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000미터도 안되는

2007/03/01 20:19

검단산 등반을 했는데 준비 스트레칭을 제대로 안해서 그런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삭신이 땡긴다ㅜ.ㅜ

 

그래도 기분좋은 통증이라고 해야될까.

 

등산으로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일상을 승부욕으로 사는 것에 대한 흥미가 별로 없어진 나로서는 이젠 그렇게 매력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깊은 산줄기와 등산객을 위한 산 아래의 여러 허름한 가게들의 풍경이 나를 휴식하게 하는 것 같다.

 

산....

 

어찌보면 바다보다 좋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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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푸르고 털썩 주저앉기

2007/02/27 15:28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나는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를 부를만큼 나이를 먹지 않았으나, 그 노래의 가사는 서른이 되려면 먼  이들에게도, 서른을 훌쩍 넘어 그 나이가 언제였나 싶을정도로 가물가물한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주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다소 심란해지는 경향도 있다.  삶에서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은 없지만 회한과 상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대다수 인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끔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별 것은 아니더라도 이 노래의 주인공은 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그런 심리 또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한 영화모임에 가입했다.

 

사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시간적 정신적 여유 (이것도 핑계이지만 ㅠ.ㅠ) 가 별로 없는 나에게 있어서도 완전히 멀리할 수는 없는 기쁨이 되어버린 것 같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 거기서 오는 자극. 물론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으로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보면서 무미건조한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되는것이 다소 '깨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영화에서 오는 기쁨과 자극이 일상에서의 자양분이 될수도 있고, 딱히 자양분이 되지 못하는 그저 담배나 마약과 비슷한 것이라고 해도,  그래도 훨씬 즐겁지 않은가.  그래서  영화모임에 가입했다. 혼자서 비디오방 가서 보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거기다 큰 스크린까지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술집이라니 좋지 않은가.

 

그런데 유독 많은 영화보기 모임중에서도 그 모임에 가입한 이유는 사실 두 가지가 있었다.

 

첫번째는 그 술집의 분위기가 아까 말한 김광석의 노래 '서른즈음에'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고 두번째 이유는 그 술집의 인터넷 까페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빨갱이를 허용해주는 분위기라는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거의 사멸되었다가 간신히 재개한 그 영화모임에 그저께 나가보았는데, 정말로 서른즈음에의 노래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삶에 대한 눅진한 곰팡이같은 매너리즘과 김빠진 맥주같은 지루함이 있으면서 동시에 예민한 인간미도 함께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빨갱이- 단대회장을 여럿 배출(?) 한 공간이라 하기도 했다.

 

  지금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또는 직업적으로 현장에서 뛰는 것 외에는 일상에서는 좀 편하게 행동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런태도를 요구한다는 것은 너무 나의 judgemental한 태도인것 같아서 주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삶과 자신이 지향하는 바가 분리되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일상에서도  좀더 진지했으면 좋겠고 사람을 대할 때 성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냉소적이고 우울하기보다는 깨어있고 여러 관점에도 관심을 갖고 또 자기반성적인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보통 사람들보다 사람을 많이 접해왔고 연대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좀더 마음도 넓고 사려깊었으면 좋겠다. - 이게 나의 숨길 수 없는 운동하는 이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빨갱이들 냄새 나는 관계가 더 어렵다. 그래서 이 모임에 한번 참여하고 나서 나의 그런 기대가 이 사람들에게 투영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사람들은 운동하려고 모인게 아닌데.  술마시고 영화보면서 사람냄새나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모임을 만든것 같은데.  글쎄....  가벼운 마음으로 이따금 이 모임을 찾게 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아하고 친해질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자체가 이미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겠지.  어쨌든 현실에서 발견하기 힘든 멋스러운 사람들도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허리띠 푸르고 털썩 주저앉는 기분으로 모든것을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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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2007/02/16 04:28

오늘 시험을 봤다.

 

시험을 본 후에 약간의 갈등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해보았을때,  1년만 더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족, 친구,  학교,  그 외의 것들....

 

그 중에서 나에게 마음으로 가까이 있는 것 외에는

 

다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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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치료와 상담

2007/02/15 00:24

나에게는 가벼운 정신적 질환이있다.

 

어떤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그렇고,  우울증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현대인들 중에 몇몇은

 

분명 갖고 있을만한 것이다.

 

 

이 증상은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있었는데 가끔 가끔씩

 

나타나다가 또 괜찮아졌다가 했기 때문에 정말 치료의 필요성이 있다고는 생각치 않았던거 같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태도바꿈으로 수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계속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의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한마디로 병이라기보다는 그냥 의식하지 않으려 하면 저절로 정상

 

으로 돌아올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들어와도 없어지지 않고  한 4년정도 전부터 꾸준히 심해져서 생활에 큰

 

지장을 주게되었다.  최근 한 2년정도는 이것이 극도로 심해졌다고 해야겠다.

 

 

 

학교에서 하는 상담도 이것때문에 하게 된것인데,  사실 대외적으로는 그냥 남에게 못하는 얘기

 

를 할 상대가 필요해서 하는거라고 말했다. 굳이 타인에게 밝혀서 좋을 것 없고 또 많은사람들이

 

감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정도로  이것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쎄 상담 선생님은 그리 심하지 않은 정도이니  인지적 요법으로 고칠 수 있다고

 

했고 나도 심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기며 인지의 측면에서만 노력했다.

 

그러나 요즘은 잘 모르겠다.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받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면 상담선생에게 내가 내 증세를 아주 상세히 말하지 않아서 가벼히 여겼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내가 그것을 극복하려고 참 많은 노력을 했지만,  한 순간 나아졌다가도 또 노력

 

하면 할수록 점입가경처럼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됬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어떤 종류이든지 가벼운 정신병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본인이 살아가는데 심각한정도의 지장을 주느냐 안주느냐에 따라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

 

느냐, 아니면 적절히 취미와 긍정적인태도 그리고 마음을 편히 갖는 자기 암시 등을 통하여

 

증세를 완화시키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안될것 같기 때문에 다시 첫번째를 고려해봐야겠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때문에 타인이 나를, 그리고 나 스스로 나를 불쌍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문제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과장하여 심각하게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계속 눈뜨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든다.

 

 

인생이 쭉쭉 뻗어나가서 계획을 실행시키는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치

 

않고 그때그때 닥쳐오는 것들에 대해서 본인이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아무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느긋하게 만들어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이 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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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블로그에 글 쓰는 것에 대하여

2007/02/05 01:34

은수님의 [누군가 보고 있어] 에 관련된 글.  

 

 

진보넷 블로그에 정성껏 글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내가 봤을때는 단숨에 썼다고 할 수 없을정도로

길고 자세하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들을 담아서 공론화의 장으로서 블로그를 잘 이용하

고 있는 블로거들을 봤을때, 진보넷 블로그를 개설한 이들의 목적이 무언지는 확실하게 모르나

적어도 사적 친교의 역할 이상으로 담론을 생성해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갑다.

 

나의 경우는,  성의 껏 글을 쓰고 내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얘기의 장을 펼칠정도로 진보넷 블로그를 잘 사용하고 있지는 못하다.  주로 조금 답답할 때 글을 올리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에 시간을 할애하는데에 압박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그냥 주절주절 그 당시에 단편적으로 생각한 것과 심리상태에 대해서 조금 쓰고 만다.  일기 이상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배설의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블로그에 올릴만한 관심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그에 관한 움직임을 포착해서 함께 소통하고자 하기에는 요즘에 내가 집중해야 되는 것의 성격이 그런식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솔직해진 다는 것, 어려울 것 같다. 나 역시 어느정도 이상으로는 솔직해지지 않고 자체검열을 한다.  하물며 일기에 있어서도, 어떤 특정한 상황에 있어서 내 감정의 전부를 나열하고 그 감정에 주 목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줄줄 쓰지 않는데 남들이 많이 보는 블로그에서 그렇지 않을리가 없다.  거기다 오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블로그이지만,  또 이 바닥(?) 이 워낙 좁아서 그런지 내 쪽에서 누군지 대충 알수 있는 사람은 몇몇이 있다. ( ' 이 바닥' 을 알기만 하지, 많은 활동해 본적이 없는 데도 그렇다.)  그 사람들이 백의 하나 내 블로그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 에라 모르겠군,  본 다 한들 뭐 어떤가'  싶으면서도 검열이 순간적으로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글이라는 것으로 조합되는 이미지에 대해서 신빙성을 어느정도 갖는 편인데, 하물며 별로 의심없이 사람에 대한 판단을 자신있게 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나의 사생활에 관한 글을 보여주는 것이 탐탁치않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주구장창  연애사에 관한 얘기만을 블로그에 올린 것을 보고서 ' 아 이 사람은 생각만큼 진지하지 않고 감정적이군'   ' 슬픔에 오랫동안 매달리다니 나약한 데가 있군'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오랫동안 보고 지내는 사이라면,  또 나의 다른 모습을 볼 수도 있을테니 나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않다면, 그 외의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썩 중요하지는 않다.

 또 내가 행동의 제약이 많은 그런 대외적인 일을 하게 될 성향은 아니다. 그러므로 블로그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관계속에서, 집단속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어차피 내가 절실하게 얘

기할때 들을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외의 만남들에 대해서는 가볍거나 혹은 담백하고 싶다.   (사실 오프라인에서 아는 이들은 두명정도 빼고 내 블로그를 전혀 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면도 있다.  그렇기때문에 고충이있는 블로거들을 이해한다.)

 

 

 사실은 스스로 검열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이렇다 하게 쓸 얘기가 점점 없어지는 바보가 되는게 본질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꾸준히 이 블로그를 사수하려고 한다.  여기가 이제까지 다녀본 중에 제일 나은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저  생각을, 살아가는 모습을 상세하게 적는 블로거들의 글을 읽을때 기분이 좋아지는 때가 있다.  아 저렇게 살 수도 있군! 이라고 주목하게 되기도 한다.  그 삶의 방식이 내가 오프라인의 생활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내게 '상당히' 중요하다. ----> (요즘은 이게 블로그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있다. )또 생각의 면에 있어서 자극 받는 것도 있다. (최근에도 어렴풋하게 그런것들이 몇몇 있었다.) 또 앞으로 시간이 많이 지나면 블로그가 내게 어떤 가능성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은 내게 블로그는 여기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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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찌 이런곳이

2007/02/01 13:08

최근에 좋은 비디오 방을 하나 발견했다.

 

우연히 들어간 곳인데 굉장히 많은 옛날 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는 곳이었다.

 

 

보통 디비디 방에는 옛날 비디오를 조금씩 소장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정도로 세트로

 

갖추고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인도로가는길',  '대부' ,  '아웃오브 아프리카',  '찰리채플린 시리즈',  '정복자 펠레',  '당통'

 

'레즈'심지어 '무방비 도시' 까지도 깨끗하게 소장하고 있었다.  

 

아마 500개 정도는 보통 디비디방에서 절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일거다.

 

 

게다가 아침 6시~ 오후 5시까지는 120분 미만 영화는 3000원(!) 에 볼 수 있다.

 

이름은 ' 시네마 천국'  

 

위치는 고려대 참살이길 중간쯤에 있는데,  난 그 학교 학생이 아니므로 사실 앞으로 자주 애용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단 쿠폰을 받아서 영화본만큼 체크를 했다.

 

언젠가 여유로워지는 때가 오면, 여기 가서 하루에 두세편씩 백여개의 영화를 볼터이다.

 

마치 굶주린 이가 잔칫상에 달려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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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어이없음

2007/02/01 12:53

요 얼마전까지 나와 만남을 갖던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가봤다.

 

링크가 되어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들어가본다

 

(사실 잠깐동안 많이 괴로워하다가 조금 정신을 차리고나서 거짓말같이 감정이 사라진지라

 

단지 호기심외의 의도는 없는 것 같다.)

 

들어가보니 새 애인을 사귀었다.

 

(참고로 그 친구는 이성애자이므로 애인은 여자임.)

 

완전히 헤어진지 한달 남짓한데 벌써 누군가를 사귀다니 정말 발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보면, 그 친구가 자신은 외롭지 않고 혼자서 잘지내는 타입이라고 했지만

 

알고보니 내가 아니라 그 친구야말로  애인없으면 -정확히 말하면 여자없으면-못견디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

 

그 여자친구 홈피에 들어가보니 나이가 의외로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이 진짜 웃기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것은,  그 애인이 나이가 나보다

 

다섯손가락이 넘게 많다는 사실에 내가 살짝 안도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_-)

 

미니홈피 만으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것같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지만

 

일단 거기 올려놓은 자신을 표현하는 많은 자료들로봐서는  결혼을 많이 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인연을 애타게 기다리는, 딱히 인생에 큰 재미나 즐거움이 없는 것 같이 보이는

 

직장인이었다.  

 

사랑에 대한 단꿈을 꾸는것으로 보아 나이에 비해 상당히 순진하게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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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 오다가 공중화장실에 들어가서 일을 보면서 생각난건데,  그 친구와

 

예전에 나누었던 대화들이 생각났다.

 

 

 

a (그친구) :   내 친구 00이,  새차 뽑아서 쫘악 타고 왔더라... 자식,  취업했다고 차부터

 

뽑긴.

 

나 :  응....   (쩝....  그게 그리 부러운가)

 

a :  나도 얼른 취업해서 sm5사야지.... 그럼 옆에 태워줄께.

 

나 : 응..... 그런거 안해도 되-   차 있거나 없거나 별로 상관없어.

 

a :  너희집에 빨리 인사가면 안될까?  나 직장들어가고, 차도 사고 그러면 인사해도 되지

 

     않을까?

 

나 :   (화들짝 놀라며) 응? 차 사는 것이랑 우리집에 인사하는 것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집에서 뭐 차 없다고 안좋아하고  차 있다고 좋아하고 그런건 아니야!

 

       우리집에 얘기하기 좀 그런건 내가 아직 학생이고, 자립하려면 멀었으니까 그런거지~

 

a :    그건 아는데.... 그래도....^^;

 

 

 

 저 친구의 그 발언은 나를 너무 어이 없게 했었다.  

 

(그러나 다른 무리의 남자선배들과 술을 마셨을때를 기억해보면,  저보다 조금더

 

고상한 형태로 비추이긴 하지만, 학력있고 잘나간다는 여느 남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도, 대화의 내용도 크게 다르진 않다. )

 

 

차 있고, 괜찮은 직장있으면 허우대 멀쑥한 남자 구실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일반적인 세태

 

속에서 만들어진 사람들의 모습은 남자건 여자건 그닥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그게 그 사람

 

들만의 탓은 아니고,  그 사람들 역시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기 위하여 많이 노력하겠지.  그런 그들의 삶의 형태를 그닥

 

마주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한 형태로서 경멸하기보다는 존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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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 친구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단편들이 옥상위에서 떨어지는 물풍선처럼 떨어져서

 

그 친구와의 사이에 있던 그나마 좋은기억들에 물벼락을 때리기 때문에 나는 이제

 

사실 부끄러워서 남한테 별로 그 친구에 관한 얘기를 하고싶지도 않고 스스로 많이 생각

 

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내 생각을 정리하는 뜻에서 이렇게 현실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없는 블로그에다가만 끄적거릴뿐.

 

그 순진해 보이는 새 여자친구와 어떤 인생을 꾸려나가든지, 그들이 나에게 피해주지 않는

 

이상, 그들의 삶을 잘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어쨌든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한 쌍이라도 더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친구를 내가 한편으로는 우습게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어떤

 

인간이었던 간에 인간이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따뜻한 감정은 그 어떤 이유에도 불문하고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래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확실하다고 무 베듯이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세상사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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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언어폭력에 노출되어있는

2007/01/24 03:13

이 상황을 과감히 부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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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말만 하는 것과 듣기만 하는 것

2007/01/22 12:11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자기말만 하는 사람, 그리고 남에게 물어볼 줄 아는 사람 이 두가지이다.

 

 

내가봤을때 세상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가지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한정되어있는데- 자기가족,  자기 애인, 그리고 직업상

자기가 꼭 밀접하게 되어야만 하는 또는 얻어낼 것이 있는 소수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서 '권력' 이라는 의미는 꼭 통상적으로 쓰이는 제도권 안에서의 정치적 파워보다는 넓은 의미이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것이고, 알고 싶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것인데 관심이 없게 되면 그 사람의 삶의 뼈대인 가치관과  관심사및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물어보지 않는 것이고 또한 알고자 하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되면 자신에 관하여 묻는 것에 대하여 대답은 열심히 하지만 먼저 '물어보거나'  '당신생각은 어떻습니까?' 라고 결코 묻지는 않는다.

 

 

내가 최근 몇년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쪽에서 그 사람에 대하여 질문을 했을때, 저쪽에서도 함께 나를 알기 위하여 질문을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운동-스포츠말고-에 관심을 가진사람들 부류였다. )

 

 

나는 한두번 볼 사이가 아니라면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서 또는 조금이라도 가까워져야만 편해질것 같아서 small talk를 좀 시도를 먼저 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하는 일, 학교, 관심분야에 대해서 적당히 물어보고 아는 체를 한다.  이건 내가 꼭 그 사람에게 관심이 대단히 있어서라기보다는 (물론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게 예의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몇번 이상씩 정기적으로 보는 사이라면, 필요를 위한 기능적 활동만 한 후에 "해산~!' 하는 것이 별로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나 멍석만 깔아지고, 상대방이 편하게 느껴진다 싶으면 주구장창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슬프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사회생활을 오래했을수록, 그리고 남자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  사람이 남의 눈치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자신이 하는 얘기로 인하여 상대방이 지루한지 아니면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애초에 타인의 눈치를 별로 살필 줄 모르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함께 술자리를 가져도 내 얘기를 할 틈도 주지 않고, 또 내 입으로 굳이 끼어들어서 말하지 않으면 나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은 채로 자신의 얘기만 하다가 헤어지게 된다. 물론, 얘기하다가 반응이 좀 뜨뜻 미지근해서 민망해진다 싶으면 "너는... 뭐에 관심있니?" 라고 묻는 경우도 있다.

 

허나 이런식으로 인간관계를 맺다보니 몇번 이상씩 만나서 연락을 하고 지내도 나에 대해서 여전히 잘 모르면서 친구나 선배라는 이름으로 전화번호부에 올라있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예를 들자면 올해로 11년째 친구관계를 맺고 있는  내 친구A는 선량한 성품이고 약간 소심하며 위에 얘기한 부류들과는 달리 자기말만 하는 타입이 아니라 들을 줄도 아는 타입이다.  그러나 이 친구가 들을 줄 안다는 것은, 사실 상대방에게 큰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소 성격상 차분하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편하게 대화를 하는 사이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이친구와 얘기를 하다보면 여전히 나의 관심사와 먼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때가 많다.  직장얘기, 가족얘기,  앞으로 살아갈 인생얘기 이런것들을 이 친구와 주로 하게 되는데 A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A 어머니의 얘기가 나오면서 A가 "나도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의사나 이런 사람들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  하면서 어머니의 태도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도 어머니와 비슷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의뭉스러운건지, 아님 그런게 버릇이 된건지 딱히 그런얘기(?) 들에 이의를 표하거나 "너는, 네가 그런 전문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면서 왜 굳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면서도 결혼을 통해서 여성이 더욱 높은 경제적 안정감을 찾으려고 하는게 당연시 되는게 난 가끔 도둑놈 심보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라는 식으로 결코 (!) 얘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얘기들을 포함하여 선봐서 결혼하는 내용을 화제로 삼아서 얘기하는 것을 내가 썩 좋아하지 않음을 살짝 느끼고는 있을지 몰라도 정작 잘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식으로 내 앞에서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실 그런 악의는 전혀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자신은 한때 노조에도 가입하고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런건 이제 소용없고" ( --->이 말이 중요하다) 지금은 철저히 자본주의에 영합하여 살아가기로 했다고 몇번씩 말하는, 꽤 여러번 만남을 가진 선배가 있기도 했다. 그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면 뻔뻔한 성격을 가진사람은 아니니만큼 그런식으로 화제를 몰고가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글쎄, 그러나 왠만큼 멍석깔아져서 마음 편하지 않은 이상 나처럼 자기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앞에 말한 두명의 내 지인이 나를 그렇게 알고 있는 이유는 꼭 그들이 대단히 눈치 없는 사람인 탓이 아니다.  사실  나를 한껏 밝히게 되면  인간관계가 거북스러워 질 만한 생각의 노선을 두사람이 갖고 있기 때문에 나를 밝히지 않은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좀더 나를 밝히는 것도 내가 쭉쭉 자신감과 요령을 가졌다면 못했을 것도 아니다.  물론 그 후에 인간관계가 거북스러워 지게 된다면 그것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말이다.

 

 

 고로 많은 사람들의 ' 청취자' 역할을 하면서 인간 군상들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듣는 것이 결코 흥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듣는 역할만 주로 하는 것' 이 ' 자기말만 하는 것' 만큼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말만 하는 사람' 과는 딱히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한 인간관계를 계속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 굳이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  情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보다는 오고가는 업무만 하게 되는 것이 나의 심리적으로 좋다는 것이다.  관행적인 인간관계의 틀 속에 나를 집어넣는 이들에게는  결코 그 이상의 성의로 화답할 생각이 없다.  어떤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이던지, 그 관계속에서 기본적으로 만족을 해야만 그 관계는 건강하고 살아가는 힘이될 수 있지,  어떤 관계라는 '명명' 만 있고 의무나 기대만 있다면 없느니만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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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삶

2007/01/18 04:37

어제 오늘 이어 소화가 계속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핑계로 공부를 중단하고

큰맘먹고 구입한 두권의 책을 보았다.

 

하나는 꽤 잘 쓴 일본 추리소설 '火車' 라고...- 여자작가인데 카드빚에 몰려 극단적인 삶의 방식을 택하게 된 젊은이의 얘기를 아주 섬세하게 풀어쓴 얘기였다.  이런 식의 얘기도 쓸 수 있구나.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은 소재로 재밌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구나. 라는 희망적인 모티브를 내게 던져준 책이었다. 그리고 역시 똑같이 내 취향에 맞는 소설가라면 여성작가의 글이 나를 더 편하게 해준다는 것도 확인하게 해주었다.  내용도 문체도.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적인 삶'  이란 책이었다.

 

보아하니 꽤 인지도가 없지는 않은 책인것 같은데 대형서점에서 눈에 보이는 위치에 꽂혀있었으니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거기다 우리나라사람들의 '파리'와 '프랑스' 에 대한 동경은 아직도 문화적으로 풍요롭기를 원하는 식자와 속물냄새가 뒤섞인 이들에게 남아있으니 프랑스라는 제목을 내세웠고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이유만으로 어느정도는 팔리리라 예상됬다.

 

(사실 나도 식자는 못되지만 주변에 식자들이 좀 있고, 속물근성도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프랑스란 나라를 좀 좋아한다.  그래도 스스로를 좀 변호해보자면 우리나라처럼 사회복지가 열악하고 반공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이런 나라가 당연한 줄 알고 한숨쉬며 살다가 홍세화씨 '파리의 택시운전사' 로 시작된 저서들만 봐도 우리나라랑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런점에서 그 나라를 동경한다.)

 

 아무튼 '프랑스적인 삶' 이라는 '팔릴것 같은 제목' 을 가진 이 책은 50대의 남자가 여러정권이 바뀌는 오랜 세월동안 함께 흘러온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 식으로 쓴 이야기이다.  사실 평범한 이야기이다. 2차세계대전 후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나 권위적인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1950-60 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에 눈떠가고 억압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얘기,  68혁명 전후에 대학시절을 보내며 해방적이고 전위적인 가치에 편승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상속에서 체화한 듯 보이지만, 정작 부르주

아적 여성과 사랑하고 결혼하여 살아가는 삶속에서는 수동적으로 아내가 가져다주는 물질적 안정을 누

리며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의 거리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을 사진찍기로 소일하며 살아가는 것,  다소 권태롭게 느껴지는 불륜얘기 등등 특별한 얘기들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두개의 큰 혁명을 치른 자유스럽고 개인을 존중하는 분위기와 사회주의가 제도적으로 길게 뿌리내린 역사를 가진 프랑스니만큼, 우리나라처럼 소수를 위하여 다수가 죽어지내는 전반적인 암울함과는 다른 삶의 양식을 ' 프랑스 적인 삶' 이라는 책에서 확인할수 있지 않을까 싶은 예감에서 였던거 같다. 

 

 확실히 이 평범한(?) 프랑스인이 살아간 삶의 큰 흐름은 생노병사를 겪으며 느끼는 감정의 흐름의 면에

서 여느 한국인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다고 해도, 구체적인 부분에서  50대의 한국인과 그 살아온 삶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도 80년대가 해방을 부르짖는 시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억압적이어서 그런지, 돈 있는 집 젊은이들조차도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섹스하는 파티를 즐기거나 취미로 밴드생활 하나정도는 필수적으로 하는 그런 삶을 즐기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이 프랑스인 주인공이 보낸 시대는 대학에서 강의하나 안듣고 레폿하나 제출 안해도 '사회체제에 결합하는 지식을 양산하는 체제에는 순응할 수 없다' 라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컸기때문에 교수가 암말못하고 졸업시켜줬던 시대이다.  (부... 부러워라)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일상적인 억압' 에 도전하는 학생의 목소리가 패권을 가졌던 시대가 있었던가 싶다. 

 

 일용직으로 살면서 여자친구와 둘이 사는 삶, 이것도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허용되기 힘든 삶일게다.  50대에 정원사로 취업해서 살아도 자괴감 갖지않고 두사람을 부양해서 먹고 살수 있는 것도 그렇고, 주인공은 판에박힌 사회주의자 (....라기보다는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을 가진 지도자를 무조건 찬양하는) 어머니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나처럼 정치에 무관심하고 남편이 찍는대로 그냥 투표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는 어머니를 둔 사람으로서는 그 정도로 사회정의 에 대한 열의 (비록 발전하지 못하여 박제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를 가진 모습을 부모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신선하다고 해야겠다.

 

 

 그냥 .... 한인간이, 것도 한 남자가 '욕심없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와 그 삶의 한 부분 한부분들에서 나는 담담하고 소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보아왔던 내 아버지 뻘의 남성상과 상당히 다르고 또 막판에 닥쳐온 삶의 고난을 묵묵히 헤쳐나가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삶의 모습과는 또 다른면이 있었다.  뭐라고 해야 될까. 한탄하거나 감내한다기보다는 그냥 느끼면서 사색하고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자기인생을 자기가 그런식으로 묘사해서 그런지 몰라도)  행복이 찾아오기를 굳이 억지로 견디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삶, 다소 고되어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삶이라고 해야될까. 그래서 그렇게 말년에 쪽박차도 그렇게까지 불행해보이진 않았다. 

 

 a처럼 살기도 b처럼 살기도 원하지 않고 그저 자신답게 할만한 것들로 인생을 채우고 싶은 젊은이들,  자유스러운 가치를 존중하고 구속없이 살기를 원하지만 사회경제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완곡하게 주장하는 바가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는 아닌 이들이 읽기에, 이 책은 특별할건 없지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딱히 열성적으로 살지 못해도 추하지는 않은 모습으로 살 수도 있구나. 괴로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많은 것을 느끼면서 살수도 있구나.  나는 요즘 그렇게 감각적인 가능성을 내게 제시해주는 책들에게 흥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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