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체

from 우울 2006/09/07 10:27

어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급하게 읽었다.

굳이 급할 것도 없었는데, 굶으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대충 끼니를 때우듯,

급하게 읽어치웠다.

 

요새 아마도 나는 많이 변한 듯 싶은데,

그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독서였다.

 

흔히 영화속에서 진부하게 그려지듯이,

책을 펼치면 책속의 세상으로 완전히 빠져들어가서 마지막 단어가 나올때까지

현실의 공기로 숨쉬지 못하곤 하던 내가

 

가장 아끼는 책들로 분류해놓은 곳에서 꺼내든 책을

무슨 패스트푸드라도 먹듯이 허겁지겁 대충 여기저기 흘리며 씹지도 않고 삼켰던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때, 나는 좀 놀랐다.

심지어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책을 읽을때 고의적으로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

특히 좋아하는 책일수록, 소설이라면 더더욱

내 감정의 흐름을 미리 예상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위해서

좋아하게 된 책은 일부러 잊어버리고 한참 있다 한번씩 다시 읽는다.

 

격한 감정의 변동이 있었던 책이었다는 분류기준에 의해 모여있는 열권 남짓한 책들은

내 삶의 치료제이고 안식처이고 흥분제이고 연인이다.

 

눈물을 흘려야 할 곳이 어디었더라...

 

논리적으로 글의 내용을 되짚어 생각해본다.

이제 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내용을 기억하게 될것이다.

 

.

 

.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눈물은 언제나 자기연민이다.

남의 고통을 자기것으로 느낄때나 남의 아픔에도 눈물이 나는 것이다.

 

나, 느끼지 못하게 된거야?

아니, 넌 아직도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어.

그냥, 너는 난장이들로부터 그만큼 멀어진거야.

그런 삶을 잊어버린거야.

 

이렇게 빨리 잊을 수도 있어?

그럼.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일종의 자기방어기제일 뿐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는 것이 좋아.

 

고양이 목덜미의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일단 행복해 한다.

 

판단은 뒤로 미루고, 고양이 목덜미에서 나는 냄새는 왜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할까?

나는 왜 인간의 냄새보다 고양이 응가구멍냄새, 배냄새, 목덜미 냄새를 좋아할까?

나는 왜 고양이 아기를 낳고 싶은가?

등등의 행복한 고민에 빠져든다.

 

오늘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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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7 10:27 2006/09/07 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