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시장 선거가 뜨겁습니다. 5세훈이가 판을 깔았는데. ‘마사지걸’ 운운하는 대통령이 ‘도가니’를 보고 ‘사회의식’ 어쩌구 하는 것으로 한참 웃게 만들더니. 서울시장으로 나선 나경원은 되레 장애인을 발가벗겨 낯 뜨겁게 만들고. 이쪽 동네 얘긴, 맞아요. 어물전 꼴뚜기가 어디 가겠어요. 하지만 안철수로부터 시작된 바람이 결국 박원순이라는 폭풍으로 번지면서 후끈 달아올랐는데요. 민심보다도 더 화들짝 놀란 건 이른 바 ‘야권’들. 민주당은 당대표가 사퇴하니 마니까지 하는 소란이고. 뭐, 고만고만한 지지율이던 민주노동당은 겨우 체면치레나 했나. 에구구, 진보신당은 무너져가는 집 고치느라 강 건너 불구경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
페포네라는 읍장은 사회주의자입니다. 그것도 아들에게 ‘레닌’이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주려고 하는 아주 ‘골수’입니다(<영세>pp.51-58). 반면 읍에 유일한 가톨릭교회 신부인 돈 칼밀로는 읍장에게 아주 골칫거립니다. ‘레닌’이란 이름으로 영세를 주지 않으려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당 게시판에 ‘페포네 바보’라고 쓰질 않나(<성명서> pp.59-70). 광장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성당 종을 마구 치질 않나(<경쟁> pp.81-91). 아무튼 앙숙도 이런 앙숙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성당에서 서로 치고 받으며 난투극을 벌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페포네와 돈 카밀로는 함께 파업 중인 농장에 몰래 들어가 소 먹이를 주기도 하고(<사람과 동물> pp.145-160). 쫓겨난 카밀로 대신 온 새로운 신부가 기존 질서를 허물자 이에 대항해 페포네가 나서기도 하고(<고향으로의 귀화> pp.112-125). 할머니 선생님이 남긴 유언을 지키기 위해 서로 한 발씩 물러설 줄도 알기에(<할머니 선생님> pp.227-237).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나 할까.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마을이 있진 않겠지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사이입니다. 이렇게 조반니 과레스키(Giovanni Guareschi, 1908-1968)는 상상하지 못할 기발한 상황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란 책에 담았습니다. 책 표지 날개에 ‘이념과 사상의 대립을 협력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반영, 냉전 체제에 지친 유럽 사람들에게 대단한 평판을 얻었다’고 써 있지만. 그건 그닥 공감하기가 쉽지 않지만 말입니다.
 
3. 
연일 때리기입니다. 대기업 후원에 230만 원짜리 월세, 병역문제까지. 네거티브 안 하겠다면서 검증이라며 쏟아내는데. 이거 정신없습니다. 게다가 언제부터 정책선거를 했다고, ‘747 사기’ 당(黨)에서 공약(空約)들을 쏟아내는데. 가만 보니 이만하면 선거판이 대선급입니다. 그에 반해 박원순으로 뭉친 야권은 한참이나 어리숙해보입니다. 민주당이 부리는 몽니야 예상했던 바이지만. 거기에 놀아나고 있는 민주노동당도 그렇고. 잿밥에 더 관심 많은 참여당이나 진보신당, 탈당파들까지. 이렇다 할 정책은커녕 호기를 놓치고 있는 모양새니. 초반 기세를 전혀 이어가지 못하고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마딱치 않은 이 호들갑이 여간 거슬렀던 게 아니었던 차라. 이쯤해서 정신들 좀 차리려나 싶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우리나라엔 켄1)과 같은 ‘좌파’ 시장이 나오려나, 묻는 건. 뜬금없는 얘긴가요?
 

 

1) 1980년대 영국은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런던 시정부를 이끈 사람은 노동당 내에서도 좌파에 속하는 켄 리빙스턴이었습니다. 켄은 대처가 철도를 죽이고 도로를 확충할 때 반대로 대중교통요금을 획기적으로 내려 자가용을 줄이는 정책을 폈습니다. 또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재직하던 중 도입했던 대중교통 환승할인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티켓 하나로(Just The Ticket)'도 시행을 했구요. 중앙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공기업을 팔아치우는데 앞장섰을 때 리빙스턴은 민간기업을 인수, 공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일자리를 늘렸습니다. 그리고 광산 노동자들을 무차별 해고할 때 시와 주민이 함께 마주 앉아 도시개발 계획을 새로 구상했습니다. 이렇게 사사건건 보수당과 마찰을 빚게 되자 대처는 런던광역자치단체를 아예 없애버립니다. 이후 1986년부터 1995년까지 런던은 광역차원에서 자치단체가 없는 시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런던 시정부가 복구되자 켄은 다시 직선시장으로 취임합니다. 그리고 도심혼잡통행료 제도를 실시해 ‘대중교통의 천국’을 되살리는 등 과거의 정책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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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2 13:58 2011/10/12 13:58

고구마 캐기

from 11년 만천리 2011/10/09 21:13
밭이 팔렸다(10월 5일/맑음 10-21도)
 
한 달 쯤 됐나. 갑자기 밭을 네 등분으로 나누고 끈을 쳐놓더니. 츄레라도 아닌 것이 냉동차도 아닌 것이. 자물쇠까지 채워놓은 거 보니 버린 건 아닐 터인데. 박스차 한 대가 밭 한귀퉁이에 서 있었다. 밭에 끈이 여기저기 쳤을 때도 주인은 말이 없었고. 급한 사람이 물  구한다고. 먼저 전화를 했더니 그제야 밭을 팔 거라고 한다. 박스차를 누가 갔다 놨나 궁금은 했지만 뭐 그쪽엔 심은 것도 없으니 별 생각 없이 지났는데.
 
오전에 고구마 캐고 팥꼬투리 따고 있는데 봉고차 한 대가 박스차 뒤에 조용히 선다. 그리곤 두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며 자물쇠를 열고 뭔가를 꺼냈다, 넣었다를 하는데.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나 말도 없다. 해서 뭐하는 사람들이냐, 왜 밭에 세워놨냐 했더니. 허참, 밭주인이란다. 그리고는 전 주인이 얘길 안 했나 본데, 밭을 내가 샀고 여긴 풀밖에 없으니 그랬다고 한다. 이런 전 주인이나 새 주인이나 어찌 다 이러냐. 어차피 내년엔 농사를 잠시 접어야 하니 다행이지 이래서야 뭘 하겠나 싶다.
 
아무튼 이래저래 새 주인과 일단 밭에 심어놓은 거 수확할 때까진 다른 일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걸 확인하고. 전 주인에게 밭이 팔렸으면 팔렸다 얘길 해줘야지 그럼 되느냐며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꼬투리 따던 거 마저 따고. 고구마 캔 거 흙 털어 봉지에 담으니. 어이쿠 12시가 훌쩍 넘었다. 이런, 젠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구마 캐기 - 첫째 날(10월 6일/맑음 9-21도)
 
오늘부터 다음 주까진 줄기차기 고구마를 캐야 한다. 간간이 녹두, 팥꼬투리 따고. 마저 기장 수확하고. 메주콩 다 여물면 베어 너는 것 빼곤.
 
고구마 캐기 - 둘째 날(10월 7일/맑음 6-21도)
 
일교차가 크다. 15도나 되니. 자전거에 오르면 춥고 일하다 보면 덥고. 딱 감기 걸리기 좋은 조건이다. 몸 조심해야겠다.
 
고구마 캐기 - 셋째 날(10월 8일/박무 후 맑음 8-22도)
 
하루에 한 고랑씩 캐고 있으니 이제 4일만 더 캐면 되는 건가. 오늘도 고구마 캐고, 녹두 꼬투리 조금 따왔다.
 
고구마 캐기 - 넷째 날(10월 9일/박무 후 맑음 8-20도)
 
매년 하는 일이지만, 자전거로 고구마 나르는 일은 참으로 더디다. 맘 잡고 하면 하루면 끝날 일을 일주일씩이나 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어차피 팥이며 녹두 꼬투리 따러 이틀에 한 번은 나와야 하니. 하루걸러 운동하느니 매일 하는 게 낫다,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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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9 21:13 2011/10/0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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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식이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또 당(黨) 하고도 같이 이런저런 사업을 한다는 얘길 들어서일까요. 아님 때맞춰 국회에 입성한 의원이 10명이나 생겨서였을까요. 지금은 “MBC뉴스도 KBS와 똑같아. 차별이 없어”라고 말씀하실 만큼 정치를 꿰뚫어 보시긴 하지만. 그땐 “이번엔 누구 찍어야 하냐?”라 물으시던 게. 정말 꿈만 같았지요. 그때까지 적어도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 모습은. 지게에 솥단지 하나 짊어지고 올라온 전라도 ‘깽깽이’가 출신성분을 감추려 민주정의당 당원으로 가입도 하고. 가겟집 간판도 ‘충남상회’로 달고. 반장을 거쳐 통장까지 도맡아 했었던. 그래요. 그런 아버지께서 선거 때만 되면 몇 번 찍어야 하느냐고 전화를 하셨던 겁니다.
 
2.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국민승리 21>시절 가입했던 민주노동당 당원번호. 그땐 버는 돈도 없었던 백수시절이었는데도. 꼬박꼬박 당비 내는 당원으로 가입을 했지요. 물론 그 후 대학원을 거쳐 연맹에서 일을 할 때까지도. 아니 그보다 더 후에도. 당 활동이라고는 지구당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도 않을 만큼 전무했지만. 그래도 선거 때가 되면 컬러링도 바꾸고. 경기도 모 지역에 파견을 자처, 보름 넘게 국회의원 선거 지원활동도 하고. 일이 일인지라 가끔은 당과 함께 이런저런 정책도 만들기도 했지요. 생각해보면 “부자에겐 세금을 민주노동당, 서민에겐 복지를 민주노동당”이란 노랠 많이 조금이라도 더 듣게 하려고 부러 신호가 한 참 간 후에 받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3.
당이 쪼개지고 난 후. 민주노동당에 남긴 죽어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진보신당에 들어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뭐, ‘농사짓는 사람이 돈이 어디 있어.....’라는 핑계거리를 둘러 대긴 했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북쪽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나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당비대납에 대리투표,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나 이를 패권주의니 다수파니하며 몰아가며 탈당 명분으로 삼은 이들이나. ‘민주정부’ 수립 이외엔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그건 또 죽어도 못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나. 모두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차피 합법 정당을 만들었을 땐. 그리고 그 정당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후보를 냈을 땐. 권력을 잡는 게 당연한 목표고 또 그럴 때야만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또 그 과정에서 1명, 10명 의원이 늘어나면 날수록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둘 다 옹고집, 아니 똥고집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4. 
먼저 진보신당이 부결시켰더군요. 내심 부결되길 바라기도 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습니다. 뒤이어 민주노동당도 부결됐습니다. 이 역시 내심 부결 돼야지, 부결 될 거야, 했지만. 똑같이 속은 쓰렸습니다. 하지만 심상정, 노회찬 전 대표가 당을 뛰쳐나가고. 유시민과 책까지 냈던 이정희 대표가 찬성표를 던지는 모습을 보니. 편치 않고 쓰렸던 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연신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남들이야 급격한 우경화니, 금뺏지에 넘어갔다느니 하지만. 역시나. 짝사랑, 외사랑이었던 겁니다.
 
5.
작년 지방선거 하루 전날에도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었습니다. 안 그래도 투표를 앞두고 전화가 올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심상정이 막 사퇴를 하고난 터라 마땅히 드릴 말씀이 없어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다. 결국 받았습니다. “이번에 심상정 나왔던데. 심상정 찍으면 되냐?”는 어머님 물음. 잠깐사이 ‘아니요. 심상정은 사퇴했으니까 김문수 빼고 아무나 맘에 드는 사람 찍으세요.’라는 하나마나한 얘길 할까. ‘어머니 심상정은 사퇴했으니까요. 유시민 찍으세요. 김문수가 되면 안 되니까 유시민 찍으세요.’라는 맘에도 없는 말을 할까. 정말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더군요.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던 거고. 그걸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는. 어머님 몫이 아니었던 겁니다. 
 
6.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진보신당 홈페이지엔 기웃거리기조차 하질 않은 지 꽤 오래됐습니다. 간간이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들려오는 소식만 듣는 셈이지요. 당을 나올 때도 그랬지만 당체 들어가 보고 싶질 않더라구요. 인신공격이야 안 보면 그만이지만. 넘쳐나는,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 얘기가 더 보고 싶지도, 더 듣고 싶지도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돌아가는 꼴을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뭐하고. 또 아직까지 당을 떠난 줄 모르고 있는 아버지, 어머님이 이것저것 물어 오실 때 딱히 드릴 말씀도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20년 전만도 못한 것 같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7.
5세훈이 몽니부리다 쫓기듯 내놓은 시장 자리를 누가 차지할 건가를 놓고 연일 요란합니다. 헌데, 한나라당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 그렇다 쳐도. 또 안철수와 박원순 열풍에서마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민주당까지 그렇다 쳐도. 대체 ‘진보’를 내거는 두 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요. 뭐, 당이 또 쪼개질 판이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핑계를 대려나요. 아님 그래도 우린 후보라도 내서 경선에 참여했으니 면피했다고 하려나요. 서울시장 선거니 아버지가 전화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야당 쪽에서 박원순으로 됐던데 어떠냐? 박원순 찍어야겠지.”라는 뻔한 물음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겁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대체 이번엔 뭐라 답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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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17:36 2011/10/04 17:36

쌀쌀해진 날씨

from 11년 만천리 2011/10/03 09:20

사용자 삽입 이미지고추(9월 26일/안개 후 맑음 11-25도)

 

고추 값이 장난 아니다. 물론 고춧가루 값도 그렇다. 재작년에 빻아 놓은 고춧가루가 여적 남아 있어 다행이지. 고작 여름 내 풋고추 따 먹은 걸로 만족해야 할 만큼 올 고추 농사 망한 거 보면.

 

그래도 집에서 김장을 담가 먹는 것도 아니고. 반찬을 많이 맹글어 먹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떡볶이나 해먹고. 찌개에 조금 넣고. 부추 겉절이 무쳐 먹으니. 남은 고춧가루만 가지고도 이년은 더 먹을 수 있겠다. 

 

그제 땅콩이며 고구마 캐고 나서 고추 밭에 썼던 지주를 다 뽑아냈는데. 자전거로 옮기려니 역시. 적어도 세 번은 해야 할 듯.

 

일단 흙을 탈탈 털고. 이단은 끈으로 묶고. 삼단은 자전거에 단단히 묶고. 조심조심 오르막, 내리막길을 달려 집으로 오니. 아침, 저녁으론 쌀쌀해도 등 뒤는 아직 뜨겁다.  

 

고추대 실어 나르기(9월 27일/맑음 11-28도)

 

낮 기온이 28도다. 도로 여름인가? 아침 밥 먹고 잠깐 밭에 나가 고추대만 싣고 왔다. 아, 다른 것들보다 일찍 여문 팥, 녹두들이 있어 그것도 따왔다.

 

고양이(9월 28일/흐림 10-22도)

 

고추대를 자전거에 싣고 팥 여문 게 있나 들여다보는데. 어라, 웬 고양이. 그것도 새끼 고양이가. 가만 생각해보니 지난 번 고구마 캤을 때도 잠깐 봤던 것도 같고. 그땐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였던 것 같은데. 두 마리는 어디가고 혼자서? 사진이라도 한 장 밖아 두려고 연신 따라가보는데. 새끼치곤 눈치도 빠르고 잽싸기도 하다. 괜히 고양이 못살게 구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금세 고양이 쫓기도 그만두고 집에 오니. 딱 한 시간 반 걸렸다.

 

쌀쌀해진 날씨(10월 2일/맑음 4-18도)

 

유기농대회 GMO 세미나에 갔다 온 목요일에 비가 온 후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들리는 얘기론 설악산과 대관령에 얼음이 얼고 산간지방엔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어디는 초여름 날씨고 어디는 초겨울 날씨. 단풍도 안 들었는데 얼음이 얼고 서리가 내리고. 작년에도 이랬나 싶다. 생각난 김에 농사일지를 보니. 그래도 이달 중순쯤부터 추워진 것 같으니. 갈수록 날씨 종잡기가 쉽지 않다.

 

갑자기 추워지니 팥과 고구마가 걱정이다. 메주콩이야 하루 날 잡아 베어 널면 되고. 서리태는 서리 내릴 때까지 기른다고 서리태니 제쳐놓고. 고구마는 모르긴 몰라도 꼬박 일주일은 캐내서 날라야 되는데다. 팥은 작년에 1/3 가량을 서리 때문에 거두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마음 같아선 한 열흘 아니 일주일이라도 더 두었으면 하는데. 조마조마한 마음에 밭에 나올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옮겨야겠다 싶어 고구마도 캐고. 이틀 동안 여문 팥, 녹두 꼬투리도 따고. 한 시간이면 되겠거니 싶어 마실 물도 안 가져오고 담아갈 것도 안 가져왔는데. 눈 깜짝할 새 밥 먹을 시간. 게다가 목도 마르다. 서둘러 집에 오니 배 속에서 ‘꼬르륵, 꼬르륵’ 이거 난리도 아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10/03 09:20 2011/10/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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