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2007/04/22 19:52

내가 즐거워지고, 그리고 나를 생산적으로 (이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달리 생각이 안 나므로) 고민하게 만드는, 정서적으로 지지가 되는,  내 삶의 테두리에서 다다를 수 없는 곳으로 끌어당겨서 발전하여 살아가게끔하는 그런 환경을 가까이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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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안지 작성방법

2007/04/18 11:32

과 게시판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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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차의 중요성

저학번 후배분들의 경우, 목차가 꼭 필요한 것인지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가 있지요. 저도 처음엔 목차를 잡아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너무 틀에 박힌 것 같고, 교과서 배껴 써내는 것 같고 해서 꺼려 졌었거든요. 하지만 목차를 잘 잡은 답안지는 그걸 읽는 사람들에게도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하고, 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지 드러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특히 사법시험까지 목표로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연습해 놓는 것이 나중에 큰 힘이 된답니다.

2. 사례형 문제의 경우

(1) 개관
사례형 문제를 풀기에 앞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례형 문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체적인 사안에서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즉, 수업시간에 배운 학설, 판례 등의 일반이론 뿐만 아니라, 사안의 포섭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문제지를 처음 받았을 때에는, 주어진 설문 하나 하나, 심지어 단어 하나까지도 문제 해결에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니, 이 점을 잘 기억하면서 문제를 읽고 논점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목차를 짤 때 번호 붙이는 방법은 저의 경우는 Ⅰ(큰 로마자) 1.(아라비아 숫자), (1) (양괄호), 1)(단괄호), ①(원숫자) 또는 ⅰ)(작은 로마자) 순서로 했습니다. 물론 목차는 작은 목차로 갈수록 일정한 간격대로 들어가서 쓰는 방법은 다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2) 민법의 경우

민법의 경우에는 "갑, 을, 병의 법률관계를 논하시오" "갑은 을에 대해서 ** 청구가 가능한가?" 식의 문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목차가,
Ⅰ. 문제의 제기(혹은 문제의 소재, 논점의 정리)
Ⅱ. 갑과 을의 법률관계
Ⅲ. 갑과 병의 법률관계
Ⅳ. 을과 병의 법률관계
Ⅴ. 사안의 해결(혹은 결론)

후자의 경우에는
Ⅰ. 문제의 제기(이하 생략),
Ⅱ. 갑이 을에 대해서 **청구가 가능한지 여부
Ⅲ. 사안의 해결(이하 생략)
이런 식으로 써내려가면 대개 잘 맞을 겁니다.

이제 문제는 소목차를 잡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논점 하나당,
(1) 문제점, (2) 학설의 대립(견해의 대립 등), (3) 판례의 태도, (4) 검토(또는 사안의 경우, 소결) 식의 순서로 적으면 됩니다.

(1) 문제점에는 문제가 된 쟁점이 무엇인고, 왜 논의의 대상이 되는지 적어주면 됩니다. 조문이 있는 경우에는 어떤 문구의 해석을 두고 문제가 되는지, 조문이 없다면 없는대로 문제해결에 관하여 견해가 나뉜다는 식으로 말이죠.
(2) 학설의 대립은 책에서 배운대로 요약해서 적으면 됩니다. 번호를 붙여가며 학설이름을 적고 줄을 바꾸어서 학설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 각 학설이 내세우는 근거를 1~2개 정도 적으면 좋습니다. 비판은 학설소개마다 적어도 되고, (4) 검토에서 한꺼번에 적어도 되구요.
(3) 판례의 태도는 사법시험 실전에서는 꼭 적어야 할 부분입니다. 특히 사시에서는 학설 4~5개 적는 것과 판례의 태도를 적는 것이 배점이 거의 비슷하게 나갑니다. 따라서 판례를 아예 적지 않는 것보다는 판례의 태도를 적어주는 것이 낫고, 단순히 "판례는 부정설의 입장에 있다"이렇게 적는 것보다는 "판례는 **사안에서, **라고 판시하여, **입장에 있다"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어주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4) 검토(이하 생략)에서는 각 학설의 비판점을 간단히 제시하고 자신이 취할 견해를 밝힌다음, 그 학설에 근거해서 ★사안의 포섭을 해줍니다.
사안의 포섭을 해줄 때도, 단순히 "**학설에 의하면 이 사안에서는 이렇게 된다" 이렇게 결론만 적지말고,  "**학설에 의하면, 사안에서 갑이 **게 한 행위는 **에 해당하므로, **게 된다"고 설문에서 주어진 구체적인 관계를 최대한 활용해서 적어주는 것이 답안지의 인상을 훨씬 좋게 합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례형 문제의 목적은 구체적인 사실관계 해결에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하세요.
이때 각 학설에 따른 결론을 모두 적어야 되는지는 경우에 따라 다른데, 특히 1) 학설대립에서 크게 어느 학설이 통설적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행하게 대립해 있는 경우이거나, 2) 학설과 판례가 완전히 반대입장을 취하는 경우라면 두세가지 결론을 모두 적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3) 형법의 경우

형법은 특히 저학번에게 어려울 수 있는데, 이유는 형법사례는 아무리 저학번 수업이라 하더라도 전체 범죄체계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답안지를 써내려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의 착오'가 주된 논점이지만, 설문은 "갑의 죄책을 논하라"라고 출제가 된 경우를 예로 들어볼게요.
저도 그랬지만, 저학번의 경우 이 설문을 받자마자, 사실의 착오가 논점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사실의 착오의 의의, 학설 등 일반론 적으면서 따라서 결론은 갑은 **죄이다. 이렇게 답안지를 써내려가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답안은 물론 목차를 잡지 않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교수님은 이 답안지를 보고 이 학생은 아직 형법의 기본 체계조차 터득하지 못했군 하고 생각하실 겁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Ⅰ. 문제의 제기(혹은 문제의 소재, 논점의 정리)
Ⅱ. **죄의 성립여부
Ⅲ. **죄의 성립여부
Ⅳ. 사안의 해결
등으로 크게 목차를 잡고, 다시 "구성요건해당성-위법성-책임"의 범죄성립요건을 기억하면서 소목차를 잡아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사실의 착오가 문제되는 경우라도, 기본적으로 설문에 주어진 사실관계로부터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시간이 없거나, 당연히 인정되는 경우라면 "별 문제없이 인정된다"정도로라도 간단히 언급)를 쓰고 난 다음에, 주관적 구성요건요소의 인정여부에서 갑의 착오가 사실의 착오로서 고의가 인정될 수 있는가를 논해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설문에서 정당방위나 긴급피난등의 위법성조각사유가 있는지 적고, 행위자가 미성년자라거나 심신미약이라는 등의 책임조각사유가 있는지 검토한 다음에
결론으로 죄책을 적으면 됩니다.

(4) 기타 주의할 점★

1) 사례형 문제의 경우 답안의 결론부분을 적을 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주어진 설문에 대응하는 답안으로 끝을 맺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갑은 **청구를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면 답안지 맨 마지막에는 "갑은 **하므로, **청구를 할 수 있다/없다"로 답을 내야하고, "갑의 죄책을 논하라"라고 물었다면 "갑은 **죄, **죄의 죄책을 지며, 양 죄는 경합법/상상적 경합의 관계에 있다"라는 식으로 적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갑,을,병 등 당사자가 많이 등장한 문제라면 1.2.3 등의 번호를 붙여서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적는 것도 좋습니다.
2) 또 하나, 법전참조가 가능한 시험이라면 꼭 조문을 함께 적으세요. 법조문은 민법의 경우에는 청구권의 근거가 되고, 형법의 경우에는 죄형법정주의상 실정법 조문이 특히 중요합니다.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살인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한 행위를 형법 250조에서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이니까요. 형법의 경우 죄책이 미수라면 총칙에서 미수규정도 모두 적고, 특별법이 문제가 된다면 특별법 조문까지 찾아 적으면 금상첨화겠지요.

3. 약술형 문제의 경우

약술형의 경우에는 크게 기본서 목차대로 써나가면 됩니다. 즉, Ⅰ. 서설(개관, 의의 등) Ⅱ. 주체(헌법 등의 경우), Ⅲ. 요건 Ⅳ. 효과 등으로 말이지요. 기타 사항은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는 관계로 생략하고 혹시 궁금한 점 있으면 더 물어봐 주세요.

4. 참고 교재

당장에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 이상, 답안지 작성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하기가 힘들겁니다. 하지만 시험기간만이라도 연습하고 싶으시다면 고시자료실이나 도서관에서
(1) 헌법 - 김문현 교수님 사례집, 김선택 교수님 사례집, 단문의 경우 정회철 사례단문헌법 기타 단문집이나 다른 수험용 요약집
(2) 민법 - 송덕수 교수님 사례집
(3) 형법 - 이재상 교수님 사례집, 하태훈 교수님 사례집(형법 이재상 교수님 사례집은 사실 목차가 사법시험 실전용으로는 부족한 편인데 - 학부시험으로는 충분하지만 -, 목차만을 보고 싶다면 하태훈 교수님 사례집도 괜찮습니다)
정도 빌리거나 복사해서 보세요. 미리 미리 사례집을 봐두지 않았다면 시험 며칠 앞두고 사례집 전부 보는 것이 부담스럽겠지만, 이럴 때에는 사례집 앞에 목차와, 설문과 답만이라도 확인해보면 도움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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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유형 테스트

2007/04/18 11:04

시험 하나가 끝나고, 오늘은 조금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허접스런 것들로 머리식히는 중.

 

아래 링크.

 

http://cgi.chol.com/~ksb/lovetype.htm

 

 

나의 결과는....

 



친구같은 사랑 : [37] %
헌신적 사랑 : [66] %
논리적 사랑 : [66] %
소유적 사랑 : [66] %
정열적 사랑 : [28] %
유희적 사랑 : [12] %

 

<<친구같은 사랑(Friendship Love)>>
[37%]

동료나 이성친구로 오랫동안 함께 지내는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는 경우이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첫눈에 반해 황홀감을 느끼진 않지만 하는 일이나 취미가 비슷하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에게서 외모보다는 상호간의 신뢰감을 기반으로 사랑의 감정을 싹틔운다. 서로 잘 알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 있어도 초조해 하지 않으며 애정표현이 유난스럽지 않다. 비교적 덤덤한 관계를 유지하나, 결혼을 한 경우 이혼율은 낮은 편이다.

<<헌신적 사랑(Selfless Love)>>
[66%]

소위 아가페적인 사랑이 헌신적인 사랑이다. 자기자신의 욕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배려하며 사랑이란 베푸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상대가 자신에게 실망을 시키거나 배신한 경우마저도 실망하지 않고 자비심을 베풀며 무시하는 학대하는 상대에게도 인내심을 갖고 헌신한다. 고난과 역경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한다. 상대가 떠나도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참아낸다. 철저한 자기통제 이면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열등감이 숨겨진 경우들이 있다.

<<논리적 사랑(Logical Love)>>
[66%]

짝을 찾을 때 경제수준이나, 학력, 가정환경, 외모 등 차후에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요인들을 사전에 고려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이성적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에 관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려운 대상은 처음부터 포기한다. 상대방과 자신의 장단점을 고려하고 사랑이란 일종의 공정성에 기반을 둔 거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불장난을 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사랑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끝낼 때도 서로 상처받지 않고 결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경향이 있다.

<<소유적 사랑(Possessive Love)>>
[66%]

상대방을 완전하게 소유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매우 헌신적이며, 상대에게도 이를 요구한다. 상대에 대한 헌신에 보답을 받지 못하거나 배신당했을 때는 강한 분노감을 나타낸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사랑해?' 또는 '얼마나 좋아해'라고 확인하는 일이 많다. 이들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헤어져 있을 때 견디지 못하고 상대가 다른 이성에게 조금만 관심을 갖게 되면 심한 질투심을 느낀다.

<<정열적인 사랑(Passionate Love)>>
[28%]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첫눈에 반했다'는 생각이 들고 두 사람의 관계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면 정열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모(부분적이든,전반적이든)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털어놓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싶어한다.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신체적인 접촉을 즐기거나 상대방을 이상화시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심하다. 첫눈에 황홀감을 경험하는 것만큼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심한 절망감을 경험한다.

<<유희적 사랑(Game-Playing Love)>>
[12%]

유희적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랑을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인생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트너도 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도 게임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책임감이나 의무감에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다. 섹스를 추구하기 때문에 다양하고 노련한 취향과 매너를 보여줄 수는 있으나 지나치게 친밀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심한 고통을 겪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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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테스트 결과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젠장할.... 테스트 결과랑 해설이 너무 정직하잖아--+' 라는 것이고

 

그다음에 든 생각은  ' 그래도 이것이 나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 헌신적 사랑'에서  '무시하고 학대하는 상대에게 헌신한다' , '상대가 떠나도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참아낸다. ' 라는 말은 나와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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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중 학생들의 선언문

2007/04/12 14:31

 

"이제 대학생들은 부르주아의 자식을 선발하고 다른 학생들은 제거하는 교육에 종사하는 대학교수의 길을 거부한다. 정부의 선거운동을 위한 구호를 제작하는 사회학자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고용주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기능하도록 만드는 심리학자들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노동자들에게 반하는 체제를 적용하려는 기업의 간부들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고등학생, 대학생, 노동자, 젊은이들은 현 사회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미래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위협적인 실업을 거부하며, 가치없고 극단적으로 전문화된 지식을 부여할 뿐이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는 사상은 모두 반대하는 오늘의 대학. 지배계급의 표현 도구를 거부한다."



"고등교육 수혜자인 노동자의 자식은 전체 노동자 자식의 10%대일 뿐이다. 대학의 민주적인 개혁으로 그 수혜자가 느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노동자의 아들이 기업의 이사가 되는 것이 우리의 강령은 아니다. 우리는 사무직 근로자와 노동자와 간부급의 분리를 폐지하고자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 상황이 개선되어야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투쟁의 본질은 아니다. 심리학 학위나 사회학 학위 취득자는 당신들의 근로조건을 개선시키려는 연구자나 심리기술자가 될 것이다. 수학 학위 취득자는 기계를 더욱 생산적으로 만들어서 당신들을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엔지니어가 될 것이다. 부르주아 출신의 학생들인 우리가 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가? 노동자의 자식에게는 대학생이 되는 것은 그의 계급을 떠나는 것이다. 부르주아의 자식에게 그것은 계급의 진정한 성격을 인식하고 운명같은 자신의 사회적 기능을 자문하고 사회조직과 당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자문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사회현실과 차단된 식자이기를 거부한다. 지배계급을 위해 쓸모있는 존재이기를 거부한다. 단순히 집행하는 노동, 전체를 숙고하는 노동, 계획을 조직하는 노동, 그 노동들간의 분리를 철폐할 것을 원한다. 우리는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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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이렇게 선언하는 학생은 되지 못했지만, 학생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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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텐더

2007/04/12 08:33

 1. 치킨텐더 아주머니.

 

 

 학교에는 비싸기만 하고 맛은 그저그런 패스트푸드식 양식당이있다.

  

허나 학교를 오래다니다 보니 소비수준만 높아지고  평범한 밥이 물릴때가 있어서 가끔 거길간다.

 

거기 카운터에는 신경질적으로  억지로  친절해야한다고 안간힘을 쓰는듯한 표정의 새초롬한

 

점장이있다.

 

그녀는 평소에는 억지로 미소를 짓느라 힘들어보이고 의욕없이 일하지만

  

사람들이 만일 그 시간대에 안되는 음식을 주문하면

 

    " 손님 ......는 지금 안되고 11시부터 되요! "

 

    하고 거절할때는 정말 그 목소리가 자신감있고 힘차다.

 

    어제는 치킨텐더를 시켰는데 다행히도 그녀가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신경질적인 하이톤의 어조로 주방아주머니를 불러서

 

   " 이모~ 치킨 텐더 내줘~!"   했다.

 

      내가 음식나오는 앞에가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 죄송하지만, 포장으로 해주세요" 

 

    라고 그 '이모' 라고 불리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치킨텐더를 주섬주섬 던킨도너츠 봉투에 담았다.

 

    근데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고개를 숙여 귓속말 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신경질 점장의 눈치를 보면서

 

    " 하나 더담았어~^^!  "

 

    하는 것이었다.

 

   

 

   가게를 나와서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나에게 왜 위험(?)을 무릅쓰고 치킨텐더를 한조각 더주었을까?

 

     그녀와 나는 이전에 말도 한번 해본적 없고 처음보는 사이인데.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잘한것도 없는데.

 

     내 인상이나,  짧은 말이었지만 말하는 태도같은 것이 마음에 들었을까?

 

    아님 이유없이 '그냥'?

 

  

     ......그리고 그녀가 담아준 4+1 개의 치킨텐더는 매우 맛있었다.

 

 

   2.  결혼

 

 친구C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작년에 결혼할지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그 애인과 헤어졌다 다시만나서 결혼을 다시 고려해보기로 한것이다. 

 상대는 나이가 좀 많이 있고, C가 방황의 시기일때 멘토+ 짝사랑의 대상이었는데 C에게 무지 큰 상처를 주고 그 남자는 미국으로 갔다가 5년만에 돌아와서 새롭게 애인이라는 형태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남자는 결혼을 많이 하고 싶어하고 안정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상대로 C가 적절하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C도 인생도 잘 안풀리고 집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는건 아니지만 또 한편 결혼으로 인하여 자신이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말살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둘이 썩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옛날처럼 그 남자에 대한 동경과 연정이 불타오를만큼 C는 이제 순진하지 않고, 그리고 그 남자도  C를 사랑이라는 태도로 대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일단 그 남자가 옛날에, 애인이 있는데도 멘토라는 권력관계로  C와 잠자리도 하고 애매모호한 태도와 독설로 상처와 괴롭힘을 주었던 것으로 보아 결혼후에 뒤에서 다른 사람을 사귀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C에게

 

 ' 네가  '비독점적 다자간 애정관계' 를 맺을 것으로 그 사람과 합의 볼 자신이 있는 것 아니면, 그 사람이 결혼까지 할 정도로 관계에 대해서 신뢰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좀더 두고 지켜봐라'  

 

   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녀도 그래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관계에 있어서는 일대일 애정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그렇게 프리한 사람이 아니다.

 

   근데 사실 C는 결혼해서 안정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C의 무한할것만 같은 방황의 세월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기왕이면 그 사람,  나쁜사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결혼하게 되면 부케는 내가 받고 싶다고 했다.

 

 .................................

 

  또다른 친구 A는 28살때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그녀주변에 애정공세자 투성이인데, 그녀는 결혼이 가능할만한 상대를 사귀고 싶다고 한다.

 

  아직 연애도 한번 안해봤으면서 뭐그리 결혼을 일찍하고 싶은지.

 

  물론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안정을 찾고 싶고 결혼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처지니까

 

 그럴수도 있지만.  나같은 경우는 아무리 결혼할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28살때 결혼하고 싶

 

 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28살때 능력을 갖추게 될 턱이 없지만)

 

 인생에서 하고 싶은것도 없고,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없나?

 

 게다가 직장에 들어가게 된 이후로, 할말 안할말 매우 가려서 하고 쓸데없는 추상적인 화제(?)

 

에서는 멀어져 버린 그녀를 보면서 당분간 만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것에 있어서도 신념이 없는 사람들, 변해가는 모습들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안드는 것도 안드는 것이지만,  참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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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2007/04/11 08:26

실패만 계속하다보면

 

마음이 어떻게 변해갈까.

 

오랫동안 쳐박아놓아 굳어진 냉동식품같이 될까.

 

그래도....

 

 어린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싱글싱글 웃으며 코흘리면서 얼음땡을 하듯이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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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안에 가서

2007/04/06 15:47

갯벌에서  조개 낙지 같은 것 하루종일 허리가 뻐근할정도로 잡고

 

저녁으로 잡은 것들 초고추장 찍어서 저녁식사 하면 좋을것 같다.

 

 가끔 신선한 곳에서 진짜 힘들게 노동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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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2007/04/06 15:26

 

내가 허탈하게 웃음짓고 실망하는 대상의 사람들이 되는 것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런것들을 용인하기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

 

무섭다.

 

그리고 가장 정직한 답은

 

나는 내가 똑같이 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더 터부시하는 것 같아.

 

두려워하지 않으면 터부시 할리가 없지.

 

그냥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처럼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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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처

2007/03/27 08:22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때,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랑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크기, 깊이를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포함해 모든 대화는 최음제이며, 인생에 깨달음만한 오르가슴은 없다.
상처는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이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 이후에 겪는 고통은 사랑할 때 행복의 일부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 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돌에 부딪친 물이 크고 작은 포말을 일으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눈을 감고 돌아다니가다 벽을 만나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알게 된다.
이처럼 앎은 경계와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기존의 대립된 시각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상상력이며 가능성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e/motion)의 어원은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 나가는 것(moving out of oneself) 즉, 여행이다.
근대의 발명품 이성(理性)이 정적이고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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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

많이 상처받는 사람이 되자.

누구에게든 말을 걸고, 대화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꿈꿀 수 있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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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폭력화되는 이유<박노자>

2007/03/23 08:39

폭력 관련 뉴스의 ‘선정성’ 때문인가? 최근에 하루가 멀다고 매체에서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의 잔혹한 친구 폭행 소식이 올라 세인들의 눈길을 끈다. 언론들은 뉴스의 충격성만을 부각시켜 폭력의 원인을 기껏해야 ‘폭력 만화의 영향’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고, 또 학교 폭력 관련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들을 보면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높다. 아이들이 왜 ‘고문 기술자’들을 흉내 내게 되는지에는 관심이 거의 가지 않는 모양이다. 폭력을 인간의 내재적 본능으로 봐서 그런 것인가?

 

인간에게 폭력 능력이 부여돼 있지만 폭력성이란 인성 발달의 당연한 결과라고 보기가 어렵다. 물론 사춘기에 들어 자기 과시 욕구가 강해지지만, 이 욕구는 교육자들이 얼마든지 비폭력적으로 분출하게 할 수 있다. 1921년에 영국에서 세워진 서머힐과 같은 대안학교에서는, 학교의 모든 사항들에 대한 결정권과 이성 교제의 권리 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폭력이 아닌 민주적 참여를 통해 인정 욕구를 분출해 왔다.

 

그런데 일반적 근대 교육, 특히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과연 어떤가? 어른들을 흉내 내면서 자신들의 사회를 꾸미게 돼 있는 아이들에게는 학교는 ‘폭력 교사’ 노릇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서 폭력이란 아직도 입시 위주 교육의 현장에서 ‘학급 통제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으로 인식돼 있는 체벌이나 폭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자기 차별화 욕구를 억눌러 결국 그 욕구가 폭력을 통해 분출되도록 유도하듯 하는 두발 규제나 교복 착용 등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훈육주의적 제도들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직접적인 폭력보다는, 학교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간접적인 폭력들은 아이들의 폭력화에 더 많은 ‘기여’를 한다.

 

학교에서의 전체적인 권위주의 질서와 출세주의, 철저한 위계 서열의 관계는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주먹의 서열에서 더 높은 위치를 점하려는 욕망을 갖도록 부추긴다. 예컨대 교장과 일선 교사 사이의 관계가 절대 평등하지 않다는 점, 일부의 평교사들이 교장에게 굴복함으로써 학교사회에의 ‘출세’를 꾀해야 한다는 점 등을 학생들이 과연 눈치채지 못할 것인가?

 

군림·굴복의 현실을 목격하는 그들에게는 ‘힘’을 매개체로 군림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생기게 돼 있다. 이미 중학교부터 학생들이 성적순으로 위계·서열화된다면 암기력과 인내력이 부족해서든 가정이 어려워 학습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서든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 하위권이라는 이름의 ‘천민’이 된 학생은 과연 자신을 폭력적으로 하위에 배치시킨 체제를 두고 복수욕을 불태우지 않겠는가? 물론 친구들에게 주먹을 휘둘러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이지만, 낙오자·하위자의 복수욕을 키운 것도, 학교 현실 속의 체벌과 텔레비전의 온갖 폭력적 영상들을 통해 그 복수 방법을 가르쳐준 것도 바로 이 사회다. 생활과 무관한 지식들을 아무런 흥미 유발이나 개인적인 동기 부여 없이 주입시키고, 거기에다 주입 과정에서의 ‘약육강식’ 경쟁에서 하위로 밀려나는 이들을 가장 민감한 나이에 멸시의 대상물로 만든다면 이것은 폭력의 ‘부추김’ 그 자체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기회주의, 출세주의를 가르치는 동시에 수많은 아이들을 폭력자로 만든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망가진 인생들에 대한 책임은, 학교를 ‘우승열패’의 지옥으로 만든 학벌 카스트 제도와 이 제도의 폐단을 다 알면서도 혁파시키려 하지 않는 우리들 모두 같이 지게 돼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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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정, 학교에서 인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요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폭력적인 인간이 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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