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351일
날씨 맑음

 


1.
8시쯤 일어났다. 모기는 없었다. 세면을 하고 배낭을 꾸렸다. 이제 르완다 수도 키갈리로 간다. 일하는 남자 친절하다. 봉고버스가 열시 반에 있단다. 티를 한잔 시키고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았다.

 

2.
9시쯤 숙소에서 내려왔다. 봉고차 뒤에 배낭을 넣었다. 봉고차의 한 영어하는 남자와 대화를 했다. 내 여행루트를 설명하고 한국도 1950년 전쟁으로 많은 학살이 있었고 르완다 현대사와 현재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평화롭단다.

 

3.
르완다 내전에 관한 내용을 네이버 지식에서 찾아보았다. 삼성자본의 힘인지 볼만한 자료들이 있었다. 소위 서구열강의 아프리카 땅따먹기와 금긋기가 주배경이다. 르완다 브룬디는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벨기에는 소수 투치족을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삼아 다수의 후투족을 지배했단다. 어디 덧글에는 투치족의 외모가 좀더 밸기에인들과 닮아 그랬다는 말도 있다. 그러다 62년 벨기에는 직접지배를 중단하고 그자리에 소수 투치족정부가 들어선다. 점점 양부족의 갈등이 심화되고 63년 2만명의 투치족이 후투족 반군에 의해 학살당하고 73년 후투족이 쿠테타로 정권을 인수한다. 하라야마 소장은 75년 국가발전혁명운동당을 설립 일당독재 정부를 구축하고 거꾸로 소수 투치족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4.
90년데 들어 난민화된 소수 투치족은 르완다애국전선을 조직하고 우간다 탄자니아를 거점으로 후투족 정부를 공격한다. 사건은 94년 벌어진다. 하비아리마나 후투족 대통령 학살을 계기로 극우 후투족은 투치족 80만명을 학살한다. 휴전 이후에 다시 6월 교전이 재게되어 이번에는 투치족이 르완다 전지역을 장악한다. 다시 보복을 두려워해 후투족 난민이 발생하고... . 이후에도 90년데 말까지 두 종족간의 학살이 반복된다.  원인을 제공한 유럽국가들은 나몰라라한다. 

 

5.
버스가 출발한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도로다. 탄자니아의 비포장도로는 만만치 않았다.  특이한점은 그전나라에서는 버스안에서 시끄럽게 대화를 하던데 여기 르완다는 조용하게 간다. 3시간 넘게 걸려 수도 키갈리에 도착했다. 르완다 프랑이 없다. ATM을 찾아 시도하는데 안뽑힌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도와주려고 한다. 100달러 환전을 하고 한 키근 남자를 따라 숙소를 돌아보다 한곳을 선택했다.

 

6.
이 남자와 카페로가서 음료와 사모사를 먹었다. 오늘은 임시공휴일이란다. 정부의 행사란다. 낼모래 월요일은 나무심는 날이란다. 그래서 아까 버스로 올때 아이들이 묘목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이 남자와 헤어져 상점에 들르고 인터넷 검색을 한시간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찬물이다.

 

7.
다시 아까 카페로 와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축구체널을 한참보다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생각에 잠기다 잠이 들었다.

 


051112 (토)
1000원 = 500르완다 프랑

 

잠) 키갈리 트윈 8000원 (4000르완다프랑) 
이동) 루스모-키갈리 2000프랑
식사) 소고기스파게티 2000프랑
간식) 물 포테토칩 600프랑 물 600프 티 800프 주스 사모사 1600프 고기 200프 음료 300프
기타) 인터넷 500프 국제전화 1100프

 

.........................................총 27,400원 (13700프랑)

 

국경마을 루스모 싱글룸

루스모를 흐르는 강  

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탄자니아 오른쪽은 르완다땅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12/17 20:32 2005/12/17 20:32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aibi/trackback/461

« Previous : 1 : ... 53 : 54 : 55 : 56 : 57 : 58 : 59 : 60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