, 그렇게 엄청난 게 아니었음을 다시 확인했다. 근데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가 너무 어렵다라는... 이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즈음, 신촌 홍익문고에 들렀다가 아래와 같은 책도 보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이런 일도 한다... 이랜드 사장님은 매우 훌륭하시며, 직원들은 또 얼마나 훌륭하시던지... 훌륭함이 지나쳐, 가슴이 콩닥거리고 내 머리에 스파크 일어났더랬다 ㅡ.ㅡ

 

 

#0. 박노자 [박노자의 만감일기] 인물과 사상사 2008

 

 

지은이가 블로그에 올렸던 소소한 글들을 묶어낸 책이다. 그러다보니, 좀 어정쩡하다. 워낙 잘 알려진 논객(?)이다보니, 블로그라는 것이 완전히 사사로운 개인만의 공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좌하고 참고문헌 달아가며 쓰는 논문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글에서는 논리가 충분히 정리되지 못했고, 감성적인 글에서는 도덕적 자기검열이랄까... 전반적인 흐름에는 동의하나, 곱씹어 다시 읽거나 돈주고 사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었다. #0.Neil Gaimen & Terry Pratchett [Good omens]

영국 아자씨들의 유머 코드는 비슷한가봐. 읽으면서 계속 더글라스 아담스와 몬티 파이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나 썰렁하면서 웃기던지... 생각만 해도 웃김 ㅎㅎ 닐 가이먼은 정말 빼어난 이야기꾼인것 같다. [Neverwhere]가 고전적이면서도 약간은 우울한 판타지였다면, [American Gods]는 시니컬하면서 도저한 이야기가 있었고, 이번 책은 정말 쾌활하면서 개그 작렬... 테리 프래챗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는디, 이번에 글래스고 서점에 가보니 디스크월드 25주년이라고 서점 안이 완전 도배가 되어 있더구먼... 사실, 판타지 종류 별루 안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이런 거 계속 읽고 있는 이 심리는 뭔지 모르겠다만... 웬지, 닐 게이먼 책은 또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기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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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주말 저녁 일도 안 되고, 밀린 기록이나 정리!

 

 

이레 출판사에서 2005년 출판. 학회 소식지 서평 부탁하려고 드린 전화에서 J 샘이 적극 추천해주신 책이라 읽게 되었다. (오래 되서 포스팅 하려는데 기억이 안 나 다시 페이지 찾아봄 ㅡ.ㅡ) 흠, 저자는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는데, 자그마치 1969년 생... (평범 임노동자 우리집 김씨와 동갑인데, 기사작위에.. 대머리 ㅎㅎㅎ)

Status Anxiety (지위 불안) 이라는 원제를 왜 안 살렸는지 모르겠다. 그게 더 좋았을텐데...

저자는 왜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회적 성공, 지위 상승을 갈망하는가에 대해 역사 속의 철학/문학/예술에 나타난 풍부한 사례들을 엮어 아주 풍부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이론적/실증적 분석에 익숙한 나에게는 간만에 보는 '참신'하고 '재기발랄'한 책! 우리 업계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책은 못 쓸 것이여 ㅎㅎ

 



알랭은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을 '세상이 주는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표혔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위 불안은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얻지 못할까봐 느끼는 불안이라는 것이다. (잠시 딴 생각... 여의도 텔레토비 동산의 거드름피우는 양복쟁이들, 그들이 진정 원했던 것 또한 사랑이었을까???)

 

속물의 특성에 대한 알랭의 해설은 간단하고도 핵심을 찌른다. '속물의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이며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속물의 존경 대상도 바뀌...' 그러면서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동의!

 

그는 현대의 소위 '능력주의'가 가져온 슬픈 결과를 이야기한다.

과거, 가난한, 혹은 신분이 미천한 이들을 위안하던 세 가지 이야기, "첫째,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둘째,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셋째,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로의 전환기에 새로운 세 가지 능력주의 이념으로 변한다.

 

첫째,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 있다 (일종의 낙수이론이라 보면 되겠다. 한국 사회에서 잘 통하는, 인재 한 명이 보통 사람 백 명을 먹여살린다는 이야기).

 

둘째,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 물론 이는 타당한 면이 있다. 이는 세습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근대이념으로서의 의의가 있었다. 토마스 페인 (1791)은 봉건적 세습을 비웃으며 이렇게 썼단다. "문학과 과학에 세습제를 적용하면 이들 분야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생각하며 혼자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정부에도 적용시켜본다. 세습적인 통치자는 세습적인 작가만큼이나 모순적이다. 호메로스나 유클리드에게 자식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사 있었다해도, 그들이 완성시키지 못한 작품을 아들이 완성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런데 작금 포스트모던 21세기에도, 18세기 작가가 상상만으로도 우습다던 일들이 여전히, 더구나 합법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쫌 슬프다. 대통령도 세습하고 (부시 가문), 기업도 세습하고 (이씨 가문)...

 

셋째,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그렇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을' 해야한다는 신임 교육감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열심히 하면 되는데, 안 하니까 낙오되는 것이고,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능력주의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주는, 엄청난 자가발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성공하는 사람의 && 가지 습관 류의 자기개발서가 눈부시게 팔릴 수 있다. 성공하는 비법을 답은 '시크릿'이 그렇게 몇 백만 부 팔리면, 그게 어디 더이상 시크릿일까???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세상은 능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의 불확실성들이, 우리 능력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 알랭이 제시한 다섯가지의 예측 불가능한 요인 - 변덕스러운 재능, 운, 고용주, 고용주의 이익, 세계 경제...

 알랭은 특히 자본주의 생산체계에서 임노동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 노동과 다른 요소(원료, 기계)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노동자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생산라인 가동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지면 가동을 중단하기도 하는데, 이때 기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석탄 사용을 중단하고 천연가스를 사용해도 도태된 자원은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산업현장에서의 경제적 요구와 인간적 요구 사이에서 "... 언제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임금에 의존하는 모든 노동자의 삶에서는 불안이 떠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 문제에 대한 작가의 나름 해답은..

 

첫째는 철학적 해법이다.

세속적 가치를 떠나, 통찰력 있는 눈으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고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ㅡ.ㅡ

 

둘째, 예술이 이러한 통찰력을 키우는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백만번 동감!!! '소설은 감추어진 삶의 목격자'라는 표현은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그는 예술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 모습과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만일 소설의 내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사회는 그 표면만 보고 이렇게 떠들 것이라고 했다.

"오셀로 - 사랑에 눈이 먼 이민자 원로원 의원의 딸을 죽이다

마담 보봐리 -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왕 -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아주 그럴듯하지 않나?

 

셋째, 정치... 알랭은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는 러스킨의 말을 인용했다.

그래, 바로 이게 정치의 역할 아닌가 말여...그러면서 저자는 '분석을 통해 (현존하는) 이데올로기가 (태생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밝혀 그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넷째, 기독교...

뭐 딱히 기독교를 통해 구원받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불멸, 혹은 위대한 존재 (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앞에서 자기 존재의 유한함을 자각함으로써 지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초기 기독교 같은) 공동체 유대가 강화될수록 혼자 어떻게든 성공해보겠다는 지위 불안은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평소의 인상이 하도 뭣 같아서 딱히 액면 그 자체는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동감... 우주의 역사를 1년 달력으로 비유했을 때, 인류가 출현한 것은 12월 31일 자정 몇 분 전이었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나에게는 오히려 더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보헤미안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를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 시를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자아도취형 인간들의 매니페스토' 쯤으로 생각해온 나로서는 쪼금 당혹.... 요즘에는 소위 보헤미안 적 삶도 하나의 유행이자,고급(?)스러운 아비투스가 되어버린 것 같아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어쨌든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어찌 보면, 일체 유심조의 결론으로 흐르는 듯?

세상이 어찌 되든 네 마음의 평정과 통찰력이 가장 중요하다...???

 

한 가지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소한 이 한국 사회에서)지위 불안은,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할까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위협 때문에 생기는게 아닐까 싶다. 세상의 사랑 좀 안 받아도 좋은데, 최소한 인간다운 생존을 할 있게 확 떠밀어버리지나 말았으면 하는 애타는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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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기록들

최근 중/장거리 이동 중에 읽거나 보게된 실제와 가상의 혁명 기록에 대한 단상..

 

#0. Robert Heinlein.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Tom Doherty Associate Inc. 1997 (원작은 1966년 발표)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소위 SF 업계 Big 3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함께)중 하나인 하인라인의 작품으로, 휴고와 네뷸러 동시 수상작...

(책으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Starship troopers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작가의 의중을 모르겠음 ㅡ.ㅡ

스타쉽 트루퍼스가 군사주의를 찬양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안티인지 헷갈리는 것은 아마도 하인라인의 정치적 이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 듯. 그는 베트남전에 찬성했던 우파. 그런데 위키에 찾아보니 과거 업톤싱클레어의 사회주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는군. 더 헷갈려 ㅜ.ㅜ (하긴, 평생  일관된 이력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쉬운 일인가??? )

 

이 책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적 존재에 대한 도전으로서 혁명을 찬양하고, 더구나 주인공 중 한 명인 Bernardo 교수의 언설을 통해 개인의 자율성에 기반한 아나키 철학을 옹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비합법적인 전위에 의한 수직적 의사결정구조, Mike 라는 슈퍼컴퓨터의 철저한 '지도', 의회의 '조작'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리는 다소 어리둥절(?)한 양상을 보인다. 이거 도대체.... ㅜ.ㅜ

 

나름 합의점을 찾아본다면,

작가는 지향 측면에서 자유주의자로서 자유주의적 혁명을 옹호한다, 플러스

1960년대에 상상가능했던 혁명운동이란 러시아에서처럼 전위가 지도하고 비밀 세포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었기에 작가의 상상력도 거기에 제한되었을 것이다?

 

우쨌든 이런 정치적/사회적 해석은 차치하고, 참으로 기발한 상상력과 문장력으로 쓰인 것만은 사실이다.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핵심 노드에 자리한 슈퍼컴 Mike의 존재와 기능은 오늘날의 기술수준에서 돌아볼 때, 정말 획기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상상력이 아니었나 싶다. 중력의 문제를 혁명 성공 가능요인의 중심에 자리잡게 한 것도 매우 그럴듯하고... 다만 생물학적 문제 - 정상세균총과 병원체의 다이내믹에 대한 부분은 좀 아쉬웠다 (이 부분은 아시모프의 소설들에 훨씬 사실적으로 그려짐). 또한 미국사회에 끼친 파장도 대단하여 이 책에 등장한 'TAANSAFL: There ain't no such things as a free lunch" 이 관용어로 널리 자리잡게 되었다고...

 

하지만, 뭐랄까... 아쉬운 것은...

달과 관련된 혁명운동을 다루고 있는 Ursular LeGuin의 [Disposessed] 와 비교해볼 때, 전자에서의 회한과 정서적 몰입이 전혀(!) 일어나지 않더라는.... 

정통 Hard SF 의 명작이라 칭할만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깊이와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소위 SF 명장이라는 양반한테 이런 평 했다고 밤길에 테러당할지도 모르겠다 ㅎㅎ) 솔직하게도, 루니들의 투쟁에서 '절박함'과 혁명운동의 어떤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겠더라. 글을 너무 머리로만 썼나봐?  하드SF 라고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 Joe Haldeman의 소설들을 보라구!!!

 

그래서 생각이 들었다. 

과연, 혁명이 이렇게 이루어져서야 쓰겠나?

나는 이 혁명 반댈세!



#0. Patricio Guzman 감독[La Batalla de Chile]- 칠레전투 3부작, 1972-79년

 

 

 

무릇, 혁명이란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고, 그 지켜가는 과정 자체가 혁명이라 하겠다. 아주아주 힘든........

하인라인의 소설에서 루니들은 컴퓨터와 뛰어난 혁명가들의 혁혁한 공에 힘입어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현실에서의 혁명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더구나 민중권력이란...

 

선거에서 이겨보자고 만들었을 노래 Venceremos는 어찌도 이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만 하는 건지.... 다큐가 그리고 있는 혁명시기 민중권력의 모습은,그 '바람직함'에 가슴이 떨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절박함/긴박함 (그리고 그 비극적 말로를 알고 있기에) 때문에 더욱 안타깝기만 했다. 

1부 마지막에서, 반동적 군부의 총구와 나의 눈이 (카메라를 통해) 마주치고 급기야 그 총탄에 의해 화면이 뒤집히는 장면에서,역사의 기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옌데는 포탄이 작렬하는 대통령궁에서 이야기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도 사회변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1973.9.11 Salvador Allende)

 

그리고 반동의 총공세에 저항하기 위해 나서는 초라한 행색의 한 남성 노동자는 이야기했다.

"전 이 정부가 민중의 정부라는 걸 압니다. 저는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아요. 얼마 전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겐 자라나는 두 아이가 있고, 그 애들이 다 커서 내가 어떤 이유로 죽어야 한다면, 평생을 착취당해왔던 노동자로서 대의명분을 위해 죽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죠."

 

단기적으로 패배한 듯 보이는 혁명도,

그 정신은 오롯이 남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또다시 분출되고,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마지막 장에 하대치가 남긴 이야기처럼 말이다...

 

감독과 카메라맨들의 이 뜨거운 시선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그 소중한 역사의 한 때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거친 흑백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투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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