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나리아

from 2006/12/18 20:06

너무 배가 고파서 플라나리아를 먹었다.

아껴먹으려고 반으로 잘라 먹었다.

그랬더니 나머지 반이 플라나리아가 되었다.

이럴수가!

 

어쨌든 남은 플라나리아를 잘 보관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플라나리아 뿐이었으니 상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점심때 냉장고를 열어보니,

플라나리아가 알을 낳았다.

 

알까지 낳는 생물을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 가서 플라나리아에게 줄 계란과

내가 먹을 당근, 양배추를 사왔다.

 

플라나리아와 그 알.

나는 갑자기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 건가?

 

플래시백 때문에

며칠째 잠을 잘 수가 없다.

7년전쯤에 본 단어나 문장, 그 종이의 질감, 조명, 책의 두께감까지,

오늘 본 웹사이트의 색감이나 글자체, 분위기,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시,

오스카 와일드, 괴테, 투르게니에프, 타란티노, 피오나 애플, 히치하이커, 스밀라,

미로, 플라나리아, 이런 걸 적고 있는 내가 바보다.

 

결코 쫓아갈 수 없고 기억할 수 없는 것들이 빠른 속도로 플래시백 된다.

흥분감은 오래 지속되어 천상에 다다를 것도 같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상태로 오래 갈 수는 없다.

육체의 피곤이 플래시백을 조장한다는 걸 알지만

이번 휴가 동안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

적게 먹고 적게 잔다.

어차피 휴가가 끝나면 모든 걸 다른 방식으로 조율해나가야 하고

그 조율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일단은 그냥 둔다.

 

 

 

 

 

 

 

감기에게 일백번의 구타를 당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8 20:06 2006/12/18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