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을 일으킨 두 나라, 즉 독일과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미국이 보여준 태도는 매우 상반된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뉴른베르크 재판 과정만 보더라도 A급 전범은 물론이고 나치에 단순 부역한 이들도 어떤 형태로든 그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천황에 대해 기소조차 하지 않았던 토쿄 재판을 통해 B, C급을 포함 A급 전범 대부분을 풀어줍니다. 독일에 대한 전쟁 책임 추궁은 매우 혹독했던 반면 일본에게는 매우 관대했던 겁니다.
 
일이 이렇게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당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존재했던 정치.사회적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보인 이 이중성은 이후 독일과 일본이 과거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길, <독일과 일본, 그 두 개의 전후>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 제목 ‘기억과 망각’과 같은 서로 다른 두 길을 가게 합니다. 
 
물론 두 재판 이후 독일과 일본 사회가 보여준 과거 극복을 위한 노력이 다르게 진행된 것에는 딱히 그런 이유만 있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책임을 미국에만 떠넘기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니까요. 예를 들어 68혁명으로 대변되는 격동의 시기에 보여준 독일 지식인들의 역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이미지가 증폭되고 내면화된 일본 국민들의 피해의식과 같은 것들은 다른 설명을 필요로 하지요. 요컨대 2차 대전 후 ‘전쟁 책임과 전후 책임’ 문제를 얘기할 땐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전후 처리과정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미국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나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우리나라로써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가령 위안부 할머니에서부터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문제를 두고 한일청구권협정을 앞세워 발뺌하는 일본에게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과 윤리의식만을 지적하는 일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을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일본인들에게는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이미 그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임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몇 년 전,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맥아더 - 일본 천황의 전범 소추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731부대로 잘 알려진 세균전 부대에 대해서도 전범 면책 보증을 해주었던 인물입니다 - 동상을 두고 없애야 하느니, 놔둬야 하느니 하며 몸싸움까지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 문제가 해프닝 내지는 한바탕 소동으로 끝나고 만 것은, 여전히 우리 역시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과 토론, 반성, 성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과연 누가 누구에게 과거에 잘못한 일을 따끔하게 지적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또 미국이라면 역사적 사실마저 눈감고 두둔하는 일이 정말 옳은 일이고 잘하는 일인지도 알 수 있을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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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08:38 2012/04/20 08:38
1.
여기저기 초콜릿이 넘쳐나는 걸 보니 밸런타인데이가 얼마 안 남았나 봅니다. 뭐, 애당초 초콜릿을 좋아하지도 않은데다. 무슨, 무슨 날이다 해서 격식을 차리거나 뭘 주고받는 것도 싫어하니. 그리 눈꼴사납진 않지만. 저 많은 초콜릿들이 대체 어디서 만들어진 건지는 궁금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우습지 않은 날이 있는지 알아보고도 싶고. 초콜릿은 코코아로 만든다는데 코코아는 어디서 재배되는 걸까? 저 초콜릿에는 코코아가 얼마나 들어있을까? 혹 설탕덩어리는 아닐까? 코코아를 심고 기르고 수확하는 사람들은 정작 초콜릿을 구경조차 못한다고 하던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생겨나는 물음들은. 가만 얼마 전 읽은 <공정한 무역, 가능한 일인가?>에서 읽었던 구절들이 아니지 뭡니까.
 
2.
노무현이 한미 FTA를 하겠다고 나서자 곧 반대 운동이 일어났었지요. 헤비급 선수와 라이트급 선수가 맞붙는 게임이 공정한 것이냐? 말이 좋아 선진금융기법이지 ‘먹튀’나 하는 금융자본을 들여오려는 것이냐? 자동차 팔자고 농수산업을 포기하려는 것이냐? 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지금도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지금이라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협정문을 폐기 하는 게 옳다고 믿지만. 그때 당시 꽤나 열심히, 아니 입에 거품 물며 반대 운동하던 사람들에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리면. 지금도 고개가 갸우뚱하고 다시 물어보고 싶지 뭡니까.
 
“한미 FTA가 문제냐? FTA가 문제냐?”
“한미 FTA는 반대하고 한칠레 또는 한싱가포르 FTA는 찬성하느냐?”
 
사용자 삽입 이미지3.
공정무역의 대상이 되는 것들, 가령 책에서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는 커피, 초콜릿, 바나나, 청바지(청바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원료가 되는 면을 말합니다)는 아프리카 또는 아시아의 가난한(GNP나 GDP와 같은 허황된 수치로 표현되는 의미로) 나라들에서 생산되지요. 그 가운데 초콜릿을 만드는 데 필요한 코코아는 가나를 중심으로 한 서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이 재배됩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경제는 국가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코코아를 재배하는 농민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더구나 거대한 단일작물 생산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함께 경제적 불안정이 반복되거나 심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강제 개입해 실시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일을 해결하기는커녕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니. 초콜릿이 그저 달콤하기만 한 건 아니지요. 그러니 밸런타인데이란 게 얼마나 웃기고 한심한 짓거리인가요.
 
4.
조금은, 아니 사실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말이 좋아 자유로운 무역이지 FTA 자체가 자본의 무한 증식을 보장하는 것 말고는 민중들에게 하등 이익이 되질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우리와 체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과의 FTA는 반대하면서 낮은 체급의 나라들과는 FTA를 찬성한다니. 솔직히 대안이 없질 않느냐는 말은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가졌던 물음이었던 셈이지요. 남이 하면 불륜 내가하면 로맨스인가요. 하지만 그때도 분명 대안적인 무역은 있었습니다. 석유를 제공한 베네수엘라와 의사와 교사를 보낸 쿠바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정무역. 서로 필요한 것들을 그저 맞바꾸는 그런 무역이 분명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책 <공정한 무역, 가능한 일인가?>에서 찾고 있는 공정무역에 대한 가능성 역시 분명 고려할만한 대안 무역이었구요. 하지만 FTA(Free Trade Agreement)가 아니라 FTA(Fair Trade Agreement)를 외치지 못했던 건. 아니 생각지도 않았던 건 무엇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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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2 22:09 2012/02/12 22:09
사용자 삽입 이미지일본이 결국 후쿠시마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걸 인정한 셈인데요. 20여 년 전 체르노빌을 떠올리자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거짓말에 거짓말로 사건을 축소하고, 또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처럼 말해왔던 건. 핵발전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도 첨단과학기술을 제쳐놓고 편서풍을 죽어라 외쳤던 건. 그래요. 마찬가지로 핵발전 정책을 포기하기 싫어서였겠지요. 난데없이 등장한 전력난이 여름을 지나 겨울에까지 계속되고. 한국형 원전은 다르다며 새삼 안전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며. UAE에 이어 터키, 요르단, 인도까지 언급하며 원전 수출을 외치는 것들 말입니다. 그래도 아무리 편서풍 때문에 안전하다 해도 말이지요. 이쯤 되면 그야말로 ‘닥치고’ 원전 수준인데. 그 꼴을 보고 있으려니.
 
타산지석(他山之石) 
 
난데없이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얼마 전에 읽은. 독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핵 발전을 포기하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란 책 때문이었을 겁니다. 책에는 독일의 정책전환 과정에서 체르노빌이 등장을 합니다. 물론 체르노빌이 결정적인 전환의 계기가 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인식의 변화, 이미 시작된 전환의 물꼬를 확 열게 한 것은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리고 그런 변화는 독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전 유럽적으로 반핵, 재생에너지 열풍이 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안전, 안전하다고 해도 단 한 번의 사고로 전 유럽이 세계대전 이후 가장 끔직한 공포와 충격에 빠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거꾸로 가는 나라가 있었으니. 후쿠시마 사고 때 호들갑을 떨었던 프랑스가 바로 그렇습니다. 일본이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사고 발생 직후부터 핵 강국 미국을 제치고 더 관심을 보였던 핵 발전 강국 프랑스 말입니다. 지금도 프랑스는 꼭 어느 나라마냥 핵 발전을 포기하기보단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길을 걷고 있으니.
 
어째 얘길 하다 보니 독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풍력, 태양열, 지열,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했는지가 쓰여 있는 책 소개보다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앞으로 나갈 방향으로 삼지 않고 있는 두 나라에 대한 얘기가 됐습니다. 허나, 뭐 어떻습니까. 내용이야 직접 책을 읽어보시면 될 것이고. 덤으로 옳은 길이 어떤 길인지도 알 수 있으니 제쳐놓고. 반성은커녕 아니 되려 위험과 죽음의 재가 뒤덮인 길로만 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으니. 무엇보다도 제대로 꼬집어주고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게 지금으로선 더 시급한 일이니.   
 
타산지석(他山之石)
 
이 옛말을 꼭 좀 들려줘야겠습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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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20:36 2012/01/29 20:36

1.

내년엔 미뤄뒀던 여행을 많이 가기로 했습니다. 춘천으로 이사와 4년을 지내며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좋아하는 걷기여행도 고작 하루, 이틀로 네댓 번 간 게 다고. 바람 쐬러 나간 건 영주 부석사를 둘러보고 온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말입니다. 해서 일단 동쪽 바닷길 있는 강릉 바우길을 시작으로 스페인 산티아고길, 군산 구불길, 남해 바래길과 작은 섬들까지. 적어도 육 개월은 무작정 걷기로 작정한 겁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늘어난 뱃살 줄이는 건 부수입일터이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다시 시작하는데 큰 힘이 되겠거니 싶습니다.

 

2.

제주 올레길. 처음 올레길이 소개됐을 때부터 언제 걷나 오매불망이었습니다. 한때는 북적대는 사람들 틈을 걷는 게 싫어 ‘흥’ 하며 짐짓 모른 채 하기도 했고. 유행처럼 번진 걷기 열풍에 이건 또 뭔가 싶어 외면도 했지만. 이번 걷기 여행을 준비하면서 날이 풀리면 이곳부터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말입니다. 올레길에서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제주 중산간의 숨은 비경과 작은 섬들’, ‘제주의 고유한 문화와 풍광’을 찾아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길’을 넘어 ‘제주를 세계와 이어주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새삼스레 느끼고 싶어서였을까요.

 

3.

사용자 삽입 이미지1946년

- 제주농업학교, 오현 중학원: 동맹휴학(일제 잔재, 독재적인 교육 반대)

 

1947년 

- 관덕정 광장

- “조선의 식민지화를 양과자로부터 막아내자”(밀가루에 비료, 석유, 석탄분이 섞인 사건 계기(1946년)

- 제주시내 중학생(제주신보: 1천여 명)

- 제주도 양과자 수입반대: 제주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미시위

 

1947년 3월 1일

- 제주북초등학교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대회

- 2만 5천 - 3만여 명

- 애월읍, 조천면 등에서도 참가

- 6명의 주민 총상으로 사망

 

3월 10일

- 민.관 총파업

 

1948년 3월 6일

- 조천중학원 2학년 김용철 고문으로 유치장에서 사망

- 조천중학원 시위(이전에도 교사 연행에 항의 시위)

 

3월

- 조천면 신촌리: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신촌회의’

- 무장투쟁 결정

 

4월 3일 새벽 2시

- 무장봉기: 봉화(오름)

- 12개 지서, 우익단체 집과 사무실

* 모슬포: 미군정 경비대 제9연대 주둔-진압작전 참여 명령

 

4월 28일

- 서남부 대정명 구억초등학교: 9연대장 김익렬-무장대 총책 김달삼 담판

- 전투중지 합의

 

5월 1일(사흘 후)

- 제주읍 오라리: 무장대에 피살된 여인의 장례식 기점 무장대와 경찰 충돌

- 이후 미군이 경비대 총공격 명령으로 유혈사태 확대

- 4.3 기록필름 <제주도의 메이데이>

 

5월 10일

- 17개 읍.면 가운데 7개 읍.면에서 선거(단선) 반대 활동

- 중문, 표선, 조천 등 투표소 파괴, 무장대 21명, 경찰 1명, 우익인사 7명 사망

- 대흘, 와흘, 와산 등 중산간 마을 투표함 운반 면장 위협(미군정)

 

9월 초

- 진압작전 재개

- ‘삼진 작전’ 개시(불태워 없애고, 죽여 없애고, 굶겨 없애는)

* 삼진.삼광: 일본이 중국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작전으로 대량 살상 자행

- 해안선 5km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 무허가 통행 금지

- 신문사 편집국장, 제주중학교 교장 등 총살, 법원장 연행

- 해안선 봉쇄

 

10월 19일

- 여순사건 발생: 제주도 출동 명령 거부: 14연대 1대대

 

10월 말

- 9연대 병사 17명 ‘공산주의자 세포’ 혐의로 체포, 이후 6명 처형

- 북제주군 애월면 고성리: 135명 사살

- 북제주군 조천면 교래리 부근: 130여명 사살

 

11월 초

- 제주 출신 9연대 장병 100여명 총살

- 납읍리: 무장대에 의한 주민 살해

- ‘빗개’(토벌대의 진입을 감시하는 보초) / ‘비께’(바다고기로 상어의 일종)

 

1948년 10월부터 1949년 3월까지 6개월간 중산간 마을 초토화

- 남제주군 구좌면 세화리

- 표선면 성읍리

- 남원면 남원리, 위미리

 

11월 13일

- 북제주군 애월면 소길리 원동마을, 조천면 교래리, 화흘리 2구, 신흥리

- 남제주군 안덕면 상천리, 상창리, 창천리

- 함덕초등학교 조천면 관내 20대 청년 200여명 가운데 150여명 총살

 

11월 17일

- 제주 계엄령 선포

 

11월

- 중문면 영남마을 50여명 희생

- 조천면 선흘리(21일): ‘선흘곶’, 도틀굴(반못굴), 목시물굴, 밴뱅이굴 등에서 주민 총살

- 21일부터 30일까지: 학살 615명(토벌대 총 12정, 칼 11자루 획득)

 

12월

- 표선 백사장: 토산리 주민 157명 총살

-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 130여 가구 / ‘무등이왓’ 100여명, ‘삼밭구석’ 50여명 사망, ‘큰넓이궤’ 120여명 60여 일 동안 숨어 삼

- 2-6일 / 12-20일: 도민 677명 사살, 162명 체포

 

1949년 1월 경

- 17일: 제주읍 조천면 북촌리 300여명 총살, 함덕으로 간 주민 100여명 희생, ‘무남촌’

 

1월 24일

- 북제주군 애월면 하귀리 개수동 63명 희생

- 4.19 후 국회차원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때 제주도 학살 고발 제1호로 기록

 

2월 4일

- 제주읍 용강리 주민 105명 희생

 

4월 1일 미군 정보보고서

- 48년 한 해 동안 1만 5천여 명의 주민 희생, 이중 80% 토벌대에 의해 사살로 기록

 

5월 10일

- 제주 재선거 국회의원 선출

 

5월 15일

-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 해체

 

6월 8일

- 관덕정 광장 이덕구 주검 내검

 

1953년 1월 말

- 유격전 특수부대 무지개부대 투입 한라산 토벌작전 전개

 

1954년 9월 21일

- 한라산 금족지역 해제, 전면 개방

 

4.

그래요. 올레길에는 없는. 제주의 역사와 현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겁니다. 중산간 마을, 아니 제주도 곳곳에 감춰진 상처를, 아픔을. 강정마을 구럼비가 토해내는 통곡을 직접 보고 아파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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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1 16:37 2011/12/31 16:37
사용자 삽입 이미지솔직히 축구공이 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의문입니다. 왜 축구 좀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쪽에서 자선 행사니 축구 교실 따위를 하는 것 말이지요. 얼마 전 박지성 선수도 베트남에서 같은 걸 했지만. 눈꼴사납게 ‘한류’ 따위를 내걸지 말고 연예인들도 안 갔으면 그나마 좀 좋게 봤으려나.
 
아무튼 행사가 어린이들 데려다 놓고 하루 공차고 논 걸로 끝나지는 않았겠지만.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성공’한 삶, ‘부’와 ‘인기’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희망’인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게다가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축구라는 것이 스포츠민족주의의 중심에 있는데다 경쟁이데올로기와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 ‘희망’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할 뿐이었지요.  
 
그래서 일까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세계에 알려 경종을 울린 책’이라는 표지 문구 때문만은 아니었고. 또 ‘이스라엘 압력 단체들이 인쇄 중지를 요청해 논란을 빚은 문제의 소설’이라는 요란한 소개가 아니었어도.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책을 집어 들었음에도.
 
주인공 카림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꿈, 내 인생 10가지 목표 중 1순위로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를 올려놓았다는 것. 또 오래된 친구 조니와 새로 사귄 친구 메뚜기가 모두 축구공으로 엮여있다는 것. 그 세 친구들이 애써 만든 축구장을 탱크로 밀어버린 이스라엘과 그렇게 된 축구장에 갇혀버린 카림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가 주된 줄거리라는 것에서. 조금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축구였을 뿐. 통행금지가 일상화되고, ‘순교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에서 '한 뙈기의 땅’이란 단순한 축구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현실이란 점에서. 이스라엘 탱크 포신에 매달리는 메뚜기와 무장군인의 총질로부터 피난을 떠나는 조니 그리고 ‘9. 살아남기. 혹시 총에 맞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부위여야 함. 절대 머리나 척추가 아니기를, 인샬라’를 내 인생의 10가지 목표에 넣어야 하는 카림, 그들 모두에게 ‘한 뙈기의 땅’이란 현실이자 미래를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괜한 선입견에 소중한 책 한 권을 허투루 넘길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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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1 17:46 2011/11/21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