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다녀왔다.
전주는, 무엇보다, 맛있다.

25일(금요일)부터 27일까지 짧고 긴 3일.

맛있는 것만 먹으면서 영화를 보다니, 그보다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지난 1년 5개월간 노동의 후유증으로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서
결국 3일동안 개토는
'자다가 일어나서 영화보고 밥먹고 자기'만 반복했다.
전주는 밥과 영화관과 묵었던 방밖에 못봤다는 슬프고도 행복한 이야기.

첫날,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방에 짐을 풀고 용감하게 전주 영화의 거리로 나간 개토는
추위와 무거운 잠과 아픈 다리를,
10분만에 절절히, 정말 뼛속까지 느끼며
보는 순간 바로 필이 꽂힌 막창구이집으로 들어갔다.
아아~ 전주관광호텔 뒷골목의 그 막창구이 집,
오독오독 씹히는 그 맛, 오그라드는 모습이 정감어린 막창의 누드,
맛난 김치와 소고기 무우국, 아아~ 정말 아아~인 것이다.

따듯한 숯불과 맛난 음식으로 몸을 데우고 나니
잠시 힘이 솟았으나 방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의 힘이었다고나 할까
돌아오자 마자 부른 배를 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밤 11시에 일어나,
12시에 예매해 둔 '전주 불면의 밤 -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을 보기위해
또다시 용감하게 일어났다.
전북대 문화관에 도착했는데, 불면의 밤은 그야말로 불면의 밤이었던 것을
개토는 예매하면서 몰랐던 것이었던 것이다.
밤 12시에 시작해서 아침 6시 30분에 끝나는 것을...

늘 그렇지만 영화제의 영화들은 의외로 재미있다.
기대하지 않고 미심쩍어 해두고 나면 감동의 넓이가 달라진다.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블랙 필름은 황당 그자체였다.
미국의 인공적인 백인 문화,
내가 접해본 백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날 것의 느낌,
솔직하고 과격하고 처절하다.
한 번도 TV에서 본 적이 없는 장르, 이상하다...이상해...

네 편 중에 마지막 편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
4시가 좀 넘었을 때 방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뻗어서 낮 1시에 일어나
2시에 덕진 예술회관에서 키에슬롭스키의 단편 3개를 보았다.
필름 담당자가 보다가 끊겨도 책임안지겠다는 선언을 길게 하고 나서
조용하고 엄격한 키에슬롭스키의 영화가 시작되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개막작이 '여섯개의 시선'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어쨌는지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개토는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시선을 유지하는 것,
그것만으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 싶다.
모든 좋은 영화들은 아주 냉정하게 하나의 시선을 유지한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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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9 23:41 2003/04/29 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