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이라고 했나요. 이번엔 반드시 절단 내야겠다고 덤벼드는 것을 보니. 앞길이 험난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뭐, 애당초 금뺏지 달아보겠다고 뭉친 이들이라 거들떠도 안 봤고, 온갖 의혹이 제기되는 터라 마땅치 않게 보고 있었는데. 가만 보아하니 이건. 사상검증에 빨간색 칠하기는 기본이요, 제명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기가 막혀 말이 다 나오질 않고 있는데. 나 참, 산 넘어 산이라고 했나요.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공당(公黨)의 당원명부를 압수수색해 가져간다니요. 기가 막혀 나오지 않던 말이 다 나올 지경입니다. “이런 C足”

 

물론 영장을 발부한 법원도, 전광석화처럼 도둑질해간 검찰도, 옳지 이때다, 원, 투 스트레이트에 훅, 어퍼컷. 잽싸게 치고 들어오는 조.중.동을 위시한 꼴통들까지 죄다 어찌하고 싶지만 말입니다. 대체 탈당한 당원 명부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던 구(舊) 민주노동당은 뭐랍니까. <개인정보보호법>은 거들먹거리지도 않겠습니다. 당이 쪼개진 게 언제고 다시 딴 살림 차린 게 또 언젠데. 옛날 당원들 신상정보까지 왜 갖고 있었던 겁니까. 개인정보가지고 장사하려고 했던 건 아닐 터이고. 당원 부풀리기 하려고 했던 건 더욱 더 아닐 터인데 말입니다. 다시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옵니다.

 

검찰청에서 농성하는 것, 당연히 해야겠지요. 정치탄압으로 규정해 싸우는 것도 또 당연히 해야 합니다. 외부 유출은 없다, 란 검찰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도 안 되고, 법원과 검찰이 저지른 ‘정치사찰’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와 함께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갖고 있었던 당원 명부로 인해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지도 모를 구(舊) 당원들에게 말입니다. 왜, 어떤 이유로 명부를 갖고 있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연 사과도 해야 하지요. 어이 없이 털린 ‘정치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어떤 식으로든 책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어물쩍 넘어갈 것 같기도 한데.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가만 지켜보겠습니다. 검찰이 가져갔다고 해서 탈당한 당원 명부를 가지고 있었다는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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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5 09:54 2012/05/25 09:54

첫째 날, 초겨을 걷기에 앞서 부석사에 오르다(2010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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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나 많은 절들이 의상대사와 관련이 있을까. 지난 번 걷기 때 들렀던 낙산사도 그렇고. ‘배흘림기둥’으로 알려진 무량수전 서쪽 편에 있는 바위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신라 때 지어진 화엄종(華嚴宗) 근본도량(根本道場)인. 잔뜩 구름 낀 하늘 탓에 모처럼 나온 여행이 도무지 흥이 나지 않고.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부석사(浮石寺)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쪽이 무량수전에서부터 시작해 삼층석탑, 석조여래좌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재를 갖고 있으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반면. 다른 한쪽은 소박한 절, 바다에 떠 있는 부석이 오히려 설화와 더 어울리나 다른 절에 가려져 있다는 점에서 꽤나 대조적인 듯하지만. 영주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석사나 충남 서산 부석에 있는 부석사나. 모두 이름도 같고. 의상(義湘)과 선묘(善妙) 사이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애틋한 사랑(?)을 창건설화를 갖고 있다는 점 모두 같다. 이쪽, 저쪽마다 조금씩은 다르고 조금씩은 윤색됐긴 하지만 이를테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의상은 지장사에서 지엄법사라는 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정진했다. 이때 지장사 아랫마을에 살던 선묘가 의상을 흠모하게 됐는데 의상은 이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려는 의상 앞에 선묘가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의상은 이미 출가한 사람으로 불가함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묘는 자신도 불교에 귀의해서라도 스님 곁에 머물겠다며 애원했다. 그러나 의상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거듭 만류했고 이에 낙담한 선묘는 배를 타고 떠나는 의상을 따라 바다에 몸을 던졌다. 선묘는 의상이 무사히 고국에 닿을 수 있게 대룡(大龍)이 된 것이다.”와 같은 얘기들을 말이다.
 
보름만 일찍 왔더라면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아니 다 떨어진 노란 단풍이라도 밟으며 오를 수 있었을 것을. 단풍나무고 은행나무고 잎이 남아 있는 게 없다. 하지만 늦게 온 만큼 더 고즈넉한 경내를 즐길 수 있고, 무량수전 기둥에 기대어 척척 겹쳐놓은 산등성이 너머를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니. 몸은 피곤하고, 또 절을 나서면 먼 길을 가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조금씩 나이진다.
 
둘째 날, 황사와 바람에 지쳐 겨우 소돌에서 멈추다(2010년 12월 4일)
 
예전엔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와 연결된, 사시사철 송죽이 울창해 이름 붙여진 죽도(竹島)를 둘러보기 위해 등산로(?)에 오르니 엊저녁 묵었던 숙소에서 보던 바람과는 생판 다르다. 밤새 황사가 온다니 강풍이 불겠다니 하는 예보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설마 했고. 이러다 아침 내내 방구석에 있을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을 떨치고 나오긴 했지만.
 
이거 심상치가 않다. 가까이 보이는 파도도 그렇고 멀리 내다보는 바다도 그렇고,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어서인지 영, 바람이 세지 않을 듯한데. 바다와 가까운 산책길을 걸을 때부터 심상치 않던 게 결국 죽도정(竹島亭)에 오르는 길에 접어드니, 허걱. 자칫 잘못하면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여기서 좌절할 순 없지. 가보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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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황사, 바람에 걷기가 힘들지만 바다만큼은 눈부시다> 

 
그렇게 죽도를 한 바퀴 돌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니 바람이 아까보다 더 심한 게 아닌가. 게다가 황사가 다 지나지 않았는지 목도 따끔따끔하다. 모자에 마스크, 겨울옷까지 완벽하게 바람을 막았다 싶은데도 여기저기 바람이 들이친다. 게다가 걷는 방향과 같기라도 하면 달려갈 듯 발걸음 나도 모르게 옮겨지는 게 걱정되긴 하지만 좀 낫지. 맞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이건 눈도 뜨기 힘들고 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난감지사다. 그래도 꿋꿋이 앞으로 나간다. 점심때가 지나면 바람이 좀 잦아들겠지, 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길이 있을 거란 짐작만 갖고 수풀을 헤치다, 또 해변을 따라난 길이 있을 거란 짐작만 갖고 을 철책을 따라 가다, 결국 건너야 할 나무다리가 철책 너머 있는 걸 보고는 되돌아오길 30여 분. 그렇게 바람 뚫고 길 헤매며 겨우겨우 남애항에 도착하니. 배꼽시계 벌써 지났고 화장실이 급해 허겁지겁 들어간 식당에 겨우 시킨 게 물회라니. 한 여름 그 많은 항구를 지나면서 거들떠도 안 봤던 걸 여기 와서 시키고 나니, 참 어이없다. 게다가 그 세찬 바람 속에 생고생을 하며 와 몸은 으슬으슬 추운데. 뭐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셈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시킨 음식이고 이미 차려진 음식이니 먹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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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한 사람은 맛나게 먹었지만 한 사람은 비릿한 맛에 수저를 통 들지 못했다. 게다가 겨우 몇 숟가락 뜬 음식이 찬 거라 길을 다시 나서니 추위가 되레 전보다 더하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바람도 아침보다 더 거세다. 아무래도 이러다 일 나겠다, 싶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싶어 발걸음을 멈추고 슈퍼에 들러 빵이랑 우유를 사들고 버스정류장에 서니. ‘소돌’이란 글자가 보이고, 다행히 강릉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 또 당초 강릉 사천항까지 걷고자 했지만. 소돌도 강릉이고 하니 다음 번 시작도 여기면 괜찮을 듯. 저만치 오는 강릉 시내버스에 주저 없이 오른다. 
 
* 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인구항에서 강릉 주문진 소돌까지 약 10km.
 
* 가고, 오고
걷기여행 전날 영주에 있는 부석사를 들렀는데 다행히도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어 번잡스럽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주문진이나 인구항 모두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속초방면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 되니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지 일단 강릉으로 가야 할 듯. 차 시간도 자주 있는 편이고 또 늦게까지 있으니 계획 세우는데 그리 어렵지 않음
 
* 잠잘 곳
괜한 걱정이 화를 부를 듯. 너무 많은 정보가 때론 마음을 상하게도 하니 현지에서 물어물어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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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3 09:13 2012/05/23 09:13

일본이 핵발전소를 모두 세웠다고 합니다. 54기나 되는 걸 다 멈췄다고 하니 여름 전력 수요는커녕 당장 쓸 전기도 모자랄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조용하기만 한 게 도통 이상합니다. 아니 조용한 걸 넘어 담담하고 차분한 일본 사회를 보고 있으니 이건 뭐, 당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가동하려는 정부나 전력회사들이 되레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고. 기업들은 공장을 돌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칠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하기사 남들은 핵발전 포기에 대해 시비 선악을 가리어서 결정한 마당인데. 무슨 거꾸로 타는 보일러도 아니고, 르네상스를 열어젖히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이해가 되질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값싼 전기 펑펑 써가며 매년 수 조원씩 돈 남는 장사하는 재벌들이 떵떵거리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이런 게 뭐 기삿거리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그저 우스갯소리로. “국산화율 100%면 납품되는 거 전부다 단물 빨아 먹겠네”라는 말이 나도는 마당인데. 무신 거창하게 ‘원전 기술 자립’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착공식을 하는 건 뭐랍니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늘어만 가는 핵발전소를 보고 있으려니. 이구동성으로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 말을 제쳐놓더라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차라리 말입니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으려니 말입니다. 제발 전기 좀 적게 쓰자 징징대는 꼴을 보고 있는 게 낫지, 싶습니다.

 
판때리다 : 시비 선악을 가리어서 결정하다.
 
일본이 핵발전소 가동을 모두 정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독일이나, 벨기에, 스웨덴, 스위스처럼 당장에 탈핵을 선언하지는 않을 겁니다.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데다, 가동 중지로 인해 발생하는 전력난을 다른 에너지로 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중동에 수출되는 핵발전소에 대해 핵무기 제조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들과 후쿠시마 발전소에 핵무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의혹들이 제기되는 걸 보건데. 상황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재가동할 틈만 노리고 있을 뿐이지 결코 핵무장 정책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란 얘깁니다. 물론 당장에 대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보급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도 이미 많은 양의 전기를 쓰지 않고 있는 마당에 더 절전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도 하고. 또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모두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개발, 제조할 생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로부터 핵폭탄의 공포를 체험했던 일본 사회가 한 세대도 채 지나기 전에 프랑스와 미국 다음으로 핵발전 강국이 된 것이나. 그로부터 또 불과 두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후쿠시마 폭발을 경험했음에도 핵발전에 대해 판때리기를 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건 다소 억지스러운 일일까요. 거기다 일본 다음으로 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제는 ‘황금알’ 낳는 수출 주력 산업으로 대통령까지 나서는 우리나라까지 덧붙인다면. 그래요, 망상이라면 참말로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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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3:34 2012/05/11 13:34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늘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양자역학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도 말이지요. 그만큼 인간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논쟁이 벌여졌다 해도 대게 일반인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로인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되거나 과장된 주장을 해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 과학자들 또는 관련된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인데요. 실은 대중들도 알기 쉽게 풀어내기보다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로 이야기하고 결정을 짓는, 쉽게 말해 과학자, 과학자 집단 스스로가 쌓은 성(城)에 일반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근 것뿐이지요.

 
인간 복제 문제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처음 이 문제를 건드린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자들까지 참여해 열띤 논쟁이 일어난 걸 보면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는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또 그것이 미칠 영향을 고려해볼 때 분명 이해당사자임이 틀림없는데도 말이지요. 통 일반인들이 끼어들 틈은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복제 문제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난치병 혹은 불치병 환자, 그리고 그 가족,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불임부부가 인간 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버공간이 됐건 어느 토론회장이나 공청회장, 심지어는 법원 앞에서까지 찬.반 행동을 직접 하기도 합니다. 아니 가만 보고 있으면 관련 과학자 집단이나 학자들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나설 때가 있으니. 이 문제만큼은 조금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찬성하는 이들 모두가 앞서 말했듯이 과학자 집단, 학자들이 주장하듯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되거나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던진다면. 글쎄요. 쉽게 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터이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도 관련된 전문지식이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해하기 쉬운, 쟁점이 무엇이고 찬, 반 진영이 내세우는 논리와 주장은 무엇인지, 어떤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하는 지 등등을 소개하는 책-보건복지 전문기자로 활동 중인 안종주가 쓴 <인간 복제, 그 빛과 그림자>도 대략 그런 종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반인이라고 해서 결코 무시하거나 얕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정보들 중에는 거짓되거나 과장된 것들도 많을뿐더러 일반인들이 그것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악의적이지는 않겠지만 대게는 찬성, 반대 쪽 정보가 조금씩은 그럴듯한 포장을 하거나 과장을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또 찬성,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내를 갖고 듣기보다는 서둘러 반격할 태세를 취합니다. 게다가 상대편이 하는 얘기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할 정보나 책에 더 관심이 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소개한 책처럼 말입니다. 책을 쓴 사람이 기자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기사모음과 거기에 덧붙인 글쓴이의 의견, 이 정도 들어가 있는 정도일 뿐인데다가. ‘빛과 그림자’라는 비교적 균형 잡힌 정보와 주장을 소개할 것처럼 해 놓고는. 어느 한쪽 주장에 대해 편향적인 애기를 하는 책들로 인해. 되레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으니. 얕보거나 무시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얘기를 다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학이라는 전문영역이라 해서 일반인들이 그 문제에 대해 발언권이 없다거나 어떤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과학자들이나 학자들이 대중에게 모순된 지식이나 비과학적 사실들을 진리 또는 과학적 사실로 포장한다고 말하기 전에. 과학자, 학자들 스스로 꽁꽁 숨겨놓은 지식과 과학적 사실들을 대중들 앞에 풀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분과학문으로 세분화된 현대 과학이 인간과 자연, 우주를 연결 지어 사고하기보다는 실험실 속으로 들어가 광학현미경으로만 세상을 보려하고. 좁게는 어떤 삶을 살아 갈 것인가, 라는 철학적 인식 기반에서부터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인간사회, 자연계, 우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동료들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 다는 것은. 스스로 찬.반 논쟁에서 목소리를 잃을 수밖에 없음을, 아니 문제해결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인 것이지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생활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오래 살고자 하는 욕구도 충분하진 않지만 만족스럽게 됐고, 기대수명도 늘어났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사람들도 줄어들었고 암이나 백혈병 같은 난치병 치료도 머지않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문명이라고 하는, 인간 생활수준도 높아졌지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나눌 수 있는가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와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학자, 과학자 집단이 이제껏 누려왔던 특권을 계속 지키려고만 한다면. 그들이 해내는 일들로 인해 인간 사회, 자연, 우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예견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가령 인간 복제 문제를 과학자, 과학자 집단에게만 맡겼을 때 벌어질 우리 사회의 혼란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성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성문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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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5 22:24 2012/05/05 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