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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놀다오다.

날짜 : 2004.08.19

 

 

 

이렇게 제목을 달고 나니 가슴이 아프다.

난 이제 청년이 아니구나.


감리교에 속한 교회 청년들이 평화를 주제로

캠프를 한다고 나를 불렀다.


야매로, 몇군데 워크샵을 진행한 것을 어찌 알고

나를 불렀다.


두려운 마음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을 보태서

다녀왔다.


어려울 것 같았는데 아내의 배려로

내가 원하던 대로

전날 들어갈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저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교회 청년들은 그런대로 착하다.

교회 청년들은 그런대로 적극성도 있다.


참가자의 숫자와 구성이 애매하긴 하지만

밤새 잘 준비하면 재미있을 것도 같다.

청년들은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맞는 워크샵 틀거리를 잡는 것은 이제

내 몫이다.


내가 준비한 진행안을 꺼내놓고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청년들과 이리 저리 맞춰본다.


내가 진행을 맡은 아침이 왔다.

밥을 먹자마자 바로 시작한단다.


2박3일 동안 평화에 대해

평화를 일구는 교회와 청년에 대해

강의도 듣고 실습도 해본 청년들....


난 이들이

실천 가능한 과제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들 주변에 쉽게 발견하는

평화가 깨어진 모습,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어떤 프로그램을 시도해 볼까.

프로그램은 어떻게 준비할까.


네 시간 동안 벅차게 함께 했다.


청년들에겐 바르게 볼 줄 아는 눈도 이미 있었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들도 마음 안에 가득하다.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뒷심은 좀 딸린듯 하지만,

마음으로 해내는 청년들을 본다.


'우리 꼭 합시다!!'

'우리 꼭 뭐라도 합시다!!'


굳게 약속하고 워크샵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또 어영부영 해냈다는 안도감도 있고,

청년들에게 얻은 희망도 있다.


참 잘 놀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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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짜 : 2004.08.27

 

 

 

살아가는 것보다

궁리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또 나는...

궁리하는 이야기 보다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더 좋다.


그러다 보니....

기분이 남다르지 않고서는

별달리 할 이야기를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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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아리랑

2년쯤 전인가....

건설노조에서 일하는 후배가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의 시를 보내왔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은 노동자도, 국민도 아니다.

 

..........................................................................

 

 

 

라면 아리랑

                              이강범(미장공)


식당을 뒤엎던 날
소처럼 물만 먹고 사냐고
얼굴만 알고 지낸
김씨 이씨 하나같이
식판을 던지고
개떼같이 몰려드는 기사들
멱살을 잡고
하이바를 내 던지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더니
병아리 발 씻고 지나가던 미역국이
돼지가 목욕을 하고
반찬이 울긋불긋해졌다

식당을 뒤엎던 날
두부김치에 소주잔을 비우며
맨날 이렇게 살거냐고
일만 잘하면 장땡이냐고
서로를 쳐다보며
벌겋게 취해 오르는 얼굴로
뭔가 만들어야지 않느냐고
현장을 뒤엎을 뭔가 만들어야지 않느냐고
세상을 뒤엎을 뭔가 만들어야지 않느냐고
맨날 식당만 뒤엎냐고
빈 소주를 움켜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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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그늘(진흥투쟁에 부쳐...)

━ 1 ━

몸에 익은 망치질 하나로
질긴 삶을 연장시키며 살아왔다

야금 야금 갉아먹고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돈내기에
안전교육도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날품팔이 일용직
땀에 젖은 옷을 벗어 짜내며 툭툭 털고 다시
일에 매달려야 했던 3개월
힘든 주차장 공사 끝내고 나면
손해 본 일당의 얼마간이라도 보전 받을 줄 알았는데
연장 보따리 싸라고 한다.

그랬다 우리는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일당에 목숨을 걸고
보따리를 싸라고 하면 해고 통지도 없이 잘려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저주받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루 일당도 돌아가지 않는 돈내기 강제 도급에
인생마저 팔아넘길 수 없었다
직접고용 일당보전, 원청사무실 점거 농성할 때만 해도
얼마간의 돈을 받고 농성장을 몰래 빠져 나가던
농성 이탈자들의 무거운 그늘을 보면서
8월의 그늘은 건설 노동자의 무거운 삶의 한 평생이었다.



━ 2 ━

농성장의 밤이 깊어지면서 불안도 깊어졌다
공권력을 요청하겠다는 원청사 노조 위원장의 악담이
서늘한 기운으로 무겁게 마음을 짓눌렸다
휴대폰으로 걸려오는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전화에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벌릴 수 없었다

까짓것 잃을 것도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회사 놈들이 들여보내는 대체인력 투입 앞에
이제까지 고생했던 일터를 빼앗길 수 없다는 오기도 생겼다

어디에 간들 일자리 하나야 못 찾을까 싶지만
하루 일당의 문제도 일자리 보전의 문제보다
저주받은 노가다의 운명을 한 번쯤 엎어 버리고 싶었다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인간이면서 인간답게 살아보지 못했던
지난 십수 년간의 삶이 이대로 물러서고 나면
다른 현장에서 또 당하겠구나 싶었다.

━ 3 ━

그랬다.
이 현장 엎어봐야 뭐가 변하겠는가 싶었지만
우리가 떠나고 나면 또 다른 형틀 목수가 들어와 일을 하고
건물이야 올라가겠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가?
더 이상은 물러설 수도 없고 빼앗길 것도 없는
그래서 불안한 것도 패배할 것도 없었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어색하기만 했던 동지라는 말이
형제를 부르듯 정답게 들렸고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확신이 동지의 얼굴에서
어깨를 쓰다듬으며 격려하는 말 속에서 확인되었다.

8월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8월의 그늘은 소중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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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날짜 : 2004.09.03

 

 

얼마 전,

수련회에서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다를 좋아해서....

바닷가를 걸었지요.

조금 걷고

조금 앉아있었지요.


무엇을 할까?


다시 일어나 걷다보니


바닷 속 길이 갯벌 위로 보입니다.

봉긋하게 솟아 말라 있었어요.


'바다 속에도 길이 있구나. 아니 어쩜 이건 작은 동산인지도 몰라'


그 위를 걷기로 했습니다.


물에 젖어 유난히 검고 매끄러운 돌이 하나 보입니다.

'그래 돌을 줍자'


그 돌 주워들고 또 다른 돌을 쳐다봅니다.

'내 손 안에 이렇게 예쁜 돌이 있는데... 난 또 다른 돌을 찾고 있구나'


다른 돌을 찾으면 지금 들고 있는 돌은 미련 없이 버리자고 마음 먹습니다.

'그래 하나면 족하다. 고르고 골라서 딱 하나만 가져가자'


그렇게 더 예쁜 돌을 찾고,

들었던 돌을 버리면서 걷습니다.

흠 하나 없이 유난히 반짝 거리는 돌들이

내 마음을 빼았습니다.

그렇게 버리고 줍기를 몇 차례...


지금 내 손에 들린 돌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봅니다.

이 돌이 마지막 선택이라면,

아까 아까 버린 돌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어디였을까?

어디 그 돌이 있을까?

내 발이 어디 머물다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함부로 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이런, 생각없이 걷는 게 아니었는데...


난 이제 지나온 내 발걸음도 되돌리지 못합니다.

난 이제 무심코 두고온 것들도 되찾지 못합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고르고 골라서 제일 예쁜 돌이

내 손에 있는데...


마지막 선택의 고민입니다.


아무리 봐도 못생긴 요놈이

자꾸 마음을 잡아 끕니다.


깊게 팬 주름들이

어딘지 모르게 나를 닮았습니다.

아픈 상처에 이끼를 얹어

생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검고 거친 껍데기가

우울하게도 보이지만

힘찬 기운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

예쁜 돌 하나

뜻 있는 돌 하나

이렇게 두 개 가져가도 되겠다.


나는 이렇습니다.

스스로 한 약속을 어느새 저버리고 있습니다.

잊은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지키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주저 앉아 두 놈을 오래 쳐다봅니다.


그래 약속은 약속이다.


윤기 흐르는 예쁜 돌을,

내가 본 가장 예쁜 돌을

조심스레 내려놓습니다.


누군가라도 주워가서

기쁨을 갖길 바라며 내려놓습니다.


이제 더이상 돌은 쳐다보지 말자.

못생긴 요놈만 쳐다보며

빨리 되돌아 걸어나가자.


숙소로 돌아와 뒹굴거리면서

못생긴 요놈을 눈에 담습니다.

눈에 담고 사귀다보니

두고 온 예쁜 돌들의 생김새를 잊어 갑니다.


그렇게 내 침묵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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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자전거....

날짜 : 2004.09.05

 

 

진서 자전거에서

보조 바퀴를 뗐다.

자전거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는데,

이제 좀 재미를 느끼나 보다.

두 발 자전거를 탄다고 자랑을 마구 해댈 모양이다.

정말이지 배움은 스스로 하는 건가 보다.

그저 잡아주기만 했는데,

몇 번 넘어지더니

쉽게 타낸다.



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청소년 대안가정, 대안학교를 하고 있는 곳이다.

나도 나 스스로 배우려는 중이다.

진서 처럼 젊지(?) 않아서 쉽진 않겠지만

나도 배워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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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비리

날짜 : 2004.09.08

 

 

 

10개 좀 넘는 프로 야구 구단에서

80명씩이나 쏟아져 나오는데,

몇십개 재벌과 거기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자본가 집안을 뒤지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놈들이 나올까?

이렇게 많은 비양심적 병역기피는 죄다 잡아 넣지도 못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용서할 수 없다니....

웃기는 노릇이다.


미국까지 진출했다가 출두한 야구선구가

뉴스에서 이야기 하더군.

'잘못했다는 건 아는데, 야구가 정말 하고 싶었다. 야구를 할 수 있게 해달라'


우리도 2년씩, 3년씩 군대 가지 않고 하고 싶은 일 무진장 많다고요.

그런데 당신들은 안가고, 우리는 가는건,

당신들은 돈이 있고, 우리는 돈이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우린 하고 싶은 일 못하더라도 좋으니, 총 매고 전쟁 놀이 하는 거 그것만 안했으면 좋겠어.

부자들 대신 전쟁터 가서 그들 재산 지켜주고, 불려주는 거, 우린 그게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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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서랍

아, 그렇군.

책상서랍이 그립던 때가 있었군.

 

그런데 아직도 서랍도, 종이상자도 없다.

 

이제는 문 닫은 까페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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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4.09.13

 

 

꽤 오랫 동안,

프리챌에서 시작한걸로 치면

3년을 훨씬 넘는 동안,

이렇게도 만져보고, 저렇게도 만져보며 여기까지 왔는데...

잡다하길 원해서 그렇게도 해보고,

왠지 허접해보여서 단촐하게 해보기도 하고....


그런데 오늘 또 보니 여전히,

허접하다.

잡다하다.


마치 어릴 적 갖고 있었던 내 책상,

그 서랍들 같다.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쑤셔넣어두고

아주 가끔 청소한다는 핑게로

뒤적거리며 다시 한번 미련을 가져보던....


여기저기 까페도 많이 생기고,

블로그도 있고,

미니 홈피도 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은 독립된 홈페이지도 갖고 있는 요즘....


별 재주도,

별 아이디어도,

별 개성도 없는 난,

너저분한 책상서랍 같은 이 곳이

그저 좋다.


갑자기 서랍이 갖고 싶어지는 밤이다.


지금 나에게 서랍이 없듯,

이 곳도 없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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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화창하군요.

날짜 : 2004.09.15

 

 

 

 

해도 따뜻하고,

비도 자주 오고,

빨리 걸으면 땀도 나고,

그렇다고 가을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아침 저녁 찬바람 불고,

하늘이 높아져 가고,

배가 자주 고프고,

아이가 기침하고,

잠자리 창문이 닫혔나 다시보고....

여름이 아닌 이유가 더 많으니까요.


아프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파도 많이 아프지 말았으면 합니다.

깨끗이 나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쉽지 않더래도

여럿이 함께 겪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계절은 가고,

또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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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어떻게 둬야 할까

날짜 : 2004.09.20

 

 

 

누나를 보러 갔다왔다.

엄마가 함께 있다.

엄마는 빨래 하다가 울었다고 한다.

'어떻게 항암치료를 견뎌낼까'

딸이 불쌍해서 울었단다.

나이 마흔 근방의 자식들은

아직도 칠순 노인네를 울린다.


누나를 봐도,

엄마를 봐도

난 눈을 맞추기가 어렵다.

아, 누나...

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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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땀차게 동네 한바퀴

날짜 : 2004.09.23

 

 

 

이젠 가을입니다.
그래도 엉덩이에 땀이 차더군요.

현장 지역운동을 해보겠다고,
맨날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두드리던 신세를 벗어나 보자고,

그렇게 지난 2월 내려온 이 곳 안산,
그리고 또 아주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선택한
와동, 선부동....

얼마 전부터 이름을 내건 희망푸드뱅크.
동네 사람들이 자기 동네 사람을 돕고 나누어야 한다고
마을 단위 푸드뱅크라고 뜻을 새기며 시작한 일.

그 일을 위해 동네를 돌아봅니다.
자그마한 홍보물 하나 들고 한 번도 발걸음 해보지 않은 곳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지요.

장사치나, 후원금 바래고 오는 사람 정도로 여기다가도,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좋다고 말하니
모든 분이 웃음으로 인사합니다.

우리 이웃의 마음은 다 나와 같습니다.
우리 이웃의 생각은 다 나보다 깊고 넓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운동 한다고 살아온 세월이 이제 곧 이십년인데...
그동안 이것 하나 깨닫지 못했습니다.

큰 거리에 나가 목청 높혀 외치고,
호기있게 화염병은 던져 봤지만....

책상에 앉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그렇게 머릿 속을 실속 없는 생각들로 가득 채우기는 했지만....

그렇게 십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바보로, 무기력한 사람들로, 이기적인 사람들로만 여겨온 우리 이웃.

물론 지금 당장은 거리에 나가서 주먹을 치켜드는 것 보다
그 가진 힘이 형편없겠지만
우리 이웃을 이렇게 사귀다 보면
어느 날 우리, 엄청난 힘으로 서로를 기대고 서있겠지요.

조금씩 나이가 부담스러워지고,
가정이 신경쓰여서,
그래서 뒤로 물러나 앉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렇더라도 이젠 좋습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거기다가 이 일은 언젠가,
큰 운동하는 분들께 든든한 밑받침이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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