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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13
    이벤트 참석희망자 필독!(4)
    molot
  2. 2004/09/12
    비오는 날 술먹으니 ...(1)
    molot
  3. 2004/09/11
    지금 읽고 싶은 책(4)
    molot
  4. 2004/09/09
    !!!이벤트 결과 발표!!!(11)
    molot
  5. 2004/09/09
    긴급 공지!(10)
    molot
  6. 2004/09/05
    트랙백 이번엔 꼭 되라!(6)
    molot
  7. 2004/09/04
    구글뉴스 베타 서비스 실시!!
    molot
  8. 2004/09/03
    간만에 홍대앞으로 뛴 날 밤.(3)
    molot
  9. 2004/08/28
    정률성과 정설송 이야기-2(4)
    molot
  10. 2004/08/28
    정률성과 정설송 이야기-1
    molot

이벤트 참석희망자 필독!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이번 금요일 (17일) 저녁에 행사를 거행^^하고자 합니다.

자일리톨님이랑 스머프님께서 참가의사를 밝혀주셨고 저에게 개인적으로 참가의사

를 전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습니다. 원활한 메뉴선정과 요리준비를 위해선 참가인원

파악이 필수적이겠죠? 이 아래에 덧글 달아주세요. 그럴리야 없겠지만 너무 많은 사람

이 참가희망하면 선착순으로 마감하겠습니다^^ (이러다가 아무도 안 온다면 무슨

개망신일까--;;


첨언: 오늘자 ‘오늘은’ 은 너무 피곤해서 못쓰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혹 빠뜨려 먹는 날에는 채찍들 매우 휘둘러 주세요. 그래야 좀 강제가 되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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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술먹으니 ...

 

오늘 취재 나갔다가 꽤 고생했다. 이 부분은  취재 뒷이야기 디렉토리에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귀찮아서 그냥  묶을란다. 비 쫄딱 맞으면서 사진 때문에 대오 앞뒤로 뛰어다니느라 춥기도 했고...(근데 나온 사진들을 보면--;;) 사무실 들어와서 술 한잔 한데다가 후배도 사무실에 놀러 온지라 귀찮기도 하고 어차피 스케치 기산데 뭐...하는 맘에 기사도 대강 써버렸는데 막상 기사 쓰는것보다 업로드 시키는데 훨씬 고생했다. 나 원 참, 참 나 원, 혹은 원 나 참. 천상 난 사무실에서 밥이나 할 팔잔갑다.ㅠㅠ 여하튼 집에 와서 또 술 한잔 하고 나니까 추적거리는 날씨랑 노곤한 몸이랑 주중의 스트레스들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묘한 기분을 만든다.


누구의 포스트인지 까먹었지만 ‘진보넷 블로그에 글 쓰는데 부담감이 느껴진다’ 란 글이 있더라. 어느 정도는 나도 공감한다. 막 뽀다구 나는 글을 써야한다는 것보단 속내 드러내기가 눈치 보인다는 거지. 한다리 내지 두다리만 건너면 대강 아는 사람들로 이뤄진 공동체라 그런 거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 먹은 김에 기분도 꿀꿀해서 옛날이야기 하나 써 볼란다. 다른 블로거들의 관음증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부대효과도 있을라나?


세상의 다른 모든 것처럼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거지만 ‘미선이’라는 밴드가 있었다. 멤버중 몇몇이 병역 때문에 흩어진지라 ‘루시드 폴’이라는 원 맨 밴드로 전환되었지. 그치만 사실 ‘미선이’는 알고 보면 꽤 유명한 밴드였다. 뭐 우리가 다 그렇듯이 나도 엥겔계수가 극도로 높은 생활을 해오고 있는데다 특히 책은 종종 사지만 음반에 대해선 극도로 소비절약을 하고 있지만 미선이껀 테잎과 씨디를 합쳐서 몇 장을 소장했었을 정도다..


지금에사 비주류인척 하는 주류인 이현우, 윤도현등 덕에 혹은 시류따라 인디씬에서 오버그라운드로 연착륙한 몇몇 밴드들 덕에 혹은 난체 하고 싶어하는 스노브들덕에 이렇고 저런 밴드들이 모던락이란 간판을 내걸고 꽤 인기를 끌고 있지만 98년 99년 즈음의 미선이는 나름대로 대단한 모던락 밴드였다. 아으 기회주의적으로 비주류를 참칭하는 수많은 주류들의 세상에서 진정한 비주류란 무엇인가?


머 쉽게 말하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밴드였지만 엄청 드라이한 음악을 했었지..어케 보면 청승 모던 틱하고 미소년 추종자들이 좋아할 만한 밴드였지만. 글쎄...이 밴드가 정말 맘에 들었던 이유는 가사, 멜로디 라인, 보컬, 리듬 모든 것에서 완벽성을 추구하는게 엿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미선이 1집이었던가 2집이었던가는 모르겠는데 내가 꽤 뻑 갔던 노래의 제목은 ‘치질’이었다. 그 뿐이던가? 90년대 말 그 때부터 언론개혁, 국가보안법 문제들을 간간히 유치하지 않게 다룬 가사들을 보고 ‘뭔가 좀 다른데 ...’ 하다가 미선이의 리드싱어가 메아리 출신인데다가 민주노동당 당원이란 말을 나중에 듣곤 ‘하하 역시 우리 편이군’ 하고 혼자서 웃었기도 했었다.(이런걸 보면 나야 말로 원단 스노브다.)


여하튼 미선이가 갑자기 생각난건 엊그제 꿈에 XX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XX는 지금 SBS주말드라마에서 박예진의 동생이자 박은혜의 언니로 나오고 이요원이 시집가기 전에 장혁이랑 같이 나온 쓰레기 같은 드라마 ‘대망’에 출연한 어떤 탤런트를 지칭하는게 아니다. 바로 XX 때문에 미선이도 생각이 났다. 하이퍼텍스틱한 사고? 혹은 서지학적 사고? 하여튼.


제대후 복학 직후에 본의 아닌 스캔들을 잠시 일으켰었지만 그 스캔들은 금방 정리가 되었고 내가 ‘짝’사랑 하게 된건 XX였다. 돌이켜 보면 그닥 스타일이 빼어난 건 아니지만 동그란 눈, 오똑함을 넘어 거의 뾰죡한 코, 도톰한 입술과 나지막하면서 맑은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바로 그 XX.....


XX한테 관심을 두면서부터 경쟁자들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다행히 XX는 그 경쟁자들한테 별 관심이 없더라.^^ 다만 XX가 짝사랑한 선배가 있었다는건 알았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즈음에도 역시 난 좀 외강내유하는 척했지만 XX랑 둘이서 술 먹을 땐 종종 징징거리기도 했었다. XX는 그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족들 이야기 힘든 자매 이야기도 해줬더랬지. 그런 대화들을 나눌땐 혹여~ 하는 기대도 했었는데 알고 보니 나 말고도 그 이야기 들은 사람들이 몇몇 더 있더라 ㅠ.ㅠ 글쎄...그 때 좀 더 징그럽게 따라다녔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내 생일 이었던가? 하여튼 어느 날 내 이마에 XX가 뽀뽀를 해준 날, 역설적으로 난 ‘아 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지금 XX는 어디 있을라나? 아산 어디 깨 현장에 있다던 XX는 아직도 거기 있을라나?


근데 왜 그 때 XX는 자기 운동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 하고 권유하지 않았을까? 내가 영문과라서? 내 선배들이 ㅇㅇㅇ출신이라서? 아니면 나란 인간이 별 영양가 없다고 판단해서? 하긴 나도 그 때 XX한테 내가 고민하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 한 기억은 없다. 왜 그랬을까?


사실 마음만 먹으면 두다리 정도 거쳐서 XX가 어디  있는지 확인 할 수도 있지 싶다. 가끔 그런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그치만 휴..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다. 가끔씩 꿈에 나오는, 혼자 술 먹을때면 기억나는 XX... 어디서든 건강하고 자중자애하길 바랄 밖에.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만나서 둘이 술먹고 싶은 XX...그 때도 가슴이 콩닥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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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고 싶은 책

바야흐로 히스패닉의 전성시대다. 정치적 슈퍼 파워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지만 Brics니 뭐니 떠들어대도 한 세대 정도 후면 히스패닉이 미국 뿐 아니라 세계를 뒤덮을 것이라는 전망들이 지배적이고 문화적으로 볼땐 벌써 히스패닉의 물결이 너무나 거세다. 아프로 쿠반 음악을 생각해보란 말이지... 물론 문학만 따지자면 서반아어 문학의 전통과 결과물은 이미 풍부하고도 화려하다. 일일이 예를 들 필요가 있을까마는 이십세기 후반만 따져도 요사,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 보르헤스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지 싶다. 최근에 유행하는 사람들만 따져도 세풀베다니 뭐니 상당히 많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사람이 바로 마르께스인데(마르께스는 소설가로서도 일류지만 저널리스트로서도 정말 대단한 결과물들을 남긴 사람이다. 몇 년전에도 탐사 보도물을 하나 내서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지) 아마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말을 유행 시킨 사람이 그가 아닌가 싶다. 마르케스 소설 중에 꼭 읽으려고 하는데 아직 못 읽은 작품이 있다.아 참..진보넷 사무실에 나오면서 겪는 단점이 딱 하나 있다(헤헤 설마 딱 하나일까?^^). 뭔고 하니 책을 제대로 못 본다는거다. 왜 그럴까? 바빠서? 피곤해서? 하여튼 그래서 요샌 출퇴근 할때 시집이라도 들고 다닐려고 애쓰는 편이다.

각설하고 마르께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명불허전 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기대하던 차에 내 유일한 링크 블로그에서 그 소설의 서평 (http://www.happian.net/blog/?no=31)을 읽었다.  서평을 읽고나니 더 기대가 되는군. 가을이라 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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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결과 발표!!!

박근혜와 박근혜 미니홈피 사이월드 백만번째 방문객과의 데이트에 버금가는 빅 이벤트!

 

'peyo와 molot 사이에서' 천번째 방문객 이벤트가 성황리에 마감되었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천번째 방문객 행인께서 술을 끊었다고 하시니 행인께는 다음 기회에 감사의 마음을 표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지도록 하면 어떨까 싶네요. 박근혜도 아마 백만한번째 사람하고 만남을 가졌다죠?

 

그렇다면 그 다음 1001번째 방문자는 달군 되시겠네요. 달군에게 이벤트 당첨자에 준하는 대우를 하도록 하고 참여를 희망하시는 자일리톨, 스머프 님등을 저렴한 회비--;;(절대 세종대왕 한 분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로 초청하고자 합니다. 추석 연휴 이전에는 반드시 모임을 갖는 것으로 해놓고 시간을 맞춰보도록 하지요. 참석 희망자들은 댓글을 달아주세요.  새끼줄 한 번 맞춰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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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공지!

이 블로그에 들어오시는 모든 분께 알립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방문자 수가 날로 증가하는 지라 감사의 의미로 이벤트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이 블로그의 1000번째 방문객을 저희 사무실(진보네트워크)로 모셔 제가 직접 요리한 안주로 술을 한 잔 대접하고자 합니다.

 

추세로 보아하건데 오늘 아니면 내일 당첨자가 가려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한가지 있긴 한데...누가 1000번째 방문자인지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여튼 그 방법은 제가 강구하겠습니다. 물론 이 이벤트를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아서 자신이 방문자 이면서도 쌩까는 분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꼭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다들 마음의 준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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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이번엔 꼭 되라!

나도 앙겔루스 노부스를 읽었답니다. 진중권 이름값이 한창 인지라 출간될때 언론도  꽤 탓고 책도 어느 정도 팔린 모양이던데 정작 책이 꽤 나간 후에는 전혀 이슈화가 못 되더군요.

 

그 책을 읽으면서 뭐랄까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지요. 진중권의 최대 장점중의 하나인 스타일 상의 경쾌함이 엿보이지 않더라구요. 아마 온라인 상에서 온갖 글들 쏟아놓고 정치적 이슈들로 이전투구 하는데다가 신문 같은데서도 진중권한테 원하는게 그런 것이니 자기도 좀 힘들었겠죠. 그래서 맘 먹고 쓴 책이라 오히려 역편향을 보인건 아닌가 싶네요.

 

신천사라 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앙겔로스 노부스를 번역한 말이군요.^^ 

 

'미래를 위해 과거를 조직하라!등 뒤의 미래가 아니라 파국의 현재를 바라보라.' 이런 진중권의 벤야민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만...그래도 나 자신은 과거의 재구성, 현재를 조직화 하는 것은 전망을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촌시런, 단선적인, 좀 안이한 관점을 져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미래로 밀려나다니...머 미래로 밀려나는게 맞기야 하겠지만 인정하기 싫은 것도 같고 ㅠ.ㅠ

 

첨언: 이 글은 新天使(신천사)와 연쇄 작용 에 관한 트랙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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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뉴스 베타 서비스 실시!!

포털들이 제각기 뉴스 서비스를 실시해 재미를 보고 있는 가운데 세계최강자(?)구글이 드디어 한국판 뉴스 서비스를 개시한다. 현재는 베타 서비스( http://news.google.co.kr/?promo=hpp-newskr)

 

미국판으로는 몇년전(정확히는 모르겠음. 일이년전일지도)부터 서비스를 개시했는데 그 알고리즘을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것이다.

 

뉴스 편집이 자체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되고 그 개별 뉴스마다 관련뉴스들이 또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지금 확인 해보라. 일단 엄청난 정보량과 일목요연한 분류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즉 에디터가 기사 중요도를 판단해서 편집하는게 아니라 키워드 검색으로 모아진 뉴스들의 클릭수를 중심으로 하여, 그 기사를 실은 매체의 인터넷 영향력 (예컨데 같은 내용의 기사가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떳다 치자. 한겨레 기사가 클릭수가 월등히 높다면 한겨레 기사가 위로 올라가겟지만 클릭수가 같다고 가정할땐 조선일보 기사가 위로 뜬다, 왜냐? 웹상에서의 지표와 영향력을 볼때  디지털 조선이 더 우월하기 떄문이다.) 까지 포함한 기준들이 알고리즘에 적용되어 자동 편집되는거다. 놀랍지 않은가?? ( http://news.google.co.kr/intl/ko_kr/about_google_news.html )

 

미국현지 포털들의 뉴스서비스 시장이 어떤식으로 할거되고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스킨과 디자인만 좀 가다듬으면 한국구글의 뉴스서비스는 돌풍을 일으킬 것 같다. 카인즈도 타격을 입을테고 네이버 뉴스도 큰 타격을 입겠군. 자체 기사를 생산하는 다음은 그 비중을 높이고자 애쓸것 같고..

 

구글뉴스를 한 참 들여다 보고 있는데 보면 볼 수록 기가 질린다.오리지널 판 구글 뉴스의 특징은 시시각각 뉴스 방향이 널뛰듯 한다는건데(십분전에는 보수적 기조이다가 십분후에는 또 열라 진보적 기조로 돌변) 그건 이 뉴스의 독특한 편집 시스템 떄문이다. 미국판 구글뉴스에서도 검증됐듯이 여기서 현재 여론의 추이를 캐취할 수 있다. 예컨데 캐리를 칭찬하는 기사가 부시를 칭찬하는 기사보다 상위에 여러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뜬다면 현재 캐리를 칭찬하는 뉴스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내고 있다는거다. (물론 캐리 지지율이 지금 높다는 식으로 바로 연결되는건 아니다. 하지만  눈 빠른 사람들은 연관성을 찾아내겠지)

 

뿐만 아니라 구글 뉴스 각국판을 보면 그 해당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는거다. 이런건 우리도 유용하게 써먹으면 될 듯 하다.

 

하여튼 요약하자면 다른 사이트들에서 생노가다해서 결과물을 내놓으면 구글은 그걸 지표화해서 알멩이만 뺴먹는 시스템인거다. --;; 아 위대한 google이여......ㅠ.ㅠ

 

인터넷 미디어 종사자로서(얼마나 됐다고--;;) 정말 갈 길이 멀다는게 다시금 느껴진다.

자본으로 무장한 저들의 재주는 끝간데 없이 농간을 부린다. 현장에 노트북(노트북 컴퓨터가 아니다. 말그대로 노트북-수첩, 공책)을 들고가서 기사 쓰는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아 힘빠져라~ 하지만 어딘가에 약한고리가 있겠거니...그 고리가 절대반지려니 하고 찾으러 가자구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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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홍대앞으로 뛴 날 밤.

유시민 사진 따위나 올릴 수 없어서 이 molot도 오늘 내 블로그에 사진으로 데뷔한다--;;

보기 힘들어도 이해해달라! 뭐 또 이해 안해주면 어쩔텐가?

 

그저께 술을 너무 많이 먹고 홀딱 벗고 잤더니 바로 어제 감기로 되돌아왔다. 이런걸 보면 참 우리 몸은 신기하다. 받은만큼 되돌려주니까...간만에 멤버들이 모인 탓인지 술자리는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하지만  편하고 뭐 그랬다.

 

사진 중독자 때문에 좀 귀찮긴 했지만 술 많이 먹으니까 안 찍더만. 멤버들 모인 술자리 아니랄까봐 막내는 지갑 잃어버리고 나머지는 우리 집에 와서 잤다. 황씨를 집에 데려오면 안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술처먹으면 온 집을 어지르고 지저분하게 해놓고 나간다는거...아니나 다를까 퇴근해서 본 집은 온통 담배꼬바리, 침뱉아논 휴지 투성이였다는거--;; 결혼해서 저런식으로 놀면 박살날건데..

 


'담배불 붙이는 molot' by evo

 

이게 어디였더라? 업소 이름은 생각이 안나지만 전자다트가 우리 옆에 있어서 신경 와방 쓰였던 기억은 남는다. 참 우연히 '익명의 지하철 대의원'도 만나서 같이 밥먹었었네...차수 변경을 몇차례 하며 가진 술자리가 남긴건 뭔가 생각해보니 별게 없구나...생사확인 외엔...

 

정현종의 시집 '나는 별 아저씨'를 보면 '담배를 보는 일곱가지 눈'이라는 시가 있다.

 

인용하면 좋겠는데 생각이 안 나누나...각자 찾아서 읽어들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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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률성과 정설송 이야기-2

작사는 정률성이 안한것으로 알고 이 노래가 팔로군, 인민해방군 식으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바귀기도 했다던데 모택동 이름이 나오고 그러는게 좀 구려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 소련 국가 '천년의 흥망'은 더 심하다--;;

 

천년의 흥망( 구 소련 국가)

1
자유로운 공화국들의 굳건한 연방을 위대한 루스가 영원히 결속했다.
민족들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강력한 하나의 소비에트 연방 만세
영광있으라, 자유로운 우리 조국, 민족들의 우의는 믿음직한 보루
인민의 힘 레닌의 당은 우리를 공산주의 승리의 길로 이끈다
2
뇌우 사이로 자유의 햇살이 우리에게 빛났고 위대한 레닌이
우리에게 길을 비추어주었다.레닌은 민족들을 올바른 대의에
눈뜨게 해주었고, 노동하고 헌신하도록 우리를 격려했다
영광있으라, 자유로운 우리 조국, 민족들의 우의는 믿음직한 보루
인민의 힘 레닌의 당은 우리를 공산주의 승리의 길로 이끈다
3
불멸의 공산주의 사상의 승리 속에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본다.
영광스러운 조국의 붉은 깃발에 우리는 언제나 헌신적으로 충성한다.
영광있으라, 자유로운 우리 조국, 민족들의 우의는 믿음직한 보루
인민의 힘 레닌의 당은 우리를 공산주의 승리의 길로 이끈다

하여튼 지난 90년 북경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선 인민해방군 행진곡이 우렁차게 퍼지고

중국 십억 인민들이 그에 감동 먹는걸 보고 나도 뻑갔다.(아 이 얄팍한 싸구려 감성이라니ㅠ.ㅠ)

작곡가가 정률성이라고 소개가 되던데 왜 아나운서는 정률성이 한국 사람이란 이야길 안 할까 하며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고2였나? 이런걸 보면 어릴땐 나도 좀 민족주의자였군..아 난 어떻게 그때에 정률성을 알았나 궁금해 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노태우 정권때 사회주의에 관련된 내용이 좀 해금되고 한참 중국에다가 러브콜을 보냈어다. 이 때 혜성과 같이 등장한 인물이 바로 김학철. 이 분은 독립적으로 다뤄야할 만한 비중의 인물이다. 하여튼 이 분의 책이 그 때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소설은 '해란강아 말하라' '격정시대' 등이었고 수필집 혹은 자서전 비슷한게 '최후의 분대장'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추억을 이야기 하랴' 등이었다.

 

난 그때 최후의 분대장과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추억을 이야기 하랴 를 읽었었는데 재미, 감동, 모르던 뒷이야기 충족 이 세가지 측면에서 만땅이었다. 그 책을 보면 정률성 정설송 이야기가 자세히 다뤄진다. 같이 활동하던 동지였기에...

 

결국 죽을 고생, 산 고생 다한 이 정-정 부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북조선의 수립으로 팔자가 좀 피기 시작한다. 정설송은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으로 평양주재 중국대사가 되었고(이후 멕시코, 네덜란드 대사등을 지낸다.) 정률성은 수 많은 동지들과 함께 북조선 건설에 참여해 인민군협주단장을 지낸다. 이 때 사건이 터졌으니 정률성이 인민군 합창단의 여 소프라노와 바람을 폈고 그것이 뽀록이 난것이다. 정설송은 양부양모에게 SOS를 쳤고 북경에선 바로 정률성을 소환--;;  그 기간중에도 정률성은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고 이 노래는 아직도 조선인민군의 공식군가이다.

 

50년 11월 정률성은 중국공산당으로 완전 소환되어 중국에서 활동을 한다. 이것이 정말 다행인것이 무시무시한 연안파 숙청때 무정을 비롯한 수많은 투사들이 다 김일성에게 목숨을 앗겨버린것이다. 무정이나 다른 사람들이 중공당에 바로 라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숙청을 가차 없었다. 초대 인민군 항공대장을 지낸 김학철의 매제 또한 이 때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후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정률성은 문혁당시 당연하게 4인방한테 갈굼을 많이 당하고 고생 좀 하다가 58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정률성이 조선의용대 행진곡을 만들고 김학철이 혁명연극 대본을 쓰면서 일제와 맞서 싸우던 태항산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조선인과 중국인이 함께 국제주의 원칙하에 동지로서 제국주의와 봉건세력에 맞서 투쟁하던 그 역사는 얼마나 감동적인지....

 

아 오늘날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물론 그 때도 민생단 사건 같은 것으로 인해 조선인 출신 당원들이 깨강정이 나기도 했었다. 그 이전에 김산 의 예도 있고...하지만 광동 코뮌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그리고 이른바 항미원조 투쟁까지 그 시절은 얼마나 좋았나? 주은래가 자기 조상들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해 조선족에게 사과한 글을 기억해보라...)

 

특히 짝퉁사회주의 아니 조중동등에 의해 자본주의를 하려면 저렇게 하라고 칭찬 받는 오늘날 중국...니들 정말 반성 좀 해라. 후진타오 특히 너 말야! 

 

첨언: `2004광주국제영화제' 특별작으로 정률성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을 향해서' 가 상영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볼 기회가 없을까? 2002년 9월 중국에서 송 지앙보 (Song jiang bo) 감독에 의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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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률성과 정설송 이야기-1

 아 일 안된다...진행하던 기사 마무리 지을려고 사무실 나왔건만 집중력도 떨어지고 평소같으면 머릿속에서 하드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데 오늘은 하드도 안 돌아간다. 푹신한 의자 있는 맥줏집에서 시원한 맥주 마시면서(좀 톡쏘는거..국산 같으면 레드락) 노가리나 풀었으면 좋겠다.

 

집중력이 자꾸 떨어져서 밥까지 했건만 마찬가지다. (오늘 메뉴는 자장밥이었다. 감자 대2, 당근 대1, 양파 대2, 돼지고기 300g, 춘장 1봉, 레시피 생략)

 

다음까페에서 정은임 방송 다시듣기 찾아서 들으려는데 그것도 잘 안된다. 짜증 이빠이...--;;

 

손노가리나 풀어야겠다. 일전에 자일리톨님에게 정설송에 대해 이야기 해주겠다고 약속한 바도 있고 오늘 저녁은 중화요리를 만들기도 했고(정확히는 중화풍이지..) 역사왜곡이 어쩌고 하며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정설송-정률성 부부 이야기나 한 판 해볼란다.

 

정률성은 광주출신으로 조선혁명군정치학교, 중국공산당 산하 노신 예술학교를 거쳐 조선의용대, 팔로군, 해방이후 북한 인민군 합주단장등을 지낸 음악가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그는 김학철, 무정, 석정 윤세주, 주덕해등과 함께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에 입각해 반제국주의, 반일 투쟁과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을 위해 싸운 사람이다.

 

정설송은 자녀가 없는 주은래-등영초 부부의 양녀로서 1941년 정률성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정설송은 그 당시 항일군정학교 여학생 대대장이었다고 한다. (이 둘의 결혼에 어려움이 많았는데-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반당분자로 처형당한 이후 중국공산당 내의 많은 조선인들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무정의 적극적 도움으로 결국 결혼에 골인 했단다.)

 

하여튼 정률성과 많은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팔로군 산하 조선의용대에 소속되어 반일 투쟁에 나섰었다. 결국 태항산 전투에서 석정 윤세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전사하고  포로로 잡히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 이후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조선의용대는 당당한 한 축으로서 인정 받을 수 있었고 56개 소수민족중 몇개 민족만 자치주를 건설하는데 포함될 수있었다. 주덕해는 연변자치주 건설의 핵심적 인물이고 초대 자치주 주장을 지냈다.

 

자꾸 이야기가 딴데로 세는데 정률성은 38년 봄 힘든 대장정을 마치고 너무나 초라한 조직으로 연안에 자리잡은 공산당의 기세를 돋구기 위해 연안송(延安頌) 을 발표했다. 이것이 중화인민공화국 3대 음악가이자 최고의 혁명음악가로 불리는 정률성의 시작이었다.

 

연안송은 공산당 점령지구에서 국민당 점령지구로 화북지방으로 나아가 동남아까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고 한다.(나도 이건 못들어봈다--;;)

 

이후 팔로군 산하 조선의용대로서 활동하면서 전투중에도 지속적으로 음악들을 발표하였으니 그 중의 대표작이 '조선의용대 행진곡' 인것이다. 이 노래는 라 마르세이예즈가 그랬던 것처럼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마침내 팔로군 행진곡으로 격상하기에 이른다.

 

중국본토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팔로군이 더 이상 국민당군 산하 팔로군이 아니라 인민해방군의 깃발 하에 싸우게 되던때 팔로군 행진곡은 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격상된다.(아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땐 얼마나 기분이 묘하던지...괜히자랑스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륙통일을 선포한 1949년 이후 인민해방군 행진곡은 중국의 국가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 가사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여
조국의 대지에서
민족의 희망을 등에 걸머지고
우리들은 백전백승의 역량이다

두려움 없이
절대 굴복하지 않고
용감하게 투쟁하여
적들을 깨끗이 소멸할 때까지
모택동의 기치를 높이 휘날린다.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

 

너무 길다 . 짤라서 써야겠다. tobe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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