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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파와의 인연---1

주사파,,,실제로 만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1) 나의 주사파와의 첫인연은 아마도 막내 누나...

 

그녀는 87로 전대협시절 지구 대협의 간부까지 했으니,,,,

아마도 주사파였을 것이다...자기 방에 수갑찬 임수경씨 사잔을 걸어 놨었다...

하지만,,,별로 그거 관련해서 애기를 나눈 적은 없다.

 

그 양반 지금 뭐하냐구, 작은 섬에서 연하 남편하구 애들 갈킨다.

그리고 얼마전에 아들을 제국주의의 심장 미국으로 어학연수 보냈다. 초등 1년 짜리를...

 

얼마전에 고맙게도 거금을 나에게 보내 왔다.

벌써 몇년전 재건축 아파트를 사준적이 있는데그게 값이 올랐고, 내가 그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 했기때문에....

난 그냥 이익이 나면 다 가지라고 했지만 형제간이라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고,,,,

에이 확실히 할려면 적어도 오르것의 반은 보내야지....또 속물 근성 나온다....

 

 

2) 대입 시험 끝나고 내가 첫번째 간 모임이

"임종석 의장님 석방 기원을 위한 일일 찻집(?술집)"이었다.

 

그때 외쳣던 구호가 '국가보안법 철폐' 였다.

벌써 17년 전 애기다.  

 

그 의장님이 벌써 3선의원에 통외통위에서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바구를 풀고 있다. 그 인간 뱃지 달구 몇번 술두 같이 먹었는데...

 

언제는 이라크 파병하면 의원직 사퇴한다구 단식하더니, 여전히 뱃지 달구 있다..

역시 노무현 탄핵때에도 의원직 사퇴한다더니 국회 사무처에 사퇴서를 접수했단 애길 못들었다.

 

임종석은 주사파였을까? 지금은 분명 아닐 것이다. 3선의원씩이나 되어가지구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걸 보면....

 

 

3) 노회찬과 함께 인민노련 조직원으로 일했다는 송영길....

먼 발치에서만 보았다. 송영길은 주사파였던 적이 없을 것이다.

한번 송영길과 같은 회원이었던 어떤 모임(그때가 2000년 5월 광주에서 그 이름도 찬란한 '새천년 NHK' 단란 주점 사건 후)에서 광주 술자리 문제에 대해 통렬히 자기비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땐 그래도 짠한 것이 있었다.

 

근데 역시 3선의원이 되더니 한미FTA 선봉장이 되었다. 재경위에서,,,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지금은 휠체어 타고 다니는 송과의 같은 동문인 김우중으로부터 정치자금받아서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송영길,,,,,주사파와 열린우리당 내의 386 정치인과 구분해달라고 애걸복걸한다.

분명히 구분된다. 조중동과 한나라당, 그리고 (여전히 동지인줄 착각하는)주사파들 빼고는,,,

 

 * (,,,)부분은 내 추측이다. 2004년 연말 국보법 폐지 투쟁 할때 민주노동당 내의

자주파 일꾼들이 '국보법 폐지를 위한 쑈 쑈 쑈 농성하는 열당의 386'들에게 환호와 동지애를 보내는 것을 보고 추즉 한것....

 

 

4) 최홍재,,,,,분명히 주사파였다...그렇지 않았으면 전향 선언도 않했을 것이다...

가끔 조중동에 나온다....북한 관련해서....여전히 말도 많고 얼굴에 살도 않붙었다.

내가 제일 싫어 하는 운동권이었다.

 

최홍재 그 인간하고 대학 다닐때 부딪혀 보면 '내가 완전 또라이'란 느낌이 든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인간 말들어보면 '조국의 위기에 대해 무감각하고, 미제에 대한 적개심도 없고

북 동포에 대한 애정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청년의 패기도 열정도 없는' '난 이상한 인간'이었다.

 

그러더니 전향했단다. 단지 그정도가 아니라 빨갱이 잡으라고 나팔수 노릇하구 있다.

 

그냥 돈이나 버는 전향한 주사파들은 난 인정한다. 밥벌어 먹는게 녹녹치 않은 현실이니...

그리고 지상낙원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으니.....

 

추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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