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지요. 이러다 해를 넘기지나 않을런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들어 부쩍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8일에 열린 국민법정이 그러했구요. 19일에는 세계 각국의 평화운동가들로 이뤄진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단’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MB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네요. 겨우 유족들을 만나 거짓 눈물을 흘릴 줄만 알고 말이죠.
 
2.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가운데 2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신문기사를 보니 한 분은 ‘경찰이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구요, 또 다른 한 분은 정리해고 이후 심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다 계속되는 경찰 조사에 생계마저 막막해지자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애당초 기술력만 빼돌릴 게 뻔한데도 쌍용자동차를 팔아넘긴 정부관료와 경영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말이죠.      
 
 <2006년도에 개정판이 나왔네요. 초판 발행 시 미비했던 점들이 보충됐구요. 별면 화보가 추가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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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유산(遺産)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김동춘 샘(성공회대 사회과학부)은 이런 물음에 ‘전쟁이 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되고 냉전적 정치경제 질서가 가장 철저하게 착근된 사회’라고 답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쟁’중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김동춘 샘은 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이 ‘전쟁’ 중인 사회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끊임없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난’ 행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4.
용산참사 때도 그랬고 쌍용자동차 파업 때도 그랬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이건. 그래요. 누가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라 한다면, 주저 없이 ‘전쟁터’라 할만 했습니다.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나라 공권력은 용산참사 농성자들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마치 전쟁터에서 맞닥뜨린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했거든요. 그렇지 않다면야 어디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며 울부짖는 이들을 그리 무자비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는 주저 없이 발길을 옮기면서도 용산 참사 현장은 애써 외면하는. 한 집 건너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고 또 한 집 건너 정리해고자가 넘쳐나면서도 노동조합에는 거침없이 비난을 쏟아내는 국민들을 보고 있자니. 그래요. 우리 국민들은 자기 목숨 건사하기 위해 여전히 ‘피난’을 떠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5.
검찰이 용산참사 농성자 전원에게 중형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들 가운데 이미 40여명이 구속된 상태이고 앞으로 30여명은 더 구속될 것 같다는 얘기들이 있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모두 감옥살이를 각오해야 할 것 같은데. 혹 김동춘 샘이 쓴 <전쟁과 사회>의 분석틀로 보자면 ‘전쟁터’에서 ‘포로’로 붙들린 이들에게 이 정도 처분이면 오히려 과분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놈에 ‘피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냥 ‘피난’ 행렬에 뛰어드는 것 말고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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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1 21:10 2009/10/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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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이 저 세상으로 간지 그새 60일이 됐네요. 믿기지 않았던 그 토요일의 아침이 엊그제 같기만 한데 말입니다. 세상사는 일이 다 그런가봅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 뒤엔 곧 잊힘이 있고.

 

사실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를 세상에 알렸던 청문회와 김영삼을 향한 삿대질, 안될 줄 알면서도 또 부산으로 향하던 모습들을 기억하지만 어찌 된 게 그런 일들이 있었기나 한 것 마냥 통 기억이 없으니까요. 또 그를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던 돼지저금통과 노란색의 물결도 그저 잘 찍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납니다. 성별 학력 지역의 차별 없이 모두가 자기의 꿈을 이루어가는 세상 ..... 우리 아이들이 커서 살아가야 할 세상을 그려보세요. 행복한 변화가 시작 됩니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믿게 만들었던 걸까요. 동창회 모임 때 말고는 얼굴보기 힘든 동기들 전화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12월의 몹시도 추웠던 그 날, 마지막 유세를 위해 종로를 거쳐 광화문 교보문고 앞을 지나 미 대사관 근처까지 가는 길에 말이죠. 온통 북새통에 목소리도 들리지도 않는데 이쪽에 뭐라 하든 상관없이 연신 ‘2번’을 외치던 전화를 말입니다.

 

2.

“그러므로 미국의 줄기찬 호전성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우리의 운명이고, 파병을 결정한 우리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왜 우리가 그에게 허락한 국가권위를 이토록 쉽사리 남용하는지 알 수 없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p.297 「피 묻은 국익 (2003)」

 

“노인과 부녀자, 어린이들까지 포함된 서민들의 평화집회에 부안 군수를 위해 정부수반이 보내준 경찰은 특수진압 전투경찰들이었다. 어떤 정권도 이룩하지 못한 핵폐기장을 자발적으로 건설하겠다는 군수가 나타나자 그토록 갸륵했을까.” p.242 「‘핵’ 깡패들 (2003)」

 

“농부들이 논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신자유주의를 내건 열강들의 시장개방 압력에 정부가 너무나 쉽게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쌀농사를 포기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이 땅에서 이 땅의 산물을 취하며 오래오래 살겠다는 태도가 아닙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 허구입니다.” p.29 「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2006)」

 

“집회가 절정에 이르던 오후 녘, 조용히 밀물이 차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금(生金)밭’ 갯벌이 진짜 보석처럼 햇살에 반짝거렸다. 에루아 에루얼싸, 눈물났다. 에루아 에우얼싸. 우리가 부른 노래와 춤은 새만금이 그냥 죽도록 포기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싸움을 다짐하는 결의의 표현이기도 했다.” p.108 「에루아 에루얼싸, 새만금 (2006)」

 

글을 쓴 이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책을 몇 장만 넘겨봐도 영락없는 자연 평화 생태 환경 산문집일 뿐이건만 읽는 내내 왜 ‘바보 노무현’이 자꾸만 떠오른 걸까요. 애초 기대라는 것조차를 하지 않았기에 큰 실망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명분 없는 전쟁에 나서고, 그 전쟁에 우리 젊은이가 죽어가도 꿈쩍하지 않고, 농민이 맞아 죽어도, 노동자가 제 몸에 불을 살라도 FTA는 꼭 해야 한다, 하고, 핵쓰레기를 파묻을 곳은 찾고 또 찾고, 기어이 갯벌을 도룡뇽의 숨통을 끊어 놓는 데는 당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답니다. 또 129일이라는 시간동안 그 높은 크레인 위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다 끝내는 제 목을 매달고 만 한 노동자와 그런 그이가 몹시도 보고파 크레인이 굽어보는 도크에 몸을 던진 또 한 노동자에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며, 연민의 눈조차 건네지 않았던 데는 마침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까닭이요.

 

3.

‘바보 노무현’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그 토요일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새벽, 여기 춘천에도 시민분향소가 세워졌더랬습니다. 헌데 급작스레 만들어진 탓도 있었겠고, 아직 출근 전이라는 시간 탓도 있었겠지만, 분향소엔 두 어 사람만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 분향소 주위엔 ‘바보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란색 메모지가 수십 장 걸려있었지만 정작 아무 글도 쓰여 있지 않았구요. 아무튼 조촐하다 못해 썰렁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이었기에, 또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잠시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저 웃고 있는 ‘바보 노무현’을 한참 바라보다 왜 담배를 끊었을까, 뜬금없는 자책 아닌 자책 후에 조용히 자전거에 올랐더랬습니다. 아, 바람에 팔랑거리던 그 노란 빈 종이에 한마디 적은 후에 말입니다. ‘그래도 노짱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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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14:13 2009/07/23 14:13

1.

뒷간에서 책을 보면 변비 혹은 치질에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뒷간에서 나와야 하는데 책 읽기에 빠져 있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 일쑤기 때문일 테지요. 그럼에도 뒷간에서 읽은 책 맛은 담배를 끊기 전 뒷간에서 피우던 담배 맛 만큼이나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변비 혹은 치질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라 늘상 읽는 책들을 가지고 들어가기에는 긴 문장만큼이나 끊기가 힘들고 긴 장(chapter)만큼이나 길기만 합니다. 그래서 여기 이 두 권의 책을 뒷간 세면대 옆 한쪽에 놓아두거나 뒷간 가장 가까운 책장에 나란히 세워두고는 합니다. 둘 다 10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꼭지들로만 구성돼 있어 끊기도 쉽고 다른 책들에 비한다면 가볍기 그지없어 어디든 가져가기 부담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난 이들이 한껏 멋 내서 쓴 글보다는 옆집 아줌마, 아저씨, 누나, 동생 혹은 우리 엄마, 아빠가 살면서 느낀 점들을 아무 멋도 내지 않고 쓴 글들이 더 많아 입에, 눈에 감칠맛 나기 때문이죠. 또 춘천으로 오고 난 후 가끔, 아주 가끔씩 도지는 물갈이에 딱 맞는 처방약이기 때문이랍니다.

 

2.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사무실을 영등포로 옮기고 난 후이니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네요. 매년 받아오던 건강검진에 또 위염과 십이지장염이 발병을 했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더랬습니다. 매일매일 시달리는 스트레스에 불규칙한 식사, 한 번 시작되면 삼차까진 가야 정리되는 술자리, 20년 넘게 피워 온 담배. 의사말로는 되려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당장 담배부터 끊으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거 못 끊으면 병 못 고칩니다.” 짝지와 함께 병원을 나와 약국에 들러 위장약을 사고 나오는 길에 그때까지도 웃도리 호주머니에 곤히 모셔져있던 담배를 휴지통에 쳐 넣었습니다. 오늘부터 담배 끊는다! 담배를 끊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금단현상에 손을 떨다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손을 댔다고 하던데, 어찌된 게 금단 현상은커녕 혹여 누가 옆에서 담배를 필라치면 구토까지 나오면서 싫어지니. 모르는 이들은 참 독한 사람이다, 이 말, 저 말, 말들이 많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담배 냄새가 싫어지기는 했지만 딱 한 군데, 화장실에서 만큼은 싫지가 않더군요. 아니 끊었다, 생각했던 담배가 그곳에서만큼은 생각이 나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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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니 그세 또 2년이 지났네요. 다행히 담배는 끊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해 가을은 지나온 절반의 삶과 앞으로 올 절반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마주 앉아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명확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말이예요. 그리고 그 해 가을은, 함께 다녔으면 좋았을터인데 어째 시간이 허락치 않아 혼자서 귀농학교를 다녔더랬습니다. 엊그제 명예퇴직을 한 이로부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이까지, 생협에서 필수교육으로 이수해야했던 이들로부터 부부가 함께 손잡고 온 이들과 말입니다. 또 아주 잠깐이기 했지만서도 벽제로 화천으로(벽제는 또 혼자였는데 화천은 다행히 짝지와 함께 했더랬습니다.) 땅을 일구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귀농길잡이>, <자연을 꿈꾸는 뒷간>, <내손으로 받는 우리종자>,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소농-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와 같은 책들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귀농학교를 수료하면서는 귀농운동본부 회원으로 가입을 했습니다. 마음을 굳힌 건 아니었지만 일단 서울은 뜨기로 의기투합한 거였죠. 지금보다는 천천히, 단순하게, 자유롭게 살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또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았는지 언제 귀농학교를 다녔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지냈던 어느 날, 계절이 바뀌어 눈발이 내리던 그 날, 생각지도 못했던 책 한권이 집으로 배달됐답니다.

 

4.

춘천으로 이사한 지도 그새 1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동안 잘 적응했나, 싶기도 하다가 이유 없이 싸우기도 하고 또 이유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하는 걸 보니 아직은 물갈이 중인가 봅니다. 그래도 5년 전 화장실에 갈 적마다 담배 대신 사무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책장에서 꺼내든 <작은책>과 2년 전 서울을 뜨기로 의기투합하며 귀농본부 회원에 가입하면서부터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빠짐없이 배달돼 오는 <귀농통문>이 어느새 책장 한 켠을 빼꼭히 채우고 있는 걸 보니 이제 담배는 확실히 끊은 것 같기도 하고, 무작정 서울을 뜨기도 했으니 귀농에 한 걸음 다가왔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담배는 피운 기간만큼이나 끊어야 정말 끊었다, 할 수 있고, 내 땅 한 뼘 없어도 시골로 내려가 땅을 일궈야 의기투합을 이뤘다, 할 수 있으니 아직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잠시 뒷간에 들어가 <작은책> 혹은 <귀농통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처음 마음 잃지 않고 되새김질하는 것. 그것 하나면 이 물갈이, 힘들지만은 않겠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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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1:06 2009/07/08 11:06

 

텔레비전이라면 좀체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도 곧잘 챙겨보는 몇 개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매주 토요일 느지막한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3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닥 특별하지도 않는 소소한 일상이나 혹은 곧 사라지게 될 어떤 모습들을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담백하게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새 그 일상, 그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이날 방송도 그랬다. 낮에 잠깐 집 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만나게 되는 시립도서관에서 최종규의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빌려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며 헌 책방 나들이를 하다 잠깐 텔레비전을 켰는데,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화면에 잡힌 것이다. 반갑기 그지없다.

                                                                                                                                          

 

“고르다 보면 꼭 한권씩 눈에 띄는 책이 있거든요. 그럼 그걸 사면 소중하죠. 밥을 안 먹어도 그걸 사면 배부르고요.” ‘책갈피 사이 인생이 머무는 풍경-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다큐멘터리 3일’

 

낯선 길을 걸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이럴까. 돌이켜보면 꼭 일 년 전,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춘천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고 서둘러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낙성대며, 신림동이며, 신촌, 청계천, 서대문으로 헌책방 나들이를 나섰던 모습이 겹쳐진다. 거리상으로야 100km도 안되고 시간상으로도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아무래도 서울 출타는커녕 일부러라도 헌책방에 오기는 어려울 듯싶어 마음에 담아두려 부러 시간을 냈던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낙성대 전철역, 그리고 [흙서점].

 

“<흙서점>은 책방이 썩 넓은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밭(분야) 책을 많이 꽂아 둘 수는 없지만, 좁은 자리에 놓는다고 해도 그 밭 책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고 해요. 꽤나 많은 책이 들락거리기에 찾을 만한 책은 웬만큼 찾고 즐길 수 있답니다. 자리는 찾는 사람이 많고, 팔리는 책은 많으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 p.246

 

책표지 안쪽을 보니 ‘2008.3.5 낙성대 흙서점’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꼬박 1년이나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첫 느낌은 책의 제목 때문인지 여행 책인 양 싶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가 옮겼는데 적장 지은이는 낯설다. 질베르 시누에. 내 기억으론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서 고작 ‘Y2K’로밖에 남지 않은, 새천년, 새시기의 첫 해에 쓰였고, 우리나라엔 한 해 뒤인 2001년에 나왔으니 꽤나 오래된 책이다. 게다가 초판본이어서인지 책장도 조금은 누렇다. 하지만 여기저기 전에 읽었던 이가 남겨둔 밑줄을 빼면 새 책이나 다름없는데다 여느 책보다 크기도 작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손에 잘 잡힌다. 다만 파리 교외 깡마른 중국인에게서 산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주일간의 ‘여행’이 결코 유쾌하지 않아 오래도록 책을 붙들게 만든다.

 

“대부분의 실험실들은 자기들의 특허권 옹호를 강조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은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약값을 정해 놓고 있다. 약이 상업화되려면 시장이 커야 할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주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빨리. 제약회사들은 미리 가격을 정해 놓고, 증권 시장에서 시세가 오르게 할 시장들만 선정할 뿐이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92 '수요일-루시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네.

 

“리틀톤에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이미 출생 인종, 신체적 특징, 즉 눈과 머리의 색깔, 신장, 혈액형 등에 따라 난세포 또는 정액을 선택할 수 있는 ‘목록’이 존재한다. 그밖에 제공자들의 건강 상태와 병치레 경력, 지능지수, 교육 수준에 따라서도 선택할 수 있다. 벌써 그 ‘목록’들은 국립 수정 등기소의 목록처럼 인터넷 망에 올라 있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145. 토요일-네가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기 위하여.

 

종종 새것 보다 오래된 것이 더 끌릴 때가 있다. 애주가에게 묵은 술이 깊은 맛을 주고, 1,000만 화소에서 맛볼 수 없는 기다림을 필름 카메라가 줄 때가 그렇다. 막 택배로 도착한 새 책이 내는 잉크냄새보다는 도서관에서 혹은 헌책방에서 풍겨오는 책 냄새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윤에 쫓겨, 오로지 지배의 대상이 대어 죽어가는 자연, 산업국들의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성 파괴, 공동체의 해체와 같은 오래된 질문들은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만큼 쉽게, 깨끗이 잊힐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의 ‘보거’는 머리가 세 개고 꼬리는 뱀의 꼬리를 닮은 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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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22:40 2009/05/25 22:40

<죽음의 밥상> -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함규진 옮김

<“먹지마세요” GMO> - 마틴 티틀.킴벌리 월슨 지음/김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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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농사로 바쁜 하루다. 퇴비 넣어주랴, 밭 갈아주랴, 이랑 만들랴, 눈코 뜰 새 없다. 특히나 비소식이라도 있으면 모종 사다 심으랴, 씨앗 뿌리랴, 그야말로 한 손이라도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올 해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밭을 뒤늦게 구하는 바람에 남들보다 곱절은 바쁘다. 급한 마음이지만 서두른다고 드넓은 밭을 한 번에 다 채울 수는 없으니 일기예보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며칠 전엔 퇴비를 사러 인근 농협에 들렀다. 농지원부도 모르는 부재지주의 밭을 빌린 탓으로 농협 조합원 가격보다 1포대 당 200원이나 더 주고 퇴비를 사면서 한 참이나 속이 상해 있는데 고추며, 오이며, 호박 모종들이 왜 그리 자꾸 눈에 밟히는지. 아무래도 늦은 밭농사 준비로 마음이 급할 대로 급한 모양이다. 

     

드넓은 밭에 낑낑대며 퇴비를 다 뿌리고 나니 슬슬 여기엔 토마토며 오이를 심고, 저쪽엔 콩 두이랑에 고추 한 이랑을 섞어 심고, 조기엔 여름 내 먹을 옥수수, 저짝엔 겨울 내 먹을 고구마를 심을까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의욕 넘치는 2년차 새내기 농부로서 조그맣게 비닐하우스 하나 지어 놓고 좋은 씨앗 골라 모종 길러 심고는 싶지만 내 밭이 아닌 이상 그것도 매년 이 밭 저 밭 기웃기웃하며 겨우겨우 밭을 구하는 신세에 그저 마음뿐이다. 허나 내 밭이 있다고 해서 그 꿈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밭작물들은 모종을 내서 옮겨 심어도 되는 것이 있고 씨앗을 뿌려야만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조그맣게 텃밭농사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아는 얘기일 게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종을 내서 옮겨 심는 것도 씨앗을 심어 모종을 길러내는 것이니 쪽파나 감자와 같이 구근으로 심는 것을 빼면 모든 작물이 씨앗으로 번식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 옛날부터 농부네들은 여름 내 땀 흘려 길러낸 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가장 실한 것들만 따로 모아 다음 해에 쓸 종자를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2.

어머니 49재 음식을 준비할 때였으니 벌써 3년 전 일이다. 동그랑땡이니 적을 만드느라 돼지고기를 만졌는데 전에 없이 빨간 두드러기가 몸 여기저기에 생기는 게 아닌가. 처음엔 그냥 고기가 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두 번인가 더 돼지고기를 접할 기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은 입안에 넣었고 한 번은 역시 손에 대기만 했는데도 예의 그 두드러기가 또 나타났다. 이를 어째, 별수 없어 이번엔 한의원엘 찾았는데, 체질이 바뀌었으니 고기를 끊던가, 약을 먹던가, 하란다.

 

쩝. 하지만 어쩌랴. 애당초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면 ‘공산품 고기는 그만 먹어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던 차라 아예 잘 됐다 싶어 그 기회로 육고기를 멀리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으나 이제껏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온갖 나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맞춰 봄나물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맛을 들이기에는 제격일 것 같았고, 된장에, 고추장에, 초장에, 들기름에, 이렇게 저렇게 맛을 내니 어느새 나물 맛에 흠뻑 빠지게 됐다.

 

그 이후로 어찌된 게 가끔은 생선 한, 두 마리를 밥상에 올리기도 하고, 아직은 멸치국수와 초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도 채식주의자이냐,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아마도 소나 돼지, 양과 같은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으나 해산물과 물고기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임을 확인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종교적이거나 문화적으로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환경적이고 인권적이어야 진정한 채식주의인 것 같아서다.

 

3.

다소 생소하지만 매우 논쟁적인 ‘종(種)차별주의자’라는 용어로 잘 알려진 피터 싱어와 농부이자 변호사이며 싱어와 함께 <동물 농장(Animal Factories)>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짐 메이슨은 두 번째로 펴낸 <죽음의 밥상(The Ethics of What We Eat)>을 통해 이전의 저작에서와 같이 공장형 농장 시스템 속에서 비윤리적이로 수태, 사육, 도살되는 동물들을 밥상에 올리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인근 대형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 가족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다른 한 가족, 그리고 가장 엄격하게 윤리적인 기준을 지키며 오직 채소만을 먹는 베건 가족의 식탁에 대한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에 나선다.

 

부리가 잘린 채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사육장에서 길러지다 한 시간 만에 7,200마리를 도살할 수 있는 도살라인에 억지로 밀어 넣어지는 닭. 일생에 한 번도 바깥나들이를 못하며, 풀밭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축사에 갇혀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으며 크는 돼지. 접시쓰레기(레스토랑의 고기요리 찌꺼기), 닭고기와 돼지고기, 닭장쓰레기(닭똥, 닭 시체, 닭털, 먹다 남은 모이 등등), 그리고 소의 피와 지방이 포함된 사료를 먹고 키워지는 소.

 

대형 마트에서 일주일치 음식을 한꺼번에 쇼핑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외식을 즐기는 그리고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즐겨먹는 평범한 현대인의 식단 속에 감춰진 진실들을 들춰내는 것에만 멈췄다면 저자들이 서문에 썼듯이 이전의 저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단순한 수정.증보에 지나니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싱어와 메이슨 두 저자들은 최근 불고 있는 유기농 열풍, 공정무역(fair trad) 운동, 로컬푸드(local food), 그리고 여러 윤리적 소비주의(ethical consumerism) 등등 더 넓은 쟁점들에 대해 시선을 넓히고 있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윤리학적인 접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 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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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사회 어디에서나 관습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가 갖춰져 있고 사람들은 개인의 소유권을 완벽하게 확립하고 강화하기 위한 투명한 메카니즘을 만드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 소유권이 하나의 공동체가 보여준 인내와 수 세대에 걸친 집단적인 노력의 소산이었던 식물이나 종자와 같은 자연의 산물들에까지 딱지를 붙일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굶주림 혹은 기아의 문제는 작물의 수확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정치적인 문제라는 점은 이미 1960년대 거대 화학 기업들, 영향력 있는 재단들,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을 주도했던 때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 공학 기업들은 기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전히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이들의 말대로 막대한 양의 식량을 생산하도록, 그냥 그들이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큼 생산하도록 놓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유전공학의 사회적, 윤리적 의미를 공론화하기 위해 의식 있는 과학자, 의사, 활동가들이 함께 결성한 ‘책임 있는 유전학 위원회(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 CRG)’ 의장을 맡고 있는 마틴 티틀과 역시 이 위원회 위원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그린피스에서 생명공학기술과 관련된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킴벌리 윌슨은 이러한 질문들의 밑바탕에는 바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두 저자들은 식품과 관련된 유전자 조작 혁명의 모든 것을 자세히 파헤치고 있다. 유전공학이 작동하는 방식,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어진 식품들의 위험성, 이러한 식품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들은 누구이며 손해를 보는 이들은 누구인지, 굶주린 이 세계를 먹여 살릴 것이라는 거대 다국적 곡물 기업의 망언, 생명을 조작하는 행위가 가지는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까지.

 

하지만 <“먹지마세요” GMO>가 앞서의 책과 마찬가지로 단지 유전자 조직 식품의 모든 것만을 알려주는 것에 멈추었다면 GMO에 대한 불편한 진실의 폭로 혹은 유전공학에 대한 위기의식의 환기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놀라운 힘과 정당한 윤리적 권위를 지닌 평범한 시민들이 행동에 나선다면 안전한 먹을거리를 되찾을 수 있음을 역설함으로써 자칫 무력감에 빠질 수 있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일상생활에서, 각자의 공동체에서 인정된 유기농 제품을 사고, 자신이 먹을 것은 스스로 기르고, 제철 식품을 구입하고,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얻기 위해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고, 지역 단체 혹은 전국 규모의 단체에 가입하는 자그마한 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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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15:04 2009/05/16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