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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성환 국장의 결혼.. (2) 2004/12/26
  2. 얼마나 어렵게 불린 뱃살인데... (3) 2004/12/26
  3. 우와!!! 멋지다... (8) 2004/12/23
  4. 역시 이은미 - 이은미 콘서트 (7) 2004/12/19
  5. 관제 데모 ? (6) 2004/12/18
  6. 2년 전임을 마치고... (4) 2004/12/18
  7. [퍼서] 그꼬마 최고였다. (2) 2004/12/16
  8. 아들과 얘기라도 해 봐야 하는데... (2) 2004/12/16
  9. 전화 좀 받아라!!! (15) 2004/12/14
  10. 관악산행.... (2) 2004/12/13

* 이 글은 작은나무님의 [하얀모카님 결혼하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싫은 소리, 귀찮은 부탁 다 들어주면서도

언짢은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던 배성환 국장이

지난 12월 19일 결혼했다.

결혼식장에서 하객자리에 앉아서 겨우 두장의 사진을 찍었다.

색깔이 너무 붉은색이 많고, 어둡다...

하튼 행복한 부부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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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6 20:43 2004/12/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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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에 걸린 사진을 보고 뱃살을 좀 빼라는 동지들의 핀잔이 많은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산오리는 그 뱃살에 대해 아직까지는

그리 불만이 없다.

힘들게, 원하고, 살찌고 싶어서, 부러워서 

그렇게 만들어 온 뱃살이니까...



시골에서 물론 잘 먹을 것도 없어서 모두들 빼빼 마르기도 했지만,

형제들 많았던 우리집 식구들은 더 말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도

친척들이나 동네 어른들이 빼빼 마른 나를 보며

불쌍히(?) 여겨 한마디 하는 말이

'너는 너무 말랐구나'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에미는 도체 애를 얼마나 못먹이기에 이렇게 말랐냐?'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어릴적 산오리 사진을 본 큰 아들놈이

"아빠 어릴적 사진보면 짱 웃겨... 다리가 젓가락이야..ㅋㅋ"

이렇게 놀렸다.

 

어린 맘에도 나는 내가 마른 것이 우리 어머니를 욕먹이는 일이란 걸 알았다.

근데 우리 어머니가 없는 살림에 쌀이나 보리를 퍼내서 혼자 잘 드시고 있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는 서울가 계시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혼자서 고생하면서

농사지으면서 애들 키우고 있었는데,

내가 살 안찌는 것을 가지고 왜 우리 어머니를 욕하는 것일까 기분이 나뻤다.

그래서 나는 살 쪄야 겠다고 열심히 먹었다.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살찌기 위해서라도 빨리 많이 먹었다.

지금도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나만큼 빨리 먹는 사람 별로 없다.

그리고 아직도 밥을 한공기로 그치지 않고, 반공기는 더 먹을 때가 많다.

형제들간에 밥을 먹을때도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간 아예 다 뺏기게 되니까

우선 마구 먹어두어야 했다. 물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먹고살만해 져서도 살은 찌지 않았다.

결혼도 하고, 삽겹살도 먹고, 배 곪지 않아도 살은 찌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제는 아내에게까지 그 화살을 돌렸고,

집안 형제들은 여전히 어머니 탓으로 돌렸다.

아내가 제대로 남편을 챙기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또 어머니는 그 없던 시절에 가끔은 닭이라도 한마리씩 잡아서 자식들 먹이거나

보약이라도 한재씩은 먹였어야 하는데,

그런 융통성도 없었기 때문에 어린시절에 곪았던 몸이 지금 잘 먹는다고

살이 찌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요리라면 누구보다 잘해서 남편을 먹였고,

(팔불출 같아서 뭣하지만,

 산오리 아내의 요리는 집안에서도, 회사 사람들한테도 소문이 났다.

  그리고 남편이 집에만 있으면 아내는 손님 초대할때처럼 음식을 잘, 많이 해서 준다.) 

어머니도 없는 살림에 할머니 눈치 보면서 그래도 챙겨 먹이려고 노력했던거 같다.

더구나 산오리는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장손'이기 때문에

할머니가 엄청 챙겨 주셨다. 그러니 동생들이나 동네의 다른 애들보다 그리 못먹었던

것은 아닌 거 같다. 물론 장가 갈때 까지도 한약(보약)이란 건 구경도 먹어보지도 못했다.

그시절에 누가 보약 먹고 자랐을까?

 

그러니 이제는 어머니 욕 먹이는 것도 모자라

아내에게 욕먹이는 산오리가 되었으니 살 쪄야 겠다는 건 더 절실했다.

못먹던 고기도 먹어서 단련하고,

못먹던 술도 먹어서 늘리고 단련하고...

그래서 꾸준히 꾸준히 조금씩 몸무게를 늘려 왔다.

그래도 한 4-5년 전까지 키 175 센티에 몸무게 65 킬로를 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약간씩 몸무게가 늘었고, 2년전 담배 끊으면서 조금 더 

몸무게가 늘었고, 노조 전임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더니 역시 몸무게 느는 데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 73-74킬로까지 몸무게를 늘렸다.

당연히 뱃살도 늘었다.

 

전임 끝나고 회사에 되돌아 갔더니

보는 사람마다 '살쪘네요.' 한다.

집안 식구들도 '이제 보기 좋네' 한다.

그러니 그전에는 피골이 상접한 꼴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찌운 살이고, 내가 바라고 원했던 살인데,

그래서 산오리는 그 뱃살과 얼굴살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데 뱃살 늘고, 살 찌니까 허리 둔해지고,

또 걷는데 숨차는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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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6 11:09 2004/12/2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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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대문 만들어 달라고 rivermi 님께 떼를 썼더니,

이렇게 만들어 주셨다.

넘 멋진 선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저기 구분되어 있는 선은 어디서 지우는지 모르겠네요..ㅋㅋ

왼쪽의 프로필 사진은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잘 안바뀌네요.

또 다른 것들은 공부해 가면서, 천천히 배우고 바꿔봐야겠네요..

 

연말이 닥치니까 얼굴좀 한번씩 보자면서 송년회가 늘어나고 있네요.

며칠동안 못먹는 술을 '정신력(?)'으로 견디면서

많이 마셨더니, 아침에 속 쓰립니다...

전임 끝나고 지난 20일 회사에 출근해서 돌아왔다고 신고하고서는

이번주에는 휴가 냈어요.

어제 그제는 대전에 가서 마지막 중앙위원회 회의하고 돌아왔어요

또 오늘 부터 내일까지 수련회가 있어서 이것도 마무리하려 했는데,

수련회가 취소되어서 이틀동안 어디론가로 날라야겠습니다.

연말 마지막주일도 좀 놀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냥 발령이 났고, 돌아가 보니까 마냥 놀수 없게 되어서

다음주부터는 할수 없이 회사로 가야겠네요.

회사는, 그 분위기는 어쩔수 없는 '회사분위기'이더군요.

지겹도록 변하지 않는....

그래도 새롭게 시작하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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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3 09:43 2004/12/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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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9 22:49 2004/12/19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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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데모 ?

from 단순한 삶!!! 2004/12/18 22:16

산에나 가는 건데, 게으름 피우다가 집에서 개기고 있던 차에

지구당 전 사무국장이 평화바람에 와서 같이 가자는 바람에 집을 나섰다.

국보법 철폐 촛불집회...

광화문에 가니까 도로의 절반은 경찰들이 막아서 집회참가자들의 꽁무니까지

뺑 둘러 막아서 그걸 다 돌아서 겨우 집회대오에 합류했다.

지구당에서 미리 온 사람들 여남은명 있었는데, 그 사람들 찾아서 함께 앉았다.



진행되고 있었고,

뒤이어 6시 10분이 넘어서서 본행사를 한다고 코미디언 한친구가 올라와서

행사를 진행했다.

그즈음인가 길의 절반을 가리고(더구나 이번에는 종로쪽이 아니라 청계천쪽 도로를 내주고 광화문으로 가는 차들을 보내주고 있었다) 있더니 갑자기 모두들 뒤로 빠지면서 길을 확 넓혀 주었다.

 

사전행사부터 이런저런 발언들이 좀 짜증난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본행사에 들어가서도 그저 수구 꼴통 한나라당이나 욕해대고 있다.

표어도 '수구꼴통의 젖줄 -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가 눈에 띈다.

거리 가로등에는 열린우리당 깃발도 나부끼고 있다.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자는데, 동의한다. 그리고 투쟁으로 반드시 이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보법을 지키려고 하는게 어디 수구 한나라당 뿐인가?

아니 실질적으로 국회의원 과반수를 더 가지고 있고, 노무현부터 시작해서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고, 또 국보법 폐지하겠다고 하면 열린우리당의 2중대까지 불사하겠다던

'짜증나는 민주노동당'까지 있는데, 왜 못하고 엉뚱한데 모여서 촛불집회나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이해를 할 수 없다.

 

당연히 촛불집회를 하든, 결사투쟁을 하든 열린우리당 앞에 가서 해야 했다.

단식투쟁도 마찬가지다. 5백명이 넘는 단식투쟁 참가자들이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새끼들 한놈 한놈 집앞에 가서 해야 했다.

국회 앞에서 누구 보라고 그렇게 모여서 단식하는 것인지 모를일이다.

어차피 수십년이 더 지나도 딴나라당이 국보법 폐지에 동의 하지 않는다.

그걸 그동안 몰라서 개혁입법 하겠다고 떠벌렸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이 개혁입법이라고 반드시 없앨 것처럼 떠들어서 애꿎은 시민단체나 국민들에게

헛바람이나 실컫 불어 넣고서는 이제 와서는 엉뚱한 대체입법 얘기하고 있고,

딴나라당과 나머지 3개 법안과 바꿔치기 할 거라는 얘기나 들리고 있고...

 

도대체 딴나라당이 국보법 폐지를 막고 있나? 열린 우리당이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고 있나? 나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이를 반대하고 있고, 또 폐지할 생각도 없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여서 열린우리당을 성토하고, 노무현은 약속을 지키라고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과 열우당 칭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열받아서 한시간 쯤 지나서 돌아 오려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열린 우리당 국회의원인지 하는 친구가 올라와서

법심의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어떻고 저떻다고 욕해대는 소리가 들린다.

참 가관도 이런 가관은 없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도 없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미국의 카터 오는데 태극기와 성조기 들고 환영하러 나가고,

6.25즈음이면 운동장에 모여서 반공웅변대회하고 북괴를 성토한 시위에 참석한

것 빼고는,

그래도 대가리 커지고 내 정신 박힌 이후로,

'관제데모'에 동원되어 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힘있는 놈들을 칭송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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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8 22:16 2004/12/1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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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로 2년동안의 임기가 끝났다.

시작할때도 별 생각없이(?) 시작해서인지 마치면서도 별다른 생각이 없다.

그나마, 그래도 생각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 기록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1. 재미가 없었다.

   노동조합 전임자를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임자로서의 재미가  없다면 단 하루도 전임자 노릇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 재미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정도로 정의 하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지가 이미 16년이 거의 지나갔지만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회사에서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거나, 서로를 비난 하는 회사 동료들보다 훨씬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97년 연맹에서의 전임 이후 5년이 지난 다음에 들어선 노동조합 전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에서 멀어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동안의 상황변화나 사업장에서의 어려움 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노동조합 활동의 근본을 벗어난 전임자와 간부들이 너무 많아졌고, 이것도 오히려 당연시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와 싸워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거창하게 자본과 정권과 싸워야 하는데, 안에서 조합의 간부들과 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재미가 없고 힘들어 한 날들이 많았다.

 

2. 임기를 겨우 마쳤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노동조합이고, 또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다 보니, 산자부 산하 사업장의 조직을 많이 잃어 버렸다. 산기원 200여명, 산기평과 건자재 100여명씩 어림잡아도 400명이 넘는 조직원(조합원)을 잃어 버렸다. 우리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에 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원을 잃어버렸는데, 이런 조직을 복원하겠다고 들어선 집행부가 그건 못하고, 그에 더해서 또 잃었으니...

   그럼 당연히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들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서 사퇴해야 겠다는 충동(?)에 고민했다. 그때 사퇴하는 것이 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임기를 채운 것이 잘 한 것이었는지 여전히 평가의 대상이다.

 

3. 엉거주춤한 자리...

  수석부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엉거주춤한 자리였다. 의사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자리도아니고, 실무적으로 이것저것을 기안하고, 챙기고, 맡기는 자리도 아니었다.

  위원장이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일을 대타로 때우거나, 사무처장이 일손이 달릴때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거나 그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결정된 무슨 투쟁위원회 같은 것을 맡아서 운영해 나가는 것은 있었지만, 뭔가 잘 안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때 이를 추진해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잘못하면 위원장의 권한이나 사무처장의 업무영역을 침범하게 될 거 같아서....

   그래서인지 몰라도 위원장, 사무처장 보다는 편안한 자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자리가 있어도 못한 일도 있다. 비정규직 특위를 하라 했는데, 회의 구성 제대로 한번 못하고, 어정쩡한 설문조사나 하고 말았으니...(이건 욕먹을 만하다..)

 

4. 노동자 의식은...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또 이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도하지만, 사무전문직으로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연구소의 정규직들의 의식은 여전히 '이기적'일수 밖에 없다.

  현장을, 조합원의 요구를 수렴하고 반영해야 하기에 또 조합원들의 힘이 그기에 있기에 별다른 고민이나 대안 없이 '이기적인' 요구에 맞춰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팎이 함께 고민하고 바꿔나가야 할 일이다.

 

5. 작은 조직에서도 나눠져서...

   4천명 조합원에 중앙위원 40명의 작은  조직이다. 그 안에서도 서로 감정적인 앙금으로 갈라져서 비판인지 비난인지 모를 논쟁이 가끔은 일어난다. 그리고 잘 섞여지지 않는다. 10명도 안되는 사무처 안에서도 실무자들이 2-3명씩 나눠져 있는게 눈에 보인다.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또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의견차이가 아니라 '감정'적인 것처럼 문제제기를 하거나, 일상에서도 '패거리'처럼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2년동안 이 문제도 시원하게는 아니더라도 별로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또 절감했다.

 

6. 같이 한 동지...

    임원 못구한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나서서 2년을 때웠는데, 임기를 마쳐도 새로 일할 임원이 없다. 연맹에서는 3팀이나 나와서 피나는 싸움을 벌였는데, 여기는 왜 아무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지 모를 일이다. 역시 '재미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세월이 지나면 또 임원도 만들고, 내가 있을 때보다는 훨씬 잘하는 집행부가 되겠지...

    그래도 아쉽고 미안한 것도 있다. 함께 일한 위원장은 연맹으로 보냈고, 사무처장은 아쉬움 속에 또 현장으로 보내야 하는 게 맘에 걸린다.

    대전과 서울의 무시할 수 없는 지리적인 거리를 위원장이 앞으로 2년동안 오가게 만드는데 나도 일조를 했는데, 앞으로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라나 모르겠다.

    사무처장은 동지들을 향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대갓집 맏며느리처럼 넓고 편하고 좋았는데, 정작 본인의 고충이나 고민은 한자락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 고민 한자락이라도 같이 하지 못한 점이 아쉽고 미안하다.

 

임원출마하면서 조합원 들에게는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  

  

<2년 전에 쓴 출마 결의문>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존경하는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제 6대 임원선거에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한국건설기술연구
원 지부의 곽장영입니다.

1990년부터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고, 꾸준히 노동조합과 민주노동
당 활동 을 해 왔지만, 과기노조 중앙의 간부로 활동한 경험이 없는
제가 이번에 임원으로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출마하면서 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은 '민주노조의 근본을 지키는 과기노조를 만들어 가자'
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과기노조가 민주노조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근본적
인 문제를 소홀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조를 세우고, 민주노조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가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민주노동조합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정권과 자본의
극심한 탄압 때문이며, 더 나아가 IMF를 빌미로 정부출연기관 노동
자와 노동조합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는 노동조합을 이끌어가고 있는 간부들이 조합원과 함께 문제를 토
론하고 해결해 가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현재 과기노조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우리가 민주노조를, 그리
고 과기노조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싸웠던 처음을 되돌아
보고,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적인 원칙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본다
면,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
다.
노동조합의 기본은 '단결과 투쟁'입니다. 저는 과기노조가 이러한
근본을 지키는 노동조합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조
합원으로서, 그리고 수석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입니
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노동자의 권익을 높이고, 정부출연기관의 올바
른 위상을 정립하고, 더 나아가 민주노동당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 받는 사회, 소외받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 받는 세상을 만들
어가는 데 중심에 서는 노동조합, 자랑스런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조합원동지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질책을 기대합니
다.


2002년 12월 2일
제6대임원선거 수석부위원장 후보 곽장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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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8 11:59 2004/12/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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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http://blog.naver.com/gimche/140008620609

 

어제 퇴근하고 게임방에 갔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보니 옆자리에 초등학생 한명.
그리고 그 옆자리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한 명 앉아 있더군요





둘 다 카트라이더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 형제였나 봅니다.
그 꼬마가 중학생에게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형은 좀 컸다고 대답 시원찮게 해주고 -_-

아무튼 열심히 게임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스피드전을!!
꼬마는 계속 드리프트하다 벽에 부딫히고.... ㅜ_ㅜ
차라리 제가 대신 해 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는 안했습니다) - 그림 출처 이로동님의 블로그

뭐 아무튼 열심히 게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계속 주목하고 있는데
갑자기 게임을 끄더군요.
그리고 카르마 온라인을 하려고 창을 여는데 갑자기 등장하는
성인용 스팸쪽지 2장!! -_-

타X메신저를 켜 놨던데 거기서 성인용 스팸쪽지가 날라오더군요.
대략 내용은 '오빠 나 오늘 심심한데 이것저것!#!@$하아하아 XXX-XXXX'

......정말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린애에게.
옆에서 보고 있던 제가 다 민망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을 본 그 꼬마는 자기 형에게 물었습니다.
"형, 이상한 누나가 나한데 쪽지보냈어."

중학생 녀석은 카트에 혼이 나가서 대답도 안해줍니다.
한 세네번 보채니 쳐다보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지워." 라더군요.

그러자 그 꼬마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더니
그 쪽지를 보낸 『 개념없는 새끼 』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답장을 본 저는 기절초풍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답장이...


 

문제의 그 쪽지
"오빠 오늘 나 심심한데 %$#^%^해줘요. 24살 직딩 @%$@#하아하아 오늘 밤 날 가져봐요. 연락해 줄거지? XXX-XXXX 오빠 꼭이야~~"

꼬마의 답쪽지
"네"

네.

네.


네.



꼬마몰래 고개를 돌리고 한참동안 웃었습니다. 푸하하하.
저렇게 성실하고 이쁜 대답을 하다니... 아이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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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6 11:48 2004/12/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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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놈들은 커 가고 있는데,

이 놈들도 점차 다른 곳에 관심을 옮겨 가고 있겠지만

함께 얘기할 기회가 없다...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내 경험에 비춰서 애들이 아버지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친구들 사진이랑,

춤추는 사진만 열심히 올리더니,

이번에는 재밋는(?) 그림을 올렸기에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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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6 11:42 2004/12/1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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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집 나와 있으면서, 유일하게 집에다, 아내에게 한 일은

아침 7시에 집으로 전화하는 거였다. 모닝콜인가 뭔가 하는 거다.

어쩌다 그걸 까먹게 되면, 당연히 애들은 밥도 못먹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학교로 갔단다.

그러면 아내는 '왜 전화 안했냐?'고 항의한다.

 



6시에 깨어서는 운동하러 나가기 귀찮아서 뒹굴다가

7시에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신호는 가는데, 안받는다.

아내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다...

역시 신호는 가는데, 안받는다.

동희의 휴대폰으로 걸어도 마찬가지다.

다시 집 전화로 거는데,여전히 신호음만 울릴 뿐 전화를 안받는다.

'이상하다, 아내가 못받더라도 동명이가 당장 받을텐데....'

아침에 아무도 전화를 안받으면 걱정과 함께 온갖 불길한 생각이 다 든다.

'이거 뭐야? 불난 거 아냐? 아침부터 다들 어디로 간거지?.......'

몇차례를 시도하다가, 씻고 밥먹기 전에 다시 전화를 했다.

여전히 집 전화는 안받았고, 아내가 휴대폰을 받았다.

"아니, 도대체 전화 왜 안받는 거야?"

"어? 몇 시야? 벌써 7시 40분이네. 큰일났네... 동희야!!! 일어나!!"

"몇번이나 전화 했는데..."

"우리집 전화 고장이야, 거는 것도 받는 것도 안돼."

"그럼 휴대폰이라도 받아야지."

"휴대폰으로도 전화했어요?"

"몇 번 이나 했지. 그럼 전화 고쳐 달라고 해야지."

"오늘 10시나 되야 고치러 온다는데.."

"알았어..."

 

전화가 안되면 전화가 고장났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그놈의 기계를 맹신하는 못된 습관,

그리고 당장 확인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현대인의 병?....

아침에 전화하는 거만 빼면 우리는 하루가 가도 이틀이 가도 전화도 안하는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서...

 

글구 전화기가 여러개 울리지 않으면 도무지 일어나지 못하는 아내,

자기 휴대폰에다 알람을 해 놓고도 그냥 못듣고 일어나지 않는다,

같이 잠자다가 아침에는 여기저기 울리는 알람 때문에 나는 오히려 신경질을 내는데...

 

그전에 그렇지 않던 아내였는데,

돈 좀 벌어 보겠다고 집을 나선지 몇 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아내는

집에서는 시체가 되었다.

돈 벌어 먹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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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4 10:52 2004/12/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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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행....

from 단순한 삶!!! 2004/12/13 20:35

역사와 산 산행에 따라가 본지가 1년이 넘었나? 어쨌나?

연말 마지막 산행에다 송년회까지 있다는데,

그기다 알엠님의 '엄마' 보러오라는 거 빼고는 아무런 약속도 없이 조용한데,

영화는 담에 보기로 하고 산으로 갔다.

 



오르기 시작할때부터, 아니 지하철역에서부터, 김밥 한줄 사는 가게에서부터,

또 물 한병 산 가게에서 부터.... 하튼 장난 아니게 사람들이 많다.

'오늘이 무슨날인가? 산으로 다 가고 나면 서울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기라도 하나?'

절을 지나서 산길로 접어 들었는데,

앞으로는 등산화 뒷꿈치와 살찐 엉덩이만 보이고,

뒤에서는 헉헉 거리는 숨소리와 비키지 않는다고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

'어쩌란 말이냐? 이 $%를... 어쩌란 말이냐? 이 &*을....'

정말이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좃선일보 춘천 마라톤을 함께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니....

 

잠간 앉아서 쉴만한 바위를 찾아서 앉으면

주위의 땅도 바위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인간들이 가득하고,

좀 쉬었다고 출발하고 나면,

앞뒤 좌우로 인간들이

또 가득하고,

 

아 답답해라, 아 숨막혀라....

 

연주대 못미쳐서 과천으로 향했고,

이제야 숨이 조금 트인다.... 혼자서 룰루랄라 노래부르면서...

왜 이날(12일) 인간들이 그렇게 많았을까?

 

하튼 역사와 산 송년회가 이어졌고,

2차까지 가는 동안에 산에는 오지 않은 사람들이 또 몰려오고,

그래서 맥주집에 가서는 산오리는 또 졸다 말다 구박당하다 집으로 갔다.

(제발 부탁인데, 산오리는 2차 데리고 가지 말아 주세요,

 또 끌고 갔다면, 그냥 잠자게 냅뒀다가 3차 가자고 일어날때 깨워주세요,

  그럼 3차 가서는 또 술마시고, 노래 부르고 놀테니까요....)

 

박준성 선생님 건강이 좋아지셨다 해서 넘 기뻤고,

연말이라 어디 가면 노래 시킬 거 같아서

노래 가사 열심히 인쇄해서 들고 갔는데, 안시켜서 넘 서운했다.

(그래도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다....)

 

내년부터는 산에 열심히 가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무박으로 버스타고 왔다 갔다 하는건 넘 힘들다.

 버스를 구하는데, 40인승이나, 28인승이나 이런 거 구하면 안될까? 영모씨, 인모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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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3 20:35 2004/12/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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