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에서 터뜨린 최루탄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뭐, 예상했던바 한나라당은 ‘불법 화학무기’에, ‘특수공무방해죄’, ‘헌정사상 최초’라는 말도 모자라 ‘테러’로 규정짓고 있구요. 또 당연하게도 조.중.동을 비롯해 한미FTA 찬성논조를 유지한 매체들은 ‘사퇴’로는 부족한지 ‘제명’하라 한 목소리입니다.
 
반면 두둔하는 쪽에선 “목숨을 내 놓으라”는 총 든 강도 앞에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느냐 되물으며, 김선동 의원 스스로 자평하듯 최루탄 투척 ‘의거’로 치켜세웁니다. 시쳇말로 다 죽게 된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들이 그 꼴을 봤더라면 가만있었겠냐는 말이고, ‘을사늑약’을 강행하려는데 멍하니 쳐다만 봐야 하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건데요.
 
가만 보고 있자니. 이 팽팽한 기(氣)싸움에 자칫 한쪽 편을 들었다간 한미 FTA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하고는 상관없이 ‘매국노’나 ‘폭력배’가 될 상황입니다. 물론 ‘테러’라는 말을 쓰고 있는 한나라당이야말로 적반하장이 유분수인건 분명합니다. 국민들에게 한미 FTA라는 핵폭탄을 터뜨린 작자들이 어디서 그런 말을 내뱉는 건지. 게다가 지난 1965년에 체결된 굴욕적인 한일협정이후 다시 외국과의 조약을 날치기, 그것도 비공개회의로 처리하고선 ‘특수공무방해’를 운운한다는 건. 더 할 말이 없네요. 이런 게 그들이 말한 ‘국격’이니 ‘국가브랜드’라면 말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말입니다. 좋은 소리는커녕 ‘날치기’를 덮어씌울 건수가 필요했던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게 뻔하고. 뭐, 언론이 길들여놓은 것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회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을 보는데 이력 난 사람들에게 또 한 번 ‘다 똑 같은 놈들이야’란 생각을 각인시킬 뿐인데다. 오히려 두고두고 써먹을 건수만 준 거니. ‘무효투쟁’에 도움도 안 될뿐더러 정치 혐오만 더 부추길 뿐이지요. 게다가 저쪽에서 먼저 형식과 절차를 어겼다고 ‘물리력’ 쓰는 걸 옹호하고 나선다면. 아니 영웅으로 칭송한다면 ‘폭력’이 늘 따라다니게 된다는 걸 모르는 겁니까.       
 
아무튼 상황이 이러하니. ‘민주주의’를 머릿수로만 이해하는 이들이나 ‘폭력’을 아전인수격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함께 비판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합니다. 원인을 제공한데다 의회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테러’를 가한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나선다면 ‘폭력’을 옹호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이유야 어떻든 간에 국회 내에서 ‘폭력’을 그것도 ‘최루탄’이라는 물리력을 동원했으니 그것만큼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면 ‘날치기’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될 테니 말이지요.
 
게다가 ‘최루탄 투척’을 두고 잘잘못을 얘기한다는 건.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 겁니다. ‘테러’니 ‘의거’니 하는 극한 말까지 나도니 말입니다. 뭐,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양쪽을 에둘러 애매하게 말하면서 발을 빼는 게 쉬운 일이겠지만. 애당초 저지가 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내년 총선이라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민주당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지켜는 봐야겠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 지적하는 이가 누군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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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15:35 2011/11/24 15:35
사용자 삽입 이미지솔직히 축구공이 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의문입니다. 왜 축구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쪽에서 자선 행사니 축구 교실 따위를 하는 것 말이지요. 얼마 전 박지성 선수도 베트남에서 같은 걸 했지만. 눈꼴사납게 ‘한류’ 따위를 내걸지 말고 연예인들도 안 갔으면 그나마 좀 좋게 봤으려나.
 
아무튼 행사가 어린이들 데려다 놓고 하루 공차고 논 걸로 끝나지는 않았겠지만.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성공’한 삶, ‘부’와 ‘인기’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희망’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게다가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축구라는 것이 스포츠민족주의의 중심에 있는데다 경쟁이데올로기와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 ‘희망’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할 뿐이었지요.  
 
그래서 일까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세계에 알려 경종을 울린 책’이라는 표지 문구 때문만은 아니었고. 또 ‘이스라엘 압력 단체들이 인쇄 중지를 요청해 논란을 빚은 문제의 소설’이라는 요란한 소개가 아니었어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책을 집어 들었음에도.
 
주인공 카림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꿈, 내 인생 10가지 목표 중 1순위로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를 올려놓았다는 것. 또 오래된 친구 조니와 새로 사귄 친구 메뚜기가 모두 축구공으로 엮여있다는 것. 그 세 친구들이 애써 만든 축구장을 탱크로 밀어버린 이스라엘과 그렇게 된 축구장에 갇혀버린 카림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가 주된 줄거리라는 것에서. 조금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축구였을 뿐. 통행금지가 일상화되고, ‘순교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에서 '한 뙈기의 땅’이란 단순한 축구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현실이란 점에서. 이스라엘 탱크 포신에 매달리는 메뚜기와 무장군인의 총질로부터 피난을 떠나는 조니 그리고 ‘9. 살아남기. 혹시 총에 맞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부위여야 함. 절대 머리나 척추가 아니기를, 인샬라’를 내 인생의 10가지 목표에 넣어야 하는 카림, 그들 모두에게 ‘한 뙈기의 땅’이란 현실이자 미래를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괜한 선입견에 소중한 책 한 권을 허투루 넘길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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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7:46 2011/11/21 17:46

만천리 농사 끝

from 11년 만천리 2011/11/20 10:20
서리태 - 첫째 날(11월15일/맑음 -3-13도)
 
지지난주에 서리태를 베어 널었는데 이제야 털러 나왔다. 오락가락 비가 자주 온 탓이긴 한데, 덕분에 푹 쉬었으니. 이제 부지런히 털어야 하는데, 얼추 보니 이틀, 사흘이면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부터 또 비가 온다고 하니 그때까진 다 마쳐야겠고. 하루 정도 밭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음, 오늘 해야 할 양이 많군.
 
서리태 - 둘째 날(11월 16일/맑음 0-15도)
 
점심 먹고 서둘러 밭에 나왔다. 오늘까진 끝내야 내일 하루 팥 골라내고, 이것저것 정리도 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 다행이 허겁지겁 한 숨도 안 쉬고 일한 덕에 계획했던 대로 일은 다 마쳤으니. 수확해야 할 건 다 했고. 올 농사도 이젠 마무리다.   
 
만천리 농사 끝(11월 17일/흐림 6-13도)
 
만천리 밭에서 농사를 지은 게 3년이다. 첫 해엔 고추를 중심으로 심었다가 둘째 해엔 콩. 그리고 올 해엔 잡곡을 많이 심었는데. 자전거로 오가며 보낸 3년이 오래된 사진처럼 남는다. 그렇다고 ‘정’까지 생긴 건 아니고. 어차피 내년엔 어찌될지 모르니 접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아쉽긴 아쉬운가보다. 지난 추위에도 살아남은 콩 꼬투리만 따고 오려 했는데. 해가 져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이제 차분히 지난 3년, 아니 삼천동까지 해서 4년 간 실험해왔던 농사를 돌아보며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차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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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0 10:20 2011/11/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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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거진등대와 해맞이 공원을 둘러보다(2010년 5월 21일)

  

연휴에 길을 나서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자마자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에. 결국 새로 놓은 길을 두고 옛 국도를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인제를 지나 원통에 들어서자 엉금엉금. 예정치도 않은 휴게소에 잠시 쉬어 보기도 하지만. 밀려드는 차들에 채 10분도 여유가 없고. 승객들도 승객들이지만. 한 번이라도 더 버스를 몰아야 하는 기사아저씨로서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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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리는 길목에 이르니 조금씩 길이 뚫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시령 터널을 지나니 평소 속도를 되찾는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계획했던 것과는 어긋나고 있었고.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한참 차가 밀릴 때 기사분이 겁을 준 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역시나 30여분 이상 늦었다. 
 
시간이 늦긴 했지만 일단 요기는 하고 본다. 그리고는 곧장, 시내버스긴 하지만 고성군, 그것도 마차진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운 좋게도. 금방 버스에 오를 수 있다.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한없이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1-1번 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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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번 여행 때 다음 여행의 출발지로는 조금 애매한 화진포에서 멈췄던 데에는. 짧은 겨울 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일정을 짰던 탓도 있었지만. 역시나 별 일도 아닌 것으로 대판 말싸움을 한 탓이 컸다. 무슨 이유였는지 지금도 가뭇가뭇한 걸 보니. 필시 웃기지도 않을 이유였을 테지만. 어쨌든. 그때 거진까지 갔었더라면 속초에서 직행버스를 탈 수도 있고. 홍천에서 시외버스를 탈 수도 있었을 것을.
 
그래도 저번엔 꽃을 볼 수 없었지만. 이번엔 빨갛게 봉오리가 올라온 해당화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고. 황량한 느낌이었던 화진포도 그세 봄옷을 갈아입고 마중하니 오히려 더 낫다. 또 바쁜 시간에 쫓겼다면 그냥 거진읍내로 허겁지겁 들어갔을 터이지만. 지금은 거진등대 해맞이 공원까지 덤으로 걸을 수 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채 세 시간도 안 되게 걸었지만. 오랜만에 참 걷기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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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관동별곡 8백리 길을 따라 왕곡마을 입구까지(2010년 5월 22일)
 
어제 읍내 뒷산에 있는 공원 구경을 하지 않고 왔다면. 아침부터 거길 기어오르느라 땀깨나 흘렸을 터인데. 느긋이 해변 길을 따라 거진항을 빠져나오니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그리고 어제 거진에 들어오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관동별곡 8백리 길> 표지판이 제법 갈림길이며 마을 입구마다 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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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광풍에 성수기가 아닌 때에도 비행기 표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들로서는 때 아닌 걷기 열풍에 한 동안은 많은 동지들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도 했는데. 지리산 둘레길도 그렇고. 제주도 올레길도 그렇고. 길을 이어준 사람들 생각, 마음이 지금 길을 걷는 사람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길과 길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그런 걷기를 얼마나 마음에 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것도 한때의 유행처럼 번지는 때잔차질이 애꿎은 4대강 삽질 망패막이로 전락하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 마냥. 우려는 늘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일까. 
 
정철이 걸었다던 <관동별곡 8백리 길>은 아직은 다 이어진 길은 아니다. 우선은 총석정과 삼일포가 더 북쪽에 있는 데다. 옛길을 복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콘크리트와 시멘트가 발라져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를 바로 볼 수 없게 막아 선 철책들이. 천안함 사건만 보더라도 언제 걷어질까, 기약 할 수 없으니. 이대로 길을 잇는다손 치더라도 걷는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만이라도 따로 손대지 말고, 삽질하지 말고, 있는 길 살며시 이어 놓기만 해도 걷는 재미는 꽤나 있겠다.
 
거진을 출발해 두 시간을 조금 넘게 걸으니 곧 간성읍인데.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때맞은 장날을 맞아 여기저기서 맞춰 입은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총출동이다. 1톤 트럭을 개조한 차마다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둘씩 셋씩 짝지은 운동원들은 가겟집마다 머리를 내민다. 이거야 장 구경을 한 건지 선거운동 구경을 한 건지.
 
어수선한 간성읍을 빠져나와 등나무 아래에서 쪽잠을 달게 자고 나니 시계 바늘이 두시를 향해 간다. 오후에는 가까이에 있는 왕곡마을을 둘러보고 되는 데로 걷다 어제 타고 올라온 1-1번 시내버스를 타는 것인데. 한낮 해를 피하고자 한참을 쉬었더니 일정이 조금 애매하다. 어제 밀리는 차를 보건데 아무래도 일찍 출발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왕곡마을까지는 다소 무리인 듯. 그래도 어쩌겠나. 일단은 출발이다.
 
마냥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따라, 철책선을 따라 걸었다면 꽤나 지루했을 텐데. 오늘 아침부터 이정표가 되 준 <8백리 길>을 따라 걸으니. 둔치를 걷기도 하고, 마을길을 걷기도 하고, 잠시 돌아가기도 하지만 작은 항구도 온전히 둘러볼 수 있으니.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개들만 아니라면 쉬엄쉬엄 동네 산보하듯 걷기에 참 좋다. 허나 왕곡마을에 이르러서는 급한 마음에, 또 오랜만에 걸어서인지 여기저기 몸이 쑤시는 덕에. 해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번 걷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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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째 날 약 7km, 그리고 둘째 날 18km 합쳐서 25km쯤 걸었다.
 
* 가고, 오고
춘천에서 고성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춘천에서 진부령을 넘어 곧바로 간성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거나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간 후 다시 고성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는 것. 앞에 것은 한 번에 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루에 단 두 번 있는 차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뒤에 것은 비교적 차 시간은 여유가 있는데 비해 속초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앞에 방법이나 뒤에 방법이나 고성까지 가는 시간은 엇비슷하다.
 
* 잠잘 곳
거진읍내에는 민박과 여관이 꽤 있다. 하지만 연휴나 여름철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러니 가진이나, 반암, 공현진과 같은 인근 작은 항구에도 민박집이 많으니 그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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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15:24 2011/11/07 15:24

메주콩 털기

from 11년 만천리 2011/11/06 15:03
서리태를 베어 널다(10월 31일/맑음 5-20도)
 
마지막으로 수확해야 할 서리태를 베어 널었다.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하니 다음 주 후반쯤에는 털어야 할 터인데. 베면서 보니 역시 빈 꼬투리가 많고. 아예 꼬투리가 달리지 않은 것도 꽤 되고. 웃자라기만 한 것도 있고. 아무래도 양은 많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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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콩 털기 - 첫째 날(11월 2일/맑음 9-22도)
 
봄 날씨다. 울긋불긋한 낙엽만 아니면 봄 인가, 착각할 듯. 20도를 오르내리고 아침 기온도 10도에 육박하니. 가을 상추나 배추, 무 등을 심었으면 한참 잘 자랐을 터.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어 가을 작물을 하나도 안 한 게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마지막으로 수확해야 할 메주콩과 서리태라도 꼼꼼히 거둬야지. 그래야 조금이라도 섭섭한 마음이 덜 할 것 같으니. 오늘은 몸 풀기로 두 시간 남짓 털고 날리고 골라냈는데. 그새 등 뒤로 땀이 주르륵 연신 흐른다. 바람도 없는, 봄 날씨 탓이다.
 
메주콩 털기 - 둘째 날(11월 3일/맑음 6-23도)
 
내일까진 일을 마쳐야 한다. 주말에 비 소식이 있기에. 바짝 오늘과 내일, 이틀 털면 다 할 것도 같은데. 점심 때 아버지가 오시는 바람에 오늘 일을 반도 못했다. 아무래도 내일은 아침보단 낮에 밥 먹고 나와 해야 하지 않을까.
 
메주콩 털기 - 셋째 날(11월 4일/흐림 11-21도)
 
다행이 일을 다 마쳤다. 아침을 먹자마자 바로 나와 12시까지. 물 마실 틈은커녕 쉬지도 않고 일한 덕이다. 이제 서리태 베어 널은 것만 거두면 되나. 아차차. 오늘까지 털어낸 메주콩 골라내야지. 쭉정이며, 콩깍지며, 돌..... 벌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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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15:03 2011/11/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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