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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에 만난 조카들... (5) 2005/02/10
  2. '副'자 인생... (12) 2005/02/06
  3. 불량 '언론'을 사먹지 말자 (4) 2005/02/04
  4. 선생 같지 않은 선생... (8) 2005/02/03
  5. 윗사람들에게도 퍼붓다... (9) 2005/02/01
  6. 바람... 그리고 투쟁!!! (25) 2005/01/31
  7. 운악산에 오르다. (8) 2005/01/30
  8. 지부장에게 마구 퍼붓다 (7) 2005/01/28
  9. '예민'아 놀자!! (14) 2005/01/27
  10. 둘째는 서럽다 (9) 2005/01/26

한때 우리 형제들의 애들이 어릴때는

고만고만한 애들이 대여섯이 몰려 다니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애들 쳐다 보기도 싫었는데,

이 놈들이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까지 가고 나니까

이제는 모여도 그리 소란 스럽지 않다,

지들끼리 알아서 어디서 짱박히거나 잘 논다.

그 속에 잘 끼이지 못하는 어린 놈들은 이제 몇 놈 안남았는데,

우리 형제들 자식들중에는 딱 한놈, 동현이

그리고 막내 여동생의 애들인 생질 둘, 현호, 은서,

처가쪽의 처제 애들인 이질 둘, 민상이 지상이 이렇게 남았다... 

이놈들 정도면 그저 장난감처럼 좀 델고 놀만하다..

 

'장난감 대상' 시절도 얼마남지 않은 초등학교 1학년인 동현이다.



동현이는 형이나 누나들이 이제 같이놀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왕따가 되었다.

큰아빠인 산오리가 장난 좀 쳐 주었더니 이틀동안 찰싹 달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자기네 반에서 두번째로 작단다. 장난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생질인 현호는 자기동생이 아직 백일도 안된 덕분에 엄마가 시댁인 강릉으로 가지 않아 설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두돌도 지났는데, 말은 아직도 못하고, 그저 신나게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할아버지가 페트병을 두드리면서 부르는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에 맞춰서 추는 춤은 가히 빼꼽을 빼 놓을 만하다.

설날 새벽에 일어나서 울어대는 통에 '경기' 걸렸나 해서 손가락을 따 주었는데,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형과 누나들의 놀이에 끼지 못하는 동현이가 고종사촌 현호와 친구가 되었다.

은서는 태어나서 첫 설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아직 첫돌이 안되었다고 강릉의 큰 아버지 댁에 가지 못했단다. 할머니나 엄마 품에 안겨서 겨우 하품이나 하는 정도...

 

처가 쪽으로는 이질 둘이 아직 어리다. 큰 놈인 민상이는 연연생인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제법 어른스럽다. 그리고 형이 그렇듯이 숫기가 적고 부끄럼이 많다.

둘째인 지상이는 둘째답게 생존방법을 잘 터득해 가고 있는 듯하다. 울지않고, 잘 놀고, 어른들 말도 잘 듣고...제법 애교도 있고...

애들 데리고 잘 놀아주는 동명이가 '짱 귀엽다'면서 강아지처럼 데리고 논다..

두 놈도 이제는 자기들끼리 같이, 때로는 따로 따로 잘도 논다.

 

애들이 커 가는 만큼 어른들은 늙어 가는 거겠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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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18:10 2005/02/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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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副'자 인생...

from 단순한 삶!!! 2005/02/06 18:11

'부'자 붙은 자리를 또 하나 챙길(?) 전망이다.

당에 다시 선거 시즌이 돌아와서 어제까지 지역의 당직과 대의원 후보자

등록을 마쳤는데,

산오리는 고양시위원회 부위원장 후보로 등록했다.

 

위원장과 중앙위원, 중앙당 대의원 등은

뭔가 힘이 있는 자리인지, 아니면 뭔가 가문에 영광이 되는 것인지,

뭔가 챙길것이 있는 자리인지, 당을 위한 충성심(?)이 넘쳐 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살벌한 '정파싸움'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겠다는 것인지,

하튼 뽑아야할 인원보다 후보자가 많아 경선으로 선거를 치른다.

 

 



지역위 부위원장, 도당 대의원, 지역위 대의원 등은

뽑아야할 사람보다 지원한 사람이 적거나 겨우 숫자를 맞춘 거라서

찬반투표로 이루어 진다.

 

산오리에게 지역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출마해 달라고 했을때,

'할 사람 없으면 하겠지만, 회의 하기 싫어 하니까 다른사람 좀 찾아 봐라'고 했는데도

할 사람 없다고 해서 결국 등록했다.

할사람 없으면 그 자리나 때우는 건 산오리가 대충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후보등록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계속들었다.

회의에다 주말에 이런저런 활동에 기본(?)이라도 할라치면

앞으로 '열심히 놀자'는 산오리의 생활 방침에 상당한 타격이 올 것이다.

 

중앙위원이나, 당 대의원에 경선으로 출마한 사람들 가운데 한두명이라도

부위원장으로 출마하면 좋았을 것을,.....

 

산오리의 '副'자 인생도 꽤나 길다.

노조 사무국장과 위원장 마쳤던 1992년부터 1997년 연맹에 파견갈때까지

부위원장과 부지부장만 줄곧 했고,

그리고 과기노조에 전임을 나가면서도 수석副위원장이었다.

 

'副'자가 붙으면 정말 편하기는 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들러붙지 않는걸 보면 그만큼 영양가는 없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또 회의로 고문을 받아야 하고,

주말에도 이런 저런 당 활동에 모른 척(?) 할수 없는

자리를 맡았는데, 이제는 좀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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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6 18:11 2005/02/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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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팩 10:민주노총임시대의원대회, 사회적교섭안] 에 관련된 글입니다.

정확히 민주노총의 임시대의원대회와 관련된 핵심사항은 아니지만,

언제나 언론에 열받는 동지들이 많아서 산오리도 단순하게 생각해 봤다.

 

1. 자본주의가 유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좋든 싫든 우리는 상품을 사서 먹고, 쓰고 해야 한다. 이렇게 사서 쓰는 상품들 가운데 마음에 안드는 '불량'이 있다면 당연히 바꿔 달라 하거나, 아예 반품하고 돈을 되돌려 받거나, 에이에스를 받거나 뭐 이렇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안되는게 있는데, 산오리는 교육과 공무원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거 바꿔달라거나 물어 달라거나 에이에스해 달라고 아무리 지랄 떨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거꾸로 돈 내고 물건사는 학부모들한테 큰소리치면서 법에도 없는 돈이나 선물 더 내놓으라 하고, 자신들의 고객인 학생들을 두드려 패기도 한다. 이건 정말로 자본주의의 원칙에 , 저들이 입만열면 떠들어대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안맞는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존나 힘들게 일해서 세금 만들어 주고, 먹여 살려 주는데, 국민들 알기를 개좇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이 공무원도 에이에스 받거나 바꿔달라고 해도 소용없다. 반품은 더더욱 안되지....

 

산오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거 말고도 더많이 있겠지만, 이 두개의 '불량식품'은 산오리의 머리에 오래도록 불량으로 남아있다.

 

2. 기아자동차 노조가 직원 채용과 관련하여 돈을 받아 먹었고,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열었는데, 그기서 약간의 난장판이 있었다고 언론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언론의 난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락가락하고, 함께 기절하고, 함께 쓰러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언론들이 어제 오늘 그래 왔던게 아니고, 언제나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민주노총을 씹어 왔고 못잡아 먹어서 안달해 왔다. 그래서 좃선일보니 조중동이니 해 가면서 그 신문들 보지 말자고 운동(?)까지 해 오지 않았던가?

 

산오리도 민주노총에 관심이 많고, 기아자동차 노조간부들이 채용을 미끼로 돈 받아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화가 많이 났다.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의 난장판도 다음날 어느 블로그를 보고서 알았는데, 좀 짜증이 났다. 짜증과 더불어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 이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테레비든 신문이든 뉴스든 논설이든 보지 않으니 더이상 열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까 민주노총부터 시작해서 다시 논의해 보고,  또 연맹, 단위노조에까지 함께 반성할 일은 반성하고, 또 다른 방식이 있으면 시도해 보면 된다. 누구나 들먹거리기 좋아하는 '현장'과 '현장의 정서'도 새로 찾아 보고 그걸 반영해 가면 된다.

 

3. 그래서 어차피 우리들 편 아닌 언론, 그 불량 식품에 너무 목메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거 핑계 대고 빨리 절망하고, 더 많이 열받아서 우리한테 좋은게 뭐 있으랴.. 제대로 된 내용도 아닌 왜곡과 엉터리와 철저한 '노동자 죽이기'라는 썩은 재료와 조미료가 범벅이 된 불량식품을 왜 맨날 돈 내고 사 먹으면서, 설사났다고 아우성인지 정말 모르겠다.

 

4. 트랙백을 건 어느 분도 한겨레를 끊었다고 했는데, 한겨레 뿐만 아니라, 모든 신문과 텔레비전을 끊어 버리자. '저들의' 뉴스를 끊고 나니까 정말 마음이 이렇게 편안할 수 가 없다. 그리고 항상 뭔가에 눌려 있고, 불안한 마음도 사라진다.  그게 불량식품이니까 당연히 나한테 영양을 주는 것도 없다. 인터넷도 발달하고, 신문 만드는 기술도 발달해 있어서 민주노총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품을 만들 수 있다. 또 우리 편에 있는 다른 단체들도 있다. 실제로 이들이 식품을 만들어서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유기농으로 재배한 재료로 만든 식품은 쳐다보지도 않고, 불량식품을 돈을 주고 사 먹으면서 배아프다. 곧 죽을 거 같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게 너무 답답하다.

 

제발 불량 '언론' 모조리 끊어버리자!  

테레비전 뉴스와 신문 끊는 순간 우리는 '인간다운 삶'에 첫발을 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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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17:42 2005/02/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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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행인님의 [폭력의 기억은 핏속에 남는다]쭌모님의 [집단체벌.. 그 기억..]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세상이 어떤지 잘 몰랐던 국민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나면 중고등학교 선생들 가운데서는 선생이라 이름 붙일 만한 선생들을 몇 사람 만나지 못했다. 신생 사립학교이기도 했겠지만, 도시라는 곳이 벌써부터 빈부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고, 선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학부모의 돈을 뺏어서 배를 채워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골 국민학교에서의 선생님들은 촌놈들보다 사정이 나았었는지, 애들이나 학부모를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다.

물론 선생 김봉두 같은 선생도 있었겠지만, 다행이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선생님은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조회와 종례 시간에 등록금 빨리 내라는 독촉을  계속했고,

때로는 반장을 통해서 학급회의 시간에도 등륵금 독촉이 이어졌다.

애들이 6명이나 되는데 아버지 혼자 근근히 노동자로 살면서 등록금 제때 제때 내기가 어찌 쉬웠으랴...

 

나는 아마도 학급회의 시간에 그런 얘기를 했던 거 같다.

 

"등록금 독촉 그만 했으면 좋겠다. 누구는 안내고 싶어서 못내는 거냐?"

 

그 얘기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당장 선생의 귀로 전해졌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 갔다.

 

"너 그런말 한 적 있냐?"

"예..."

"싸가지 없이 학생이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

"너희 아버지 학교 오시라 그래라"

"왜요?"

"그걸 몰라서 묻냐?  너같은 놈은 부모님께 얘기해서 그 삐뚤어진 성격 좀 고치라고 해야겠다."

"선생님! 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저 학교 보내주시는데, 또 학교까지 오라 가라 합니까? 그건 못하겠어요?"

"뭐????? 이새끼가!!!  다시 얘기해봐!"

"그러니까,.... 돈벌어 등록금 내주시는 것만 해도 힘든데, 학교까지 오시라고 말 못한다구요..."

 

그리고는 존나게, 정말 존나게 얻어 터졌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 얻어 터졌는지 기억은 없다. 이선생은 원래 수업시간에는 자를 세로로 세워서  손등의 손가락 마디를 때리거나 얼굴에도 아주 짜증스럽게 찌르거나 따귀를 때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 당시 별명도 '쥐꼬리'였다. 얼마나 쫀쫀하고, 치사했으면 쥐새끼도 못되고 쥐꼬리였을까?

 

그리고 할수 없이 집에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하루이틀 사이에 아버지는 학교로 가셨고, 봉투를 건넸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너무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뭐 이정도로 말씀하시면서....

 

도저히 열받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을 고민하다가 나는 그 당한 모욕과 굴욕을 참을 수가 없었고, 돈도 없는 아버지를 불러서 봉투까지 받았다는 선생이 저게 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런 건 선생도 아니다고 외치면서...

 

그래서 학교수업이 끝나고 나면 학교 뒷길에서 숨어서 커다란 돌멩이 하나 감춰놓고 선생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내려 오면 그 큰 돌로 머리통을 내리치겠다고 생각했다.(학교가 정문과 후문이 있었는데. 후문쪽은 산길에 포장도 안된 길이 한참 이어져서 나무 숲에 숨어 있으면 지나가도 모를 정도 였다.)

 

그런데, 내가 살려고 그랬는지, 선생이 살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 선생이 한번도 혼자 내려오는 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다른 선생과 얘기하면서 내려오거나, 어떤때는 혼자 내려 와도 앞뒤로 다른 학생들이 있었다.

혹시 혼자 내려왔는데도 너무 무섭거나 소심해서 막상 돌을 내려치지 못했는지도모르겠다.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한 일주일을 그렇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때문에 그걸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겨우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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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3 23:01 2005/02/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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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산오리님의 [지부장에게 마구 퍼붓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노동조합 전임하고 왔다고 밥이나 같이 먹자고 선임부장이 얘기했는데,

어제 그동안 기관평가 자료 만드느라 고생한 기조실 직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함께 끼이게 되었고, 기조실 직원들 대부분이 모였다.

삼겹살에 소주를 얼마만큼 마셨고,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떠들고 있어서 무슨 얘기가 진행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튼, 선임부장과 기조실장에게, 그리고 연구직 팀장들에게까지  

 

"권력이면 권력, 돈이면 돈 한가지만 추구해야지

 두가지를 다 손에 쥐려고 하니까

 직원들한테 원성을 사는 거 아니냐?

 기조실로 오겠다는 사람들 줄 서 있다는 말도 들리든데,

 공개적으로 경쟁을 해서 온 것도 아닌데,

 돈으로도 보상 받을 거 다 받고

그기다 다른 거까지 특혜를 누리면 문제 있다"

 

그렇게 한참을 퍼부었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없었다.

 

요즘 산오리가 좌충우돌하고 있다.

별로 반응도 없는...

그리고 군대에서의 '고문관' 같은 느낌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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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17:19 2005/02/0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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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알엠님의 [횡설수설 보충설명]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알엠님의 글을 읽고 여자들이 가진 불만을 어느 정도 이해 할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알엠님 처럼 밑줄을 그어가면서 일일이 반박할 마음도 없고, 또 그렇게 반박할만큼의 지적인 소양도 없기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냥 두어번 읽고 나서 또 결론을 간추려 보면,

1. 남자들의 바람.

2. 회사에서의 반항 또는 투쟁

3. 가정에서의 투쟁

이렇게 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가지에 대해 제 맘대로 또 한번 정리해 볼게요.

 

1. 남자들의 바람.

 

저 결혼한지 올해로 17년째입니다. 그동안 아내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두세번의 '바람'이 제게 왔지요. 그리고 그때마다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집으로 전화가 와도(그 전에는 휴대폰이 없었으니까...) 자기가 받아야 된다고 했고, 밤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나러 가도, '누굴 만나러 가냐?'고 물어 봤어요. 그즈음에는 제가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여자친구들이 있었지요. 굳이 애인이라고 표현할수 있을런지, 아니면 바람이라고 표현할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부부이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라 그러면,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친구'가 생기면 당장 이혼해야 하나요? 그 관계를 정리해야 하나요?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좋아하기도 하고, 또 싫어지면 돌아서기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요? 이건 그야말로 국보법에서 얘기하는 양심의 자유일수도 있고, 사랑하는 감정은 자유롭게 표현될수도 있는 거죠.

그걸 어떻게 관계이기 때문에 정리해야 되요?

 

그리고, 설사 그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는 친구'와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또 '부부'는 당장 정리해야 하는 건가요? 육체적인 관계도 몸이 원한다면 그대로 따라 가야 된다고 봐요. 다만 '서로가 원할때'라는 단서가 붙겠지요.

또 감정이 따라가지 않더라도 '육체적인 매력' 만 쫓아 가고 싶은 때도 있어요. 그럼 감정을 주지 않았으니까  '부부'관계는 유지해도 행복한 것인가요? 그도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서양(특히 유럽)에는 평생동안 섹스파트너가 평균 잡아서 남자는 30여명, 여자는 20여명이라는 보도를 봤어요, 미국도 별반 다르진 않더군요... 그럼 서양에서는 모두다 '관계'를 정리 못하고 있는 것인가요?

마음이 끌리는데로, 몸이 원하는 대로 왜 못간다는 것이죠?

'관계' 는 그저 관계일 뿐이죠. 평생동안 몸과 마음을 다바치는 '부부관계'도 있고, 몸만 가있는 부부관계도 있고, 몸도 마음도 못가는 부부관계도 있겠지만, 어느것도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자유로와야 하거든요... 남자든, 여자든......

 

2. 회사에서의 반항 또는 투쟁

 

2년만에 회사에 다시 돌아왔어요. 지난주에 회사사람들 술자리에 갔지요. 지난 연말에 새로 채용되었다는 예쁘게 생긴 여직원이 술자리에 앉자 마자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수저통 찾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숟가락과 젓가락 챙겨서 다소곳하게 두손으로 받쳐서 전해 주는 거예요, 오늘도 회사 사람들과 술마셨는데 여전히 똑 같아요..

 

지난 번 첨 술마실때 그래서 뭐라 했는지 아세요?

"숟가락 젓가락 선배들 한테 챙겨줄 생각말고, 선배들 맘에 안드는거 들이 받아라!"

이렇게 얘기했어요, 근데 달라지지 않아요.

더구나 요즘에 들어서 젊은 사람들은 더 심해진거 같아요, 취직하기 어려운데, 저 높은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 '나를 뽑아 주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죠...

젊을수록, 패기있게 아닌건 아니다 라고 들이 받아야 한다는 거죠.

 

커피든, 담배든, 스스로 주위의 눈치를 보는 순간

그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할거라 생각해요.

 

3. 가정에서의 투쟁.

 

남자들이 투쟁하지도 않고, 많은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거 인정할수도 있어요. 현재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그런 거지요. 그렇지만 선사시대든 역사시대든 바르게 서술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고대에는 '모계사회'라고 하잖아요,(그런적 있었어요?)

당시에는 어머니가, 아내가 권력을 잡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즈음에 와서 남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었어요?

여성들이 너무 너그러워서 남자들에게 권력을 스스로 넘겨 준 것인가요?   
그건 아니죠, 그 동안에 남자들이 적과 싸우든, 내부의 동족과 싸우든, 아니면 옆에 있는 여자와 싸우든 하여튼 싸워서 지금까지는 이겨왔기 때문에 이런 불공평한 사회가 되었다고 산오리는 생각해요

산오리가 팔불출처럼 아내의 예를 잘 드는데....

우리 부부도 한때는 부모님 모시고 살았어요. 또 따로 나가서 살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서 살기도 했어요, 제가요, 6남매 중에 누님 한분 있고, 장남이에요, 그럼 아래로 동생 4명과 부모님과 동희 동명이와 한집에서 살았어요, 그럼 식구가 몇인가요? 기본이 10명은 되죠?

아내는 그 10명의 살림살이도 훌륭하게 해 냈어요. 얼마나 손이 크고 맏며느리 처럼 잘 했지요, 그래도 그렇게만 하고 있으면 부모든, 시누이와 시동생도 바라기만 하지, 형수나 올케언니에 대해 뭘 해줄까 고민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죠.

 

참다 못한 아내는 무조건 나가자고 개겼고, 산오리도 중간에서 불편하니까 돈 한 푼 없이 다시 나왔어요. 그리고 아내는 시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어지간하면 가지도 않고, 명절에도 기본적으로 할일만 하고, 시댁에 무슨 일이 있어서 남편이 부모님한테 좀 가자 하면 '당신이나 갔다 오세요'하고 안갔어요. 그래서 정말이지 산오리는 이런 거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했어요. 도대체 우리 부모님을 뭘로 보냐면서....

 

한데, 계속 아내가 개기니까(?) 결국은 아내의 뜻대로 대부분 정리되더라구요. 부모님도 아내를 인정하고, 산오리도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고....

그래서 저는 여자도 '이혼할 각오로'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신부님의 아내라고 신부님을 챙겨줄 필요는 없죠.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일하시고, 영화를 만드시는 알엠님은 알엠님대로 살면 되죠...

신도들이 뭐라하든 그건 신경쓸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도들은 신도일뿐이고(남편과 아는 사람들이고), 나는 나일뿐이죠.

 

그건 투쟁도 아니고, 내 맘의 자유일 뿐이죠.

내 맘의 자유는 누구도 침해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남편과 자식들에게 뒷바라지 잘 하면서 살라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사는 동안에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해야 일도 재밋고 본인도 스트레스 안받는 것이죠.

불만은 불만대로 있는데, 주위 눈치 땜에 속이 다 타는 것은 무조건 피하세요!!

 

 

아즈라엘 님이 제기하신 문제는 담에 또 얘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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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1 22:29 2005/01/3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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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지고 눈이나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오가는 길이 걱정되기도 했는데, 오히려 눈이 쏟아진다면 산은 더 좋을 거라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현등사 입구에 도착해서 식당에서 모자란 아침으로

두부를 먹고 있는데, 창밖은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고,

텔레비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고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식당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위험하다면서 정상은 가지 말고 조금만 가다 오란다.

눈 속에 산을 올라 본지가 얼마만인가?

그냥 눈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행복했다


 

 



 

 

카메라를 꺼냈을때는 이미 눈발이 잦아들고 있었다.. 이게 뭐야?

그래도 흙이나 바위를 직접 밟을수는 없을 만큼 눈은 쌓였다.

만경능선을 올라서 정상으로 향한다.

 

바위를 많이 올라야 했는데, 쇠밧줄을 달아두어서 그걸 잡고 오르는 데는

그리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산등성이를 따라오르는데,

저 봉우리가 정상일까 하고 올라보면 아니고, 다음 봉우리도 가 보면 아니고..

오르다 내려보면 멋진 바위도 보이고.

 

눈이 멈추면서 가평쪽으로 내려다 본 전경도 희뿌옇지만 볼만했다.

 

나무가지마다 눈이 살짝 살짝 업혀 있었고,


정상에서 서봉쪽을 바라다 보니 눈꽃이 제법 피었다.

 

절고개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남근바위라 있었는데..

 

현등사에는 보물이라는 종이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눈을 약간 덮어쓴 작은 탑은 귀여웠다(?)고나 할까?


정상에서 다행이 반대쪽에서 올라온 한팀을 만나 서로 사진도 찍어주었고,

 

정상임을 확인하는 돌을 붙잡고도 한장.

 

내려오다 만난 작은폭포도 고스란히 얼은 채 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 보니 하늘은 맑게 개고, 언제 눈이 왔었냐 싶은데,

산 꼭대기는 여전히 눈이 보인다.

 

운악산에 혼자 가서 빗속을 헤메던 것만 기억에 남는데,

그 이후에도 셋이서 갔던 적이 있었구나. 그때도 주변 경치는 구경못했고..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산오리-1&id=101&page=1&s2=subject&s_arg=운악산

 

당초에는 '게으른 산행'(우종영)이 추천한 겨울산행으로 청평사 계곡을 가려 했는데,

일행들이 지난가을에 갔다 왔다고 해서 바꿨다.

같이 산에 가기로 했던 한 친구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못간다고 하는 바람에 날자까지

바꿨는데, 그바람에 눈 속에 산행을 하게 되었다. 전화위복인가?

그래도 같이 가기로 한 다른 한 친구는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같이 못갔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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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30 12:16 2005/01/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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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야옹이님의 [두려움] 에 관련된 글입니다.

안산의 해양연구원 지부 창립기념식에 다녀온 우리 지부의 지부장과 대전에서 올라온 한  지부장이 산오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대전에서 산오리를 보러 온 지부장은 옆에다 앉혀 두고

우리 지부장에게 온갖 문제점들을 다 퍼부었다.

 

조합원들이 지부장을 이렇게 비난하고 있고,

조합원들이 지부장은 이런 건 좀 해 줬으면 하고,

조합원들이 지부장이 이런 건 안했으면 좋겠다 하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부장은 문제가 많다 면서

마구 퍼부었다.



지부장에게 '당신은 이렇게 잘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얘기한 사람이 없었는데,

산오리가 이처럼 직설적으로 소리 높여가면서

따지고 추궁했으니, 

지부장은 상당히 당황과 충격을 먹은 모양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맹세코 어용이 될 꿈도 꾸지 못했다.

 조합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그만두어야지 더할 기운이 안난다'

 

이렇게 항변했고,

더 나아가 내가 퍼부은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설명했다.

 

뒤에서 들리는 얘기와 본인의 얘기는

다를수도 있고,  또 달라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직접 지부장의 얘기를 듣고

내가몰랐던 것에 대한 오해(?)도 좀 풀렸다.

그러나

활동방식의 차이는 여전히 크게존재하고 있었다.

 

밤에 잠을 자다 술때문에 머리가 아파 깨어서도

'내가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출근해서도

여전히 그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렇게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나는 왜 이렇게 직설적으로,

모든걸 다 까발려서 얘기하는 것일까?

상대방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근데, 주위에서 내게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산오리는 오히려 행복할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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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8 13:18 2005/01/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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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아 놀자!!

from 단순한 삶!!! 2005/01/27 14:35
* 이 글은 달군님의 [예민함을 두려워하지 말것] 과     알엠님의 [횡설수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달군’님에게는 글좀 쉽게 써 달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어렵다. 말이든 글이든 짧고 간단하게 나타내지 않으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읽는 나로써는 정말 헷갈린다. 달군 님의 문제라기 보다는 글을 해독하는 산오리의 지식 능력이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맞을라나?

하튼, 달군 님의 이 글은 산오리가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면, ‘여자들이 차별 받고 있는 것을 남자들은 그리고 사회는 너무 모르고, 오히려 당당하게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뭐 이정도가 아닐까?

‘알엠’님의 글은 그나마 쉽다. ‘조제..’가 도대체 뭔가 하고 두 번이나 글을 읽었는데 도저히 찾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 드라마 라는게 나와서 검색을 해 봤더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란 영화가 나왔다. 이영화 맞겠지? 언젠가 어디 블로그에서 영화감상기를 본듯한데, 영화를 보지 못했으니 알 수 가 있나? 그래도 앞쪽의 ‘감정과 관계’의 문제나 뒷부분의 생활속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가 있다.

‘알엠’님 글의 결론도 산오리가 단순하게 내리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살면 나쁜 인간이다’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한다. 두 글을 보고 산오리가 내린 결론을 너무 단순하다고 비웃지는 마시길....



 

1. 담배 피는 여자

어릴적 시골에서 살 때 할머니가 곰방대에 넣어서 피우는 담배 연기 속에 언제나 방 안은 굴뚝속처럼 뿌연 채로였다. 그 속에서 먹고 자고, 살아왔기에 내가 담배를 피울때 아내가 문 밖이나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 피라고 성화를 부리거나 말거나 방에서 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내 어릴때 그 담배연기 속에 살아도 괜찮았는데, 이정도가 뭐 어때서?’ 이러면서... 그런데 아내가 끈질기게 나가서 피우라고 잔소리를 하는 통에 그 잔소리가 무서워(?) 베란다로 쫓겨 났다.

87년인가 일본에 처음 갔는데,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봤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역 앞에서... 충격이었다. 어떻게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대낮에 담배를? 우리나라에서는 그리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다방이나 술집에서 담배피우는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고 다니는 여자들도 보인다. 한 번도 ‘왜 여자가 담배 피우냐?’고 물어 본적은 없다. 나도 피우는 담배인데....

아내도 담배를 피운다. 남편한테 나가서 담배 피우라고 잔소리 열심히 했는데, 자신의 말이 걸려서인지(사실은 애들앞에서 담배 피는 모습 보이기 싫어서다) 뒷베란다에 가서 열심히 피운다.(애들 앞에 있는 대로 보이면 안되나?)

이 시대에도 여자들에게 ‘여자가 담배 피냐?’고 묻는 남자가 있다면 생각할 가치도 없는 거 아닐까? 그런 사람에게 ‘예민’까지 보여주는 건 과잉친절인 듯하다.

다만, 증명이 되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희생’(간접흡연도 건강에 나쁘다는..)이 따르는 것인지는 고려해 봐야 할 듯하다.


2. 커피, 카피...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회사에서 노동조합도 생기고, 분위기가 좀 민주화 되었다면서 직장 내에서 말이 많았고, 또 여성문제에 있어서도 논란과 화두가 되었던 게 이것이었다. 대부분 여직원들이 타이피스트로 채용되어 차심부름과 복사 심부름, 심지어는 담배심부름까지 했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바뀐 것은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한 것도 있지만, 여성들 스스로 문제제기를 하고 어떨 때는 소리내어 싸우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꿔 왔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그 놈의 아이엠 에프를 지나면서 오히려 뒤로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 주 5일제를 도입하면서 겨울철에 퇴근시간이 5시였는데, 공무원들이 6시로 바꾸면서 산하 기관들에게도 당연히 그래 하라고 했다. 노동조합이 ‘근로조건 후퇴’라고 반발했는데 기관이 정부로부터 찍히는게 무서워서(?) 내부의 규정은 바꾸되 단체협약을 바꾸지 않아서 그냥 5시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부서장들이 은근히 ‘6시까지 근무해야 한다’고 협박(?)하자 대부분의 직원들이 6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산오리는 노동조합 간부 출신인데, 노동조합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서 5시좀 넘으면 그냥 퇴근하지만...

한 여성조합원이 불만을 털어 놓았다. 노동조합에서 그렇게 하면 어떻게 5시에 퇴근을 하느냐고...(노조도 문제이지만, 부서장들 한마디에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란 말이야...)

차심부름 하기 싫으면 거부해야 한다. 퇴근시간도 조합원이라면 그냥 5시에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시비를 걸거나 피해를 준다면 싸워야 하지 않을까?


3. 감정과 관계

알엠 님이 쓰고 있는 감정과 관계는 이런 것인지 모르겠다. 감정은 사람이나 미움의 느낌, 그리고 관계는 부부나 애인 또는 가족이라는 사회적인 관계? 계약? 이런 것인 듯하다.

단어에 대한 적절한 정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의가 좀 틀렸다 하더라도 나는 왜 알엠님이 ‘그러나 감정과 다르게 관계는 고정되어 있다. 관계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이 문제는 나한테 굉장히 중요하다.’고 얘기하는지 알 수 가 없다. 그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가? 가족, 부부, 애인... 이런 관계도 앞에서 말한 ‘담배 피우는 여자와 그를 탓하는 남자’와의 ‘관계’와 다른 게 뭐가 있나? 커피 타오라고 시키는 남자 상사와 커피를 타 가는 여성부하와의 관계와 다른 게 뭐가있나? 나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관계가 만들어 졌을 것이고, 우리가 그런 관계를 ‘옳은 관계’ 또는 ‘나쁜 관계’라고 규정짓는데, 그 속에도 우리가 버려야 할 고정관념이나 의식들이 많이 숨어 있기 때문데 절대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관계도, 절대적으로 옳은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감정이든 관계이든 자유로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충분하게 뒷받침 되는 관계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라 하더라도 감정 이외의 다른 요소로 그 관계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우고 다른 감정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건 개인의 문제이고 자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기는 ‘누군가의 희생’은 어쩔건데? 라고 묻는다면, 그 희생도 어느 일방의 희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4. 부부는

알엠 님의 글을 보니까 우리 부부 생각이 많이 난다. 한때는 내가 술먹고 놀다가 늦게 들어갔더니, 아내는 헤어지자고 까지 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까 이제는 아내가 술먹고 놀다가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늦게 들어갔을때는 몰랐는데, 아내가 늦게 돌아 오니까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밤에 놀다가 우연히 집에 전화해 보면 애새끼 둘이서 울면서 엄마는 안오고 배고프다고 한다. 휴대전화가 생기고 부터는 애들이 전화해서는 ‘아빠 배고파’ 이런다. 엄마 없냐? 연락 안되냐고 물으면 ‘엄마는 전화 안받는다’는 대답이 들려 온다. 몇 번은 어린 놈들 밥 챙겨 주려고 밤에 놀다가도 허겁지겁 집에 달려 가기도 했다.

아내는 단단히 작심을 했는지, 아니면 모른 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새벽 2시, 또는 밤을 새워도 안들어 오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열 받아서 아예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그게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겟다. 아내는 다시 술먹고 놀기 위해 나가지 않았는데, 이때 아내가 내린 결론은 ‘술먹고 노는 것도 한때다’ 이런 것이었다. 돌아 보면 남편에 대한 철저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5. 그래서 어쩌라구?

산오리의 답은 간단하다.

삶은 투쟁하는 만큼 얻어진다. 가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남편이 형제가 자식과 부모가 내 맘속에 들어있지 않고, 밖에서 만들어진 관계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 자신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열심히 싸워야 한다. 싸운 만큼 행복해 질수 있다.

요즘 우리 집에서 애들이 손가락 까닥 않고 밥먹고, 생선 가시 발라주는 걸 먹게 된 것도 이 놈들이 개기고 싸우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마가 완패한 것이다.

그런데, 싸우기도 전에 그저 열만 받고 예민해서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다면, 상대방이 무엇 때문인지,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예민은 해결될 수도 없다.

담배 피우는데 뭐라 하는 놈들에게 “야 이새끼야 니가 담배 한갑 사줘 봤냐?”고 싸우고, 커피타 오라는 놈에게 “너는 손발 뒀나 뭣에 쓰려고 하냐?” 하면서 싸우고, 집안 살림 다 맡기고 도와 주지 않는 놈에게는 “너도 한번 해 봐라”고 몇날 며칠이고 집에 안들어가면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관계도, 제도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누군가의 희생’도 줄어들거나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의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싸우지 않은 예민은 한낱 푸념에 불과하고, 그 예민만 자기 가슴에 쌓여서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충 포기 해야 한다.

담배핀다고 뭐라 하는 놈이든, 커피 타오라 하는 놈이든, 제혼자만 성공적인 삶을 살려는 놈이든,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아예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이니까 신경안쓴다’면서 포기해야 한다. 


덧붙여- 좀더 살아본 경험으로 볼때, 그리고 주위를 둘러볼 때, 부부관계는 한 10년쯤 지나면 ‘상호투쟁의 경과’에 따라 약간 고정적인 관계설정이 된다. 그래서 알엠님은 3년이 아니라 앞으로 7-8년은 더 남편과 투쟁해야 할 거라 생각한다.

  - 설레발레 넘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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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7 14:35 2005/01/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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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서럽다

from 나홀로 가족 2005/01/26 09:12

 

그저께 밤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한약 한 제가 배달되어 왔다.

어제 아침밥상에 앉아서 아내에게 물었다.

"무슨 한약이야?"

"응, 동희 먹이려구..."

"밥만 잘 먹으면 되지 한약은 무슨 한약이야?"

"그래도 크는 애들에게는 한제씩 먹여야 되지."

"근데, 왜 동희만 한약 지어주구 동명이는 없어?"

"그 새끼는 한약 먹는 거보다 더 돈을 쓰고 다니는데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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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6 09:12 2005/01/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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