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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 - 따오청에서 캉딩 - 길위에서 길을

045 - 따오청(稻城) - 길위에서 길을

 

오후 늦게 따오청에 도착하였다.  2007년 10월 30일

우선 내일 출발하는 버스표부터 예매하였다.

 

나는 캉딩까지(124위안), 중국인 친구는 신따오치아오(新道橋)까지,

데이비드는 쫑티엔까지 각자 갈길이 달랐다.

출발은 아침 6시란다.

 

첫날 따오청에 도착해서 먹었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운전사 아저씨 단골집인가 보다.

 

운전사 아저씨는 귀여운 딸을 저녁식사에 데리고 왔다.

중국요리라는게 1인분이라는 개념이 없기에 한사람 추가된다고 나쁠 것 없다.

 

귀여운 아이는 가끔 외식도 할 겸 다른 곳에서 온 여행자(때론 외국인까지)와

만날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테이니 말이다.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따오청 시내 분위기

 

 

 

 

선전용 구호가 어김없이 따오청 시내에도 내걸려 있었다.

 

배도 부른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온천에 가자고 했다.

운전수 양반 싫지 않은 눈치다. 이번에도 역시 부인을 대동한다.

원님덕에 나팔분다고 부인에게도 점수 딸 기회인 것이다.

 

 

배도 부르고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도 담그고, 비눗물로 제대로 씻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다른 친구들이 나오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욕탕 청소하는 티벳여인이 훌쩍 거린다.

감기에 걸렸다고 한다. 보니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

매번 한사람 사용하고 나면 청소를 해야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약은 먹었지만 잘 낫질 않는다고 한다. 안타깝다.

 

 

숙소에 돌아오니 마당에 야생여우가 있었다. 헐,,,어디서 잡아온걸까?

 

우리는 그도안 경비를 정산하고 수유차도 마시며, 과일도 먹으며 앞으로 서로 갈길에 대해

이야기 했다.

 

우리보다 하루먼저 떠난 중국여인이 메모를 남겨두었다. 데이비드에게 그녀가 묵는 숙소의

주소를 가르쳐주고 그녀에게 전화해주었다. 낼 오후에 데이비드가 찾아갈거라고,,,,

우리가 걱정되었다고 한다.

 

 

인상적인 야크머리 장식

 

 

 

 

 

숙소 안의 주방겸 응접실 모습

 

다음날 우린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터미널로 갔다.

이른 아침이지만 운전수 아저씨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고 각자의 버스에 탔다.

중국인 친구와는 신도교까지 함께 갔다.

 

 

신도교의 마을 풍경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정차한 소형버스

 

버스는 대형버스와 소형 버스 이렇게 두대가 함께 출발 하였다.

나는 대형버스에 탔다. 내 생각엔 소형보다는 대형이 좀 편한 것 같다.

그래도 좌석이 좀 넓어 덜 불편했다.

 

 

호기심 많은 꼬마..모자에는 텔레토비가,,,,,

 

신도교를 지나자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높고 푸른 하늘은 간데 없고 눈이라도 내릴듯 잔뜩 찌쁘려 있었다.

 

드디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몇개의 고개를 넘다보니 눈이 쌓이면 길이 막히는게 다반사일 것 같았다.

 

고개를 내려가는데 이백여대는 됨직한 군용화물트럭이 오고 있었다.

트럭마다 앞면에 프랭카드를 달았는데 시짱(西藏)을 지원한다는 걸 보니

티벳으로 향하는 군수품인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물건들이 티벳인들은 억압하는데 사용된다니

마음이 아프다.

 

오후 5시 30분 캉딩에 도착했다.

우선 터미널 근처(1일 30위안)에 숙소잡고 왕빠(피시방)에 가서 멜 확인 하고

저녁은 볶음밥에다 칭차이 해서 10위안에 먹었다.

 

비가 내렸다. 근 한달만에 보는 비다.

캉딩은 이미 반은 한족의 도시 분위기였다.

 

그날밤 10시쯤 천둥번개가 치더니 정전이었다. 방마다 난리였다.

10여분간 지속되다가 다행이 전기가 들어왔다.

 

 

 캉딩 숙소 창문을 통해 본 부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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