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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3/22
    샐러드 하나(5)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7/03/22
    아침 풍경(3)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7/03/21
    [가문비] 틈새라면(15)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7/03/19
    연맹 사무실에서...
    손을 내밀어 우리
  5. 2007/03/13
    맨날(6)
    손을 내밀어 우리
  6. 2007/03/08
    어제(5)
    손을 내밀어 우리
  7. 2007/03/06
    횡설수설(7)
    손을 내밀어 우리
  8. 2007/02/22
    알함브라 궁전(2)
    손을 내밀어 우리
  9. 2007/02/09
    (7)
    손을 내밀어 우리
  10. 2007/02/09
    짐을 치우다(3)
    손을 내밀어 우리

샐러드 하나

사진은 별로 맛있게 보이게끔 찍지를 못했는데

아침에 발사믹 식초 드레싱을 끼얹어 야채를 먹다가

문득 동무들한테 소개하고 싶어서 먹던 걸 그대로 찍었다.

 

야채 샐러드를 먹고 싶어도

드레싱 만들기가 귀찮고 번거로와서 참으셨던 분들이라면

발사믹 식초 드레싱을 권하고 싶다.

 

이것도 여러가지 재료를 비율에 맞춰 섞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걱정 붙들어 매고,

냉장고에 있는 갖은 야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찢거나 썰어

움푹한 접시에 담은 다음에,

그냥 올리브유(엑스트라 버진) 2-3에 발사믹 식초 1의 비율로

야채 접시에 곧바로 뿌려서 먹으면 된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는 레몬(더 신맛), 고추기름이나 핫소스(매운 맛), 꿀(단맛)후추, 소금 등

갖가지 향신료를 첨가할 수 있지만 그렇게 준비하려면 안먹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냥 야채 담은 접시 위에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 적당량(적당량은 먹어보면 안다)

끼얹어서 드시면 충분하다.

 

밥반찬, 술안주, 간식, 무어라도 만만하다.

베이스(재료)도 오이, 양파, 당근, 양상추, 샐러드용 양배추, 새싹, 부추, 아보카도 등등

취향과 용도에 따라 준비하면 되고...

 

다 아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한번 찔러줘야 해 먹는 사람들 있을 것 같아서

잠깐 써봤다.

 

참고로 발사믹식초는 요즘 국산도 괜찮게 나오더라. 할인점에 가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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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풍경

목요일 아침마다

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선급 앞에서는

해고자 복직과 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출근투쟁이 진행된다.

 

그동안 어째 일정이 늘 겹쳐버려 한번도 못갔는데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가기로 했다.

 

내가 연맹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땐 연맹 가맹노조였는데

지금은 과기노조의 지부로 들어와 있는,

선급지부의 홍영웅 지부장과 간부 5명은 벌써

해고된 지 2년이 다 되었다.

 

최근에 문제의 이갑숙 회장이 교체되고 나서

잘만 싸우면(벌써 3년된 기관 민주화 투쟁이요, 그동안에도 끈덕지게 싸워왔지만)

곧 복직의 전망이 보일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아침 사진 몇장~

한국선급 담장이며 건물을 도배했던 현수막과 선전물들은 사용자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서 받아들여서 철거되었고(노조 간부들에 대한 출입금지가처분 신청까지), 길 건너편 화학연구원 뒷 산등성이에 한국화학연구원지부에서 설치한 플랭카드 하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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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 틈새라면

음, 블로그에 글 올릴 시간은 부족하고

뭔가 쓰고 싶기는 하고

그럴 때마다 혼자만 보기로 메모해 두고 지나가는데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가니 어지럽기가 내 방 같다.

틈틈이 복구하도록 하자.

 

그러니까, 2월 13일이었구나,

천안에서 산별교육하나 끝내고 대전으로 돌아오는데

오후 3시가 지나도록 점심을 먹지 않아 배가 무척 고팠다.

마침, 가문비가 3학년 언니들 졸업식 있다고 학교 안간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가문비도 그 시간까지 점심을 먹지 않고 친구랑 산책하고 있더라.

 

-너, 틈새라면 먹을래?

=응!!

 

그렇게 해서 오후 4시에 아파트 후문에서 만난 우리 부녀는

궁동의 틈새라면집에 가서 빨계떡과 계떡을 맛있게 먹었다.

먹으면서 생각하니,

딸과 분식집에 와서 라면 먹은 것이 처음이기도 하고

앞으로 몇번만 이런 일 있고 나면 어느새 대학가고 집떠나고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 하나 찍어 두었다.

 

가문비_틈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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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사무실에서...

임기는 끝났지만 일은 끝나지 않아서

일주일에 한번쯤은 연맹에 오겠다고 했다.

 

통합연맹을 만들면서

4조직 저마다 자산이며 부채 따위는 다 정리하기로 했는데,

2006년 마지막 달 민주노총 의무금,

상근자 33명에 대한 퇴직금,

그 밖에도 지출해야 할 내역을 합치면 수 억원에 이르고,

연맹 사무실 전세보증금 등등을 합쳐 보아도

필요한 지출내역과 비교하면 얼추 1억 5천만원 모자란다.

 

이걸 어떻게 만들지?

그러면서 연맹에 온다. 오늘도 그렇게 왔다.

 

왔더니, 연맹이 투쟁사업장 지원하기 위해서 작년에 시작했고

초기 얼마간은 상당한 실적을 보였던

휴대폰 재정사업이 문제가 생겼단다.

 

휴대폰을 구입하면 그만큼 일정 액수의 돈을

업자가 연맹과 휴대폰 이용자에게 지급하기로 한건데,

이 업자가 갑자기 돈없다 배째라 하는 모양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동안 연맹을 믿고 휴대폰을 구입한 조합원(과 그 가족, 친지들)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사과의 말과 더불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에 대한 안내를 하기로 했는데,

보아하니 임기 끝난 연맹의 임원들이 좀 나서야 할 분위기이다.

 

다들 바쁘고 바쁜데

무려 1,300여명에 이르는 휴대폰 계약자들에게

단 둘의 실무자를 시켜서 전화를 하게 하는 게 말이 되겠나.

에고, 내일부터 전화통 붙잡고 살아야 하나, 그래야지 뭐.

 

이런 얘기 하면서 저녁밥 대신에 맥주나 홀짝홀짝 들이키다가

아직 연맹에 있다.

일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아, 그래도 오늘 와서 한 일도 있다.

작년치 회계감사 받을 일정도 정했고(4/2-3)

밀린 결재서류 몇 건 처리했고,

술 한잔 사겠노라고 해놓고 그냥 눙치던 것

가볍게 한잔은 일단 샀다.

진하게 한 잔들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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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맨날 술을 마신다.

 

술 마신다는 사실이 어찌 중요하겠는가,

술을 사이에 둔 숱한 관계들을

나는 술이 취해서도 소홀히 할 수가 없더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오늘,

초저녁에 회의 하나 마치고

회의 성원 중의 한 동지가 결혼한 짝도 만나고,

밤늦게 약속했던 동지랑 장례식장에도 가고,

그 장례식장에 넘치게 모였던 오늘/옛 동지들도 드디어 가고,

하루 종일 빼놓은 일정은 하나도 없지만.

 

맨날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이, 기실

맨날 사람들이 웃통 벗어제끼고 한 바탕 하는 것,

맨날 명동 한가운데서 버럭버럭 차력하는 사내들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

따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

 

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연구소에 들어가서

곧 짤려나갈 동료의 해고사유가 말도 안된다는 것,

그 사유가 곧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훨씬 더 멋드러진(괜찮은) 성과를

그가 낼 것이라고, 그걸 믿게 하자고,

역설했다.

 

내일 다시 나는

어떤 누군가에게 사정하게 될 것이다.

살게 하라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당신들이 권력을 쬐금 가졌다고는 하지만

무엇 하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권한을 가지지 않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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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강남구 서초동의 한 오뎅집에서

중년의 사내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여섯 명 중에서 네 사람은

한 때 시국사건이니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해서

감옥에 다녀온 전력이 있고,

그 중에 둘은 우연히도 같은 감방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느냐,

한명은 돈 좀 버는 회사의 CEO입니다.

그 전날 사장을 짜르고 맘이 안되어 밤새 술 마셨다고 합니다.

한명은 변호사입니다. 서초동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요즘 사업을 연예인 관련 법률 자문역까지 확대하고 있나 봅니다.

한명은 감정평가사입니다. 땅 좀 있거나 건설회사 개발책임자쯤 되는

사람을 많이 알면 돈 좀 되는데 저같은 사람만 알고 있으니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한명은 의사입니다. 도립병원의 내과 과장으로 있는데 연봉 1억쯤 되나 봅니다.

골프도 치고 중국어 공부에도 빠져서 여가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래도 선거 때나 세액공제사업 때 민주노동당 후원하라면 곧잘 합니다.

한명은 꽤 이름난 좌파 활동가입니다. 그 중에서는 저하고 가장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분이지요.

한명은 저입니다. 임기가 끝나고도 노조 사무실로 출근한다고 했더니 의사 친구가

그럽니다. 월급은 나오냐?

 

이런 자리에서 정치얘기 나오면 좀 짜증이 납니다.

의사친구가 그럽니다.

-난 민노당에 정치기금 내고 그랬는데 요즘 하는 걸 보면 별로 의미없이 느껴진다.

-....(당원인 나도 짜증이 난다)

감정평가사 선배가 말합니다.

=100프로 잘하는 당이 어디있나? 그래도 한나라당 비하면야 백번 낫지.

 

의사가 또 얘기합니다.

-내가 정치하고 담쌓아서 하는 얘기이기는 한데 노무현이 가장 잘하는 것 같더라.

제가 바로 한마디 합니다.

=니가 정치하고 담쌓았기 때문에 노무현이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나는 노무현 같은 사람이 한번 더 했으면 좋겠다. 유시민이 나오면 후원금 낼

생각이다.

 

설왕설래가 이어집니다. 변호사가 한마디, 유시민은 독선적이라 절대로 안된다.

.....김근태처럼 세계관이 어느 정도 확립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노무현이나 유시민

이나 변변한 세계관도 없이 개혁 어쩌고 하니까 도리어 갈팡질팡하는 거고 인정받을

수 없는 거다.

그러고 보니 모인 사람 중에 두 사람인가는 유시민하고 친구사이쯤 됩니다.

 

이렇듯 나온 얘기들을 다 줏어모아도 별 볼일 없습니다.

강남에 눈 펑펑 내리던 저녁에

저는 이렇게 오랜만에 옛 친구들(선배들) 만나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술을 펑펑 마셨습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나요. 학교 다닐 때 모두가 저의 귀감이 되고 저를 이끌던

사람들이었는데, (의사친구 얘기를 빌면) 지금은 먹고 살만 하니까 여유가 생기고

몸도 좋아지는 것 같다고 하고, (제가 보기로는) 그러면서 한 때 치열했던 변혁을 향한

열정은 다 사그라지고 만 것 같습니다.

 

CEO 선배한테는 기왕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릇 하라고 주문한 적 많았고

(그렇게 해 오기도 한 사람이지요),

의사친구한테는 이제부터 좀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하라고 주문할 생각이었는데,

좀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 그냥 술만 마셨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사이에 시나브로 노동조합의 낡은 관료쯤으로

되어가고 있은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때마다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어제 술자리는 그런 저를 한번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라 하고

내 안에서부터 질타하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음, 이 글은 어제 모인 사람들을 나무라기 위해서 쓴 게 절대로 아닙니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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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지난 금요일에 과기노조 사무실에 와서 휴가 다녀온 얘기를 하고

월요일(3/5)부터 일단 과기노조로 출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과기노조 전임자로서 연맹 임원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니만큼

임기가 끝나고 복귀할 곳도 과기노조 사무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리 맘 편한 결정은 아니다.

 

1년만 하겠다고 나섰던 노동조합 전임활동이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어섰고

언제라도 실험실로 돌아가겠다던 내 의지가 무색하게

이제는 실험실 밖에서 벌여놓은 일들이

나더러 책임져라 어쩔거냐 제대로 해라, 하고 다그치고 있고...

 

과기노조 사무실 또한 2년 남짓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나와 함께 일했던 동지들 2명 남고 모두 떠났다.

 

게다가 과기노조는 연전노조와의 통합을 추진하느라 정신없기도 하고

복직한 위원장을 대신하여 직무대행체제로 조직이 운영되는 상황이라서

자칫 연맹의 사무처장이나 한 자가 신중하지 못한 언행으로^^

조직의 진로를 그르칠까 하는 걱정이 안팎에서 은근히 있다.

(어, 우리 감시하러 오셨어요? 하는 한 동지의 일갈~.~)

 

암튼, 어제와 오늘 아침, 식구들 아침밥상 차려서 같이 먹고

곧바로 과기노조 사무실로 출근했다.

 

어제, 오전에는 과기노조 내부에 진행중인 일들에 대해 대강의 분위기를 들었고,

점심에는 해고되었다가 현업에 복귀한 옛 동지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지역의 금속노조 한 지회가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을 본격화한다고

연대집회에 나갔다. 오랜만에 참 많은 지역동지들을 한꺼번에 만났고,

이래저래 술 약속 일 약속만 잔뜩 받아들고 왔다.

 

어제, 밤에는 해양지부 시스템안전연구소분회장 엄주열 동지의 부친상 조문을 다녀왔다.

새벽 1시, 달은 휘영청 밝은데 거리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더라.

 

추운 건 가난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이지만

나같이 어영부영 사는 사람에게는 또렷한 자극을 주기도 하므로

가끔 반갑기도 하다.(퍼벅-?!)

 

오늘은 연구소지부의 몇 조합원들 만나 점심 먹고 나면

오후엔 서울에서 반가운 동지들이 온다 하니 밤은 금세 올 것이고,

내일은 연맹 사무실에도 한번 가야겠고,

모레는 서울에서 과기노조 집회와 중앙위원회 있다 하니 또 가고,

금요일 토요일에는 무슨 수련회가 또 있으니 즐겨 가고...

그렇게 당분간은 연맹의 청산업무만 아니면 큰 스트레스 없이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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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

시간이 없어서 간략하게 흔적 남깁니다.

 

어제는 알함브라 궁전에 갔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타고 5시간쯤 가야 합니다.

그런데 기차가 오지를 않습니다.

어찌어찌 알아보니까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기다려서 다른 기차를 탔습니다.

그 기차는 알메리아라고 하는 남부의 도시로 가는 기차입니다.

우리는 그라나다(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도시) 근처에 있는

모레다라고 하는 도시에서 기차에서 내립니다.

철도회사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2시간이 훨씬 더 늦었습니다.

 

궁전 일대만 보는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가히 아름다운 궁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침략에 멸망한 회교왕국의 비애가

녹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복자들이 얼마나 역사를 유린해왔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그라나다에 있는 다른 곳들은 보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기차를 타러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오지 않은 기차가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또 철도회사의 지침에 순응하여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다른 기차를 타고

아침에 갔던 길과는 다른 경로로

안달루시아(스페인의 남부지역, 회교문명이 번성했던 곳)지역의

야경을 보며 마드리드로 돌아왔습니다.

 

어제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움직였는데

잠자리에 든 시간이 오늘 새벽 3시입니다.

지금은 아침 8시 30분, 다시 길 나서야 하는 시간입니다.

 

여기 오는 모든 분들,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자세한 소식, 사진과 함께 올려서 약올리게 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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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짐을 치우다] 에 관련된 글.

 

과기노조 편집위원회에서 생활글이나 하나 쓰라고 해서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야 보낸 글...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나의 주된 근무지는 서울 뚝섬에 있는 공공연맹 사무실이었다. 새벽 5-6시에 휴대폰의 알람에 놀라 잠에서 깨면 헐레벌떡 대전역으로 달려가고,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전철 4호선과 2호선을 번갈아 타고 뚝섬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하는 데는 보통 2시간 10분쯤 걸렸다. 수련회다, 회의다, 뒷풀이다 해서 찜질방 신세를 진 적도 적지 않았지만, 무척 많은 시간이 길 위에서 흘러갔고, 2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이기에 나는 그것을 새로운 경험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이라는 데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끝이 없긴 하지만 연맹은 촌뜨기 간부에게 더욱 놀라운 곳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회의, 회의마다 준비되어 쏟아지는 각종 회의 자료와 보고서, 사시사철 거의 날마다 벌어지는 현장의 투쟁들, 크고 작은 집회를 조직하고 진행하는 일들, 거기다가 간담회, 수련회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거 참 인간적으로 살기 애당초 틀린 곳이구나, 하는 것이 처음 몇 달간의 느낌이었다. 파견된 임원을 포함하여 서른 대여섯 명의 상근 간부들이 저마다 맡은 역할과 그때그때 주어지는 임무에 따라 바삐 움직였고, 다함께 모여 술이나 한잔 하자는 건 무모한 바람이었다.


나는 나대로 피곤했다. 주말에라도 가사노동에 좀 충실하려다 보면, 일주일치의 장을 보고 식구들이 먹을 밑반찬과 간식거리들을 마련하는 것이 일요일 늦은 밤까지의 일과로 고정되다시피 했으니, 월요일마다 출근 전에 이미 나는 녹초가 되었다. 회의든 집회든 틈만 나면 잠이 쏟아졌고, 심지어는 교육훈련 도중에 요가를 하다가 잠시 누운 사이에 코를 골기도 했으니까. 함께 일하는 간부(활동가)들이 바쁘더라도 자투리 시간에 만나서 힘들고 어려운 사정들을 파악하고 챙기는 것이 내 임무의 하나였는데, 지나고 보니 동지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많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참 많이 배웠고, 깨달았고, 반성했다. 맡은 일은 몸이 부서지더라도 해치우는 동지들이 있지만, 그 동지들 중에는 그렇게 일하면서 얻은 남모를 몸과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고 싸우면서 그 자신이 사는 게 힘들면 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초보 활동가에게는 상당 기간의 가르침과 훈련이 필요한데도 무조건 일부터 맡기고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급하다고 서두르다 보면 아차 하는 사이에 논의는 일부가 독점하고 일은 몇몇에게만 집중되기도 한다. 민주적인 조직운영은 잘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조직을 끊임없는 실천으로 담금질하고 무시로 쏟아지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감당할 때 가능하다. 자신의 원칙에 맞지 않기에 분명히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안에 대해 결정되자마자 앞장서서 실천하는 동지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회의에서는 묵묵히 듣기만 하지만 일상에서는 온몸을 던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지들도 많이 보았다. 긴급하게 집회 지침이 떨어지면 즉시 밥숟가락 내던지고 국회 앞이며 광화문으로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오던 동지들은 감동이었다. 노동조합의 힘이 많이 위축되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적 징후들에 모두가 속이 타들어 가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름답고 연대는 희망임을 거듭 확인하였다.


물론, 말 많고 행동은 뒷전이지만 그러한 자신에 대해 일체의 성찰이나 반성도 없이 세월만 축내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았다. 나를 채찍질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뿐이다. 2007년 2월 8일, 연맹 사무실에 2년간 쌓아왔던 내 짐들을 모두 치웠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아마도 꽤 오래 그 공간을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서울 뚝섬과 대전 유성은 나에게 동일한 생활과 투쟁의 공간이었으므로. 그리고 이전의 경험에서도 그랬지만, 연맹에서 새로이 내 어깨 위에 들어선 짐들 또한, 노동자 민중이 살맛나는 세상이 올 때까지는 내 맘대로 벗어던질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조합 간부로 처음 시작하던 때의 설레임과 겸허함으로 새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다. (2007.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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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치우다

연맹 사무실에 있던 내 짐을 모두 노끈으로 묶어서 차에 싣고 왔다. 2년 동안 모아두었던 자료들 중에서 버릴 것은 지난 주에 충분히 버렸지만, 각종 보고서며 자료뭉치들이 트렁크에 실리자 차가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어떤 이들은 평상시에 얼마나 정리를 잘했으면 라면상자 하나 달랑 들고 퇴근하는 차림으로 수년 세월을 말끔하게 정리하던데, 나는 참 미련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해묵은 자료들에 대해서나 평생 이어가고  갈무리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한번 맺은 인연은 평생 갖고 간다고 큰소리쳤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인연들을 챙기지 않고(못하고) 달려왔던가. 타산지석이든 반면교사이든, 내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었던 서울의 많은 동지들에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고마운 마음을 앞으로의 활동과정에서 되새김질할 틈이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연맹 사무실에 아주 발을 끊을 상황은 아직 아니다. 오늘 청산위원회가 있었다. 1월 19일로 해산한 공공연맹의 자산과 부채는 1월말을 기준으로 모두 처분해야 하는데, 투쟁한다 뭐한다 하면서 각종 적립금까지 털었으니 퇴직금이며 상급단체 의무금이며 채무들을 모두 정리하고자 해도 돈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연맹비 납부를 독려하고 투쟁기금 안낸 노조들도 일일이 방문하거나 연락해서 돈 좀 내라고 사정해서라도 1-2억원을 만들어야 하는데, 해산한 연맹에 돈내겠다는 노조가 얼마나 있을지 걱정이다. 청산위원회에 회계감사에 3월까지도 연맹으로 와야 할 날이 제법 될것 같은데, 그렇게 올 때마다 빚진 동지들에게 술이나 밥이나 한번씩 같이 해야겠다. 2007년 2월 8일, 연맹 사무실에서 내 짐은 모두 치웠지만, 아마 내 마음은 꽤 오래 그 공간을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서울 뚝섬과 대전 유성은 나에게 동일한 생활과 투쟁의 공간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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