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1.
백주대낮, 한 청년이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백골단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른 흉기에 말이지요. 그리고 곧 이를 항의하는 시위가 연일 열렸습니다. 대학가는 물론이고 전국 시내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책임자를 처벌하고 전경과 백골단을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던 노태우는 상황을 모면하려는 꼼수들만 내놓았습니다. 아니, 구속 중이었던 노동조합 위원장이 의문사를 당하고 시위에 참여했던 한 여학생이 폭력적인 진압에 질식사하는 일이 발생할 만큼 폭력을 숨기지 않았지요. 사람들은 권력이 자행하는 포악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몸을 내던지는, 분신이라는 극한 저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 빈민, 노동자, 무려 11명이나 되는 열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2.
정권이 저지른 폭력에 희생당한 청년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습니다. 4월 26일이 그가 죽은 날이니 불과 3개월 남짓 대학생활을 한 것이지요. 그 때문에 이런 말들도 나돌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선배들 손에 이끌려 시위에 나갔다 참변을 당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91학번 신입생은 “좋은 책을 읽어야 해. 자본가의 입장에서 쓴 경제학 서적보다는 일한 만큼 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억압받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 민중을 대변하는 올바른 책이지”(p.132)라고 말할 만큼 생각이 깊은 학생이었습니다. 또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독서토론회에 빠지는 법이 없었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알 때까지 선배들을 쫓아다니는 열정적인 후배였습니다. 백골단에 맞아죽던 날도 그랬습니다. 맨 선두에서 싸우고 있던 선배들이 곤경에 빠지자 이를 알리기 위해 최루가스가 자욱한 그 선두로 뛰었던 것입니다.
 
3.
김지하라는 사람이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이어 박홍이란 사람은 “어둠의 세력이 있다. 죽음의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며 곧 있을 조작 사건을 예고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분신배후설을 흘리던 검찰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김동길이란 이는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 정당화되면서 최루탄은 불법이라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정부 편을 들고 나섰고, 김수환 추기경은 첫 사무 활동을 시작한 진주에서 달걀 세례를 받게 되는 말을 했습니다. “국가가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자제해야 할 것” 조선일보는 한 술 더 떴습니다. 연일 국민의 냉담을 조성하는 기사를 써내려갔으며 강경 진압을 요구했던 것이지요. 후에 이들은 5적이라 불리게 되지만, 5월 투쟁은 이들로 인해 급격히 사그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뒤이어 총리에 오른, 아니 총리 서리였던 정원식이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극적 효과까지 있었지만 말입니다.         
 
4.
그리 먼 일도 아닙니다. 지금은 백골단은커녕 최루탄도 보기 힘드니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말입니다. 또 아주 가끔씩 텔레비전을 통해 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와 최루가스, 물대포를 보면서 아직도 저런 나라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 5월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그 거리를, 그 함성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전 87년 6월 항쟁과는 달리 철저히 패배한 싸움으로 끝난 것처럼 보여서입니다. 그리고 91년과 92년 사이를 두고 사회운동세력들은, 특히나 학생운동진영은 커다란 내적 변화를 겪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10년이 지난 후에 나왔던 그 긴 제목의 책,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1991년 5월>이라는 책과 여기 이 책. <1991년 ‘5월 투쟁’의 꽃, 강경대 평전>은 한동안 가슴에 남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이 책들이 그저 그런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꿈속에서’만 나오던 청년들, 빈민들 노동자들,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사랑과 투쟁, 희망을 살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로받지 못한 지난 아픈 상처를 보듬어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대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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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5:15 2013/07/05 15:15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계사에서 ‘아나키즘’이 조명을 받았던 적은 많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파리코뮨’ 정도지요.  하지만 ‘아나키즘’은 진보를 향한 투쟁이 있던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그러하고 ‘러시아 혁명’도 그렇습니다. 가깝게는 ‘5.18 광주’에서도 공동체와 자율이라는 이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아나키즘’은 사상사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중요한 사상(思想)이자 원동력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 혹은 ‘무질서주의’ 정도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협동조합’이 각광을 받으며 ‘열풍’이 부는데 비하면 거의 푸대접에 가까운 상황인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전에도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아나키스트의 초상’등을 쓰며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던 하승우가 쓴 ‘세계를 뒤 흔단 상호부조론’은 지금 시점에서 꼭 봐야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말로 ‘상호부조론’이라고 알려진 크로포트킨의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이란 책이 어떤 배경에서 쓰여 졌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당대에 그리고 또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풀어 쓰는 방법을 통해서 ‘아니키즘’의 역사와 내용, 유산을 간결하게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또 이회영과 신채호 등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나키스트’들을 만날 수도 있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드니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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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8 09:40 2013/06/28 09:40
사용자 삽입 이미지쿠바에서 혁명이 성공한 후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혁명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각 나라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군부 쿠데타를 조장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독점자본과 미국의 후원을 받는 군부가 저지르는 횡포에 맞선 라틴 민중들은 되레 혁명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습니다. 까닥 잘못하면 목숨도 잃고 나라도 망가질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이런 분위기로 보자면 칠레 역시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게바라로 상징되는 무장봉기가 아닌 선거로 이룬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말하자면 ‘선거 혁명’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1970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는 인민연합 후보로 나서 36.2%의 득표율을 기록합니다. 이어 의회에서 열린 결선투표에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내빈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가난한 모습을 직접 보셨습니다. 칠레 역사의 전환점을 맞아 인민이 운명을 자신의 손에 쥐고 사회주의를 향한 민주주의적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봄을 맞이한 칠레는 온 셰계사람들과 형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선거 혁명’을 이룬 칠레가 겪게 될 고난과 시련은 이미 선거 기간 내내 예고가 됐었습니다. 국유화와 토지재분배 같은 혁명적인 공약과 함께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천명한 아옌데가 눈엣가시 같았던 미국이 저지른 일들 때문이었지요. 급기야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서는 쿠데타가 공공연히 나돌았습니다. 한편으론 구리 가격 폭락 조장 등을 통한 경제봉쇄를 하면서 말입니다. 
 
마침내 1973년 9월 11일 아침. 칠레 국영라디오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방송을 반복해서 내보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지요. 바로 군의 행동 개시 신호이자 대통령 궁을 향한 폭격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맞서 아옌데 대통령은 끝까지 자리를 사수하겠다는 최후 방송으로 화답합니다.
 
“동포 여러분, 쿠데타군이 라디와 방송을 끊어버릴 수도 었습니다. 제가 여러분 곁을 떠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전투기가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총탄 세례를 퍼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나라에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민이 부여한 대로, 제 양심이 시키는 대로 인민의 대통령으로서 존엄함 제 직무를 끝까지 수행해나겠습니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지키라며 준 자동소총을 들고 쿠데타군에 맞서다 사살당하고 맙니다. 선거로 사회주의 혁명을 이뤄낸, 역사상 전후 무후했던 칠레 사회주의 혁명 정부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칠레, 또 다른 9.11>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마지막 방송을 통해 칠레 민중이 다시 일어나 혁명을 완수할 것이라는 목소리와 쿠데타  직후 군에 체포돼 처형된 빅토르 하라의 노래, 베트남과 쿠바에서 쫓겨나 칠레를 갉아먹으려는 자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외친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또 ‘트랙 2’로 불리는, 미국이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군사쿠데타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알 수 있으며, 혁명 동지로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했던 피델 카스트로와 혁명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베아트리스 아옌데의 연설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다른 ‘9.11’이 여기에 모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2001년 미국에서 벌어진 공중 테러뿐만 아니라, 1973년 칠레 대통령 궁에 가해졌던 폭격도 함께 기억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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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13:14 2012/11/05 13:14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그랬다지요. 다른 당 후보도 아니고, 자기 당 후보들이 재차 물었으니 짜증도 났겠지만. 가뜩이나 과거를 망각한 채 되레 힘을 키우고 있는 일본에게 우리 정치권이 과연 따가운 일침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 걱정인 판에. “과거에 모두 사시네요.”

 

하워드 진은 조지 오웰의 말을 빌러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 곧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까지도 결정할 수 있다. 콜럼버스에 관련된 역사를 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잔혹한 20세기 미국의 현재 모습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미국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바로 콜럼버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박정희’에 대한 물음은 단순히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민주화가 완성됐다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어떤 답을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인 것이지요.  

 

그러니 아무리 같은 당 후보였지만 5.16에 대해 던진 질문에 저런 식으로 답해선 안 될 것이었습니다. 물론 김문수나 임태희 같은 사람들과 현재 한국사회를, 미래를 두고 논쟁을 벌인 건 아니었겠지만. 오히려 지난번에 “역사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고, ‘이것은 결국 국민 판단 몫이고 역사의 몫이다’라고 하고 우리가 맡은 사명에 대해 충실히 노력할 때 오히려 통합이 이뤄진다.”라고 했던 말보다 더 후퇴를 했으니. 오히려 하워드 진이 명확히 지적하듯(?) 역사란 철학과 사상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걸 지적하며 치고 나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그 순간,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특정 부분에 해당하는 정보를 얼마만큼 넣고 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렇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이루어지며, 모든 역사가와 역사 연구는 어떤 관점이 있습니다. 단순한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p.105

 

“역사 연구는 곧 무엇이 중요한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는 실제로 현재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p.112

 

“역사는 수많은 사실들에서 선택하는 것이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p.281

 

아버지 박정희 후광으로 여당 대선후보에까지 오른 박근혜에게 5.16은 대선이 끝나는 날까지 따라다닐 겁니다. 그것도 박근혜 후보 자신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든 얼렁뚱땅 넘어가든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가 박 후보에게나 다른 대선 후보들에게 모두 좋은 공격 수단으로, 아킬레스건 정도로 생각돼서는 안 됩니다.     

 

앞서 하워드 진으로부터 배웠듯이 이 문제는 역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이며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분명하게 답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콜럼버스와 박정희가 여전히 영웅으로 떠받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니까요.

 

“콜롬버스를 20세기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인 도덕률은 20세기이든 15세기이든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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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3:31 2012/09/04 13:31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늘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양자역학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도 말이지요. 그만큼 인간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논쟁이 벌여졌다 해도 대게 일반인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로인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되거나 과장된 주장을 해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 과학자들 또는 관련된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인데요. 실은 대중들도 알기 쉽게 풀어내기보다는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로 이야기하고 결정을 짓는, 쉽게 말해 과학자, 과학자 집단 스스로가 쌓은 성(城)에 일반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근 것뿐이지요.

 
인간 복제 문제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처음 이 문제를 건드린 과학이나 의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자들까지 참여해 열띤 논쟁이 일어난 걸 보면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는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또 그것이 미칠 영향을 고려해볼 때 분명 이해당사자임이 틀림없는데도 말이지요. 통 일반인들이 끼어들 틈은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복제 문제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난치병 혹은 불치병 환자, 그리고 그 가족,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불임부부가 인간 복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이버공간이 됐건 어느 토론회장이나 공청회장, 심지어는 법원 앞에서까지 찬.반 행동을 직접 하기도 합니다. 아니 가만 보고 있으면 관련 과학자 집단이나 학자들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나설 때가 있으니. 이 문제만큼은 조금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찬성하는 이들 모두가 앞서 말했듯이 과학자 집단, 학자들이 주장하듯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되거나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던진다면. 글쎄요. 쉽게 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터이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도 관련된 전문지식이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해하기 쉬운, 쟁점이 무엇이고 찬, 반 진영이 내세우는 논리와 주장은 무엇인지, 어떤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하는 지 등등을 소개하는 책-보건복지 전문기자로 활동 중인 안종주가 쓴 <인간 복제, 그 빛과 그림자>도 대략 그런 종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반인이라고 해서 결코 무시하거나 얕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정보들 중에는 거짓되거나 과장된 것들도 많을뿐더러 일반인들이 그것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악의적이지는 않겠지만 대게는 찬성, 반대 쪽 정보가 조금씩은 그럴듯한 포장을 하거나 과장을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또 찬성,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이 주장하는 것과 반대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인내를 갖고 듣기보다는 서둘러 반격할 태세를 취합니다. 게다가 상대편이 하는 얘기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할 정보나 책에 더 관심이 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소개한 책처럼 말입니다. 책을 쓴 사람이 기자라서 인지 모르겠지만. 기사모음과 거기에 덧붙인 글쓴이의 의견, 이 정도 들어가 있는 정도일 뿐인데다가. ‘빛과 그림자’라는 비교적 균형 잡힌 정보와 주장을 소개할 것처럼 해 놓고는. 어느 한쪽 주장에 대해 편향적인 애기를 하는 책들로 인해. 되레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으니. 얕보거나 무시하지는 말아야겠지만. 그렇다고 또 모든 얘기를 다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학이라는 전문영역이라 해서 일반인들이 그 문제에 대해 발언권이 없다거나 어떤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과학자들이나 학자들이 대중에게 모순된 지식이나 비과학적 사실들을 진리 또는 과학적 사실로 포장한다고 말하기 전에. 과학자, 학자들 스스로 꽁꽁 숨겨놓은 지식과 과학적 사실들을 대중들 앞에 풀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분과학문으로 세분화된 현대 과학이 인간과 자연, 우주를 연결 지어 사고하기보다는 실험실 속으로 들어가 광학현미경으로만 세상을 보려하고. 좁게는 어떤 삶을 살아 갈 것인가, 라는 철학적 인식 기반에서부터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인간사회, 자연계, 우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동료들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 다는 것은. 스스로 찬.반 논쟁에서 목소리를 잃을 수밖에 없음을, 아니 문제해결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인 것이지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생활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오래 살고자 하는 욕구도 충분하진 않지만 만족스럽게 됐고, 기대수명도 늘어났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사람들도 줄어들었고 암이나 백혈병 같은 난치병 치료도 머지않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문명이라고 하는, 인간 생활수준도 높아졌지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나눌 수 있는가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와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학자, 과학자 집단이 이제껏 누려왔던 특권을 계속 지키려고만 한다면. 그들이 해내는 일들로 인해 인간 사회, 자연, 우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예견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가령 인간 복제 문제를 과학자, 과학자 집단에게만 맡겼을 때 벌어질 우리 사회의 혼란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성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성문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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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5 22:24 2012/05/05 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