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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3
    6.10 광화문 (이어서)
    포카혼타스
  2. 2009/06/11
    6.10 시청-광화문(2)
    포카혼타스
  3. 2009/06/07
    그냥 글이 맘에 들어서.
    포카혼타스
  4. 2009/05/23
    그의 유서
    포카혼타스
  5. 2009/05/10
    '나' 와 '너'
    포카혼타스
  6. 2009/05/08
    마르꼬스 인터뷰: 사빠띠스따의 모래시계(3)
    포카혼타스
  7. 2009/05/06
    no more tha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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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4/28
    이상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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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4/27
    O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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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9/04/26
    Hmmmm......(2)
    포카혼타스

6.10 광화문 (이어서)

( http://blog.jinbo.net/camusian/?pid=70  에 이어서...)

 

작년 7,8월달만 해도 이런 막진압 상황에서 순간적인 갈등을 겪었더랬다.

도망가다 넘어진 사람, 그냥 두면 깔리고 밟힐건데 그냥 두고 도망가?

경찰한테 맞고있는 사람, 그냥 두고 도망가?

잡혀서 끌려가는 사람, 그냥 두고 도망가?

 

아니면 달려들어서 내가 맞고 잡히고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모르는 사람과 함께 맞서야 하나.

 

처음엔 그 갈등은 내 정체성과 자존감을 흔들 정도로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런데 한번 극복하고 나니까 이젠 그런 갈등의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버린다.

그런 장면을 보고도 아무 행동 하지 않는 것이 그 부당한 폭력을 용납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 것에 말로만 분노하고 몸으로 분노하지 않는 것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져서,

도망가고 나면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미워서, 다음번 시위에 나가 맞고 끌려가는 시위대 한명을 구출해 내 스스로 그 한계를 넘은 것을 확인 할 때까지 괴로워해야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날리게 된다. (파블로프의 멍멍이처럼)

 

그러다 몇번 다치고 노트북도 부서지고 그랬지...

 

 

ㅡㅡ

 

아.... 기억을 더듬다보니... 좀 불쌍하네...

 

 

암튼,  ;;;

 

 

그래서 도망치는 시위대 속에서 오히려 나는 '도망치라고' 자신을 타일러야 했다. 입으로 '오늘은 안돼'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뒤에서 달려드는 체포조와 전경이 하는 짓거리를 안보려고 노력하며, 군중에 밀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그러다가

신발 한짝이 벗겨졌다.

 

발이 너무 커서 항상 작은 신발땜에 물집이 생기는 나한테

편하게 맞는 유일한 나의 직장용 신발...

 

'앗,  신    발     이     벗    겨    졌      구      나     !! '

하는 사실을 깨닫고서도 멈추지 못하고 15m 정도를 더 도망가다가

뒤를 돌아 눈으로 도로를 훑었다. 신발이 안보인다.

이 신발... 꼭 찾아야하나?

신발찾다 얻어터지거나 끌려가면 좀 웃기잖아.

그렇지만....... 찾아야해.....

더 이상 저것들한테 내 물건들을 잃을 수 없어~!

(전사한 바이오가 떠오르더니 간이 급속히 부어버렸다...)

 

닌자거북 견찰들이 사람들을 끌고가고 쥐어패면서 점점 다가오고, 가장 후미에 있던 시위대 몇명이 내 뒤로 뛰어가는 길에서 나는 신발을 찾으러 역주행을 했다. (10미터(씩이나). ㅎㅎ)

바닥에 널부러진 주인 잃은 물건들 사이에 있는 신발 몇개 중에 내 신발을 발견했다.

경찰들이 '벽'을 만들어 다가오고 있어서 서두르지 않으면 내 신발이 그 벽 뒤로 사라지게 생긴거다.

그런데 경찰의 땅따먹기에서 내 신발이 넘어가고 나면 그 다음은 내차례거든......

난 더 다가가지 못하고 신발 앞 5m 지점에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쭉 뻗어 아스팔트 위의 신발을 가리킨 채 어떤 전경애를 쳐다보고 그냥 서있었다.

내 몸짓을 알아들을 만큼 제정신이기를,  나한테 방패질 실습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행이 그녀석은 내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더니 내 왼발이 맨발인 것을 본다.

그러더니 내 신을 주워다 준다. (그 옆에 있는 놈을 쳐다보고 서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놈은 곧 시위대 한명을 쫓아가서 곤봉질을 했다. )

그 신발을 신고 인도로 올라갔다.

내가 떨고 있는게 느껴졌다.

 

내가 시위대 앞쪽으로 가던 걸 본 일행들한테 전화가 왔었길래

나 괜찮다고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눈을 감고 괴로워하는 아저씨 한명을 부축해 오면서

의료진을 찾고 있었다.

 

나머지는 갔다와서 또 이어서 써야징... ㅋ ㅡㅡ; 이거 몇일에 걸쳐 쓰는거야....

 

http://blog.jinbo.net/camusian/?pid=7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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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시청-광화문

24시간 x 6일 근무지만 말이다,

요즘은 꽤 한가한 편이다.

일만 빨리 끝내놓으면 숙소에 들어와 쉴 수 있는 시간이 꽤 길다.

쉬다가 갑자기 call 이 오면 나가서 일하는데, 어제는 유난히도 없어서 계속 숙소에서 아프리카로 시청광장 scene을 틀어놓고 헤드폰을 끼고 엉덩이만 들썩들썩거리고 있었더니 내 룸메이트가

"야, 너 죽을 것 같다. 그러다 마우스 잡은 채로 굳어버릴 것 같애. 삐삐 나한테 맡기고 어디 좀 나갔다 와. "

 

친구야 ㅜ.ㅜ 고맙다.

 

나는 급히 컴퓨터를 로그아웃하고  병동에 가서 콜이 올만한 일을 찾아서 다 해치운 후 ("인턴 할 일 있어요? 또 있어요? 이게 다예요? 이제 없죠,  없죠?') 데일리까지 만들고 삐삐를 맡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부여잡고 시청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그 사이에 콜이 딱 하나 왔는데, 그것도 이미 해놓은걸 모르고 콜한거였다. Yes!!  하나님, 감사합니다. ㅜ.ㅜ)

 

시청역 출입구를 막았을까봐 종각에 내려서 걸어간 시청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넘쳐 흘러 도로까지 나와있는 상태였다. 경찰은 청와대쪽으로 난 길을 한사람 지나갈 길 빼곤 다 막아버리고, 사무라이조가 휘두르던 장봉을 등에 빗겨메고 도열해 앉아서 대기하기도 하고, 갖가지 볼거리(혹은 못볼꼴)를 제공하고 있었다.

 

'대통령 사과' 라는 따라하기도 낯부끄러운 구호에다가 뒤에는 잘 들리지도 않은 각종 '발언' 과 '공연' 이 끝나고 (이해 안가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는 배경음으로 '꺼져줄래?'가 흐르고 있었다는...) 삼사백명의 사람들이 세종로에 나가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밥먹고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그쪽으로 합류하려던 차였는데, 시청 뒤쪽에 진치고 있던 경찰이 떼거지로 우리 뒤를 따라오는거다.

' 어, 얘네 뒤에서 칠려나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에서 무아지경으로 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는 전혀 모르고 당하게 생긴거다. 그래서 난 또 '익명성'의 철가면을 쓰고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며 '뒤에서 치려고 준비중이예요' 를 외쳤다. 사람들은 '경찰 들어온대' 하는 말을 서로 퍼뜨리며 서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전경과 시위대의 대치선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사람들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뛰기 시작하는거다. 나는 앞으로 가던 터라 갑자기 벙 쪄서 거의 경찰 손에 잡힐 뻔 했다가 벗어났다.

그런데 이것들이 달려드는 기세가 진짜 열흘 굶긴 개떼같은거다. 그냥 인도로 올리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잡아 족치는게 목적인 듯 했다. 

 

(여기까지 쓰고 콜받고 병동올라갔다가 이 뒤는 6.12 에 이어서 씀)

 

나도 참 요 일년 시위에 많이 나오고 대치상황에 나대기도 많이 했나보다.

뒤돌아 뛰는 사람들에 밀리면서, 더 빨리 뛰고 싶은 사람들에 밀쳐지면서, 아... 참 익숙하다....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사람들은 서로 엉켜 넘어지고, 넘어진 사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한두명 손을 잡아 일으키다가 이미 경찰들이 내 '앞에'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아... 오늘은 잡히면 안되지...'

'오늘부터 2박 3일 닭차투어를 하면, 나는 '근무지 이탈하고 불법시위하다 잡혀가서 2박3일 근무 빵꾸낸 인턴' 이 되는거다. 이 문장이 가진 '안주'로서의 매력은 어마어마한 거다. 항상 스캔들과 루머에 목마른 선생님들과, 이런 루머의 교류에 있어서는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병원 직원들에게까지 퍼질 것이다. 게다가  이바닥이 워낙 좁고 뻔해서, 다른 병원에도... 아마 앞으로 나는 이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 시위하다 연행된거 소문나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근무시간에 나갔다는 건 스스로도 할 말이 없잖아. 소문이 나도 떳떳하게 나야지. 오늘은 안돼.'

 

(여기까지 쓰고 이 뒤는 6.13 이어서 씀 http://blog.jinbo.net/camusian/?pid=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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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글이 맘에 들어서.

행인님의 [다시 광장으로] 에 관련된 글.

 

그러고 보니 나도 서울특별한시로 주소이전 하는 바람에 얼렁뚱땅 하나님의 나라에 살게 되었네.

참 여러가지로 신을 모독하는 이명박. 니가 하나님 나라 대한민국 지부장이라도 되냐?

 

어제 현충일, 날씨 맑음.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인사동에서 삼청동 길은 놀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차서

인도에서 밀려나 side-sidewalking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차벽을 치운 서울광장은 한산했다.

방패 든 새끼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잔디밭에서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간식을 먹거나 쉬고있긴 했지만,

모두가 다 뻘쭘해보였고 그들은 간간히 두리번거렸다.

무대에서는 뭔가 행사를 준비중이었는데 그들 역시 불안해보였다.

 


오랜만에 열린 서울광장을 괜히 한번 가로질러 걸어볼까 싶다가,

그랬다가는 저놈들이 심상찮은 민심에 살짝 겁먹고

'알았어, 니 이거 줄테니까 가만 있어' 라며 던져준

떡 한개에서 떨어진 떡고물이 발에 묻을 것만 같아서,

나는 휙 고개를 돌리고 대한문 앞으로 길을 건너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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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서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유서] 에 관련된 글.

 

노무현이 죽었다.

나를 썩 분노하게도, 열광하게도 하지 않았던, 모든 정치행위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지난 정권의 대통령.

그런 그가 돈 문제로 수사를 받다가 자살했다.
정치적 목적이 짙은 부당한 수사로 억울하고 힘들었겠지...

그래도 청렴하다고 자부하고 살았을 사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투신을 택한 그가 겪었을 고통이 막연하게나마 전해져 와 이해된다.

그래서, 한 사람을 자살로 까지 내몬 이 정권이 또 다시 역겹다.

 

 

그런데, 그의 유언을 보고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이어야 할 사람이 죽음으로써 말하고자 한 것이

너무나 비정치적이고, 너무나 개인적이었기 때문이고,

그런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죽음을 뼈저리게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 광장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러니와 오가는 것들의 무게 간의 불균형이

우습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한 사람을, 그가 입은 모든것을 다 벗고 나서도 남아있는 그 무엇,

그 마지막 실존으로 받아들인다면, 그의 죽음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그가 지극히 홀로, 그 누구의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뛰어내린 것을

안타까워 할 이유가 없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원하는가?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죽음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만한 연결고리를 그가 남겨놓고 가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여고생이, 가난한 자신을 홀대하는 선생님과 친구들 때문에 괴로웠다는 유서를 남겼을 때,

나는 그의 죽음을 나의 것으로 느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심지어 실업과 카드빚의 무게를 못이겨 자살을 택하며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 (수많은) 자살자의 죽음에서도 나는 나의 몫을 본다.

그들은 나에게, 우리에게 숙제를 남긴다. 그들의 삶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는 모습은

실타래의 끝을 여기에 남겨두어 이것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로 만든다.

 

그런데 노무현의 유서를 읽고서는, 

나는 그가 그의 죽음을 나와 공유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억지로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포장하는 것이

오히려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폭력이고 기만이 아닐까...

그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 으로 떠나려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내 맘대로 그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이라 하지 못하고

못내  그한테 서운한 모양이다.

 

 

트랙백한 이 글에 적힌

대조되는 두개의 유서를 보면서

내가 무엇에 실망하고 왜 실망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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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와 '너'

marishin님의 [‘촛불 담론’ 논쟁이 본격화하려나] 에 관련된 글. 

지식인들이 촛불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논쟁하는 것도 참 반가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촛불이라는 어떤 현상을 최대한 객관화 하는 동안,

그 촛불들은 '우리는 누구였나, 우리는 그 때 왜 그렇게 했나,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를 무쟈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려나.... 아니면 생각 해 보셨으려나...

 

그들이 할 수만 있다면 이 논쟁을 할 때 자신을 하나의 촛불로 인식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촛불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범주는 정말이지 바다처럼 넓고 깊은데,

육지 태생이라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보지 않고 뭍에만 서서 '바다 속이 참 깜깜하고 알수가 없구나,' 

하는 건, 물속에서 올려다 보는 물고기 입장에서는 아무리 '여기서 우리 물고기들이 태평양을 건너가볼까 하고 있어요'라고 해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저 출렁 출렁하는 그림자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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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꼬스 인터뷰: 사빠띠스따의 모래시계

 

부사령관 마르꼬스

사빠띠스따의 모래시계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로버트 폼보와의 인터뷰

 

 

한국어 번역: 모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로버트 폼보: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3)이 그들이 언젠가 의기양양하게 멕시코씨티에 입성할 것이라고 선언한 지 7년이 지난 후, 당신은 수도에 서있었고 쏘깔로는 완전히 꽉 찼습니다. 연단에 올라서 그 광경을 보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마르꼬스: 안티클라이막스를 지향하는 사빠띠스따의 전통에 따르면, 소깔로의 시위를 보기에 가장 안좋은 곳이 바로 연단이에요. 태양은 맹렬히 내리쬐고, 스모그가 가득했고, 우리는 모두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우리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 수를 세면서 굉장히 걱정을 했지요. 저는 동지인 타코 사령관에게 우리가 서두르지 않으면 발언을 시작할 때쯤엔 광장에 아무도 남아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우리는 그 길들을 다 볼 수는 없었습니다. 안전상의 문제로 우리가 군중으로부터 유지해야 했던 거리는 정서적인 거리이기도 했던 지라, 우리는 다음날 신문에서 읽고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소깔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요, 우리 관점으로나 다른 이들의 평가에 의하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 대회는 그 국면의 최고점이었고, 그날 우리의 말들은 적절했고, 우리의 메시지는 옳았으며, 우리는 우리가 대통령 궁을 점거하고 전면적 반란을 이끌어낼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을 당황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단순히 시(詩)적이라거나 서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요. 제 생각에, 실효성있는 협상이 타결되었고, 그래서 그럭저럭 3월 11일 소깔로에서, EZLN은 2001년에 대한 것 보다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인종주의에 대한 분명한 타파가 국가정책과 교육정책이 될 것이고, 전 멕시코 사회에서 공유되는 어떤 감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말이죠. 인종주의는 청산된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있습니다. 우리 군인들 말투로 하면, 전투에는 승리했지만, 아직 싸워야할 잔여전투가 있는 거지요. 끝으로 저는 소깔로에서의 대회가, 우리의 무기를 옆에 내려놓은 것이 옳은 결정이었고, 우리를 시민사회와의 대화로 이끌어준 것은 우리의 무기가 아니었다는 점, 평화행진이라는 도박이 현명하고 풍부한 결실을 맺게 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믿습니다. 멕시코 국가, 특히 정부가 항상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가: 당신은 ‘우리 군인들 말투로’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우리의 게릴라들이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있는 콜롬비아인들에게는, 당신의 언어가 그다지 군인스럽게 들리지 않거든요. 당신이 하는 운동이 어떤 점에서 군대식인지,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마: 우리는 하나의 군대, 즉 EZLN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군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사령관 마르꼬스는 이 군대의 군사적 수장이죠. 하지만 우리의 군대는 다른 군대와 아주 다릅니다. 그것의 목적은 군대이기를 멈추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군인은 남을 납득시키기 위해 무기에 의존해야 하는 부조리한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미래가 군사적인 것이라면 그 운동은 미래가 없는 것이죠. 만일 EZLN이 무장된 군대구조로 영속하려 한다면, 그건 실패로 향하는 거예요. 대안적인 사고방식으로서의 실패이고, 대안적인 세계관으로서의 실패지요. 설혹 대안은 별개로 놓는다하더라도, EZLN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권력에 도달하여 거기에서 스스로를 혁명군으로 앉히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실패입니다. 6,70년대에 민족해방운동과 함께 나타났던 정치-군사 조직들에게 성공인 것이 우리에게는 대실패일 거예요. 우리는 그러한 승리들이 성공의 가면에 가려진 채, 종국에는 실패 또는 패배로 판가름나는 것을 봐왔습니다. 항상 미해결로 남았던 것은 민중, 즉 시민사회의 역할이었죠. 그것은 결국 두 헤게모니들 간의 논쟁이 되었죠. 한쪽에는 시민사회를 대신해 위로부터 결정하는 지배 권력이 있고, 다른 집단을 권력에서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그래서 역시나 시민사회 대신 결정하는 일군의 몽상가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헤게모니들 간의 투쟁인데, 그 투쟁에서 승자는 선이고 패자는 악이 되지만 시민사회의 나머지에게는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EZLN은 사빠띠스모에 의해 장악된 어떤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이 약자의 첫음‘E’(군대)는 축소되었고, 그것의 손발은 묶이게 되었죠. 그래서 우리에게 비무장 행진은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홀가분함이었죠. 탄창은 전보다 가볍고, 무장한 집단이 사람들과의 대화에 들어갈 때 부득이 착용해야하는 군용품 역시 덜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제 폐허에서, 즉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시민사회에 강요할 사람들과의 싸움에 기초해서는 세계 혹은 시민사회를 재건축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국민국가를 재건설할 수도 없습니다. 전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멕시코 사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래서 그들 간의 관계들은 존경과 관용에 기반을 둬야 합니다. 6,70년대의 정치-군사 조직들의 말들에는 없었던 것들이죠. 현실은 늘 그렇듯 그 시대의 무장한 민족해방운동들에게 [폐허의 책임을 묻는] 청구서를 제시했고, 그래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한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었습니다.

 

 

가: 당신은 또한 당신이 대표하는 사회영역에 있는 전통적인 좌파와는 다른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마: 대체로 말해,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좌파 운동에는 두 개의 주요한 간격들이 있었어요. 그들 중 하나는 우리의 신분적 배경인 원주민들이고, 다른 한쪽은 짐작컨대 소수자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설혹 우리의 발라클라바 모자[군용모자]4)를 벗었다고는 해도, 우리가 남성동성애자들, 레즈비언들, 성전환자들과 같은 방식의 소수자는 아닐 거예요. 이 분야들이 지난 수십 년의(그리고 근래에 와서도)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담론들에 의해서만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무시했던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적 틀 또한 실제로 그들을 제거되어야 할 전선의 일부로 간주했었죠. 예컨대 동성애자들은 잠재적인 배신자로, 즉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국가에 해로운 요소들로 의심받았습니다. 다른 한편 원주민들은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후진적인 분야로 간주되고...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요구되었던 것이 이 요소들의 청산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감옥에 가둬지거나 재교육되고, 또 어떤 이들은 생산과정에 동화되어 숙련 노동(프롤레타리아)으로 변형되어, 그 용어 속에 집어넣어지죠.

 

 

가: 게릴라들은 보통 다수자들의 이름으로 말하는데요. 당신은 멕시코 전체의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 전체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데도 소수자들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뭔가요?

 

 

마: 모든 전위들은 자신들이 다수자를 대표한다고 상상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거짓일 뿐 아니라, 심지어 최선의 경우에도 이것은 욕심일 뿐이고, 최악의 경우로는 철저한 권리침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제 세력들이 활동하는 순간, 전위는 더 이상 전위가 아니며, 전위가 대의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그 안에 속해 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EZLN은 전위가 되라는 일체의 요구를 단념하면서, 자신의 실제적 지평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넘어서 있는 이들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정치적 자위행위입니다. 몇몇 경우에는, 이 행위에 아무런 쾌락도 없으니 자위도 아닌거죠. 기껏해야 그걸 만든 자기들끼리만 읽는 전단지 정도인 것이죠.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솔직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게 인간 체면의 문제라고 말하겠지만, 아니에요. 우린 심지어 냉소적으로, 우리는 단지 멕시코 남동부 한 지역의 원주민 사빠띠스따 공동체들을 대표할 뿐이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말은 우리가 대의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귀에 닿았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도달했던 지점이지요. 그게 답니다. 수도로 행진하는 과정에 우리가 했던 연설들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우리 자신-에게 말했어요. 우리는 우리의 여정에서 만났던 투쟁들을 이끌 수도 없고 이끌어서도 안 되며, 혹은 그들을 위해 깃발을 흔들 수도 없고 흔들어서도 안 된다고요. 우리는 너무 많은 부당함들, 너무 많은 불만들, 너무 많은 상처들을 가진 저 땅 밑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여주는 데 느리지 않을 거라고 상상했어요. 우리는 우리의 행진이 쟁기가 되어서 이 모든 것들이 땅으로부터 솟아날 수 있도록 흙을 갈아엎는 그런 이미지를 마음에 그렸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야만 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이끌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요구사항을 풀어놓으러 갔고, 그것이 다른 이들의 요구사항을 풀려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얘기입니다.

 

 

가: 멕시코시티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기 전까지, 당신이 행진로를 따라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했던 연설들은 즉석에서 한 것이었나요? 아니면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것이 꼭 맨 마지막에 오지는 않게 하는 그런 순서로 그것들을 계획했나요?

 

 

마: 자, 공식적인 버전이 있고 실제 버전이 있습니다. 공식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각 도착지마다 우리가 해야만 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실제 이야기는, 우리가 지난 7년의 과정 위에서 이 담론을 엮어냈다는 겁니다. 그리고 EZLN의 사빠띠스모가 여러 가지 발전들에게 추월당했던 어떤 순간이 다가왔죠. 오늘날 우리는 1994년 이전이나, 우리가 싸우고 있을 때인 1994년의 첫날들을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7년간 해온 일련의 도덕적 서약들에 기초해 행동합니다. 결국에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대로 땅을 일구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 위를 걸은 우리의 단순한 행동은 이 모든 묻혀있던 감정들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던 것이죠. 모든 마을의 광장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우리는 여러분을 이끌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야할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러기는 했지만, 우리는 행군 중에 멕시코 혁명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불만이 적힌 메모들을 받았는데, 그건 마침내 누군가 그 문제들을 해결하리라는 희망으로 우리에게 건네진 것이었어요. 현재까지 사빠띠스따 행진의 말들을 요약한다면, 그건 아마 ‘아무도 우리를 위해 그 일을 해주지 않는다.’일 것입니다. 그 변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직형태와 정치의 과제가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도자들에게 ‘아니오’ 라고 말할 때,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에게도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 당신과 사빠띠스따들은 신망이 최고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제도혁명당(PRI)은 멕시코에서 이제 막 몰락했고, 원주민법이 의회 법안상정을 앞두고 있고, 그래서 당신들이 요구했던 협상이 시작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마: 폭스의 시간인 펀치카드5)에 의해 작동하는 시계와, 우리의 시간인 모래시계 사이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쟁점은 우리가 공장 시계의 규율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폭스가 모래의 흘러내림에 굴복하느냐입니다. 그러나 이쪽도 저쪽도 모두 아닐 겁니다. 우리와 폭스 양쪽이 다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가 공동 합의를 통해 새로운 시계를 조립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시계를 대화의 리듬, 결국에는 평화의 리듬에 맞출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권력의 경기장인 그들의 영역에 있고, 이곳에서는 정치 계급이 그것의 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가진 조직은 정치 플레이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혹은 적어도 그런 식의 정치판에 있어서는 전혀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투박하고, 말도 더듬으며,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반대편에는 그들이 잘 아는 게임의 능수능란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의제가 정치 계급에 의해 지시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형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논쟁거리겠죠. 이번에도 제 생각에는 이쪽이나 저쪽 어느 쪽도 아닐 겁니다. 우리가 전쟁을 했을 때는 정부에 도전해야 했지만, 이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정부 뿐 아니라 멕시코 국가 전체에 도전해야하죠. 정부와의 대화에는 앉을 테이블이 없어요. 우리가 그걸 만들어야 하겠죠. 이제 도전은, 우리가 그 테이블을 만들 필요가 있고, 정부가 거기 앉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이득을 본다는 것을 정부에게 납득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질 거라는 것도요.

 

 

가: 그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마: 한편엔 정부가, 다른 편엔 우리 자신이요.

 

 

가: 폭스가 당신과 얘기하고 싶고 당신을 대통령궁이나 당신이 좋은 곳이면 어디서나 만나겠다고 말 할 때, 사실상 그 테이블을 받아들인 것 아닌가요?

 

 

마: 폭스가 말한 것은 미디어 케이크의 자기 지분을 원한다는 거예요. 거기에서는 대화나 협상보다는 인기 콘테스트가 열리게 되겠죠. 폭스는 자신의 미디어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진 찍힐 기회를 찾고 있죠. 하지만 평화로의 진전은 어떤 구경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테이블에 앉아서 진짜 대화에 임하는, 진지한 신호들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폭스가 저 대화에 인격적 책임을 지고, 우리와의 협상을 끝까지 지켜본다면, 그와 얘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물을 겁니다. 당신이 끈질기게 이어질 우리와의 만남을 갖는 동안 나라는 누가 운영할 예정인가요? 콜롬비아 출신이라고 하시니 이에 대해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이 경험해서 알다시피 무장 갈등 중에 있는 대화와 협상의 과정은 엄청나게 까다롭고, 행정부의 수장이 전 시간을 바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폭스한테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 그의 정부의 대표자를 지명하라고 하죠.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비센테 폭스와의 악수는 우리의 감상적인 꿈 속에는 없거든요.

 

 

가: 저 기나긴 협상과정 동안 당신의 대학시절처럼 게릴라복장으로 다니실 건가요? 오늘 같은 평범한 날은 어떻게 지내나요?

 

 

마: 일어나서, 인터뷰를 하고 나면 잘 시간이에요. [웃음][ㅋㅋㅋㅋㅋ] 우리는 제가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집단들과 토론회를 갖습니다. 우리의 서신에 영향을 받았던 엄청난 수의 세계들 혹은 하위-세계들과 말이죠. 이 두 세계의 차이는 그들이 얼마나 박해 받았나 혹은 얼마나 주변화 되었나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가 생각나는 회전의자에 앉아 바퀴를 끌면서 두 개의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죠. 한 순간에는 의회와의 협상테이블에 있고, 다른 순간에는 멕시코시티의 공동체들과 함께 앉아있습니다. 한 테이블은 의회와 함께 있는 순간이고, 다른 테이블은 멕시코시티의 공동체들과 함께 있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점은 의회가 우리를 마치 면담 신청을 한 사람처럼, 자기는 다른 업무 중이니 기다리라고 하는 식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그건 엄청난 손해를 가져올 거예요. 왜냐하면 요즘 쟁점중인 것이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인식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 반칙의 효과는 여러 사람들에게 도미노효과를 일으킬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거일에만 눈을 맞추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그것은, 어떠한 정치적인 협상도 항복의 한 형태라고 선언하는 슬로건 하에서 성장해 온 다른 집단들, 즉 더 급진적인 정치-군사적 집단들에게 하나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겠죠.

 

 

가: 당신은 여담으로 당신이 어렸을 때 바퀴달린 회전의자가 있었다고 하셨죠? 당신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마: 518살이요. [ㅎㅎㅎㅎㅎㅎ][웃음]

 

 

가: 당신이 제안한 대화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새로운 대중 참여 메커니즘의 창출을 겨냥한 것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는 건가요?

 

 

마: 대화는 단지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우리 사이에 논쟁 규칙을 합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체제는 토론을 위한 테이블에 기초를 두지 않습니다. 쟁점 중인 것은 우리가 토론할 방식입니다. 이것이 비센테 폭스가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테이블에서 ‘폭스주의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테이블이 이루어야 할 것은, 우리가 위엄을 가지고 떠오를 수 있게 하여, 다시는 저나 누군가가 되돌아가서 또다시 군용장비를 착용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테이블을 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화자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이미지 컨설턴트가 디자인한 마케팅 상품이 아닌, 한 명의 정치가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쉽진 않을 겁니다. 전쟁이 더 쉬웠죠. 하지만 전쟁은 많은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항상 치료법이 발견될 수 있어요.

 

 

가: 당신의 의상은 좀 희한해요. 목에는 기워진 스카프를 두르고, 다 떨어진 낡은 모자를 쓴 반면, 여기서는 필요 없는 손전등이랑 아주 정교해 보이는 통신장비에다가, 양 손목에는 시계 하나씩을 차고 있으니 말이죠. 그건 상징들인가요? 그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마: 손전등은 우리가 깜깜한 구덩이에 빠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라디오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이미지 컨설던트들이 제가 할 답변을 불러주기 때문에 들고다니죠. 아니에요. 좀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이건 여기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경우 호위군이나 정글의 사람들과 통신하게 해주는 워키토키입니다. 우리는 몇 차례 살해 위협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스카프는 우리가 7년 전에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를 점령했을 때에는 빨간색이었고, 새거였죠. 그리고 모자는 제가 18년 전 라깡도나 정글에 도착했을 때 갖고 있던 거구요. 시계 하나는 당시 정글에 도착했을 때 있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휴전이 시작됐을 때의 날짜를 계산합니다. 두 개의 시간이 일치할 때, 그것은 사빠띠스모가 군대로서는 끝나고, 다른 시기가, 또 다른 시계가, 또 다른 시간이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가: 당신은 콜롬비아 게릴라와 우리나라의 무장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 여기서 제가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습니다. 언론으로 걸러진 것만 볼 수 있지요. 현재 대화와 협상의 진행상황, 그리고 그것의 난점들이요. 현재로서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그건 매우 전통적인(혁신적이지 않은) 방식의 대화라는 거예요. 양쪽이 동시에 테이블에 앉아서, 그 협상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군사력을 동원하고 있어요. 혹은 반대로, 우리가 그들 각자의 속마음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죠. 아마도 그 테이블이 군사적 대치에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겁니다. 우리는 마약거래와 연루되었다는 비난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혐의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혀지는 일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콜롬비아인들에게 [더 많이 의심받을수록 더 많이 믿겠다는 식의] 의심의 혜택을 주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식의 낙인을 찍진 않지만, 멕시코의 다른 무장 집단에게 하듯이 그들과도 거리를 두려합니다. 혁명에서 승리하려고 온갖 계략을 승인하는 일(예컨대 민간인 납치를 포함해서)이 우리에게는 윤리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한 말이죠. 권력장악이, 혁명 조직이 그들이 만족하는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정당화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수단이 곧 목적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우리가 그것을 위해 투쟁수단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말에, 즉 정직과 진실함에 부여하는 가치는 위대합니다. 비록 우리가 이따금씩 너무 순진해서 죄를 짓기도 하지만요. 예를 들어 1994년 1월 1일에, 우리는 군대를 공격하기 전에 공격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믿지 않았죠. 어떤 때에는 이것이 좋은 결과를 낳고 또 어떤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조직으로서 우리가 전진하면서 하나의 정체성을 창조한다는 것에 우리는 만족합니다.

 

 

가: 콜롬비아에서처럼, 전쟁 중에 평화 협상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마: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여기에서 의견을 내는 것은, 매우 쉽고 또 매우 무책임한 일입니다. 대화와 협상의 과정은 각각의 편이 이기는 것에 열중해 있는 한 성공적이기 힘들어요. 만약 한편이 협상을 상대방을 누를 수 있을지 보기 위한 힘의 과시로 사용한다면, 조만간 대화는 실패할 겁니다. 그런 경우에는, 전장터가 단순히 협상 테이블로 옮겨진 것이죠. 대화와 협상이 성공하려면, 양 당파가 그들이 상대방을 패배시킬 수 없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해야 해요. 그들은 모두에게 승리를 의미하는, 혹은 최악의 경우 모두에게 패배를 의미하는 길이라도 찾을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둘다 패배했다고 해도] 그것은 대결을 끝으로 가져가주지요. 물론, 이건 어려워요. 무엇보다도 콜롬비아의 게릴라들처럼 수년간 활동했었던 운동들에게는 말이죠. 양쪽이 많은 손해를 입었고, 청산되어야 할 빚이 아직 많지만, 그러나 저는 시도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어요.

 

 

가: 이런 혼란의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독서 할 시간이 나세요?

 

 

마: 네, 왜냐면 그렇지 않다면 … 우리가 뭘 하겠어요? 이전의 군대에서는, 병사들은 자기 시간을 무기를 닦고 탄창을 채우는 데 썼어요. 우리의 무기는 우리의 말이고, 우린 언제든 그 무기가 필요해질 수 있거든요.

 

 

가: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들이 그 형식과 내용에서, 상당한 수준의 전통적인 문학 교육의 흔적을 보입니다. 그건 어디에서 온 건가요?

 

 

마: 어린 시절에서요. 저희 집에서는, 말이 굉장히 특별한 가치를 가졌어요.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세상과 닿았어요. 우리는 학교에서보다는 신문칼럼 같은 것으로 읽는 법을 배웠어요. 제가 어릴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희한테 그 밖의 일들을 밝히는 책들을 주셨죠. 그럭저럭 우리는 언어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소통의 방식으로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서의 언어에요. 그것이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라도 되는 양 말이죠. 지하세계에서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세계와는 달리, 제일 가치 있는 것은 말이 아니에요. 부차적인 지위로 밀려나지요. 언어가 마치 새총처럼 우리를 딱하고 때렸던 것은 바로 우리가 원주민 공동체에 들어갔을 때였어요. 그리고는 많은 것을 표현하기에 말이 부족하고, 언어를 공부해야겠다고 깨달았죠. 시간을 되돌려 다시 말들로 돌아와, 그것을 모아보고, 그것을 조각내고 하는 식으로요.

 

 

가: 그 반대일 수는 없을까요? 즉, 말의 구사가 투쟁의 새로운 양상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마: 마치 모든 것이 믹서기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 무엇을 넣고 섞는지 모르고, 마지막에 무슨 칵테일이 나올지도 모르는 거죠.

 

 

가: 가족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마: 중간계급이었어요. 가장인 아버지는, 그의 말을 빌자면, 교사들은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에 대해 귀를 닫아야했던 카르데나스 대통령 시절에 시골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역시 촌에서 학교 교사였다가, 중간계급으로 편입했죠. 우리는 금전적 어려움이 없는 가정이었어요. 이 모두가 지역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것이 문화생활의 전부인, 지방에서의 일이었습니다. 바깥세계란 멕시코시티와 거기 가고 싶게 만드는 서점이었죠. 이따금씩 뭔가 흥미로운 것을 얻을 수 있는 지역 책 박람회가 열렸어요. 몇 사람을 거론해보면, 부모님은 우리에게 가르시아 마르께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카를로스 몬시바이스, 바르가스 요사(그의 사상은 물론이고)를 소개해주었죠. 부모님은 우리가 이들의 글을 읽게 했죠. 당시에 지방이 어떠했는지 잘 설명해주는 『백년의 고독』(마르께스), 멕시코 혁명 당시 일어났던 일을 보여주는 『아르테미오 크루즈의 죽음』(푸엔테스), 중간계급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묘사하는 『숙연한 나날들』(몬시바이스)이 그것입니다. 『도시와 개들』(바르가스 요사)은, 어떤 면으로 우리들의 초상화, 하지만 [적나라한] 누드화였죠. 이 모든 것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우리는 우리가 문학으로 나아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로 나아갔어요. 제 생각에 이것이 우리 형제들을 특색있게 했어요. 우리는 세상을 TV수신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설, 수필, 시를 통해서 내다보았어요. 그것이 우리를 매우 다르게 만들어줬어요. 그것은 부모님이 나에게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길 바랬던 프리즘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미디어의 프리즘이나, 그들로 하여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지 못하게 막는 어둠의 프리즘을 선택하는데 비해서 말이죠.

 

 

가: 『돈키호테』는 그 모든 독서의 어디쯤에 오나요?

 

 

마: 제가 12살 때 책 한권을 받았는데, 표지가 아름다운 양장판 책이었죠. 『돈키호테』였어요. 전에도 그걸 읽었었지만, 그 땐 아동용이었죠. 그건 비싼 책이었는데, 지금도 저 바깥의 어딘가에 남아있을 만큼 특별한 선물이었어요. 그 다음엔 셰익스피어를 받았어요. 하지만 [세익스피어보다는] 라틴아메리카 붐이 먼저 일었고, 그리고 세르반테스, 그리고 가르시아 로르카, 그리고 시의 시기가 왔죠. 그래서 어떤 점에서 당신[마르께스를 보면서]은 이 모두에 끼어있었죠.

 

 

가: 실존주의자들과 샤르트르가 그 뒤로 왔나요?

 

 

마: 아니요. 우리는 그들에 늦게 도달했어요. 엄밀히 말해 우리는, 교조주의[정통 맑스주의]자들 식으로 말하면, 실존문학과 그에 앞서 혁명문학을 접할 때쯤에는 이미 너무 ‘오염’되어 있었죠. 그래서 우리가 맑스·엥겔스를 접할 때쯤 우리는 문학, 그리고 그것의 역설과 유머에 철저히 찌들어 있었죠.

 

 

가: 정치이론 서적은 안 읽으셨어요?

 

 

마: 처음에는 안 읽었죠. 우리는 알파벳에서 곧장 문학으로 나아갔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문헌들로 나아갔어요.

 

 

가: 당신 학급친구들이 당신이 공산주의자라거나 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요?

 

 

마: 아뇨.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기껏해야 애들이 저를 '작은 무' 정도로 불렀을 거에요. 겉은 빨갛고 속은 하얀 무 말이죠.

 

 

가: 지금 읽고 계시는 것은 뭔가요?

 

 

마: 『돈키호테』는 항상 제 옆에 있어요. 그리고 대개는 가르시아 로르카의 『집시 노래집』을 들고 다니구요. 『돈키호테』는 최고의 정치이론서입니다. 『햄릿』과 『맥베스』가 그 뒤를 잇지요. 멕시코 정치체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들(『햄릿』,『맥베스』,『돈키호테』)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어요. 그것의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면에서요. 그 어느 정치 컬럼니스트보다도 나아요.

 

 

가: 당신은 손으로 글을 씁니까? 컴퓨터로 씁니까?

 

 

마: 컴퓨터로요. 이번 행진 때를 빼면요. 이번에는 작업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많은 것을 썼습니다. 전 먼저 초고를 쓰고, 그리고 다시 쓰고, 또 다시 쓰고, 또 다시 씁니다. 어리석게 들리겠지만, 글을 마칠 때면 7번 정도를 쓰는 셈이 됩니다.

 

 

가: 지금은 어떤 책을 쓰고 있나요?

 

 

마: 바보짓을 창작해보려고 해요. 즉 우리 자신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에게 우리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는겁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 말이죠. 그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면 우리가 바로 역설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왜 혁명군이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지 않는가, 싸우는 것이 군대의 일이라면, 왜 군대가 싸우지 않는가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주했던 모든 역설들을, 즉, 지금까지 기존의 문화로부터 삭제되어 있던 어떤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자랐고 또 강해졌던 방식 말이죠.

 

 

가: 모두가 당신이 누군지 아는데, 마스크는 왜 쓰세요?

 

 

마: 일종의 농락의 수법입니다. 그들은 제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들에겐 그거야 어쨌든 상관이 없어요. 문제가 되는 것은 부사령관 마르꼬스가 무엇인가지, 그가 누구였는지는 아니거든요. 

 

  <주석>

2) 이 인터뷰는 2001년 3월 26일 Bogotá의 Revista Cambio에 처음 발행되었다. 본문은 <뉴레프트리뷰> 2001년 5,6월호에 실린 것으로, 당시 제목은 ‘펀치카드와 모래시계’(the Punchcard and the Hourglass) 였으며, ‘사빠띠스따의 모래시계’는 이 잡지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에서 사용된 제목이다.

3)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Ejercito Zapatista de Liberacion Nacional, EZLN)

4) 발라클라바(balaclava)는 ‘목출모’, ‘안면모’라고도 불리며, 흔히 어깨까지 덮는 얼굴을 가리는 군용 털실모자를 지칭한다.

5) 정보의 검색,분류,집계 따위를 위하여 일정한 자리에 몇 개의 구멍을 내어 그 짝 맞춤으로 숫자,글자,기호 등의 데이터를 표현하는 카드. 초기의 저장매체.

  

 

 

 

1. 한글파일로 보시려면:

첨부파일 부사령관_마르코스.hwp

  

2. 원문을 보시려면:

첨부파일 Punchcard and the Hourglass.pdf

 

(위 버튼을 누르셔도 암것도 안나와요. ㅡㅡ;; 파일 업로드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왜 사진 올리는 버튼은 있는데 파일버튼은 없는겨 ㅜ.ㅜ )

 

3.  의 다른 글들이 궁금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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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번역과 관련해 항의나 문의, 수정 등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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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빠띠스따.

 

 '사빠띠스따'라는 사람들, 우리 촛불들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들인 것 같아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제 머릿속에는 우리의 모습이 먼저 떠올라요. 그리고 사진에서 본 스키마스크를 쓰고 말 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그 위에 겹쳐지지요. 지구 반대편에서 힘든 여건에도 수년간 멋진 저항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태평양 건너편에서 1년 남짓 된 '촛불'로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과 우리가 다른 사다리를 타고서도 공통된(동일하지 않더라도) 이상을 향해 가기 때문일 것 같아요.

 이 글이 그러한 우리들을 이어주는 한올의 실(종이컵 전화기가 생각나요!^^)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의 실수와 무지가 탄로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난생 처음 번역이란 걸 해보았어요. 저는 지금, 우리가 이들의 이야기에 교감하고 영감을 받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사빠띠스따들에게도 전해져서, 그들이 우리와 교감을 하고, 힘을 얻게 되기를 꿈꿔요.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또 그 반대로, '우리의 무기' 인 '우리의 말'이 수도 없이 뻗어나가서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연대를 이룰 수 있기를.

 

(계속 수정중. ^^)

 09.05.09 10am. 마지막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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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ore than

no more than 다만, 겨우

no more ... than …아닌 것은 …아닌 것과 같다:

  I am no more mad than you (are). 자네와 마찬가지로 나도 미치지 않았다.

  He can no more do it than fly. 그가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Infl ation of the scale or achievements of an embryonic movement is of no more service than indifference or neglect. =>

미성숙한 운동의 규모나 업적을 과장하는 것은, 그것이 무관심이나 방기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공헌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맞나...? (지금 요거 보신 분... 댓글로 의견 주시면 완전 감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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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

가끔 이렇게 이상한 날이 있다.

온 세상이 나한테 적대적인 날.

내가 가는 구석구석에 머피의 법칙이 숨어있다가

쑥, 발을 내밀어 나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 같은!

 

그래도 오늘은 귀엽지. 이정도면.

 

어젯밤, 12시에서 3시 사이는 환자가 올만한 시간이라,

잠을 청하지 않고 글을 읽느라고 한밤중이 되었다.

이제 환자가 안와야 되는 시간인데 그때부터 띄엄띄엄, 아침까지 환자가 온다.

그런식으로 밤을 새고 새가 짹짹 우는 아침이 되었는데,

이때는 정말정말 응급실에 환자가 없어야 되는데,

계속 온다.

잠이 들만하면 깨고, 꿈 꾸기 시작할 때쯤 깨고,

이러다보니 정신이 혼미하고 지남력이 떨어질 지경이 된다.

 

최고 절정은,

소변이 안나와서 아침에 소변 뽑아드린 분이 아예 폴리(거치용 소변줄)를 끼러 오셨다.

근데 이런 망할놈의 폴리가 불량품이었던 것이다.

요도에서 안빠지게 부풀리는 풍선같은 부분이 있는데,

그놈이 샌거다.

그러니 폴리가 쑥~ 빠지면서

빵빵하게 차있던 방광이 '아~ 살았다' 이러면서

그 물줄기가 폴리 제조 회사를 불신할 리 없는, 완전 방심한 나한테...

 

오.... 초 당황스러웠으나,

얼굴에는 애써 '이런일 쯤이야' 표정을 띄고 나의 임무를 완수한 뒤,

주섬주섬 샤워도구를 챙겨 커텐도 없는 통유리가 달린 샤워실로 올라갔다.

사실 이 샤워실은 4층이라는 점을 빼면 햇살이 환히 들어오고 은폐물도 없는 곳이라,

맘만 먹고 들여다보려고 하면 그 뜻을 이루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

왜 샤워실을 요따구로 해놨는지 이해가 안가는 곳이다.

웬만하면 여기서 샤워를 안하려고 하지만, 이번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온몸에 물을 뒤집어 쓰고 머리에 샴푸 거품을 한아름 이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우리 병원 응급실로 오는 소리가 아닐거라고, 애써 달리 해석 해보려 하지만,

회피본능으로 하는 헛수고일 뿐이다.

이 주변에 불이난 것 아니고서야 저건 나에게로 오는 환자의 소리다.

게다가 웬만한 응급이 아니고서는 저렇게 싸이렌을 울리고 오지도 않는다.

심지어 싸이렌 소리가 가까워 오는 속도가 빛의 속도다. 저 환자... 대박이겠다.

나도 모르게 그 통유리 창가로 가서 엠뷸런스를 확인하고는,

'아 왜!!!'  하고 절규했다.

아니나 다를까, 응급실 간호사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최대한 빨리 내려가도 시간이 걸리니 환자 상태를 봐서 바로 과장님을 호출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귓가에 뭉게뭉게 붙어있던 거품이 내 손전화를 살포시 휘감고 있었다. (제길제길)

 

나는 입으로 욕 위주의 주문을 중얼중얼 읊으면서 후딱 비눗기만 제거하고

물 발자국을 찍으며 응급실로 내려왔다.

이미 과장님이 와계셨는데, 내 몰골을 보고 바로 다 이해하신 표정이다.

과장님 왈, 'DOA(death on arrival)야~'

 

당연히 이미 죽은 사람한테는 해줄 것이 없다. 사망선고 내리는 것 말고는.

내 꼴이 사망선고 내리기에는 너무 진지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망진단서를 쓰고,

전화기에 대고 남편의 사망소식을 판소리로 가족들에게 알리고 있는 할머니를 뒤로한 채

당직실로 들어와 머리를 말렸다.

밖에서는 속속 도착한 사망자의 가족들이 곡소리를 점점 더 키우고 있었고

나는 린스를 못해서 뻣뻣해진 머리를 털면서 점점 우울감에 빠져들다가

문득 소변을 맞은 몸에는 비누칠도 못했다는 것을 떠올리고

정말 무서운 것은 수면부족도, 소변도 아니고, 과장님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삶의 불확실성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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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Love

불편하다.

뱃속에 나비가 들어간 것 같다는 표현이 딱 맞는

이상한 느낌: discomfort. => 해결책: 나비를 잡는다. (ㅡ,.ㅡ)

Palpitation. +> 안정.

Distracted. 집중하기 힘들다.

Extended Sense of Need and Demend. => 걍 Self control

 

남들은 좋다고 하는데

왜 나는 이게 불편하지? ㅡㅡ;

나 진짜 문제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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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mm......

주말.

현재까지 환자 30명.

'선생님 이제 한명 더 오면 오늘 30명이에요!'

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들어온 앰뷸런스.

그러나 앰뷸런스 소리가 무색하게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는 환자분.

뛰어나가던 나도 돌아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고.

치료의 시간은 상담의 시간이 되고.

뭐.. 그런거다.

 

시골....

주말....

응급실의 풍경이다.

 

주말이라 환자가 많아도 전혀 타지 않는, 아니, 탈수가 없는 이곳에서의 생활도

이제 막바지다. 모두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러다 환자가 되고, 그들이 의사를 치열하게 만드는

서울로 돌아가야한다.

거기서 나는 무균지대에 갇혀 있어야 한다.

밖에는 인간을 못살게 구는 온갖 균들이 득시글대는데...

 

 

 

 

님들아...

이 봄 모두 건강하세요...

시위하다 다쳐서 오시면

열받아서 뛰쳐나갈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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