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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옥-'시다의 꿈'

최근 박노해씨 시집 '노동의 새벽' 20돌 헌정앨범이 제작돼 발매를 시작했다.

 

한 기자는 "2004년 대중음악계는 김민기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이 새로운 음반으로 제작됐다는 것과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 노래 앨범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두 가지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문화일보).

 

'노동의 새벽' 앨범에서 발견한 정말 뜻밖이자 반가운 이름. 전순옥.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자 국내에서 드물게 여성 노동자의 삶을 연구하는 학자인 그가 '시다의 꿈'을 불렀다.

 

내가 전순옥씨를 만난건 지난 5월. <대화>라는 대담을 기획하면서 첫 번째 손님으로 그를 모셨다. 

 

여전히 종로구 창신 2동, 동대문 시장 골목을 떠나지 않은 그는 말도 많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웠다.




기자란 인간들이 늘 그러하듯 바쁘다는 핑계로 '단물'만 쏙 빼먹고 연락도 못 드리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동대문 시장통에서 그의 소개로 찾은 막걸리집에서 먹은 부침개와 막걸리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말도 못하게 싸다.)  전순옥씨가 남편 크리스의 전화로 약간 술이 오른 나, 강양구 기자, 조주은씨(이대 여성학과 박사과정.<현대가족이야기> 저자)를 남겨두고 먼저 가서 더 아쉬웠다.

 

해가 가기 전에 다시 동대문을 찾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막걸리 한잔 할 수 있을까.    

 

다음은 <대화>에 실렸던 전순옥씨 소개글.

 

동대문 창신동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인 전순옥(50)씨에게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전순옥씨 인생에도 큰 전환점이었다. 당시 16살이었던 그녀는 어머니 이소선씨와 함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씨는 22세까지 봉제의류 공장에서 일했고 그 후 노동조합 활동, 지역운동을 했다. 그녀는 35세의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라 지난 2001년 런던 워릭대에서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다룬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They are not machines)>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그해 워릭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최근 출간된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한겨레신문사 펴냄)는 이 논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동일방직노조·청계피복노조 등 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 1백여명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 또 그녀들의 삶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전씨는 유학을 떠나기 전 바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영국 대학과 성공회대 교수직을 마다하고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는 동대문에서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하며 "저소득층 여성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전씨는 또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A Single Spark)을 영어로 옮긴 데 이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의문사진상위원회 등의 한국 민주화운동사 영문 번역 작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작업에는 뒤늦게 그녀의 인생의 반려자가 된 남편 크리스 조엘(61)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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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란 없다

가까워지고, 젖어들고, 스며들고, 익숙해지는 데는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멀어지는 것은 돌아서는 순간이면 족하다.

 

한 번의 어긋남
그것이 객기이든, 아니면 불협화음이든
다시 매끈하게 이어 붙이기란 정말 힘든가 보다.

 

그리고
눈 가리고 아웅
같은 것 하기엔
너무 늙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간사하다.
오해란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고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오해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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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누가 성매매여성들의 적으로 남을 것인가&quot;

지난 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40일 가까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성매매여성들을 인터뷰한 뒤 오늘 기사가 출고되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일주일 내내 그 기사에만 매달린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쓴 기사다.

 

기사에 못 쓴 얘기가 있다면

 

탈성매매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 여성단체 관계자 인터뷰와 여성부 관계자 인터뷰다.

 

이 여성단체 관계자는 현장 출신(성매매 경험이 있는) 활동가라는 점에서 매우 도움이 많이 됐다. 

 

반면 여성부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는 성매매 여성들이 주장하고 있는 '배제'와 '소외'의 실체가 무엇인지 절감케 했다.

 




한 여성부 고위관계자는 기자가 "성매매여성들의 여성부 앞 집회"라고 말하자, "여성부가 아니라 외교통상부 앞 집회죠"라고 바로 잡아 주기도 했다. (참고로 여성부는 정부종합청사 본관에 있으며, 외교통상부는 별관에 있다. 두 건물은 도보로 1-2분 거리로 매우 가깝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성매매여성들이 여성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묻자 짜증이 역력히 묻어나는 목소리로 "시위를 했었는데 그 문제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사실 여성부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사리 '성매매특별법'을 만들어 놓았더니 정작 양쪽 모두에게 비난을 듣는 상황이 돼버렸으니 당황스럽고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여성들의 적이 누구로 남을 것인가." 이 질문을 이 혼란 속에서 헤매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은 기억해야할 듯 싶다.

 

아래는 프레시안 기사 링크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41214092944&s_menu=사회

 

그리고 앞에 소개한 여성단체 관계자 인터뷰 중 꼭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다.

 

문 : 단식 농성중인 성매매여성들은 정부 대책의 비현실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답 : 다른 사람들의 전업은 오히려 이들보다 쉽다. 성매매여성들이 난감한 건 이력서에 뭘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직장 생활을 하면 개인 시간이 있으니까 전업을 준비할 수 있다. 취미 생활을 통해 자기 특기를 개발할 수도 있고.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6개월만에 다른 기술을 배워 전업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또 인간관계나 사회성 등 기타 다른 부분들도 많이 부족하다. 이건 교육과 치료가 함께 되어야할 부분이다.

 

문 : 성매매여성들은 정책 마련 과정에서 자신들이 철저히 배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답 : 정부에서 말 그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소홀히한 측면이 크다.

 

취업 교육만 봐도 많이 다양하지 못하다.

 

또 교육문제도 잇다. 상담하다 보면 현장 여성들 거의가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다. 근데 현재는 고졸 검정고시 프로그램만 있다. 그러다 보니 기술직으로 재취업 프로그램이 한정되는 측면이 있다. 대학가고 싶은 친구들에게 수능 준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훨씬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문 : 2007년까지 단속을 유예시켜달라는 건 정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 아닌가.

 

답 ; 사실 이들이 정부 단속에 있어 가장 반발하는 것은 형식적인 단속이라는 것이다. 모든 지역을 다 단속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지역만 하고, 집창촌만 단속하고 있다. 앞으로는 단속한다고 하고 뒤로는 영업을 하던지 말던지, 이런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네들은 영업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게 하냐'는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일정기간동안 단속하지 않고 빚 갚고 빨리 나가라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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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증후군

해마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약간의 우울증을 겪었다.

 

또 한해가 가는구나...하는 회한과 더불어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올해는 비교적 편안하다.

당분간은 나이가 내게 큰 차이를 가져다주는 숫자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러다 보니

여전히 혼자인 내 위치가 참 편안하다.

 

야호!!

 

아래는 작년 연말에 썼던 글.

 

올해가 지나고 내년을 맞이하면서야 서서히 이런 경지로 다가가고 있는

 

날 느낀다.

 

친밀감에 대한 희구, 제도로서의 결혼, 관계에 대한 부족한 상상력, 생물학적 존재로서 가지는 성적 욕망,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간섭의 위태로운 경계...이런 복잡한 계산 속에서 빠져, 어느덧 실제 원하는 것은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해 버렸다. 스스로가 안쓰럽다.

 

가부장제가 어떤 관계를 통해(배타적인 이성애 결혼, 낭만적 사랑)여성을 구속하고 있다면 그것은 관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굴러가게 하는 관계의 각본을 통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허용 가능한 관계를 제한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친밀한 만남의 가능성과 종류. 그것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친구, 아니면 애인, 아니면 부인과 남편, 그것도 아니면? 정부?!

 

어떤 새로운 사람이 내 삶의 반경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 상대방 자체를 느끼고 알아가는 여정으로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대신,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관계의 종류들 중에서 그와 내가 어떤 종류의 관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느라 한동안 강박에 시달려야 한다. 친구로 남을 것인가, 연애를 시작할 것인가, 결혼까지 해야하는 것인가...

 

그 결정을 끝마치면 '종류'에 따른 관계의 수위와 내용을 적용시키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그 관계는 안정되고 익숙한 트랙 속으로 들어와 정해진 경로를 돌기 시작한다.

 

이 정해진 트랙 위에서 잠시 무장해체되고 싶었다. 관계에 이름짓기 하는 걸 잠시 멈추고 그저 상대를 풍부하고 섬세하게 알아가는 과정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상대와 시작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고민하느라 연애시절의 반을 써버리고, 그 상대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느라 그 나머지 반을 써버리는 연애와 결혼의 각본을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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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왜 천재, 또는 유사 천재, 더 나아가서 스스로가 천재라고 믿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까...
 
그들에게 범인은 잠시 취하고 버릴 가치만 인정되는 게 아닐까...
 
그들의 큰 지적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키기엔
한 개인은 그저 너무 지루하고, 결국엔 귀찮은 존재일 뿐.
 
어쨌든 분명한 건

난 천재들을 인정하되
결코 그들을 동경하고 싶진 않은 범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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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이라크 '깜짝 방문' 이모저모

오늘까지 청와대 기자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자이툰 부대 '깜짝 방문'이 화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8일 이라크 자이툰 부대 방문은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질만큼, '철통 보안' 속에 이뤄졌다는 점 때문에 더 많은 후문을 낳고 있다.

 

우선 9일 프레시안 기사에도 썼는데, 방문국인 쿠웨이트와 이라크에 대통령 안전을 위해 거짓 이유를 대고 방문후 '사후양해'를 구하는 등 유례 없는 여러가지 일이 발생했었다. 

 

경유국인 쿠웨이트에는 국제회의 등 다른 이유로 노 대통령 방문 이유를 대고, 실무진을 12월초 현지에 파견해 항로조정과 행사협조, 경호준비 등의 세부절차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유지가 터키가 아닌 쿠웨이트로 결정난 것도 비정상적인 입.출국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로도 터키를 거쳐가는 게 더 가깝고 쿠웨이트로 들어갈 경우 바그다드를 지나쳐야 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그러나 쿠웨이트에 무바라크 미 공군기지가 있고 정부와 친분 관계를 고려할 때 쿠웨이트 쪽에 양해를 구하는게 더 손쉬웠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 방문 사실은 노 대통령이 이라크 방문을 마치고 떠난 지 두시간 뒤인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전 11시40분께 이라크측에, 쿠웨이트에는 낮 12시45분께 노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통보됐다. 

 

이에 따라 민간인인 동행 기자들까지도 비자 없이 쿠웨이트와 이라크를 방문, 출입국 기록이 전혀 남지 않는 이례적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극비 방문과정에 미국과 긴밀한 사전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행정부에 고위외교채널을 가동해 이같은 계획이 사전통보 됐고, 합참본부장이 현재 다국적군 사령부에 다시 통보했다. 노대통령이 아르빌로 이동할 때 미국 전투기 4대가 초계비행을 하면서 경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에 대해 숱한 기사가 쏟아졌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경향신문 사설이었다. 경향신문은 이날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에 대해 "가지 말아야할 곳에 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노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을 높이 평가하는 사설을 써 대조를 이뤘다.

 

다음은 경향 사설 전문.

 

盧대통령 이라크 방문 잘못됐다  


유럽순방을 마친 노무현대통령이 어제 귀로에 이라크를 전격 방문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라크가 어떤 곳인가.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이 초래한 국제질서의 파괴를 증거해주는 현장이다. 내년 1월 이라크 총선거를 앞둔 이라크인의 저항과 미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수 많은 이라크인과 미군이 죽임을 당한 처참한 전장이다.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요구에 굴복해 불의(不義)한 전쟁에 ‘평화·재건부태 파병’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파병함으로써 이제는 부끄러움 없이 떠올릴 수 없는 땅이다.


그 곳에 어떻게 우리의 대통령이 무슨 자랑스러운 정복자나 전시 최고사령관이라도 되는 양 이라크 땅을 찾아 들어갔다는 말인가. 정부는 자이툰부대 파병때 이를 숨기고 파병이후에도 한동안 그 존재가 알려질까봐 철저히 감춰왔다. 파병이 올바른 결정이고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면, 그랬을까.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자랑거리로 변했다는 말인가. 알 수 없다.


파병국 정상이 이라크를 방문한 경우는 미국, 영국, 폴란드 뿐이다. 미·영침략 동맹에 가입하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이럴 수가 없다. 노대통령은 파병을 하는 대신 미국이 북한핵문제에서 협상의 자세로 나와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북핵문제 교착상태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를 제공했다. 노대통령은 유럽방문중 북핵문제에 관해 제목소리를 당당히 낼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추종자세로는 북핵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올바로 인식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유럽에서의 ‘자주적’ 발언과 이라크 방문 도무지 연결이 안된다. 부시대통령이 이 방문에 고무돼 북핵문제에서 양보할 것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은 과거에 확인된 바 있다. 노대통령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갔다.  

 

이번에 조선일보 사설 전문.

 

대통령 자이툰부대 방문 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럽순방 후 귀국 길에 이라크의 자이툰 부대를 방문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머나먼 남의 나라 땅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장병들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번 방문은 반가운 소식이다.

노 대통령의 자이툰부대 방문은 밖으로는 우리의 파병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고, 안으로는 이라크 파병에 대한 소모적인 논란을 잠재우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떠나는지 안 떠나는지도 모르게 쉬쉬하며 임지로 떠나 마음이 아팠을 자이툰 부대원들도 마음이 풀리고 힘이 다시 솟아난 표정들이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장병들을 격려하면서 “여러분의 땀과 노력이 한국의 또 다른 힘이고 대한민국의 발언권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말 그대로다. 자이툰부대는 이라크의 평화를 지키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본국(本國)을 지켜주는 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파병한 것도 한국의 안보를 뒤받쳐주는 한·미(韓美)동맹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라크는 총선을 앞두고 내전(內戰)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 CIA 바그다드 지국이 이라크의 장래가 비관적이라는 비밀보고서를 제출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자이툰부대를 향한 테러 위협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파병을 결정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들이다. 노 대통령은 며칠 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군은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이라크전의 타당성 여부를 논란으로 삼기보다는 향후 이라크의 안정, 자유와 민주주의의 구축 등을 위한 효과적인 해법에 보다 치중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올바른 현실 인식이고 파병국가의 대통령이 취할 당연한 자세라고 본다.

 

국회 국방위는 연말로 끝나는 자이툰부대의 파병기간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는 동의안을 통과시키고 본회의로 넘겼다. 파병에 반대하는 84명의 여야 의원들이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구해 논란이 예상된다. 대통령은 전장(戰場)의 자이툰부대를 방문했는데도 집권당 의원들이 더 앞장서서 파병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책임있는 태도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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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한때 독재정권에 불만을 품던,
그러나 결코 대놓고 대들지 못하던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의 심금을 울리던 영화가 있었다.

 

또 90년대 후반.
아이엠에프로 사회진출에서부터 좌절을 경험해야 했던,
그래서 가난한 젊은 남성들이
어린 연인들 앞에서 허풍치며 부르던 절절한 구애가도 있었다.

 

그 이름하여
'맨발의 청춘'

 

전혀 다른 맥락일지 몰라도
이 노래의 제목도 '맨발'이다.

 

맨발은 늘 서럽다.

 

그 서러움은 때론 상대에게 가장 큰 절절함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눈 쌓인 설원을 맨발로 가로지를 수도 있다는 절절함...

언 맨발을 기꺼이 가슴에 안고 녹여줄 상대를 만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예의 어긋남을 즐기는 신의 못된 심사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두운 눈 때문인지 몰라도

세상은 사람들이 만들어온 외로움으로 가득 차있다.

 

결국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스스로 무너뜨렸던 사랑을 복원하는 것이다.





'Bare foot'은 <연어알> (Salmonberries, 1991)이란 영화 주제곡이다.

 

1991년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 영화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건 하얀 눈밭이다

눈이 가져다 주는 그 차갑고 황량한 느낌은

'맨발로 걸어가겠다'는 감정을 더 절실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주제곡을 부른 가수 K.D. Lang 은

데뷔 때부터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다. 

 

Bare foot

 

When the sun goes down here
And darkness falls
The blanket of winter
Leaves no light at all

 

You search for shelter
To calm the storm
Shaking with an instinct
Just to stay warm

 

But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If you'd open up your door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You hear the howling
Of dogs and wind
Stirring up the secrets
That are frozen within

 

The ice will haunt you
It lays so deep
Locking up inside you
The dreams that you keep

 

But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If you'd open up your door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If you'd open up your door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This wind ...
through my soul ...
blows cold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If you'd open up your door
I'd walk through the snow baref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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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짜 독하게 살거다

"전태일이 자기가 너무 가난해서, 너무 비참하게 살아 운동을 한 게 아니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가 고통스럽게 살기 때문에 임금을 더 달라고 싸운 게 아니다. 타인에 대한 애정 때문에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죽었다. 개인의 문제였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재단사가 됐다.

 

전태일은 10살 때부터 미싱을 배워 미싱사였다. 청계천에서는 사실 A급 미싱사가  재단사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 그래서 미싱사로 돈을 더 벌 수 있었는데 재단사가 됐다. 이것도 본인한테는 굉장한 의미가 있다. 재단사가 돼서 시다들한테 잘해주고 싶어했다. 근데 막상 재단사가 돼도 아무 소용 없으니까 노동법 들고 신문사에 쫓아가고 해본 것이다. 사회의 진보의 근본적인 동력은 자기 자신의 고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선도한 사람들은 이웃의 고통 때문에 나섰다.

 

역사를 해석하는데 물질주의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심을 갖고 해석했으면 한다.


전태일이 못살아서가 아니고 진짜 훌륭해서 한 것이라고."

(11월 23일. 소설가 안재성씨 인터뷰 중)



최근 내 화두는 '이타적 인간'이다.

 

안재성씨와 안건모씨(<작은책> 편집장)의 인터뷰에서 느꼈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체 게바라를 보면서도 느꼈다.

 

또 최근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감옥에 가게된 염창근씨를 보면서도 

대의명분에 기반한 '이타적 선택'이 가질 수 있는 힘을 감지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들은

나와, 혹은 대다수의 인간 군생들과 다른 종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루에 수백번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날 보면

그들은 아주 '독한' 별종임에 틀림없다.

 

나도 진짜 '독하게' 살고 싶다


 

 

(김정환 시인의 <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 전태일에 대한 명상>에 실린 임옥상 화백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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