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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詩 : 나의 노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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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으로

 

 

1899런던에선 자동차 두 대가 등장했다고 한다.

그 자동차는 쌍두마차만큼이나 훌륭하게 영국 여왕의 편지를 배달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났다.

 

나의 노동으로 나무가 베어지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땅이 파헤쳐지고 있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과 순결한 땅의 벌레들이

나의 노동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숲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나의 노동으로 강물은 막혀 댐이 완공되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수백만 대의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고

나의 노동으로 수천만 대의 냉장고가 넘쳐난다.

나의 노동으로 총탄과 포탄이 만들어지고

나의 노동으로 탱크와 전폭기가 사람들을 살육하고 있다.

나의 노동으로 나무와 석탄과 석유를

마지막 한 그루까지 마지막 한 삽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없애고 있다.

나의 노동은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노동과 생산은 너무 위험해졌다는 말이다.

노동의 권리는 발전의 가치와 다르다는 말이다.

나는 노동력을 판매하면서 노동을 소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윤에 지배당한 생산은 파괴적 종말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쌍두마차가 지나가고 자동차가 지나가고

영국 여왕이 보낸 편지는 스마트폰으로 전송된다.

다시 120년 후에 나의 노동은 무엇으로 남아 찬란한 고통이 될까.

 

詩 |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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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모든 부르주아 정치 세력의 부동산정책은 가격상승 대책

모든 부르주아 정치 세력의 부동산정책은 가격상승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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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문재인 정부부르주아 정당들의 부동산정책의 계급적 본질

 

2020년 이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지난 코뮤니스트」 12호에 언급했듯이 일관되게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이었다한마디로 집값 억제가 아니라 집값 폭락을 막는 것이 핵심이었다말로는 집값 상승 억제를 주장했지만, 20여 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은 주거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끝없이 수직 상승시켰다그 이후에도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고수도권도 100%에 가까운 상황인데도 아파트 공급 확대를 계속 추진했다아파트 공급 확대가 자본에 개발 이익을 보장하는 길만 열어주고 집값 억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수많은 사례에서 드러났다더 정확하게는 말로는 집값 억제를 떠들 뿐 노골적으로 자본의 개발 이익을 보장하였다. 2017년 시행된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방안을 통해 취득세양도소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온갖 세제 혜택과 더불어 임대사업자에게 집값의 8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 보기이다그리고 4재보궐 선거 직전 터져 나온 LH 직원들의 개발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및 공기업중앙/지자체 부동산 관련 업무 공무원들의 투기 의혹과 정부 자체 조사과정은 부동산 시장에서 문재인 정부와 국가기관이 짜고 치는 거대한 노름판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게다가 부동산가격 폭락 방지책에는 국가와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정당들 역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아파트 공급에 대한 표면적 방법은 다르게 보이지만 본질은 똑같다부르주아 정당들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서로 간 약속이나 한 듯 규제 완화와 아파트 공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여기에는 자본의 개발 이익은 보장되어도 집 없는 노동자의 내 집 마련은 끼어들 틈조차 없다또한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과정에서 투자 정보는 덤으로 관료와 정치가자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그래서 부르주아 정당들의 집값 억제대책은 노동자에 대한 기만이고 사기이다물론 다른 정책과 국책사업도 마찬가지지만집값 폭락 방지에서도 이른바 진보 대 보수의 구분은 전혀 의미가 없다부동산 가격 폭락 방지라는 일치된 이해관계뿐이다부르주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지배계급의 정당과 정책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과 노동자의 분노를 의식한 듯 최근 LH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재발 방지대책과 주택공급 확대를 거론하고 있지만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토지를 비롯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주택공급으로는 주거 안정의 토대를 마련할 수 없다주거 문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와 건물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매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그렇기에 아무리 주택을 많이 공급해도 무주택자가 아닌 자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주거 안정화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철폐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해 가능하다

 

부르주아 정부와 정당들의 집값 안정 대책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이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소유와 매매 및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의 삶에 전가될 뿐이다그렇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토지 국유화가 부동산 문제의 근본 대책일까자본주의 생산관계는 그대로 둔 채 일부 생산수단만을 국유화하는 것은 코뮤니즘의 사회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자본의 총체로서 국가의 역할을 간과하는 주장이다.

 

'국유화'와 '사회화관련해서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는 맑스엥겔스뿐 아니라 이후의 논쟁과 이론도 검토해야 한다칼 코르쉬1)는 모든 사회화가 국유화의 형태로 완성되지 않으며단순한 국유화로는 사회주의적 사회화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일시에 또는 단계적으로 완성된 사회적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사적소유의 완전한 철폐 없이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이에 반해 베른슈타인은 사회정책으로 현존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화를 점진적이고 합법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래 소개하는 코르쉬의 이론은 매우 논쟁적이고전체 내용(소련의 경험과 규정 차이 포함)을 동의하지는 않지만국유화사회화주택도시 문제에 대한 코뮤니스트 전망을 밝히기 위해서는 국제코뮤니스트그룹(G.I.C.), 보르디가 등의 글과 함께 반드시 토론되어야 한다.

 

코뮤니즘에서 요구되는 사회화는 자본주의적 사적 경제를 사회주의적 공동체 경제로 대체하려는 목적을 가진 생산의 새로운 규칙을 의미한다사회화의 첫 번째 단계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이로 인하여 실현되는 노동의 해방이며두 번째 단계는 노동의 사회화이다코르쉬는 생산을 모든 기술적 생산과 연결된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생산관계로 파악한다사회화의 새로운 규칙의 대상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의 생산이다따라서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를 지배하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성과 이러한 적대성에서 유래하는 사회적 계급구분계급지배 그리고 계급투쟁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사회주의적 공동소유는 국가 소유와 절대 같지 않기 때문이다우리에게는 국유화는 사회화의 하나의 형태에 불과하며사회화의 모든 형태는 단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산업 자치라고 묘사하였던 사회적 생산관계의 규칙에 도달했을 때만우리에 의하여 진정한 사회주의적 사회화로 인정된다모든 집중화된 국유화에 반대하여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이의는 산업 자치의 형태에서의 사회화에 대하여는 근거가 없다산업 자치 형태에서의 사회화는 관료적인 획일화와 경직화는 있을 수 없고개인적 활력은 절멸되지 않고오히려 더 성장할 것이다왜냐하면개인적 활력은 자본주의적 사적 경제에서는 수행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지만생산참여자 집단에서 자치로 인하여 그러한 개인적 활력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기 때문이다그리고 비경제성의 위험은 기껏해야 생산으로부터 사적 소유자를 배제한 결과 사적 이익이 가능한 최고의 경제적 생산을 위하여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멈추는 것에서 발생한다.”2)

 

코르쉬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철폐 없이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불가능하다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의 주택과 토지문제는 '사회주의적 주거권'과 연계하여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주택과 토지의 공적인 성격과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 체제인 사회화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노동자통제 없는 사회주의가 있을 수 없지만사회주의 없는 진정한 노동자통제도 있을 수 없다자본주의에서 노동자통제의 점진적인 증가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동경영참여또는 공동결정 같은 말로 치장한 거짓 사회개혁으로 자신들의 절대적인 계급지배를 숨기려는 지배계급의 악선전에 놀아나는 짓일 뿐이다노동자통제는 계급 협조를 배제한다그것은 자본 생산 체계에 참여할 수 없고 대신에 그것을 폐지한다.” (폴 매틱노동자통제, 1967)

 

또한, (노동자통제와 마찬가지로공적인 영역의 통제와 사회화의 주체로서 프롤레타리아트 권력(평의회)과 국가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자본의 총체로서 국가가 주체가 되는 국유화는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이것은 자본주의에서 토지 국유화를 통한 주거 안정은 불가능하며노동자인민의 주거 안정은 오직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철폐하고 평의회를 통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한 코뮤니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소유관계 폐지 없는 토지 국유화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적소유의 폐지를 통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혁명과 평의회를 통한 사회화만이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모두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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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0년대와 1930년대 걸쳐 코뮤니스트 좌파로 활동하면서 코르쉬가 굳게 믿었던 맑스주의 혁명이론은 프롤레타리아 실천과 의식이었다… 코르쉬에게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안에서 직접 정립되며부르주아 사회 제도생활양식과 완전한 단절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투쟁을 강조한다. (남궁원, “혁명적 코뮌칼 코르쉬”, 코뮤니스트2, 2013)

 

 

2. 칼 코르쉬 사회화란 무엇인가?

 

 

2021년 4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관련 글> 

 

부르주아 정부의 부동산정책 허구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048

 

코뮤니즘 세상에서... 도시와 주택은 어떤 모습일까?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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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자본주의에 맞서는 백신은 없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백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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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의 뉴스가 우리에게 인간 활동의 결과가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 국제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빠른 변이 바이러스를 가진 코로나 대유행이든, (주로 지난 200년 동안지구상의 생명을 위협해 온 지구 온난화와 더 넓은 생태학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마지막 시도이든 우리는 모두 그 치료법이 세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다루기 힘든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생활양식 선택에 국한될 수 없다마치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중요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우리는 좋든 싫든 간에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이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화폐 경제와 그것의 존재 이유즉 이윤 창출로 형성되는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신용카드파운드달러동전심지어 비트코인까지 우리는 돈 없이는 살 수 없다우리는 휴가와 오락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의복주거비와 같은 생계비를 지불해야 한다연금 수령자는 제쳐두고그것은 적어도 모든 가정이나 가족의 누군가가 임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공적 원조(‘세계국가에 살고 있다면)와 같은 불충분한 정부 유인물이나 훨씬 더 나쁜 것으로 관리하려고 애쓰며국제노동기구(ILO)가 비공식경제라고 부르는 수단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비공식 경제'에 있는 사람들은 통계수치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57억의 노동 연령 인구 중 22억은 세계 노동력의 일부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ILO는 그들의 "생계 활동"의 성격을 확장하지 않는다이로 인해 공식적으로 세계 전체 임금노동자는 약 35억 명이다코로나 감염병 이전에 그들 중 약 5%는 공식적으로 실업자였다그 숫자는 약 1억 7천 5백만 명이다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유급노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한편 지난해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가능한 국가의 3분의 2에서 평균 임금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나라가 UN 조사원들을 환영한 것은 아니다!) 브라질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미국을 포함한 나머지 3개 국가에서 평균 임금의 증가는 급여 상승이 아니라 많은 수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노동시장을 떠난결과였다통계학에서 우리가 배우는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LO 통계는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고 임금이 감소하고 있다는 더 큰 그림만을 확인해 줄 뿐이다생계를 꾸려나갈 벌이를 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소비재가 넘쳐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누군가는 굶주리고 생활필수품도 없이 내버려지는 세상이다모든 것에는 일종의 자본주의 논리가 있다자본주의의 동력은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노동력과 원자재 비용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자본주의 동력의 원천이다그러나 그것은 경제 위기와 자본주의 붕괴의 치명적인 경향의 원인이기도 하다차익 실현을 위한 추가적인 이윤 창출에 필요한 자본 지출이 점점 더 많은 회사가 '실물 경제'에 투자하는 대신에 그들의 최고 경영자들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지급하고증권 거래소에서 도박하고일상 사업을 벌이는 (좀비 회사동안기존의 부채를 재충당하기 위해 낮은 금리로 빌리는 것을 선호하게 되는 -또는 단순히 파산선언을 하고 가게 문을 닫게 되는시점이 온다반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려는 '노동 유연화주급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노동이 단조로운 오래된 노동주간의 남은 것을 계속해서 대체하고 있다이런 종류의 공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수십 년 동안 우리는 자본가들이 이윤 위기 비용을 노동자계급에 떠넘기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노동 및 생활조건국민 총생산의 '점유율감소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격해 온 것을 추적해 왔다.

 

코로나19의 두 배의 공격

 

그런 다음코로나바이러스가 연이어 나타난다경제 안팎은 리시 수낙(Rishi Sunak)의 해고 계획으로 인해 해고 노동자들에게 80%의 급여를 지급하고새로운 실업자에 대한 구직 수당 삭감 주장에 대한 관료적 걸림돌로 인해 보류되었다하지만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에 대한 퇴거 명령의 중단처럼그러한 일은 계속해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어쨌든 이러한 조치들은 증가하는 노동자계급 가구의 소득 손실을 보상하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BBC가 '정상'으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 편안한 중산층이 '가처분소득'을 더 많이 저축하고 있지만더 많은 사람이 ('필수'노동자가 아닌 경우생활필수품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수입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일 년에 2만 파운드 미만의 수입을 올리거나 100파운드 미만의 저축을 한 코비드19에 걸린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3배나 고립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사회적 조사가 필요하지는 않다특히 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낮은 병가수당을 받고 있고주당 120파운드 미만의 거의 2백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우 병가가 제로이다현실을 직면하자이건 전면적인 계급전쟁이다가정에서 일하는 중산층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골에서 더 큰 집을 사려고 하지만, '필수'노동자들은 현재 푸드뱅크를 보충하고 있는 급식소에 의존해야 한다.

 

공격은 이미 시작 되었다

 

백신 출시가 안도감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자본가들은 공격을 감행할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그들은 해고와 재고용에 관한 기술을 연마해 왔다그들의 목표는 불안정한 저임금만이 아니다실업률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은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이 한트럭 이상 줄지어 서 있다고 생각한다. TUC에 따르면, 10명 중 거의 1명은 더 나쁜 조건으로 구직활동을 하거나 해고를 당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노동자들이 반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그러나 그들은 노조의 경계를 넘어즉 사전 예고된 산발적인 '파업'의 날들을 잊고 자본가들의 공격을 분쇄하기 위한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속적인 투쟁과 그 안에서 노조의 역할특히 영국 가스영국 에어웨이즈 화물 노동자히드로의 노동자들에 대해서 웹사이트에 게재했다읽을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코비드19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우리는 여전히 전과 같이 절망적이고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보고 있다어느 한구석에 푸른 하늘이 있는 척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국제 노동자계급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여정에 착수하지 않는 한그 전망은 암울하다그러나 이 암울한 상황에서도 빛의 통로가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이전 승리와 패배의 모든 영역에서 배우기를 열망하고국제 노동자계급 투쟁을 이끌어 나갈 정치적 나침반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새로운 정치 단체들이 등장하고 있다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이 속해 있는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은 커지고 있다이탈리아의 코뮤니스트 투사(다른 것 중에서도 현재 노동력 지원을 위해 경쟁하고 있는 경쟁 기반 노조와 정치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의 형태로 원래 정치적 원동력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ICT 단체들은 공동으로 온라인 정치 저널인 1919를 발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동시에 지구상에서’ 계급투쟁에 가장 잘 기여하는 방법을 배우는 힘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몬트리올과 온타리오에서 홈리스 쉼터가 폐쇄된 캐나다의 열악한 주택과 퇴거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지주와 세입자 이사회는 지난 3개월 동안 13,000건 이상의 퇴거 청문회를 개최했다뉴욕 헌츠포인트 생산시장의 노동자들이 코비드19로 10명이 죽고 100명이 감염된 후 1달러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봉쇄기간 동안 소수의 관심 있는 동조자들로부터 호주에서 실행 가능한 정치 그룹 구축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이와 같은 도전은 자본주의의 부패한 시체 속에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물질적 기반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점점 더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다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인 투쟁을 하는 것이다.

 

2021년 3월 10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오로라(54)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1-03-10/there-isn-t-a-vaccine-against-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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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한국기업과 미얀마 노동자 투쟁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한국기업과 미얀마 노동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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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 국가가 황금의 땅이었던 한국 자본

 

미얀마에 대한 한국기업의 진출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이미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와 전두환 정권은 1983년에 발생했던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이후에 지속하여 경제협력 확대를 합의한 상황이었다. 1984년에 대우를 시작으로 의류 봉제업을 중심으로 진출한 한국기업1)들은 미얀마 군부와 밀접하게 유착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미얀마 군부는 미얀마 사회를 수십 년간 통치하면서 미얀마 사회 전반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한국기업의 미얀마 진출을 위해서는 미얀마 군부와의 유대관계 형성은 필수적이었다

 

미얀마는 넓은 국토와 풍부한 지하자원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시장이었다그러나 미얀마 군부의 폐쇄적인 고립정책과 독재정치특히 1988년에 있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이른바 선진국들의 미얀마 투자는 제한되어 있었다이 틈을 노리고 한국 자본들은 미얀마에 진출한 것이다한국 사회가 한국 자본의 해외투자에 있어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독재국가에 대한 투자는 시장개척이란 이름으로 칭송받기까지 하였다.

 

이른바 민주개혁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노무현 정권 때 본격 추진된 미얀마 슈에가스 개발사업에는 대우인터내셔널뿐만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까지 지분에 참여하여 사업이 이뤄졌다국제민주연대를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가 독재정권인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가스개발사업의 인권침해 위험성을 계속 경고하였지만정부와 기업은 요지부동이었다오히려 대규모 가스개발사업의 성공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은 성공적으로 2010년에 포스코에 인수되었고 가스공사 역시 지속해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미얀마 진출 한국기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의류 봉제업도 마찬가지였다중국과 필리핀인도네시아를 거쳐 미얀마로 향한 한국 의류 봉제 기업들은 낮은 임금과 함께 미얀마 군부에 의해 억압된 노동자의 권리를 착취할 수 있었다더욱이 2000년대 중반부터 미얀마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마저 형성되게 되었다. 2015년에 아웅산 수지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제사회의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마저 사라지면서 한국 자본의 미얀마 진출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였다.

 

군부독재와 협력한 대가

 

대우인터내셔널이 1984년부터 미얀마에 진출하면서 유착된 관계를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대우의 무기 수출 사건이다. 2006년에 검찰의 수사로 드러난 이 사건은 대우가 미얀마 군부에 포탄 제조기술과 설비를 몰래 수출하다가 적발된 사건이었다노다지로 불리는 가스개발 사업을 따내고 유지하기 위한 대가로 독재정권에 무기까지 팔아넘기는 회사라는 오명이 생겼다.

 

   그러나 대우가 포스코에 인수된 이후에도 이런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아웅산 수지 정권이 들어서고 미얀마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한 로힝야 학살이 2017년에 발생하였다미얀마 군부의 주도로 발생했지만주류인 버마족의 로힝야족에 대한 반감을 의식한 아웅산 수지 정권은 이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옹호하고 나서기까지 했다끔찍한 대량학살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재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에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군부의 요청으로 군함 판매 계약을 성사시켰다정부가 군함 판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민간상선인 것처럼 꼼수를 부려가며 기어이 군함을 팔아넘겼다.2)

 

   포스코 역시 1997년에 미얀마 군부가 자금확보를 위해 설립한 기업인 MEHL과 합작으로 아연도금강판 회사를 설립하였다포스코는 미얀마 현지 생산법인이 별다른 수익이 나지 않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미얀마 군부독재 시절부터 미얀마 군사정부의 큰 수입원이자 군사정부의 든든한 파트너인 중국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는 가스개발사업을 수행한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포스코 입장에서는 군부와 결탁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다심지어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건설은 미얀마 군부가 소유한 토지를 임대해 벌이고 있는 롯데호텔 사업의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대우 시절부터 다져온 군부와의 끈끈한 관계로 미얀마에서 벌이고 있는 여러 사업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에 주목받게 되자 포스코는 당황하고 있다포스코는 MEHL과 합작사업인 포스코 강판의 생산법인에 대해서는 국내외의 비판을 의식하여 4월 16일 자로 MEHL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합작 관계를 종료하겠다고 발표하였다그러나 그동안 포스코가 군부에 직접 자금을 전달한 것은 아니라는 변명군함이 아니라 민간상선이었다는 변명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한 시민사회의 주장이 한국 기업과 교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협박까지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포스코가 미얀마 군부와 결부된 사업들에 대해 추가조치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고포스코 강판의 지분인수를 하는 선에서 비판을 잠재우려 할 것으로 보인다.

 

   독재국가에서 한국기업의 활동을 제재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에 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에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다른 국가와 비교해보아도 이례적일 정도의 이 강도 높은 지지 속에서도 한국기업의 미얀마 군부와의 결탁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낮다이것은 한국 사회가 한국기업의 해외투자 문제특히 도덕적으로 한국기업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한국기업이 인권침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과거 보다 포스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고정부와 기업도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렇지만 포스코에 많은 이익을 안겨주고 있는 가스전 사업을 철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설사 철수한다고 해도 포스코와 가스공사의 지분은 고스란히 중국과 미얀마가 인수해 갈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선봉에는 의류 봉제업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이 여성 노동자들은 한국과 중국의 의류 봉제 업체에서 일하면서 갖은 탄압 속에서도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을 결행하고 경찰과 용역의 폭력 속에서도 노조를 사수해왔다그렇게 단련된 노동운동은 군부와의 싸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고 군부는 노조 지도부를 겨냥한 체포를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적어도 독재국가에서 독재정권에 이익을 제공하면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지금한국기업들의 독재정권과의 유착을 끊을 수 있는 제도의 도입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특히 노동자와 민중을 살상하고 억압하는 무기와 시위진압 용품에 대한 수출만이라도 금지할 수 있는 법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아울러해외에서의 기업 활동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되어야 한다기업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간주하던 한국 사회에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한국 사회는 한국기업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국제민주연대 ┃ 나현필 사무국장3)

 

 

 

<주>

 

1. 이와 관련된 내용은 참세상」 기사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전두환에서 미얀마 군부까지독재와 손잡은 기업들” 2021.4.2.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5856

 

2. 포스코 군함 수출과 관련해서는 MBC가 계속 단독 보도하고 있다주목할 점은 다른 언론사들은 이 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군함 수출이 문재인 정부에서 허가되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도 이 건에 대해선 침묵하는 상황이며보수 야당 역시도 한국기업과 관련된 문제에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https://imnews.imbc.com/news/2021/econo/article/6151064_34887.html

 

3.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이하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에 설립된 인권단체로 주로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수행해왔다www.khis.or.kr 나현필 사무국장은 2006년부터 국제민주연대에서 상근활동을 시작하였고미얀마에 3차례(2006.2013.2016) 한국기업 인권침해 현지 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편집자 주이 글은 본지의 요청으로 싣게 된 소중한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 글>

미얀마 항쟁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39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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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詩 : 30년, 백종원 김밥, 저녁이 있는 삶

30년

 
30년 전에 야간고 실습생 영국이는 나사를 깎았다.
아침까지 일을 해야 되는 건 영국이뿐이었다.
영국이는 태핑기에 장갑이 끼였다.
손가락이 잘린 채 그대로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30년 후에 특성화고 민호는 기계에 끼여 죽었다.
민호와 영국이는 혼자 작업을 했다.
30년이 가고 다시 30년이 와도 영국이는 엎드려 있다.
30년 후에 민호가 죽어서 엄마의 통곡 앞에 누워 있다.
 
 
 


백종원 김밥
 
 
편의점 김밥을 고르는데 백종원김밥이 눈에 띄었다.
조리 모자에 위생복을 입고 내 김밥 드시라고 엄지척한다.
 
음식장사로 성공한 백종원은 유명 요리사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골목 식당 주인들에게 호통을 친다.
이래 가지고 장사가 되겠어?
나는 그 말이 이래 가지고 나처럼 성공하겠어,라는 말로 들렸다.
 
새벽, 치킨집 오토바이 한 대가 교차로에 들어섰다,
직진 신호가 바뀌면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왔다.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날아올랐다.
통닭이 죽고 오토바이가 죽었다.
 
누구도 백종원이 될 수 없다.
 

 


저녁이 있는 삶


얼마 전에 과로로 사망한 서른두 살의 택배 노동자는 하루에 14시간을 일하면서 1만 건의 배달 물품을 처리했다고 한다. 일요일만 쉰다 치고, 25일이면 1일 400건이다. 1시간에 28.5건이다. 그러니까 2분에 1개씩은 배달해야 되는 중노동이었다. 두 아이의 가장인 그는 그렇게 일하다 쓰러졌다. 다시는 일어나 눈을 뜨지 못했다.

 

詩 | 임성용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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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카피에로와 맑스: 요약된 「자본」?

카피에로와 맑스요약된 자본?

 

  KakaoTalk_20210507_144134973.jpg

 

서평아나키스트 코뮤니스트 그룹(ACG)이 출판한 카를로 카피에로(Carlo Cafiero)의 맑스 자본론」 요약본

 

 

우리는 카피에로가 1877년과 1878년에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기간과 1879년 석방된 후에 쓴 맑스 자본론」 1권의 100페이지 요약본을 ACG가 출판한 것을 환영한다이 요약본은 맑스 저작을 단순화하여 더 넓은 독자층이 접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로 쓰였고맑스 자본론」 1권의 구성을 참조해 총 10개의 장과 결론으로 되어 있다이 책의 주된 목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본의 축적에 따른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에 관한 설명을 위한 것으로이를 위해서 상품가치통화를 다루었다또한 본원적 축적을 다루며 프롤레타리아트 성립 과정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자본론」 1권의 긴 인용 글을 포함하고 있다카피에로는 세 종류의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고 설명한다첫째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노동자들둘째자신과 같이 노동운동의 대의를 받아들인 부르주아 출신 배신자들셋째학생들을 위해서.

 

ACG가 서문에서 조심스럽게 설명했듯이카피에로 자신은 부유한 배경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이고 짧은 생을 살았다그는 처음에는 맑스와 엥겔스에게서 깊은 감동한 맑스주의자였고이탈리아에서 인터내셔널 건설 임무를 맡은 제인터내셔널 총회의 대표자가 되었다그러나 그는 나폴리에서 아나키스트 바쿠닌을 만나 아나키스트가 되었다그렇지만 그는 맑스의 경제 분석에 확신이 있었고옥중에서 자본론」 1권의 프랑스어 번역본을 읽은 후에 요약본을 썼다그리고 그로부터 약 150년 후에 ACG가 이 요약본을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로 했다.

 

우리는 맑스 저작을 더 널리 읽히고 이해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환영한다카피에로의 문체는 생동감 있고 흥미롭지만이번 출판물에서는 비판할 것이 두 가지 있다첫 번째는 번역이다. ACG는 페론(Paul Perrone)의 marxists.org에 있는 버전을 사용했다페론은 카피에로에게 그 번역을 자랑스럽게 바치지만우리는 페론이 카피에로에게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부정확한 어법 때문에 의미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번역은 검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더 심각한 것은 영어 번역이 이탈리아어 원문과 정반대의 뜻으로 번역되는 곳도 몇 군데 있다이에 대한 두 가지 보기를 들어보자

 

21(1)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그는 노동자 임금을 속여서 갈취하는 것이 좋아 보일지도 모르는 부르주아지의 지극히 정직하고 종교적인 일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한다.

 

그는 지극히 정직하고 심지어 종교적인 부르주아지의 구성원이며 노동자 임금을 속여서 갈취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58쪽에서는 더 심각한 실수가 발생한다.

 

"따라서 급여는 노동력의 가격을 나타낼 수 없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읽혀야 한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만을 나타낼 수 있다."

 

이어지는 설명은 카피에로가 쓰려고 했던 것임을 분명히 하지만이러한 종류의 번역 오류는 맑스에 대한 이해를 쉽지 않게 해준다!

 

이러한 실수와 서투른 번역은 때때로 본문에 대한 이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부분적으로 다행인 것은 페론이 무어/어벨링(Moore/Aveling)의 영어판 자본론을 이용해 카피에로가 자본론으로부터 직접 인용한 장문의 인용문을 번역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비판은 카피에로가 제시하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사례로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이 생산한 가치의 구분이 혼란스럽게 번역되었다맑스는 자본론」 1권 제19장에 이 구별을 길게 설명하고 있다카피에로가 33쪽에서 든 사례는 약간 엉성하다.

 

그는 첫 번째 사례에서 노동자는 12시간의 노동에 대해 3파운드를 받고, 1.5파운드의 생산수단을 사용하며총 7.5파운드의 가치를 지닌 6개의 품목을 생산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래와 같이 읽힌다.

 

"12시간 노동력의 가치는 6파운드이다."

 

그러나 카피에로가 이 사례의 나머지 부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12시간 노동력의 가치는 분명히 3파운드다. 12시간의 노동력으로 생산되는 총 가치가 6파운드이며이 가운데 3파운드는 노동자의 임금을 나타내고 3파운드는 잉여가치를 나타낸다노동자는 6시간을 일하여 임금 3파운드를 생산하고, 6시간을 무급으로 노동하여 잉여가치 3파운드를 생산하는데이 잉여가치는 자본가에게 가는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에 의해 생산된 가치의 구분은 맑스 이론이 고전경제학보다 우월한 핵심적인 이론이다노동력 그 자체는 자신의 교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품이다이것은 세심하게 설명될 필요가 있다불행히도 카피에로의 보기는 명확하지 않다이는 카피에로가 33쪽에서 생산량 증가로 생산된 상품의 가치에 대한 수치로도 이해되지 않으며 잘못 설명되었다. 62.5파운드가 아니라 75파운드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결점만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맑스 이론을 단순화하고 대중화하려는 카피에로의 노력은 ACG가 영어로 번역한 것처럼 칭찬할 만하다그러나 우리는 번역본을 수정하고 확인하며 인터넷 버전의 사례들을 정리할 것을 권한다.

 

아나키스트 코뮤니스트 그룹(ACG)과 맑스

 

ACG는 서문에서 자본론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맑스의 어떤 것이든 출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약간 유감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은 반혁명에 의해 야기된 권위주의적 경향들(ACG는 여기에 트로츠키주의와 모든 종류의 맑스-레닌주의를 포함한다)을 거부하면서 맑스 경제 이론에 동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이 점에서 우리는 동의할 수 있다맑스는 국가계급국경이 없는 자유로운 생산자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원했다그들이 자주 언급하는 맑스주의자(Marxist)’ 경향은 국가자본주의와 코뮤니즘 사이의 차이를 거의 보지 못하며 따라서 맑스와는 관련이 없다그들 맑스주의자는 한마디로 러시아혁명이 레닌의 죽음 훨씬 이전에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반혁명의 산물이다그러나 맑스는 그의 사후 40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다자본론은 단순한 경제작품이 아니다. ACG가 자본론을 우리의 혁명적 이해를 위한 최고의 공헌이라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론의 역사적철학적 기초의 수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카피에로는 맑스의 원시적 축적에 대한 설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을 분명히 받아들인다이것은 카피에로가 역사적 변화의 근간으로 역사적 유물론을 받아들이고 계급투쟁을 역사 원동력으로 수용한 것이다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피에로는 역사적 유물론에 의존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형성과 관련해서 자본론에서 길게 인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전복 이후 노동자계급이 직면하게 될 상황에 대한 이해도 자본론」 1권에서 발견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에 달려 있다. ACG가 맑스 작품을 최고라고 했다면맑스 분석에서 비롯된 코뮤니스트 사회를 위한 그의 처방을 논리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우리는 물론 맑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요약한 것처럼노동자계급(그리고 노동자계급만)이 독재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과도기를 언급한다세계 자본가계급의 위협이 줄어들고 과도기적 사회가 완전한 코뮤니즘으로 발전함에 따라 국가의 필요성은 줄어들게 된다.

 

카피에로가 9장에서 인용한 자본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맑스 글은 시스템이 노동자계급의 지적 능력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잔혹하게 훼손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상대적 과잉 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축적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법칙은 불카누스(불과 대장일의 신)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결박시킨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이 법칙은 자본축적에 대응한 빈곤 축적을 확립한다그러므로 한 쪽 끝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편 끝(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의 축)의 빈궁노동의 고통노예상태무지야만화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

 

위의 글이 쓰여진 지 이제 1세기 반이 지났지만어떻게 노동자계급이 임금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차원에서 중심 질문이다맑스는 이를 위해 국제정치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그것의 기능은 노동계급의 입장과 코뮤니즘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 발달에 도움을 주고코뮤니즘을 이루기 위한 강령과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인터내셔널은 맑스와 엥겔스가 이 일을 시작하려는 노력의 실질적인 결과였다이 서평에서는 인터내셔널의 붕괴와 관련해서는 따로 검토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카피에로와 맑스가 위에 제시된 정확한 이유로 그들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국제정치조직의 필요성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이 요약본의 끝에 발표된 ACG의 목적과 원칙에서 우리는 그들이 아나키스트 세계 혁명 운동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주목한다아마 카피에로의 요약본 출판이 일부 아나키스트들의 과거 맑스주의 비난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0년 9월 17

CP

 

 

<>

(1) 쪽 번호는 인쇄본 버전이다. ACG 온라인 버전은 약간 다르며쪽 번호는 일반적으로 책 버전 이후의 쪽이다.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옮긴이 우연이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0-09-17/cafiero-and-marx-capital-in-a-nut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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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1912년 9월 21일 뉴욕 타임스에 경멸스러운 붉은 깃발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깃발은 자유다하지만깃발은 몹시 혐오스럽다그것은 전 세계에서 무법과 무정부의 상징이며깃발은 그 자체로 올바른 시민들에게서 경멸받는다."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은… 무법의 상징을 들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고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붉은 깃발은 이 나라를 세운 원칙들을 파렴치하게 무시한다.”

 

같은 해 11월 3일 뉴욕 콜이 반박 기사를 실었다.

 

나는 어떤 색깔의 천 조각도 숭배하지 않는다하지만 나는 붉은 깃발과 그것이 나와 다른 사회주의자에게 상징하는 바를 사랑한다나는 붉은 깃발을 내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붉은 깃발을 들고 타임스 사무실 앞을 즐겁게 행진하면서 모든 기자들과 사진기자들에게 최고의 광경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제목의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바로 헬렌 켈러(Helen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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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헬렌 켈러에게 수화를 배우고 있는 찰리 채플린, 1919년

 

 

몇 달 동안 내 이름과 사회주의가 신문에 자주 함께 등장하곤 했다한 친구는 내가 야구루즈벨트 대통령그리고 뉴욕 경찰의 부패 사건과 함께 신문의 첫 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그런 결합이 나를 전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사람들이 나와 메이시 부인(Mrs. Macy, Anne Sullivan)의 교육적 성취에 관심을 가져주어 기쁘게 생각한다나쁜 평판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다그리고 내 활동을 보도하려는 신문들이 기사에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게 된다면 기쁘겠다언젠가 나는 사회주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그리고 또 나와 내 의견에 쏟아졌던 엄청난 양의 평판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해명하고 싶다나는 지금까지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쓰지 않았고거의 말하지 않았다아주 가끔 편지에 썼는데프레드 워런(Fred Warren)동지에게 쓴 편지는 이성에 호소한다에 실려 출판되었다몇몇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그 중 뉴욕 월드(the New York World)의 아일랜드(Ireland) 기자는 나를 몹시 추켜세우는 기사를 작성했고내가 말한 것을 충분하고공정하게 실어주었다나는 스키넥터디(Schenectady)시에 가본 적이 없다그리고 나는 런(Lunn) 시장을 만난 적이 없다런 시장이 나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적이 없지만메이시 씨(Mr. Macy)를 통해 친절한 메시지를 보내온 적은 있다메이시 부인의 병환 때문에 스키넥터디시의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려던 계획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부정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사소한 사건들에 대해 자본주의 언론과 사회주의 언론은 많은 논평을 했다모아놓은 기사가 서랍에 가득하다난 그중에 4분의 1도 읽지 못했고그걸 다 읽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그렇게 작은 일에 엄청나게 많은 논평이 따라왔는데만약 내가 사회주의를 위해 말하고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신문들은 어떻게 할까나는 지금 내 입장을 발표하고잘못된 기사들을 정정하고부당한 몇몇 비난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

 

첫째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을까독서로내가 처음 읽었던 책은 H.G.웰즈의 구시대를 대신할 신세계였다메이시 부인의 추천으로 그 책을 읽었다그녀는 그 책의 고급스러운 상상력에 매료되었고그 책의 강렬한 문체가 나를 자극하고 흥미를 끌어 주기기를 바랬다그 책을 나에게 가져다줄 당시그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고지금도 그녀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아마도 나와 메이시씨가 그녀와 논쟁을 끝내기 전에 그녀가 사회주의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 독서는 한계가 있고느리다나는 두 달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인쇄된 독일의 사회주의자 정기간행물을 받아보고 있다. (우리의 독일 동지들은 많은 관점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그리고 나는 독일어 점자로 된 에어푸르트(Erfurt) 강령에 대한 카우츠키(Kautsky)의 토론도 가지고 있다내가 읽었던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문서들은내가 무엇을 고르던지 간에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하는 친구가 내 손에 한 자 한 자 읽어준 것이다내가 그녀의 생기 넘치는 손가락에 열망 가득한 내 손가락으로 전달해달라고 가장 자주 요구하는 정기간행물은 전국 사회주의자(the National Socialist)이다그녀는 기사의 제목을 읽어주고나는 그녀에게 언제 읽을지생략할지 이야기한다나는 또한 그녀에게 국제사회주의비평(the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에서 장래성 있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달라고 한다손으로 한 자 한 자 대화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50,000단어의 경제학책을 읽는 내내 손가락에 열중하기는 쉽지 않거니와 또한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그렇지만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그리고 나는 사회주의 저자들의 모든 고전에 정통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이것을 즐길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두 개의 반()사회주의 출판물인 공공의 목적(the Common Cause)에 실리고당면한 이슈(the Live Issue)에 다시 실렸던 나에 관한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그 기사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25년간 켈러의 선생님이자 충실한 벗은전에 매사추세츠주(Mass)의 렌담(Wrentham)시에 살았던 메이시 부인이었다메이시 씨와 부인은 둘 다 열렬한 맑스주의 선전가이다그래서 이들에게 대부분 삶의 지식을 배우며 평생 친구로 의지했던 켈러가 그런 의견에 동화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메이시씨는 어쩌면 열렬한 맑스주의 선전가인지도 모르겠다비록 아쉽게도 그가 나에게 손가락을 통해 맑스주의를 열정적으로 선전하는 열의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말이다메이시 부인은 맑스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다그러므로 공공의 목적이 그녀에 대해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편집자는 날조하고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그리고 그것이 그의 일처리 방식이라면그가 사회주의에 반대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그는 사회주의자가 되거나다른 어떤 지적인 일에도 적합할 만큼의 사실 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같은 기사의 다른 인용구를 한번 보자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되어있었다.

 

"스키넥터디시의 빨갱이들은 여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 눈먼 소녀 헬렌 켈러를 이용해서 선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불쌍한 헬렌 켈러에 대한 스키넥터디 사회주의자들의 착취보다 더 애처로운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몇 주 동안 당 선전국은 그녀가 사회주의자이며스키넥터티시 공공복지위원회의 새로운 위원이 될 것이라고 보도해왔다."

 

그 말솜씨에 빈정대는 논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불쌍한 헬렌 켈러에 대한 착취그러나 나는 공공의 목적」 같은 신문의 위선적인 연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만 간단히 하고 참을 것이다그렇지만 그 신문이 "착취"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된다면 나는 기쁘게 생각하겠다.

 

사실은 이렇다나를 위해 마련한 장소에서 열리는 공공복지위원회에 대한 런 시장의 제안에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런 시장에게 했을 때런 시장이 운영하는 시민(The Citizen)에는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었다사실내가 스키넥터디시로 이동한 후에도 위원회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러나 자본주의 언론의 기자들이 이 계획을 눈치를 챘다런 시장이 스키넥터디시에서 자리를 비운 어느 날올버니(Albany)시의 니커보커(the Knickerbocker)라는 신문에서 이 사실을 발표해버렸다그 기사는 전국에 전송되었고그때 신문들의 진짜 착취가 시작되었다사회주의 신문들아니그것은 자본주의 신문들에 의한 착취였다사회주의 신문들도 그 뉴스를 싣기는 했다몇몇 사회주의 신문은 환영하는 사설을 썼다그러나 기자들이 전화하고전신을 보내고인터뷰를 요청하는 그 모든 주들 내내 런 시장의 신문인 시민은 침묵을 유지하고 내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다착취를 한 것은 자본주의 언론이었다일반 신문들이 사회주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전혀물론 아니다그들은 사회주의를 싫어한다그렇지만 아아 슬프게도내가 신문 가십란의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내가 스키넥터디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느라 너무 지쳐서 처음 "뉴스"라고 보도했던 기자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신문들이 "내가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보도"하고 나서 사회주의 신문들과 좋은 관계가 되었다는 건 사실이다그러나 나를 보기 위에 달려온 기자들은 전부 일반 상업신문 기자들이었다.

 

외침(The Call)이나 전국 사회주의자(The National Socialist)」 같은 어떤 사회주의 신문도 나에게 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시민의 편집자가 메이시씨에게 내가 쓴 기사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넌지시 일러줬지만메이시씨는 너무도 착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라서 나에게 직접 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나에게 기사를 요구했었다타임지의 편집자는 나에게 그 신문이 대중들이 보는 가치 있는 미디어라고 장담하는 편지를 써 보내면서내 기사를 받고 싶어 했다또한 그는 나에게 전보를 보내서 내 계획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스키넥터디 공공복지 위원으로서의 내 역할에 대한 대략의 생각을 알려달라고 요청해왔다나는 그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칠 후 타임즈는 나를 그 잘난 동정심 밖의 사회적 낙오자로 만들어 버렸다. 9월 21일 타임즈는 <경멸스러운 붉은 깃발(The Contemptible Red Flag)>이라는 사설을 실었다그 두 구절을 인용해보겠다.

 

"깃발은 자유다하지만깃발은 몹시 혐오스럽다그것은 전 세계에서 무법과 무정부의 상징이며깃발은 그 자체로 올바른 시민들에게서 경멸받는다."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은 붉은 깃발이 정당화하고 있는 어떤 행동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무법의 상징을 들고 있기 때문에 존중받고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나는 어떤 색깔의 천 조각도 숭배하지 않는다하지만 나는 붉은 깃발과 그것이 나와 다른 사회주의자에게 상징하는 바를 사랑한다나는 붉은 깃발을 내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붉은 깃발을 들고 타임스 사무실 앞을 즐겁게 행진하면서 모든 기자들과 사진기자들에게 최고의 광경을 선사할 것이다타임즈의 포괄적인 유죄선고로 나는 존중과 공감 받을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고의심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그런데도 아직 타임즈의 편집자는 내가 기사를 써주기를 원하고 있다내가 의심받을 만한 사람이라면서어떻게 내가 그를 위해 기사를 써줄 거라고 믿고 있는 걸까자본주의자인 편집자가금권 정치적인 이익을 공격하는 운동을 비난하려 할 때마다빠져드는 나쁜 윤리나쁜 논리나쁜 예절에 대해 여러분들도 내가 즐기는 것처럼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우리는 그의 신문에 돈벌이가 되는 기사를 써주기 전에는 동정받을 자격이 없다아마도 우리의 의견은 그 편집자에게 유명한 살인자의 고백과 같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우리는 좋은 사람들이 아니지만흥미로운 사람들이다.

 

나는 신문 편집자들을 좋아한다많은 편집자를 알고 있고그중 두 세 명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게다가 신문들은 우리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고의 지원자들이었다시각장애인을 위한 일과 겉치레 자선 행위를 지원하는 일은 그들에게 전혀 손해날 것이 없다그러나 사회주의 그건 다른 문제다사회주의는 모든 빈곤과 모든 자선 행위의 근원을 밝히고 있다신문 뒤에 있는 금권은 사회주의에 반대한다그리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그 손에 순종적인 편집자들은사회주의를 끌어내리고 사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을 훼손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내가 프레드 워런 동지에게 보낸 편지가 이성에 호소한다에 실렸을 때보스턴 트랜스크립트(the Boston Transcript)의 특별부서에서 일하는 내 친구가 그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는데편집국장이 잘라내 버렸다.

 

브루클린의 독수리(The Brooklyn Eagle)는 나와 사회주의에 대하여헬렌 켈러의 "실수들은 명백한 그녀의 발달 한계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몇 년 전나는 맥컬웨이 (McKelway)라고 소개된 한 사람을 만났었는데그는 브루클린의 독수리의 편집자였다맹인들을 위해 뉴욕에서 열린 한 회의가 끝나고 나서였다당시 그가 나에게 했던 찬사는 너무나 대단해서 기억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이다그러나 내가 사회주의자로 공개적으로 선언한 지금그는 나와 대중들에게 내가 시각장애인이자 청각 장애인이고그래서 특별히 실수할 수밖에 없다고 일깨우고 있다그를 만난 후 몇 년 사이에 내 지적 능력이 줄어든 게 틀림없다이번엔 당연히 그가 얼굴을 붉힐 차례다실명과 청각 장애가 사람을 사회주의로 이끄는 건지도 모르겠다어쩌면 맑스는 완전히 청각 장애인이며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시각장애인일 것이다모리스는 그의 촉감으로 그림을 그리고후각으로 벽지를 디자인했을 것이다.

 

정말 웃기는 브루클린의 독수리얼마나 비겁한 새인가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브루클린의 독수리는 이 참을 수 없는 체제우리가 막으려는 다수의 육체적 실명과 청각장애의 원인인 바로 그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만약항상 만일이지만우리가 브루클린의 독수리를 지원하고귀를 틀어막고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산업 폭군을 공격하지 않는다면브루클린의 독수리는 우리가 고통을 막으려고 하는 일을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독수리와 나는 전쟁 중이다나는 그것이 대표하고변호하고떠받치는 그 체제를 혐오한다다시 싸움을 걸 때에는 공정하게 싸워라내 생각을 공격하고내 목표에 반대하고사회주의에 논쟁을 걸어라나와 다른 이들에게 내가 보거나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은 공정한 싸움도 아니고 좋은 논쟁도 아니다나는 읽을 수 있다나는 시간을 투자해서 영어독일어프랑스어로 된 모든 사회주의 책들을 읽을 수 있다만일 브루클린의 독수리의 편집자가 이 책 중 몇 권을 읽을 수 있다면그는 아마도 더욱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서 더 좋은 신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내가 만일 사회주의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내가 가끔 꿈꾸는 그런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책의 이름은 산업적 실명과 사회적 청각장애라고 쓸 것이다.

 

1912년 11월 3뉴욕 콜

헬렌 켈러(Helen Keller)

 

*뉴욕 콜(The New York Call)은 1908년부터 1923년까지 뉴욕시에서 발행된 사회주의 일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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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2호]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본주의 해체기에 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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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ICC 프랑스 지부에서 최근 열린 회의를 위해 작성되었고 세계 상황에 대한 다른 보고서들이 곧 이어질 예정이다.

 

 

재앙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8,000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도 170만 명에 달한다.[1] 세계 부르주아지의 여러 분파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 정책 도입을 무모하게 지연하다가 결국 경제의 광범위한 부문을 잔인하게 폐쇄(Shutdown)한 이후팬데믹이 일부 국가에서 일시적으로 약화한 상황을 틈타 사회를 재개방함으로써 결국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대가로 한 경제회복에 도박을 걸었다겨울이 다가오면 이러한 도박은 승산 없음이 분명한데적어도 중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나 의료적으로나 악화를 의미한다이 재앙의 부담은 국제 노동자계급의 어깨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역사적 쇠퇴의 마지막 국면즉 사회적 해체의 시기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1989년 동유럽 몰락으로 열린 현시대가 세계대전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같은 명백한 지표들이 정의하고 지배하던 자본주의 쇠퇴 이전 시대와 달리겉으로 명백한 상호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증상들이 급증함으로써 표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2]. 그러나 2020년 현재, 2차 세계대전 이래 세계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인 코로나 팬데믹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면화된 부패를 나타내는 일련의 혼돈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해체기의 확실한 상징이 되었다이러한 요소는 다음과 같다:

 

- 1967년에 시작된 장기적인 경제 위기[3]의 연장그리고 뒤이은 긴축 정책의 축적과 강화는 팬데믹에 대해 부르주아지가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대응하도록 내몰았고 이는 다시 지배계급이 중요한 시기에 생산을 중단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엄청나게 악화시키도록 만들었다;

 

팬데믹의 기원은 과잉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위기로 인해 지속적이고 가속적인 환경 파괴에 분명히 놓여있다;

 

이전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보이듯제국주의 열강의 지리멸렬한 경쟁 관계로 인해 팬데믹에 대항한 세계 부르주아지의 대응은 국제적인 대실패로 나타났다;

 

이 보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부적절한 대응은 각 나라 내부에서 부르주아지와 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경향을 드러낸다;

지배계급과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능력의 쇠락은 놀라운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적 부패를 동반한다자본주의 최강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미신적인 난센스를 유포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주요 수준에 대한즉 경제적제국주의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및 사회적 수준에 대한 해체 영향을 한꺼번에 통합해서 보여주고 있다.

 

현 상황은 자본주의가 무질서와 사회적 붕괴라는 마지막 시기에 진입했다는 분석에 대해서 모순적으로 간주한 많은 현상의 중요성을 또한 일소해버렸다이러한 현상은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따르면우리의 분석이 의문시되거나 단순히 무시되어야 하는 증거로 통했었다특히몇 년 전 중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률은우리를 비판하는 이들에 따르자면해체기 심지어는 쇠퇴기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반증처럼 보였다이러한 관찰자들은 실제로는 중국 산업 성장이 방출하는 현대성 향기에 사로잡혔다오늘날코로나 팬데믹의 결과의 하나로서중국 경제는 정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개발과 부패라는 덜 유쾌한 냄새를 방출하는 만성적인 후진성을 드러냈다.

 

ICC가 1989년부터 갖게 된 전망은일시적인 유행을 따르거나 낡은 공식에 얽매이는 대신에저변에 깔린 국제적이고 장기적인 경향의 맑스주의적 분석에 기반을 두고 도출해낸 전망이다그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내부적 해체의 최종 시기에 들어섰다는 것이고이 전망은 충격적으로 확인되었다현재의 보건 대재앙은 무엇보다도 자본가계급이 체제에 대해 점점 더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고 인류 사회 전체의 전망에 대한 지배력을 점점 더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자본주의가 생산 양식의 역사적 쇠퇴의 효과를 억제하고 방향을 틀기 위해 지금까지 발전시킨 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력 상실이 심각해지는 것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게다가 현 상황은 자본가계급이 증대하는 사회적 혼돈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통제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해체를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팬데믹쇠퇴해체

 

코로나 팬데믹이 왜 자본주의 해체기에 상징적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 그것이 이전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팬데믹은 이전 사회 유형에서도 알려져 있고고대 노예사회 말기의 저스틴 역병이나 봉건제 말엽의 흑사병과 같이 이전 계급사회의 쇠퇴에 파괴적이고 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봉건제 쇠퇴에는 해체기가 없었는데이는 새로운 생산양식(자본주의)이 이미 낡은 양식 내부에서 그것과 함께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치명적인 전염병의 참상은 심지어 부르주아지의 초기 발전을 가속했다.

 

역사상 노동력 착취의 가장 동적인 체계인 자본주의 쇠퇴는 필수적으로 사회 전체를 포괄하며 어떤 새로운 생산 양식도 그 내부에서 출현하지 못하도록 막는다이것이 바로세계대전이나 프롤레타리아적인 대안 경로가 없음에도, ICC가 해체에 대한 테제에서 표현했듯이[4], 자본주의가 -쇠퇴(ultra-decadence)’의 시기에 진입하게 된 이유이다따라서 현재의 팬데믹은 현존 사회 내부에서 인류 생산력의 그 어떤 재생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고대신에 우리는 이 팬데믹을 통해서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전복되지 않는 한 인류 사회 전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희미하게나마 감지할 수밖에 없다전염병의 분출을 이해하고 방지하고 억제할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 수단들을 개발한 (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자본주의가코로나에 대한 대응으로 격리라는 중세적인 방법에 의지하는 것은썩어가는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생산력을 이용하는데 점점 더 무능해지는 한 사회의 난국을 증언한다.

 

자본주의 일생에서 전염병의 사회적 영향의 역사는 한 체제의 쇠퇴와 1914년에 시작된 그 쇠퇴기 내부에서 해체라는 특정 시기 사이의 구분에 대한 더 나은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자본주의의 상승과 그 쇠퇴 대부분 역사는 사실상 특히 선진국에서 전염 질환에 대한 의학과 공중 보건의 증대된 지배력을 보여준다보기를 들어 천연두와 소아마비의 정복 그리고 말라리아의 퇴치와 같이 공중위생 및 위생시설 증진은 이러한 진보 증거이다결국, 2차 대전 후에는 비전염성 질환들이 자본주의 주요 국가에서 조기 사망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우리는 역학의 역량에 있어서 이러한 개선이 부르주아지가 주장하듯이 인류애적인 관심에서 발생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결정적인 목표는 자본주의의 영구적인 위기로 인해 요구되는 착취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블록의 군사적인 이해에 적합하도록 국민을 준비하고 최대치로 동원하기 위해 안정적인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부터 전염 질환에 대한 긍정적인 추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HIV, 치카에볼라사스메르스니파, N5N1, 뎅기열 등과 같은 새로운또는 진화하는 병원체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이러한특히 동물성 바이러스 발달은 자본주의 주변 지역에서 도시 성장(이러한 성장의 40%는 거대한 빈민가의 증가가 차지한다), 벌목기후변화와 연계되어 있다역학이 이러한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추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국가가 대책을 구현하는 것은 그러한 위협과 보조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코로나19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불충분하고 무질서한 대응은 전염 질환의 소생과 공중보건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점증하는 태만그래서 최소한의 수준에서 사회적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무관심을 확인해 준다부르주아 국가에 의한 증가하는 사회적 무능력의 이러한 발전은 수십 년간 이루어진특히 건강 서비스의 사회적 임금에 대한 삭감과 관련된다그러나 공중보건에 대해 증가하는 무관심은지배계급 대부분에 의해 무책임하고 단기적인 대응이 선호되는 해체 시기라는 틀 안에서만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전염 질환 통제의 진행에서 발생한 이러한 역전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피할 길이 없다그것은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최종 시기인 해체 시기로 이동했음을 나타낸다.

 

물론자본주의의 영구적인 경제 위기의 악화가 이러한 이동의 근본 원인인데이러한 위기는 쇠퇴의 모든 시기에 공통적이다그러나 바로 이 위기의 영향에 대한 관리또는 오히려 증가하는 부실 관리가 변했고해체라는 특정 시기의 특징인 현재 및 미래의 재앙의 핵심 구성 요소이다.

 

이러한 변형을 포함하는 데 실패한 설명들보기를 들어 국제코뮤니스트경향(International Communist Tendency)의 경우처럼그런 설명은 팬데믹은 이윤 동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문구만 남긴다그들에게는 특정한 상황들재앙의 시기와 규모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팬데믹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반응은 마치 제국주의 열강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국주의 군사 목적으로 무기화하고 대량 격리를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 동원인 것 마냥냉전 시대의 틀로 돌리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이러한 설명은 주요 제국주의 열강들이 더는 제국주의 블록으로 조직되지 않으며그들의 전쟁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국민을 동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다이는 해체기의 근본 원인인두 주요 계급의 사이에 놓인 교착 상태의 핵심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제국주의 블록의 군사적 야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백신이다[5].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측면에서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부터 교훈을 배웠다몇몇 미국 항공모함과 프랑스 항공모함 하나가 코로나19에 의해서 작동 정지된 것에서 보이듯이통제되지 않은 감염증은 군부에는 엄청난 부담이다대조적으로치명적인 병원체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유지하는 것은 항상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생물학적 전쟁 능력의 조건이었다.

 

이것은제국주의 열강들이 보건 위기를 그들의 경쟁자들을 희생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증진하는 데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은미국이 남긴 세계 제국주의 지도력의 진공 상태가 증가하고 있고중국을 포함해서 그 어느 다른 열강도 이 역할을 맡을 수 없거나 대안적인 견인 축을 형성할 수 없음을 전반적으로 보여주었다제국주의적 충돌의 수준에서 무질서는 코로나 대재앙에 의해 확인되었다.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대량 격리에는 확실히일상생활에 군대의 더 많은 투입과 국가에 의한 전쟁 같은 권고문 사용이 병행된다그러나 국민의 이러한 제한에는노동자계급이 비록 조용하지만 패배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시기에 사회적 동요라는 위협에 대한 국가의 두려움이 상당한 정도는 동기로 작용한다.

 

자본주의 쇠퇴의 모든 시기의 공통적인 특성인 근본적인 자기 파괴 경향은 해체기에 지배적 형식이 세계대전이 아니라 세계 무질서로 바꾸었다그러한 세계 무질서는 사회와 인류 전체에 대한 자본주의 위협을 증가시킬 뿐이다.

 

 

팬데믹과 국가

 

이 팬데믹을 특징짓는부르주아지의 통제력 상실은 국가라는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이 재난이 해체 시기 국가자본주의에 관해 폭로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부구조의 전복에 관한 ICC의 팸플릿 자본주의의 쇠퇴에서의 언급을즉 사회 안에서 국가 역할의 증대는 모든 생산양식에서 쇠퇴의 한 특징이라는 점을 환기할 것이다국가자본주의 발전은 이러한 일반적 역사적 현상의 극단적 표현이다.

 

1952년 프랑스 코뮤니스트 좌파(GCF)[6]가 지적했듯이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모순의 영향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자본주의 모순의 표현이다따라서 쇠퇴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국가 능력은 그것이 아무리 개입하더라도시간이 지날수록 약화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것이 억제하려 애쓰고 있는 바로 그 모순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자본주의의 해체는 지배계급에 의한 통제력 상실이 증가하고 그것의 국가가코로나가 극적으로 보여주듯이사회적 진화의 지배적 경향으로 되는 시기이다.

그런데이러한 통제 상실이 국가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균일하게 전개될 거라고또는 그것이 모든 나라를 동등하게 강타하거나 단지 단기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동유럽 몰락과 그 결과 서구권 해체와 더불어, NATO와 같은 군사 기구들은발칸전쟁과 걸프전의 경험이 보여주었듯이응집력을 잃게 되었다군사적 전략적 수준에서 혼란은 모든 국제기구가 다른 속도로 위력을 상실하는 것과 병행되었다그러한 기구들보기를 들어 사회적 차원에서 국제보건기구(WHO)와 유네스코경제적 차원에서 EU(예전의 형태로서),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국제무역기구(WTO) 등은 2차 대전 이후 미국 제국주의의 주도 아래 세워졌었다이들은 미국의 지도력 아래 서구권의 안정성과 부드러운 힘(soft power)’을 유지하도록 고안되었다.

 

이러한 국제 조직의 해체와 약화 과정은 2016년 미국 대통령 트럼프 선출로 특히 강화되었다.

 

팬데믹 동안 WHO의 상대적인 무기력은 이러한 측면에서 웅변적이고각 나라가 각자 자신만의 게임을 무질서하게 진행해서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마스크 전쟁과 이제 곧 있을 백신 전쟁, US의 WHO 탈퇴 선언이 기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려는 중국의 시도 등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국제기구의 무기력과 그 결과 경쟁하는 국가 사이에서 모두에 맞서는 각자’ 경향은 병원균 위협을 국제적인 재앙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국제 경제 차원에서무역 전쟁과 지역화 경향의 가속화에도 부르주아지는 보기를 들어 경제 폐쇄 초기인 3월에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연방 준비은행의 행동과 같은 본질적인 대책을 조정할 수 있었다독일은 처음 좀 머뭇거린 후에는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 전체에 대한 경제적 구제 패키지를 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국제 부르주아지가 여전히 세계 경제 주요 부분의 완전한 붕괴를 막을 수 있다면코로나19에 지연되고 무질서한 반응으로 인한 폐쇄로 발생한 경제성장 및 세계무역에 가해진 엄청난 장기적 피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G7의 대응과 비교해서 현 상황은 경제 위기를 늦추기 위한 행동을 조정하는 부르주아지의 능력이 장기적으로 고갈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모두에 맞서는 각자’ 경향은 항상 자본주의의 경쟁적 성질이고 이것은 국가 단위로 분할한 까닭이기도 하다그러나 오늘날 제국주의 블록 규율과 전망의 부재는 경제적 난국과 쇠락의 시기에 이 경향이 소생하도록 자극했다예전에는 특정 분량의 국제적인 협력이 유지되었지만코로나19는 그것이 점점 부재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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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적 차원에서

 

해체에 대한 테제 제 10항에서 우리는 세계 전쟁이라는 전망 소멸은 국가 자체뿐만 아니라 각 국가 내부에서 분파 간의 경쟁을 격화시킨다고 지적했다코로나19와 관련해서 국제적 차원에서 혼란과 준비 부재는 각 국가 내부에서특히 행정 차원에서 다소 재현되었다:

 

우리가 강조해야 할 자본주의 사회 해체의 주요 특징 하나는 정치 상황의 진화를 통제하는 것이 점점 더 곤란해지는 것이다.” 제 9.

 

이것은 스탈린주의 체제(지배계급 자체를 정의하는 일당 국가)의 기형적 본질에 의해 심화한 동유럽의 몰락에서 주요한 요소였다그러나 만성적인 경제위기전략적 전망의 상실 그리고 외교 정책의 대실수국민 혐오 등과 같이 전체 부르주아지 집행위원회’ 안에서 충돌의 기본 원인은 이제 선진 자본주의를 강타하고 있는데이점은 어느 곳에서보다도 포퓰리스트이거나 포퓰리스트의 영향을 받는 정부들특히 도널드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당이 권력을 잡은 주요 국가에서 현 위기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이러한 주요 국가에서 충돌은당분간 더 민족주의적 정책을 따르는 다른 국가에서 불가피하게 반향을 일으킨다.

 

이전에 두 나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성과 설득력의 상징이었다오늘날 부르주아지의 한심한 행태는 그들이 이제 불합리와 무질서의 등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행정부와 영국 정부는 민족주의자들의 호령 안내를 받으며 코로나 재앙에 대한 대응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지체했으며 심지어 국민이 위험을 경시하도록 부추겼다그들의 학계 권위자들의 충고를 토대부터 약화하고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동안 경제를 개방하고 있다.

 

두 정부는 코로나 위기의 전야에 팬데믹 TF를 해체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시위에 대한 대응에서 트럼프가 군사적 규약을 폐기하고 사법부를 허위적으로 조작한 것이나존슨이 민간 서비스국을 최근에 분열시킨 것 등의 보기에서 보이듯이두 정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고의로 민주국가의 확립된 절차를 훼손하고 다른 국가부서 사이에 불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두에 맞서는 각자의 시기에 각 민족 국가들이 저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건 사실이다그런데다른 국가에 비해 더 현명했던 국가마저 점점 더 분열과 통제력 상실에 직면하고 있다.

 

해체에 대한 테제에서 언급된노쇠한 자본주의는 2의 아동기로 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을 포퓰리즘은 증명하고 있다포퓰리즘 이데올로기는 이 체제가 단순히 선동적인 구호들과 분열적인 결정 등을 통해서 자본주의적 역동성과 더 작은 관료주의라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그러나 실상은 해체기에 놓인 쇠퇴한 자본주의가 모든 임시방편을 소진해 가고 있다.

 

포퓰리즘이 프롤레타리아 부활의 부재로 인해 일시적으로 방향성을 잃은 불만스러운 사람들의 인종 혐오와 소부르주아적인 환상에 호소한다면포퓰리즘 강령 또는 반대강령은 부르주아지와 그것의 국가 내부에서 발전했음은 현재의 보건 위기로 볼 때 분명하다.

 

선진국 중 미국과 영국이 팬데믹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 비율을 갖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대다수 선진국에서 국가의 경제기관은 대조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며 그들의 경제가 자유낙하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급속한 비상 대책을 펼쳤고 국민에 대한 대량실업의 효과를 지연시켰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우리는 중앙은행들의 행동 결과의 하나로서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보기를 들어서,

 

모건스탠리(투자은행)는 G4 국가(미국일본유럽 및 영국)의 중앙은행이 회기 중에 그들의 대차대조표를 다 합쳐서 국내총생산(GDP)의 28%로 확장할 것으로 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동안에 해당 수치는 7%였다”(출처파이낸셜 타임즈 2020년 6월 27).

 

그런데근저에 국가자본주의 발전 전망은 위기와 자본주의의 해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 능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는 징후이다.

 

사회생활 전반의 모든 측면으로의 국가 개입의 증가하는 무게는 사회 전반의 점증하는 해체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전통적인 자유주의 정당들 또는 그들 중의 중요한 부분이 포퓰리즘이 자행하는 파괴 행위에 대항해 이 나라 내부에서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 나라에서 국가 부르주아지의 이 부분은 특히 대중 매체를 통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형성하는데이러한 반대는 우스꽝스러운 포퓰리스트적 광대 짓과 마찬가지로포퓰리스트의 판도라 상자를 지금 닫을 수 있는 실제 역량은 없을지라도 민주적 질서와 합리성으로 회귀에 대한 희망을 대중들에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결코잊지 않았고 때가 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헌신적인 기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이 해체의 시기에 경험한 부메랑효과

 

2017년의 해체에 관한 보고서는 60년대 말 경제 위기 출현 후 첫 몇십 년 동안 부유한 국가들은 위기 효과를 체제 주변으로 밀어낸 반면 해체기에는 이 경향이 역전되거나 자본주의 핵심 국가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테러리즘의 확산난민과 이주민의 대대적인 유입대량실업환경 파괴 그리고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럽과 아메리카의 문제가 된 것에서 보기를 들 수 있다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가 팬데믹으로 가장 고통받는 현 상황은 이러한 경향의 확인이다.

 

보고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통찰력 있게 언급했다:

 

“...우리는 (해체)가 자본주의 위기 발전에 어떤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만약 현재의 포퓰리즘 상승으로 몇몇 유럽의 주요 국가에 이러한 경향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그러한 해체 영향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현재 재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해체가 실제로 파괴적인 방식으로 경제에 재()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이 경험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속적인 경제 전쟁 또는 영국 정부가 자살적이고 파괴적인 브렉시트 경로를 추구하겠다는 결정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더 많은 경제적 혼란에 대한 포퓰리즘의 갈망을 줄이지 않았다.

 

상부구조 해체는 그것을 낳은 자본주의적 경제 토대에 보복을 하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면그것에 기반을 둔 모든 상부구조가 위기와 해체로 진입한다 … 한 체제의 귀결로 시작하지만쇠퇴 과정에서 아주 종종 가속 요인으로 된다.” 자본주의의 쇠퇴제 1

 

2020년 7월 16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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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12월 29일 현재. (이 글은 2020년 7월에 작성되었다그리고 수치만 12월 29일 자로 업데이트했다 – <역자주>)

 

[2] 이렇게 인지되는 문제는 2017년 ICC 22차 총회로부터 해체에 관한 보고서 International Review」 163호에서 언급되었다.

 

[3] 50여 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 이 장기적 경제 위기는 선진국에서 20년 동안 지속된 전후 번영기에 뒤이어 1960년대 말에 출현했다이 위기의 악화는 몇몇 경기 침체 및 회복에 따라 잠시 중단되곤 했지만 이러한 중간 시기들은 근본적인 난국을 해결할 수 없었다.

 

[4] International Review」 107, 1990

 

[5] 페니실린의 항진균 성질은 1928년에 발견되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 약은 미국에 의해 대량생산되었고 23십만 투여량 분량이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준비되었다.

 

[6] Gauche Communiste de France – ICC의 전신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924/report-covid-19-pandemic-and-period-capitalist-decom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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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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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를 내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주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장기적인 경제 위기제국주의 대립과 전쟁 위기의료 붕괴인종주의죽음과 감염병의 빈부 격차이윤과 임금의 급격한 격차환경위기국가주의 …… 자본의 끊임없는 이윤추구는 탐욕을 넘어 지구와 종 전체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자본의 위기는 끊임없이 프롤레타리아에 떠넘겨지고 착취의 강도는 더욱 가혹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환자 다수에게 치료는 바이러스 전파 차단을 위한 격리가 거의 전부이다그곳은 인권도 연대도 차단된 삭막하고 고립무원의 공간이다하지만 팬데믹 이전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와 삶의 공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최악의 바이러스다코뮤니즘이냐 야만이냐는 더는 실체 없는 유령도책 속 의제도먼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현재에 제기되어야 하는 투쟁 의제이다.

 

코뮤니스트는 창간호에서부터 지금까지 국제주의-코뮤니스트의 원칙으로 지금의 정세를 바라보고 투쟁의 전망을 제시해 왔다우리는 세계의 혁명 세력(특히 코뮤니스트 좌파 진영)과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 흐름에 주목하면서도 한국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과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위해 길고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계급투쟁이 고조되고 집중되는 곳에서부터 일상의 계급의식과 내부 모순이 생기는 곳까지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의 최종 목표를 밝힐 것이다.

 

코뮤니스트」 13에서는 지금 정세와 이후의 전망에 집중해 세 개의 <특집>을 마련했다.

 

□ 특집자본주의 이후 세계 코뮤니즘 세상에서는 자본과 상품노동력이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를 극복한 코뮤니즘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이것은 단순히 유토피아적 상상이 아니다생산의 사회화생산력으로서 노동의 발전을 통해 코뮤니즘에 좀 더 확실한 이해를 갖게 해 준다한편으로는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은 오히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며자본주의 사회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 특집자본주의와 감염병백신 전쟁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본주의라는 바이러스의 산물이며팬데믹은 자본의 이윤 추구 경쟁 사회에서는 결코 극복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백신 전쟁을 고려할 때면역사회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한 나라에 백신을 접종하고 다른 나라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백신을 한 나라의 70~80%만 확보하면 바이러스 변이가 백신 미접종 국에서 백신 접종 국으로 확산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을 것이다이 대유행 병이 국제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한어떤 나라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대유행에 대항하는 투쟁 또한 국제적이어야 한다.”

 

또한올해는 크론슈타트 봉기 100주년이 되는 해로 □ 론슈타트 봉기 100주년을 특집으로 실었다크론슈타트 봉기의 역사적 교훈(당과 계급의 관계세계 혁명 등)을 평가하고 있다.

 

고립된 어떤 노동계급의 전초 기지도 사회주의 건설의 책무를 완수할 수 없으며상대적으로 노동계급의 비율이 낮은 나라에서는 특히 그러하다혁명은 세계적이어야 한다긍정적으로 보자면크론슈타트의 그 파괴적인 경험조차도소비에트가 역사적으로 발견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임을 확인해주었다소비에트는 그 자체로 계급 대중을 다른 사회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역량이 있다이것은 단순히 당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자본주의를 압도하는 데 있어 계급의 단결을 위한 국제적인 정치 조직이 필수적이다그 구성원은 확산하는 세계 혁명에 가장 열정적일 것이다그러나 인터내셔널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비극적인 오류는 볼셰비키당과 그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사실상 볼셰비키는 단지 비극적으로 잘못된 정책을 시행했을 뿐이다다만 이 정책은 당시 전체 노동자 운동이 반혁명은 봉기 이후에 국가 그 자체로부터 자라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해 발생한 당연한 결과였다.”

 

□ 국제정세에서는 미얀마 항쟁을 실었다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미얀마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한다더불어 미얀마 투쟁이 "쿠데타 세력과 동전의 양면인 아웅산 수치(민족민주연맹정권의 복귀를 넘어 노동자민중의 자기권력 쟁취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는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다면쿠데타는 왜 일어났을까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혁명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그리고 미얀마 자본주의의 자본주의 빈곤의 법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으며게다가 군부에 대한 저항에 철권을 행사했다오히려그녀는 자치권이나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로힝야족의 주장을 짓밟는 "더러운 일"을 했고그 나라의 북쪽 국경에서도 비슷한 행위를 했다그동안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했으며이런 태도 때문에 개인 신뢰도가 떨어졌지만아주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쿠데타의 이유는지구상의 이런 곳에서 종종 일어나듯이군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가두시위가 더 급진적인 무언가로 번질 수 있다는 지배계급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이 외에도 자본주의의 쇠퇴이론 회고와 전망자본주의 경제 비판엥겔스의 혁명적 기여코뮤니스트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사회적 고립을 가져왔다지금과 같이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자본주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반란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고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이 위기는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을 강화함으로써 세계혁명의 지평을 넓히고 수십억 인류의 불행을 종식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온갖 악취와 야만의 본색을 드러내며 막다른 길로 향하고 있다인류 전체의 위기는 제국주의 전쟁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자본의 잔혹성감염병 및 환경 파괴를 통해서도 진행되고 있다이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 없이는 그 어떤 전망도 가질 수 없다자본주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종식하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와 코뮤니스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계급투쟁의 부활국제적 수준의 노동자계급 투쟁코뮤니스트 노동자와 혁명 세력의 결집(코뮤니스트 강령과 혁명적 실천)을 통한 혁명당 건설!

끝없이 추락하는 낡은 운동과 단절한 동지들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동지들과 함께 흔들림 없이 이루어나갈 것이다

늦었지만제대로 해나갈 것이다.

 

혁명 세력의 결집이냐자본주의 체제흡수냐!는 혁명적으로 실천하는 동지들에 달려있다.

코뮤니스트 혁명이냐야만이냐역시 의식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에 달려있다.

 

2021년 5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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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1호] 코민테른의 의회 전술 논쟁 : 보르디가의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00년 전] 코민테른의 의회 전술 논쟁 :

보르디가의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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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2차 대회 8차 전체회의에서는 코뮤니스트의 의회 전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트로츠키와 부하린이 기초한 위원단 테제에 대해 부하린과 볼프슈타인이 설명하고이탈리아 사회당의 기권주의파를 대표하여 보르디가가 자신이 작성한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를 설명한다위원단 테제는 제인터내셔널 붕괴 이후에 혁명적 의회 활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기에 의회를 활용하는 전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르디가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중투쟁 시기에 코뮤니스트가 의회에 참여하는 것은 의회주의의 해악적인 결과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보르디가의 발언(테제 낭독)과 그에 대한 지지 발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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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8차 전체회의

1920년 8월 2

 

 

지노비에프 개회선언 (발언 생략)

디트만 생략

윈쿱 생략

라덱 생략

지노비에프 생략

부하린 생략

볼프슈타인 생략

 

보르디가 : 이탈리아 사회당 좌파는 반의회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이탈리아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닌보편적 성격을 가진 이유가 있기에 그러합니다.

 

우리가 지금 오로지 원칙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겁니까분명 그렇지 않습니다원칙적으로는 우리 모두 결국 의회주의를 반대합니다우리는 의회 제도가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을 가져올 수단이 될 수도프롤레타리아 국가 정치 형식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아나키스트들은 어떠한 권력 행사든 모두 반대한다고 단언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의회주의를 반대합니다프롤레타리아트 해방 과정에 대해 완전히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생디칼리스트들은 당 정치 활동을 반대하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회주의를 반대합니다반면 우리의 반()의회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판에 근거합니다저는 여기서 비판적 코뮤니즘 주장들을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그것은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투쟁을 흐리게 만드는 정치적 평등이라는 부르주아적 허위를 폭로합니다이러한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해방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거치며 격심한 계급투쟁 이후에 성취되는 역사적 과정이라는 생각에 기초를 둡니다.

 

코뮤니스트 선언이 설명하고 있는 이 이론적 개념은 러시아 혁명에서 최초로 실현되었습니다이 두 사건 사이에 오랜 시간의 간극이 있었습니다그동안 자본주의 세계는 크게 발전했습니다맑스주의 운동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으로 하락했으며사소한 이익을 위해 개개의 노동자 집단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협조하는 공동 활동의 영역을 만들었습니다똑같은 현상이 노동조합과 사회주의당 속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변해야 하고 그 오랜 역사적 임무를 기억하는 맑스주의당 임무는 거의 완전히 망각하였습니다평화적이고 민주적인 길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는 환상을 불어넣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을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무시하는맑스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폭력 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도입하는 것의 필요성을 증명함으로써 감탄스러운 방식으로 맑스주의 이론을 실현하고 있습니다하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역사적 조건과 서유럽과 아메리카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조건은 다릅니다러시아의 상황은 아마도 1848년 독일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거기에서는 두 개 혁명이 연달아 발발했는데 하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고다른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전술 경험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이미 오래전에 도입되었으며 혁명적 위기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직접 이행하는 과정이 될 다른 나라에 전수될 수 없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가진 맑스주의적 중요성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습니다혁명이 그 최종 단계(제헌의회 해산과 소비에트 권력 장악)에서 맑스주의적 기초 위에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모든 새로운 운동의 발전과 전쟁 하는 동안 수치스럽게도 완전히 실패한 사민주의자들과 마침내 결별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발전을 위한 바탕을 마련한 것입니다.

 

서유럽에서 혁명 문제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지반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그리고 의회 기구를 통해서만 정치투쟁을 할 수 있다는 부르주아의 주장이 틀렸으며권력 장악을 위해 새로운 방식즉 혁명적인 직접 행동을 통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요구합니다.

 

당은 새로운 기술적 조직즉 새로운 역사적 형태를 요구합니다그것은 집행위원회가 제출한 당 역할에 대한 테제에 나와 있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직접 투쟁의 시대(4번 테제)”에 탄생한 코뮤니스트당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코뮤니즘 경제를 건설하고 통치 기구가 될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창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파괴해야만 하는 부르주아 메커니즘이 바로 의회입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대중들 속에 간접적 방어수단으로 기능합니다반면 국가 기구는 언제든 직접적인 폭력 수단을 쓸 준비가 되어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를 합법적 민주주의의 지반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끝내 실패한다면 곧바로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입니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이러한 책략을 폭로하고 대중에게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모든 속임수를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세계대전 이전에도 사회주의당의 관행적 실천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열에 반의회주의적인 반작용을 불러일으켰습니다그러한 반작용은 아나코 생디칼리즘으로 나타났는데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활동은 경제투쟁 조직에 집중하기 위해 정치 활동 가치를 모조리 다 부정하고 그렇게 해서 선거와 의회 활동 이외 정치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잘못된 관념을 퍼뜨렸습니다우리는 사회 민주주의적 환상만큼이나 이러한 관념에도 맞서 싸워야 합니다이 개념은 진정한 혁명적 방식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해방투쟁을 잘못된 길로 이끕니다.

 

선전은 대단히 명확해야 합니다대중들은 명확하고 간결한 표현 방식을 원합니다.

 

맑스주의 원칙들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적 질서가 오랫동안 발전해 온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선동은 선거와 부르주아 기관에서 보이콧을 확대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선거 활동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실천은 이중적인 위험이 있습니다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의 모든 힘을 빨아들여 당의 다른 모든 부분을 마비시킵니다사민주의자들만 선거에 막대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집행위원회가 제출한 테제에도 선거 캠페인에서 모든 선동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15번 테제)고 나와 있습니다.

 

선거 활동을 수행하는 당 조직은 혁명에 필요한 합법적 혹은 비합법적 활동에 맞는 조직의 성격과 뚜렷이 다른 매우 특수한 기술적 성격을 발전시킵니다당은 유권자들을 준비하고 동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는 여러 선거위원회로 쪼개집니다만약 문제 당이 코뮤니스트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오래된 사회민주당이라면예전에 했던 것처럼 의회 활동을 수행하는 데 큰 위험이 있습니다우리는 그 증거를 수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발언자들이 제출하고 옹호한 테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테제에는 역사적 상황을 서술한 서문이 붙어있습니다저는 서문의 앞부분1)에 대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그에 따르면 제인터내셔널은 선동비판선전하기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했습니다그 뒤 제인터내셔널에서 의회주의의 해악적 영향이 나타났습니다그것은 개량주의와 계급협조를 가져왔습니다서문은 이로부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의회를 내부에서 파괴하기 위한 의회 전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냅니다그러나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제인터내셔널과 같은 원칙을 받아들이려면 당시와 완전히 다른 역사적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그래서 완전히 다른 활동즉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협력하지 않는 활동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서문 다음 테제의 첫 번째 부분 역시 제가 지지하는 생각과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차이는 오로지 대중 행동을 위해 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문제에서 시작됩니다하지만 언론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들을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언론결사의 자유 등을 활용하는 것은 행동 방식 문제입니다선거 캠페인과 의회 연단을 활용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관 문제입니다부르주아 기관은 노동자 소비에트 같은 프롤레타리아 기관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우리는 혁명 이후에 언론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기구를 분쇄하고 그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세우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운동 지도자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선전 등의 활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지도자들을 없애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지도자들을 없애기 위해 의회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아나키스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해 왔습니다우리는 늘 선전가와 문필가 등의 지도자들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혁명에서 노동자계급 활동을 이끄는 중앙집권적 당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당연히 이 당도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하지만 당 역할과 지도자 역할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그것과 완전히 다릅니다당은 가장 큰 희생을 요구하는 가장 위험한 작업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활동을 지도합니다당 지도자들은 승리한 혁명 지도자로 등장할 수도 있지만패배할 때는 적들의 탄압에 가장 먼저 굴러떨어지는 사람들입니다그들 지위는 의회 지도자들 지위와 매우 다릅니다의회 지도자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의회 연단에서도 선전을 수행할 수 있다.”라고들 합니다저는 거기에 약간의 유치한 주장으로 답하고 싶습니다의회 연단에서 발언은 언론에 실리게 됩니다그 언론이 부르주아 신문이라면 모든 것이 왜곡될 것입니다그 언론이 우리 편 신문이라면 나중에 어차피 인쇄되어 나올 내용을 연단에서 발언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발언자들이 인용한 증거는 우리가 제출하는 테제에 손상을 입히지 못할 것입니다리프크네히트는 당시 그런 활동이 의회제도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권력을 비판하는 문제였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의회 활동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제국의회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이라는 커다란 덩어리 전체보다 리프크네히트와 회글룬트그리고 그 외몇 가지 사례들이 가진 무게를 저울질해본다면혁명적 의회주의에 아주 호의적일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두마케렌스키 정부의 예비의회제헌의회에서 볼셰비키의 의회 활동은 우리가 의회 전술을 단념하라고 제안하는 상황들과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행해진 활동입니다굳이 러시아 혁명 발전과 다른 부르주아 국가들에서의 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를 되풀이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부르주아 지방 정부 선거를 활용2) 해야 한다는 생각도 지지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저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입 다물고 넘길 수 없습니다저는 코뮤니스트 혁명의 선전 선동을 위해 선거 캠페인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하지만 우리가 대중에게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보이콧을 강력하게 설파한다면이러한 선동은 더욱더 효율적일 것입니다.

 

더구나 코뮤니스트들이 의회 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논쟁 활동이 무엇으로 이루어질지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보고자는 우리에게 부르주아 의회에서 코뮤니스트들의 활동에 관한 규칙 초안을 제출했습니다그것은 말하자면 가장 순수한 이상입니다그것은 의회제도 원리를 부정하는 의회 활동을 결코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며 의회 규칙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레닌 동지가 좌익 공산주의에 대해 소책자를 쓰면서 인용한 주장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반()의회주의 경향을 받아들이는 것과 노동조합에서 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썩었더라도 노동조합은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주요한 환경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사민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노조에서 철수하는 것은 노조와 다른 혁명적인 경제투쟁 조직을 결성하고자 하는 생디칼리스트들의 관점에 동조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 주장은 우리 반의회주의가 근거하고 있는 주장과 아무 상관 없는 오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테제는 의회 문제가 코뮤니스트 혁명에서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그러나 노조 문제와는 사정이 다릅니다.

 

저는 의회 활동에 대한 반대를 기초로개별 동지들이나 코뮤니스트당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매우 흥미로운 저작에서 레닌 동지는 코뮤니스트 전술이란 부르주아 세계 상황에 대한 매우 상세한 분석을 토대로 해서 매우 광범위한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묘사했습니다레닌 동지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런 분석을 할 때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레닌 동지 역시 여러 나라 간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여기서 그런 방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단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맑스주의 운동이 러시아 혁명에서 적용된 전술보다 더욱 직접적인 전술을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레닌 동지는 자신의 슬로건이 우리에게 너무 어렵게 보이기 때문에반의회주의 전술이 가장 손쉬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회에서 코뮤니스트 활동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과제가 매우 거대하고 어려운 과제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의회 활동 문제를 처리하고 나서 훨씬 중요한 다른 문제들에 대한 논의와 결정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 진보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그 해결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회보다 더욱 중요한 영역에 코뮤니스트 운동의 주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습니다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회주의자들 역시 손쉬운 전술로 의회 활동을 선택했으며그런데도 그 활동에 필요한 일이 전혀 줄어들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제출된 테제를 채택해서테제를 따라 코뮤니스트 의회 활동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거대한 노고와 부단한 활동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그러면 진정한 혁명 활동을 위한 힘과 자원은 거의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혁명 이후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경제적 이행 과정에서 맞서 싸워야 할 그런 정치영역 단계들을 부르주아 세계 내에서 경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착취자에서 피착취자로 권력 이전은 그 뒤로 대의제 기구 변화를 가져옵니다부르주아 의회주의는 소비에트 체제로 대체되어야 합니다혁명적인 직접 행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을 은폐하는 민주주의라는 낡은 가면을 찢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의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며이 관점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에 완전히 부합합니다.

 

저는 부하린 동지와 우리가 공유하는 관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이 문제로 인해 맑스주의 운동이 분열해서는 안 되고 분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코뮤니스트 의회주의를 창출할 것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따를 것입니다우리는 이 계획이 성공할 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우리는 그 활동을 가로막지 않을 것을 명확히 하겠습니다.

 

저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다음 대회에서 의회 활동 결과를 논의할 필요 없이많은 나라에서 코뮤니스트 혁명의 승리를 점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부하린 동지를 위해 바라노니다음 대회에서는 동지가 이번에 소개했던 것보다는 덜 암울한 코뮤니스트 의회주의의 상을 우리에게 제시할 수 있게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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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디가 동지의 테제 낭독

 

이탈리아 사회당 기권주의파를 대표하여 보르디가 동지가 작성한 의회주의에 대한 테제

 

1. 의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정치적 대의제도의 형태이다의회제도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에 따라 비판한 결과는국가 대의기구 선거에서 모든 사회계급의 모든 시민이 투표권을 부여받는다는 사실 때문에자본주의 국가 모든 정부 기관이 지배적인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위원회가 되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의 역사적인 투쟁 기관으로 자본주의 국가가 조직되는 것을 방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코뮤니스트는 노동자계급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권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부정한다무장투쟁만이 노동자계급을 그 목표에 데려다줄 것이다코뮤니스트 경제 건설 출발점이 되는 프롤레타리아트 권력 장악은 민주주의 기구들을 폭력적으로 철저하게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 권력 기구즉 노동자평의회로 그것들을 대체하는 것으로 나아간다이러한 방식으로 착취 계급의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프롤레타리아트 독재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적 대의기구를 가진 정부 체제를 세운다의회제도 폐지는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적 과제가 된다오히려 대의제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부르주아 사회 형태이다그것은 자본주의적 소유보다도관료적 국가 기구보다도 앞서 타도되어야 한다.

 

3. 지방정부 기관 역시 똑같이 타도해야 한다지방정부 기관을 이론적으로 국가 기관에 대립하는 것처럼 제기해서는 안 된다현실에서 지방정부 기관은 부르주아 국가 메커니즘과 똑같다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그것들 역시 파괴하고 지방 노동자대표 소비에트로 대체해야 한다.

 

 

4. 지금이 순간 정신적·물질적으로 혁명을 추진하기 위한 코뮤니스트 과제는 무엇보다도 낡은 사민주의 지도자들의 배신이 달콤하게 유포시킨 환상과 편견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해방하는 것이다민주주의 질서가 더 오랫동안 지배했고 대중 관습과 사고에 뿌리내린 나라들에서 이 과제는 특별히 중요하며당연히 혁명을 준비하는 문제 중에서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한다.

 

5.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 장악이라는 사상이 아직 까마득히 멀어서혁명을 직접 준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현하는 것이 아직 계급적 의제로 떠오르지 않는 시기에선거와 의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선전과 선동비판에 큰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다다른 한편부르주아 혁명이 이제 막 시작하여 새로운 제도를 창출하고 있는 나라들에서코뮤니스트들이 아직 형성 단계에 있는 대의기구에 참가하는 것은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최종 승리에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위한 사태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6. 세계혁명 종결과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조직에 끼친 결과즉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라는 사상을 처음으로 실현한 러시아 혁명과 사민주의 배신자들에 반대하여 건설한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더불어 시작한 현재의 역사적 시기에는 코뮤니즘의 혁명적 대의를 위해 의회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선전 선명성을 위해서도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최종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도코뮤니스트들은 노동자들이 선거를 보이콧하도록 선전할 필요성이 있다.

 

7. 프롤레타리아트 권력 장악이라는 혁명적 개념이 운동의 중심 목적으로 등장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는 당의 모든 정치적 활동은 바로 그 목적에 바쳐져야 한다적대적인 정당 사이 모든 충돌권력 장악을 위한 모든 투쟁이 선거 캠페인과 의회 토론즉 부르주아 민주주의 메커니즘 틀 안에서 펼쳐져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거짓그 부르주아적 거짓과 단호히 절연할 필요가 있다노동자들에게 선거에 참여하라고 호소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계급과 나란히 활동하는 전통적 방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서는착취자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들이 의회라는 같은 지반 위에 등장하는 광경을 끝장내지 않고서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8. 낡은 사회주의당들의 극단화된 의회주의 실천은 선거 캠페인과 의회 활동이 정치 행동의 모든 것이라는 위험한 개념을 유포시켰다다른 한편 그런 배신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 혐오감은 정치 행동과 당 활동의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생디칼리즘적이고 아나키스트적 경향에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따라서 코뮤니스트당 활동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노동자평의회에 직접 기초하지 않는다면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다면혁명적 맑스주의의 방법을 선전하는 데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9. 선거 캠페인 및 그 결과에 부여하는 지나치게 큰 중요성당이 자신의 모든 능력인력언론재정을 상당 기간 거기에 쏟아붓는다는 사실은우선 집회에서 모든 연설과 이론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선거야말로 코뮤니스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심 활동이라는 확신을 강화한다또한그로 인해 혁명적 활동의 합법·비합법적 요구와 완전히 모순되는 전문성을 당 조직에 부여함으로써 혁명을 조직하고 준비하는 모든 과제를 거의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다.

 

10. 다수결에 의해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가입을 결정한 당에 선거 캠페인에 계속 참여하게 하는 것은 사민주의적 인자들을 걸러내는데 필요한 과정을 가로막는다그들과 단절하지 않고서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그 역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11. 의회와 기타 민주주의 기관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실제 성격은 반대당들이 비판에서 의회주의 원리에 반대하는 선전으로의회주의 제도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선거 과정 공식 절차를 따르기를 거부할 경우 발언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 제도 기본 원리라는 공통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그 규칙의 미묘함을 이용하는 것에 의해서만 의회제도 내부 투쟁에서 성공할 수 있다그것은 선거 캠페인과 똑같이 점점 더 투표수와 의석을 얼마나 많이 획득하느냐에 따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코뮤니스트당이 의회주의적 실천에 완전히 다른 성격을 부여하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시지프스의 노고처럼 힘만 허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코뮤니스트 혁명 대의는 바로 착취자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직접 행동을 요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라처 지지 발언

 

지노비에프 생략

라덱 생략

지노비에프 생략

 

갈라처(영국)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역시 기회주의적인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돼 유감입니다대중에게 반역 정신을 불어넣는 수단과 방법을 찾는 대신 여기 참석한 사람들은 의회 선거에 참여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믿을 수 없는 자들이 의회에 들어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혁명의 노선에 따라 투쟁할 거로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영국에는 이에 대한 수 많은 예가 많습니다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선거에 합법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의회에 들어가면 연설로 선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하지만 그 결과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적 제도를 믿도록 길듭니다의회에 들어간 자들에게 선동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전 세계 코뮤니스트당은 이제 의회 선거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지금 중요한 것은 집행위원회의 지도력 아래 혁명적 수단과 방법전술을 연구하는 것입니다지금 동지들은 그 대신 관심을 이 목적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영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코뮤니스트당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에 가입을 맹세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유행에 불과합니다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것도 똑같이 유행입니다.

 

우리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해 활동할 준비가 되어있을까요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리프크네히트 동지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하지만 그 역시 의회 밖 대중들 속에서 활동하는 한에서만 그랬습니다만약 리프크네히트 동지가 의회 안에서 발언만 했었다면맥도널드나 다른 많은 자처럼 아직 살아있었을 것입니다러시아 예에 관해 말하자면그것은 그 자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러시아 혁명가들의 투쟁과 경험은 피와 눈물로 벼려진 것입니다러시아 두마에서 볼셰비키들 태도는 수년 간에 걸친 노동자 대중의 힘든 투쟁이 낳은 결과입니다모든 나라 인민들이 그런 것처럼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앞에도 이제 양자택일의 선택이 있습니다두 가지 전술이 있습니다하나는 갖가지 민주적 단계를 통해 인민들 속에 순종의식을 키우는 것입니다다른 것은 대중들 속에 혁명적 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의원의 전형적인 예로 맥클린이 있습니다맥클린은 커다란 선거 집회에서 자기가 볼셰비키이며 의회를 뒤엎을 거라고 말했습니다의회에 들어간 뒤로 맥클린은 스스로 볼셰비키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쁘띠부르주아 사회주의자가 되었습니다이제 우리 힘은 대중들 속에서 혁명적 투쟁을 날카롭게 만드는 데 사용하여야 합니다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지금 순종의 길이냐투쟁의 길이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샤블린 생략

 

5시 15분 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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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즉 제인터내셔널의 시대에 의회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정당 태도는 선동을 목적으로 부르주아 의회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었다의회 참여는 계급의식 발전의 관점에서즉 지배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적대의식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고려되었다이러한 관계는 이론 영향이 아니라정치 발전 영향에 의해 변화하였다방해받지 않는 생산력 증대와 자본주의 착취 영역의 지속적인 확대자본주의그리고 이와 함께 의회제 국가들은 더욱 견고하고 더욱 번영하였다.

 

이로부터 부르주아 의회의 유기적인’ 입법 활동에 사회주의 정당의 의회 전술이 적응하게 되고다시 이로부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량을 위한 투쟁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그 결과 이른바 사회민주주의 최소강령이 지배적인 것이 되었고최대강령은 단지 머나먼 궁극목표를 향한 토론용 공식으로 바뀌고 말았다이러한 기초 위에서 의회주의적 출세주의타락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익에 관한 공공연하거나 은밀한 배신이 자라났다.

 

 

의회주의에 대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태도는 새로운 교의가 아니라 의회제도 자체 역할 변화에 의해서 결정된다지난시기의회는 자본주의 발전 도구로서 일정 정도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그러나 오늘날 고삐 풀린 제국주의 조건 아래서 의회는 거짓말사기폭력그리고 소모적인 말장난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제국주의적 참화약탈성폭력강도 그리고 파괴에 직면하여체계도 항구성도 방도도 없는 의회주의적 개량은 노동대중에게 실천적 의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있다코뮤니스트당과 의회주의 -위원단 테제」 1새로운 시기와 새로운 의회주의 中 앞부분

 

2) 지방정부에서 코뮤니스트들이 다수를 점한다면, a) 부르주아 중앙권력에 대한 혁명적 반대파 역할을 수행하고, b) 빈곤 대중을 위한 사업(경제적 조치무장한 노동자 민병대 도입 혹은 도입 시도)을 위한 모든 것을 하며, c)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르주아 국가권력이 만들어 놓은 진정으로 커다란 변화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고, d) 이러한 기초 위에서 국가권력과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장 단호한 혁명적 선전을 발전시켜야 하며, e) 특정 조건으로는 지방 행정부를 지방 노동자평의회로 대체해야 한다그러므로 지방 행정부에서 코뮤니스트의 활동 전반은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하는 일반적인 활동 일부가 되어야 한다코뮤니스트당과 의회주의 -위원단 테제」 13번 테제

 

 

[영문 출처https://www.marxists.org/

[한국어 출처사노신

[편역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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