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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박... (11) 2007/02/06
  3. 무신경하거나, 게으르게... (8) 2007/02/01
  4. 휴대폰에 있는 사진들.. (4) 2007/02/01
  5. 대학입시도 끝나고... (11) 2007/01/29
  6. 선거는 끝나고.. (4) 2007/01/29
  7. 졸립다... (3) 2007/01/26
  8. 누룽지... (12) 2007/01/25
  9. 칼산의 추억...목욕 (6) 2007/01/24
  10. 여권, 자동차, 일탈... (6) 2007/01/24

유기수...

from 단순한 삶!!! 2007/02/06 13:16

유치봉님의 [유기수위원장님 면회 다녀오다] 에 관련된 글.

 

잡혀 들어간지 벌써 6개월째란다.

지난 8월에 들어갔다니...

얼마나 큰 죄를 지었다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로 옮겨져 있다.

 

5일 휴가내고  대구로 갔는데,

아침 8시 10분에 집을 나서 밤 8시40분에 집에 들어왓으니까,

12시간 30분을 길바닥에서, 차 속에서 보냈는데,

막상, 유기수와 얼굴을 마주보고(그것도 두꺼운 아크릴로 가로막힌채)

몇 마디 나눈 것은 겨우 5분이었다.

 

교도소도 자기가 원하는 곳에 옮겨주면 안되는 것일까?

멀리 떨어진 가족들도 한번 찾아가려면

하루종일 걸려서 겨우 얼굴 잠간 보고 와야 하다니...

 

언제나 씩씩한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런 씩씩한 인간들은 밖에서 열심히 싸워야 하는데,

갇혀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노동조합과 당에서 보아온 그는,

가부가 분명하고,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가 빨리 싸움터로 돌아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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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6 13:16 2007/02/0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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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from 나홀로 가족 2007/02/06 11:51

1. 며칠전에 술 한잔 마시고 집엘 갔는데,

동명이가 드러누워서 텔레비를 보고 있다.

밤 11시 쯤이었는데...

 

- 야! 왠일로 이렇게 일찍 집에 와 있냐?

= 그냥 할일 없어서....

- 별일도 다 있구나... 재미없는 날도 있고...

= 어... 근데, 아빠 술냄새 나.

- 술 한잔 마시고 왔지..

 

 



= 머냐구, 오늘은 아빠가, 어제는 엄마가.... 맨날 술이야..

- 술 마신다구 너한테 머라 하는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

= 며칠전에는 엄마가 대박이었다구...

- 뭐 대박? 그게 뭔데?

= 형 떨어진날 술 마시고 와서는 울고 난리였다구....

- 헉! 그게 대박이냐?

   (너도 임마, 2년 후에는 대박한번 터뜨리겠구먼..)

 

 

2. 어제 밤에는 동명이가 컴앞에 앉아 있었는데,

    아빠가 들어가니까 이거 좀 보란다..... 재미 있다구..

싸이에 올린 사진이라는데,

며칠전에 찜질방 가서 친구가 잠자는 다른 친구를 찍은 거란다..

동명이 싸이 대문에 이사진이 걸려 있어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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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6 11:51 2007/02/0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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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으면 회사에서 월급 받는 것도 좀 미안하게 느껴진다.

연말이면 으례 한차례의 분답과 소란을 거치고,

1월과 2월에는 제법 한가한 계절이다.

바쁜 곳은 여전히 바쁘다고 아우성이지만,

산오리네 업무는 그렇지 않다.

군대는 보직이라거나, 줄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맡은 일에 따라서는 바쁨의 차이가 있는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렇게 한가하다고 느끼는게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해결해야 할 몇가지 일은 여전히 해결되지(하지) 않고 있고,

그게 내가 노력해서 될 일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풀리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안되는 일은 마냥 냅두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서 다른 업무로 옮길 때

퍼 넘겨 주고 가면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분위기도 편치 않다.

일주일간 감사를 나와 있으니, 언제 불러서 뭘 물어볼지도 몰라 항상 자리를 지키면서

대기하고 있다. 그 일주일간 딱 한번 불러서 간단한 자료 요청한 거 밖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휴가와 출장을 자제하고, 어제와 같은 체육행사도 나가지 말고 있으란다.

언제 어떻게 마무리 될지 예측불가.... 

 

열심히 놀기 위해서 대략 이런저런 연결고리들을 끊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이 좀 걸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혼자 노는것에 서툴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산오리로서는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려고 노력해 볼 예정이다.

 

당 게시판에 갔더니,

연맹의 김종호 부장이 에프티에이집회때 달려 가서 꽤 갇혀 있다가 나와서는 인사를 올렸다.

이 친구가 잡혀 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참 무신경하다....ㅠㅠ

허영구 부위원장 감방 가 있는 동안 면회라도 한번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전 민주노총 선거하는데 나와 있더라...... 이 게으름이란..ㅠㅠ

유기수 위원장은 결국 실형을 선고 받고 대구교도소로 이감 되었단다.

포항 있는 몇 달 동안 겨우 편지 두어통 보낸거 말고는....

 

휴가 하루 내고 대구에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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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1 14:53 2007/02/0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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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있는 사진들을 컴으로 다 옮겼다.

폰으로 찍은 사진들 잘 보이지도 않는데, 뭐하러 찍었는지 모르겠다...

 

 

회사 흡연실에 걸려 있었던 포스터다....

중학교 1학년인가 그렸다는 것인데,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에는 포스터가 바닥에 내려와 있길래, 다시 걸었는데,

얼마 있더니 아예 사라졌다.

흡연가들이 '담배 피면서 저걸 꼭 보고 있어야 하나?' 이랬는데,

누가 치웠는지는 모르겠네.



 

새해 신년인사 보냈는데, 보지 못했냐구 그래서, 받은 거 없다 했다.

나중에 휴대폰 앨범을 뒤져 보는데, 못본게 하나 있다.

이게 신년인사로 보낸 것이다.

눈온날 눈위에다 쓰고 폰으로 찍은 것이라구...

건강해야겠다..ㅎㅎ

 

 

이 것도 누군가 보낸 것일텐데,

새해 인사로 보낸 것인지,

무슨 뜻으로 보낸 것인지 모르겠다.

누가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고...

보내신 분은 뭔지 좀 알려 주쇼..

 

 

 

못보던 얼굴이 또 하나 있었는데,

폰메일을 막 뒤져 봤더니, '두고두고 보삼 히'라는 제목과 함께 왔는데,

이건 또 누군지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집나간 딸이 하나 있긴 있는데

짐작컨데 그 딸이 아닐까 하긴 하는데,

몇년동안 연락이 없고, 얼굴도 안보이니까 얼굴도 잊어버렸다.

돌아와라 딸아! 모든 것을 옹서할 테니...ㅎㅎ

초상권 침해를 우려하여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행복을 만드세요...라고 누군가 보내준 사진인데,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사진 보내 준 분께 감사... 행복 마구 만들고 있어요..ㅎㅎ

 

 

몇 주전엔가 홍성 갔다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서 떨어지는 해를 찍었더니 이모양이다.

 

 

 간월도인가 하는 곳에서 쉬고 있는 철새들에게 소리질러 날아보라고 한다음에

찍었더니 이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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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1 13:56 2007/02/0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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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시험 보고 동희가 한과목을 망쳤다고 했을때만 해도 뭐 그려려니 했다.

입시 상담을 해준 학원 선생도 그정도면 잘 봤다고했고,

지원을 잘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근데, 막상 발표가 났을때 언어영역이 2등급으로 드러났고, 가능성은 더 낮아져 보였다.

공과대학이나 다른 곳도 고민해 보라고 했지만,

의과대학을 가겠다고 했고, 학교에서 써 보라고 한 곳은 아예 부모한테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낮춰서 쓴다고 지방의 의대 두 곳과 서울의 어느 약대를 하나를 썼는대도 모조리 떨어졌다.

예비후보자 번호도 한참 멀어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미 가군의 합격자 발표가 나자 마자,

동희는 재수를 결정한 듯하다.

 

다군까지 발표난 지난주말에 동희에게 말했다.

"1~2년이란게 인생에서 긴 시간도 아니다. 재수해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좀 구경하고, 그렇게 맘 편하게 먹고 재수해라.! 재수할 학원도 좀 알아보고..."

"어......" (표정의 변화도 없고, 대답하는데 덧붙임도 없다... 뭔 생각을 하는지...)

 

다 떨어지고 나니, 가장 상심한 사람은 물론 동희겠지만, 표면상으로는 아내가 가장 상심이 크다. 금욜 밤에 술한잔 마시고서는 전화로 걱정과 푸념을 한참 늘어놓더니, 집에 와서도 애한테 몇마디 한 모양이다. (어제 낮에 점심 먹으면서 동희는 '엄마는 술마시고 좀 뭐라 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는 걸 보니...)

아내 회사 사람들이나, 신정동의 할아버지, 동희 삼촌들도 궁금해서 물어보고, 전화하고 하는데, 이런 것에 대해 아주 못마땅해 한다. 합격했으면 어련히 알아서 전화도 하고, 문자도 할 텐데, 연락이 없다는 것은 떨어졌다는 것일텐데, 뭘 그걸 물어봐서 더 짜증나게 하냐구....

 

산오리는 붙거나 떨어지거나 거의 남의 얘기 하듯이 잘도 중계 방송을 해 주는 편이지만(합격하지 못한게 무슨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아내의 얘기를 듣고 보니  뭐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블로그 친구들도 산오리에게 동희 학교 어떻게 되었냐구 물어보지 마셈! ㅎㅎ

(이미 중계방송을 다 해서 물어볼 것도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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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9 16:51 2007/01/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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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끝나고..

from 단순한 삶!!! 2007/01/29 11:43

26일은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다가 당의 각종 선거 개표일이었다.

당은 도당과 지역위원회에서 내가 원했던 후보들이 많이 당선되어서 다행이다.

사실 선거 막판까지도 지역위원회 위원장 선거는 불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좀 의아하다가, 또 약간은 열을 받다가, 이내 포기했다.

이번에 연합인지, 주사파인지 하는 애들이 한번 해 보는 게 뭐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핑계로 당에서도 아예 손발을 탈탈 털자는 생각이 확 들었던 거다.

 



97년 '일어나라 코리아'를 내걸고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무려 10년 가까이 이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고, 당에서 뭔가 '자리'를 하나라도 맡고 있었다.

물론 말로는 10년을 넘어서 100년까지, 아니 우리 새끼들까지 이 짓을 끈질기에 해도 진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끈질기게 하자고 해 왔고, 마음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다짐해왔다.

근데, 핑계인지는 모르지만, 그 자그만 성과마저도 다 갉아 먹고, 하는 짓거리들 보면 정말 내가 이 당의 당원이란게 쪽팔림으로 다가오는게 지난 1-2년이었다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커가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 참에 선거까지 지게 생겼다고 하니, 어라 잘되었네,... 그많던 돈과 몸을  때우라는 사역도 이제 줄이거나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싶은 간사한(?) 맘이 드는걸 어찌하랴..

그런데, 선거는 겨우 이겼단다.

간사한 마음을 계속 키워갈 요량이지만, 확실하게 손발을 탁탁 털기는 어렵게 된 거 같다..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양경규 위원장의 당선을 빌었다. 그리고 아무리 썩어빠진 민주노총이라 하지만, 이지경에 이르렀는데 설마 떨어지기야 하겠냐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그 찌질이들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민주노총 조합원이란게 또 이리 쪽팔려서, 민주노총 조합원 안하고 싶은 마음이 수백번도 더 든다...

민주노총과 당의 선거를 보면서, 자꾸 60년대와 70년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했던 선거가  떠오른다.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대표되는 그 선거들...

그들이 막걸리 한잔과 고무신 한쪽을 받고 그 찌질이들을 찍어줬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정서가 그들의 바람이 바로 그 찌질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이고 공약이었을 것이라는....

그러니 민주노총이든, 당이든 저 찌질이들의 공약으로, 그리고 그 공약으로 당선되는 것은  곧바로 노동자와 서민의 정서와 바람이 그대로 드러나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와 서민의 정서나 현실을 무시하고, 그들과 거꾸로 가려고 하는 생각을 가진 산오리의 생각이 문제일 거라는....

 

맘에 안들어도 민주노총 조합원, 당원으로는 계속 남아 있어? 말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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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9 11:43 2007/01/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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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립다...

from 단순한 삶!!! 2007/01/26 15:32

새벽 5시 5분에 일어나 첫타임 수련을 가다 보니 항상 잠이 모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저녁시간이 한가해 졌길래,

마지막타임 수련을 이번주에는 4일 연속 가고,

그리고 밤에는 7시간이 넘는 긴~~ 잠을 잤는데....

회사에 출근하면 졸립고 하품이 나온다.

 

점심먹고 하도 졸려서 책상에 엎드려 졸았는데도(잤는데도)

계속 졸립네....

5시간도 채 안자고 새벽에 운동하면 낮에 이렇게 졸리지는 않았는데,

절대적인 잠시간이 부족했던게 아닌가?

많이 자도 계속 졸리는게 잠인가?

 

어쩌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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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6 15:32 2007/01/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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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from 단순한 삶!!! 2007/01/25 13:40

운동하고 집에 가니 9시가 가까워 졌다.

이시간에 집에 가면 혼자서 집 지켜야 한다.

배는 엄청 고픈데, 여기 저기 뚜껑 달린 것들을 열어보고, 문달린 것들도 열어봐도,

밥은 없다. 애들 저녁으로 먹인 모양인데, 찬밥  쪄서 먹고 남은 것만 두어숫갈 정도만 남아있는데, 그것도 누룽지 반쯤된 것뿐이다. 쌀 담가 놓은 거라도 있나 보니, 그거마자도 없다.

 



보온 밥통에 밥 한두그릇 있거나, 냉장고에 먹다 남은 찬밥이라도 있게 마련인데, 그도 저도 없으니 이를 어쩐다 싶다. 그렇다고 라면이나 떡국을 끓여 먹고 싶지는 않고, 밥을 먹고 싶은데.... 아내는 고등어 김치찌게도 새로 만들어 놓고 나갔고, 먹던 된장찌게도 있으니 반찬은 충분한데.

 

밥을 해 먹자...

쌀 퍼와서 씻고, 잠시 담갔다가 압력솥에 밥을 올리면 금새 되겠지...

(쌀씻는 도중에 휴대전화는 왔는데, 전화 좀 끊었으면 좋겠는데, 이인간 저인간 돌려가면서 통  끊지 않아서 얼마나 전화기 붙잡고 우왕좌왕 했다..)

찌게 데우고, 밥 올리고, 그 와중에도 배가 너무 고프다.

(배고픈건 정말 참지 못하는데, 고등학교때 엄마가 연탄불에 밥 올려 놓고 뜸 들이면 된다는 밥솥을 내려놓고 라면인가를 끓이고,  밥솥을 다시 올렸던 적도 있었다. 뜸들다가 밥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먹다 남은 포도주 꺼내서는 고등어 김치찌게에 두어잔은 마셨더니 밥이 끓었고, 좀 있다 김빼고서는 밥을 퍼서 신나게, 열나게 먹어치웠다.

 

밥이 바닥에 약간 눌어 붙었는데, 이거 긁기도 어렵고 해서 누룽지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찬밥 데워먹다 남은 밥 두어숟가락을 같이 쏟아서 바닥에 잘 깔아서 밥솥을 불위에 올려 놓았다. 물론 불은 가장 약하게 해 놓고....

 

그리고는 그 누룽지 되는 동안 잠시 텔레비전을 켰더니, 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슛돌이를 하는게 아닌가? 양구에서 하는 무슨 대회에 나간 걸 보여 주는데, 햐, 진짜 재밋더군...ㅎㅎ 슛돌이 팀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다른 팀들의 8강전까지 요약으로 중계해주고, 그러고 나서 슛돌이 팀의 경기를 보여주는데, 양구팀이 실력이 너무 모자르니까 한두살 더먹은 큰 친구 하나 넣어서 공을 차는데, 이 친구가 차는건 하프라인에서 찬게 세번이나 골이 되 버리다니...ㅎㅎ

그러고 있다가 아차,,,, 누룽지... 하고 일어났는데....

 

부엌이 온통 뿌연 연기로 뒤덮이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거실도 만만찮게 연기가 차 오고, 공기청정기인지 뭔가 하는놈은 최고의 출력으로 돌아가면서 색깔도 노란색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솥을 들여다 보니, 모조리  쌔까만 재만 남았는데,그래도 계속 연기만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더라.

일단 개스불부터 끄고, 문 모조리 열어 놓고, 개스레인지 위에 있는 바람 빼는 기계도 마구 돌려서 빼내고... 그렇게 한참을 지났는데 아직도 뿌옇게 연기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항에 부족한 물 채우고... 그러고도 한참 있다가 문을 닫을 즈음에, 동희가 들어왔다.

"아빠! 쥐포 구워줘!"

"웬 쥐포는?"

"지금 쥐포 굽고 있었던거 아냐?"

"그건 아니고, 누룽지 좀 태웠거덩."

그리고 쥐포 구워 줬다.

 

아내가 들어와서는

"아이구, 이거 무슨 탄내가 이렇게 나? 뭘 태웠어?"

"누룽지 만들다가....잠시 한눈 팔았더니..."

"아니, 누룽지 만들려고 했으면 옆에 붙어있어야지... 글구 밥도 안먹고 들어왔어요?"

"운동갔다 그냥 왔으니까..."

"낼부터 밥 해놓고 나가야겠네...."

 

뭐 곰탕 끓이다가 태우면 사람 살 태우는 냄새 비슷한 게 난다는 말도 있던데,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온통 탄 냄새가 당분간 머물러 있을 듯하다..

후각 장애가 있는 산오리로서야 그 냄새에 괴로워 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타도록 아무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었다니 참 한심한 노릇이다.

 

후각장애, 이거 어디서 치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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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5 13:40 2007/01/2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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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았던 60년대까지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목욕은 없었다. 여름철 목욕은 동네 뒷개울에 저녁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가서 목욕을 했는데, 여자들은 위쪽에 남자들은 아래쪽으로 나뉘어서 목욕을 했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여자들도 자연스럽게 가슴 드러내고 애들에게 젖을 물렸으니까 여자들의 목욕이 궁금하거나 했던 것도 없었던거 같다.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깜깜한 밤에(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는데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개울이니까..) 여자들 목욕하는 곳에 가서 들여다 봐야 뭐 보일 것도 없었을 것이다.

 



동네 어른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버스를 타고 현풍읍내까지 가서 목욕을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목욕을 하고 왔다면 동네 사람들한테 좋은소리 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차비며 목욕비 쓸데가 어디 있다고...

산오리가 서울로 올 즈음에 동네 친척 형님 한 분이 집에다 목욕탕을 만들었다. 목욕탕이래야 커다란 드럼통 하나 올려놓고, 그아래 아궁이를 만들어 장작을 때면 드럼통 물이 데워지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집안에 욕실이란게 없으니까 부엌 옆 한데에 만들었으니 겨울에는 추워서 그 드럼통에 물 데우고 그안에 들어가 앉아서 때를 불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그럼 요즘으로 따지면 그럴듯한 노천욕 분위기가 났을라나... 어쨌든 그런 목욕시설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동네의 화제가 되었고, 당연히 구경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서울로 와서 칼산에 살게 되었는데, 칼산 빈민가에 목동으로는 논밭이 가득하고,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대중목욕탕이 있을리 없었다. 한 20분쯤 걸어서 고척동으로 가면 대중탕이 있었는데, 설날 전에 목욕하러 갔던 기억이 한두번 있다.

 

겨울에 목욕은 해야 하고, 대중탕에 갈 목욕비는 없었고, 학교에 가면 용의검사를 한다고 손발을 내밀고, 심지어 배까지 들어올려서 배꼽에 때 끼인거 까지 확인하고서는 선생들이 심하게 모욕을 주었으니 가끔은  목욕을 해 주긴 해야 했다.

 

아버지의 직업이 보일러공이었던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양남동의 어느 모직공장에서 일했는데, 그 당시 보일러공의 위세가 대단했다고 자랑하곤 하셨다. 추울때 난방을 제대로 안넣어 준다든지 해서 떨게 만들면 누구나 아쉬운 소리하게 마련이라는 거였다. 이걸 아버지는 기름쟁이의 '곤조'라고 했는데, 그래서 가끔 화나면 아버지는 '파이프렌치 가져와!'라고 소리 지르곤 했다. 

아버지는 당연히 보일러공이란 말을 하지 않았고, '기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공장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회사 직원들이 집에 가끔 오거나 하면 '기관장님!'이라고 불렀으니까 우리도 아버지가 기관장으로 굉장히 높은 분인줄 알수 밖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동생이 어느해 학교에 내는 생활 기록부에 아버지 직업을 '기관장'이라고 써서 냈다. 담임선생이 당연히 아버지 학교 좀 오시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그때 학교엘 갔는지 안갔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에 우리는 아버지 직업을 기관장으로 써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로 왔을때 아버지는 종암동에 있는 전신주 만드는  어느 공장에 '기관장'으로 계셨다. 그리고 토욜이나 일욜이면 목욕하러 종암동까지 갔다. 공장의 노동자들 탈의실이 있고, 옷을 갈아입기 전에 간단한 샤워를 할수 있는 목욕탕이 있었는데, 이걸 '기관장'이 아들들에게 목욕탕으로 '개방'해 주신 거다. 칼산에서 고척동까지 터덜터덜 걸어서 30번 버스(광명에서 성북역까지 가던 버스인데 오래도록 그번호 그대로 있었다)를 타고 종암동에 내려서 공장으로 들어갔다..

공장경비실에서 수위 아저씨한테 쭈삣쭈삣하면서 "기관장 아들인데요....." 하면, 수위 아저씨가 "어, 그래 들어가 봐라"하고선 문을 열어주었다. 어떨때는 높은 분들이 퇴근하지 않았거나, 다른 손님이 와 있을 때면,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문밖에 세워두기도 했다.

탈의실을 거쳐서 목욕탕에 들어가면 사람 너댓명 들어갈 정도의 사각형 탕이 하나 있는게, 그게 전부였다. 그 안에 네놈이 들어앉아서 장난 쳐가면서 푹 담갔다가, 밖에 나와서 때를 박박 밀고, 등을 서로 밀어주었다.

사실 우리 형제들만 이 목욕탕을 썼으니 맘대로 장난치고, 떠들고 난리를 쳐 가면서 목욕을 했으니, 대중탕 가는 거보다는 훨씬 행복한 목욕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야근하신 노동자 한두분이 목욕하고 옷 갈아 입으러 왔는데, 이럴때면 그저 조용조용 있어야 했다. 가끔 자주 봐서 아는 아저씨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너네는 누구냐?"라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대답하기도 난처하고, 대답하고 나서도 찝찜했다. 그래도 중고등학생이고 다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한참 늦은 밤이 되었지만, 그래도 목욕하고 때 벗겨서 개운함은 너무 좋았다.

 

아버지가 직장을 문래동의 어느 식품회사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기관장'이었다. 문래동은 칼산에서 가까워서 종암동 가는 거 보다는 훨 나았는데, 이때 안양천을 건너서 한시간 반 가까이 걸어가야 했으니까, 그 추운날 그것도 고역이긴 마찬가지 였다. 그때 쯤 칼산까지 버스가 들어오는게 있었는데, 109번 버스 종점에서 한대가 종점과 칼산을 왕래했고, 그러니 한 30분만에 한대꼴이나 되었나 모르겠다. 그 버스 기다려서 타고 109번 종점에 가서 다시 갈아타고, 양남동에 내려서 다시 문래동 공장까지 가야 하니까 차라리 걸어다니는게 낫겠다고 걸어 다녔다.

 

이 회사에 아버지는 정년퇴직할때까지 다니셨는데, 이 회사 직원들을 대충 얼굴을 많이 익혔다. 이즈음에는 목욕할 식구들이 더 늘어 났는데, 이종사촌 한명이 서울로 유학와서 우리 집에 있었고,  직장다니는 외삼촌, 재수한다는 시골의 7촌 조카까지 있었다. 그러니 대여섯명이 모여서 목욕하러 공장으로 몰려 갔고, 신나게 목욕은 했다. 매주 갈 수는 없었으니까 2주에 한번 정도 갔다.

 

나이가 좀 들면서 친구들과의 약속도 생기고, 또 그 먼곳까지 가기도 싫고, 더구나 머리 커지면서 아무리 아버지가 '기관장'이라고는 하지만, 공장의 이사람 저사람 눈치 보이는데 목욕하러 가기가 싫어지는 거였다. 평일은 불가했고, 공장의 노동자들이 대부분 퇴근한 일요일 저녁에 가야 했는데,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이었을까.

그래도 대중탕 갈 목욕비는 감당이 안되는 처지였고, 할수 없이 싫어도 귀찮아도 갈수 밖에 없었다.

 

대학다닐때도 목욕하러 형제가 몰려서 갔었는데, 언제부터 가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 목욕비 몇천원이면 아무때나 맘대로 목욕탕 갈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그래서 일주일에 두번이고 세번이고 목욕탕에 가곤 했고, 회사에서 몇명이서 사우나패거리를 만들 정도였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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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4 14:44 2007/01/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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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 겨울에는 어디론가 바다 건너로 좀 나가 보겠다고 친구들한테 놀러가자고 하는데,

   마땅하지 않았다. 계획을 잡는 거며, 날자를 잡는 거며.... 산오리가 극도의 귀차니즘과 단순함으로 지내다보니, 여행계획을 세우거나 어디 알아보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친구가 날잡고 가자 하면 따라가겠노라고 했는데, 그게 친구도 마찬가지겠지 싶다.

그러다가 복돌아빠와 중국이나 가는 걸로 결정을 했고, 산오리는 복돌아빠한테 다 미뤄놓고 있었더니, 그가 여러가지 자료를 수집하고 해서, 1월 말에 출발하는 걸로 정했다.

그래서 복돌아빠의 여권을 받아 오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산오리의 여권도 어디 쑤셔박아 놓은 걸 찾아서 펼쳐 봤더니....

 

여권 유효기간 만료일이 06년 12월 28일이다.

 

지난해 물건너 가 보지 않았으니 여권유효기간이 끝났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있었던거다. 회사의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여권 새로 만들려면 2주일 걸린단다. 구청 홈피에 들어가서 보니, 번호표 받아서 기다려 접수하고, 어쩌고 해서 만드는 기간이 휴일빼고 8일 걸린다고 나와 있다. 복돌아빠가 알려준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는데(비자 만들게 여권 사본 보내라고...), 그기다 물어봤더니 같은 대답이다.   1월말은 커녕 2월 초도 포기......

복돌아빠한테 전화했다. 설이나 지내고 가자고.....

 

 

 



2. 저녁시간이 좀 한가해져서 저녁에 운동하러 가는날이 많아졌다. 어느날은 운동하러 가서 좁은 길 옆에 차를 세우는데, 뒤로 가는데 뭔가 걸렸다. 그게 차도와 인도의 턱이려니 하고 다시 앞으로 갔다가 뒤로 빼서 차를 세우는데,이번에는 뭔가 덜거덕 거리면서 닿는 소리가 난다. 이상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차를 주차하고서 내려 봤더니, 보도 아래 두조각의 경계석 조각이 있는데, 조각마다 철근이 삐죽이 나와 있고, 그게 뒷바퀴에 걸려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던거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퀴옆구리에 철근이 찢고간 흔적이 두어군데 나 있었다.

 

밝은날 자세히 보니까 한쪽의 흔적은 제법 깊어 보였다. 이걸 그냥 타고 다니나 마나.... 주말에 타이어가게에 갔더니 "꽤 깊은 거같은데, 액땜한 셈 치고 바꾸시죠..."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거로 예상했지만, 그래도 타이어 바꾼지 세달도 안된 새 타이어를 또 바꾸니 짜증이 왕창 날수밖에...ㅠㅠ

 

3.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회를 조금 사서 집으로 갔다.

애들보고 먹으라고 했는데, 잘 먹는다.  동명이한테 '술도 마시려면 마셔라'고 했더니,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고, 소주를 한병 찾아 줬더니 잘도 마신다. 애비는 두잔 마시고 나머지는 동명이가 마셨고, 그것도 모자라 먹다 남은 양주를 내 와서는 콜라에 타서 그게 맛있다고 잘 마신다.

"학원 끝나고 어디가서 놀다 왔냐?"

"노래방..."

"아빠가 부를 노래도 하나 찾아 주라."

"아빠는 뽕짝 좋아하지 않나?"

"뽕짝 별로인데..."

"그럼 뭐 잘불러?"

"자우림의 일탈... 마구 소리 지르지.."

"아빠 모습이랑 잘 어울린다.."

"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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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4 13:43 2007/01/2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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