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plastic trees

from 2006/12/19 19:12

나는 나무에 올라가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농촌에도, 어촌에도, 산골에도, 공장지대에도 살아본 적이 없다.

나는 집들이 서로 등돌리고 붙어있는 도시에서만 태어나고 살아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대해 무지하다.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고 만들어낸 것을 사용하거나 남에게 팔거나 나눈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파트 맞은 편에는 사무실이 빼곡한 회색 건물안에서

사무직 노동자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나도 한때 사무직 노동자였는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대체 알 수가 없어서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

만들어낸 것의 무게와 길이를 재고, 만들어낸 과정을 압축하여 스티커를 붙인 다음

숫자로 쪼개서 컴퓨터속을 통과하게 하거나

그것이 쓰이지 못하도록 막는 여러가지 장치를 만들어

숫자를 부풀리고 끝내는 사용이 될 수 없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멋진 일이라고

어느 순간, 느끼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직접"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음식하나도 나는 만들어 낼 줄을 모른다.

대학에 가기 위해, 엄마가 하는 일을 눈여겨 보고 배울 시간이 없었다.

졸업을 한 다음에는 만들 줄 모르는 음식을 사먹고

만들 줄 모르는 것들을 소비하기 위해 사무직 노동자가 되었다.

 

하지만 결코 배가 불러지지 않았다.

소비해야 할 것은 끝이 없었고 나는, got tired of it!

 

사람들에게 나를 "직접" 전달하는 방법조차 나는 모르게 되었다.

글을 쓸 때는 한글로만 쓰려고 애쓰지만

먹물이 잘 빠지지 않아 한글만으로는 스스로를 표현하지도 못한다.

감정에까지 먹물이 든 것이다.

나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고 전달받는 사람들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한다.

 

나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집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한 존재(나는 언제나 이 단어대신 다른 말을 쓰고 싶은데)인가를

우선 생각해보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크리스마스 철이다.

성탄절이 가까운 시기이다.

예수가 태어났다는 날에 가까운 시기이다.

 

나는 무엇이 옳은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믿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아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면 혹시 옳은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선 김치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가 해주는 김치는 정말 맛있다.

그런데 나는 그 김치를 만들 줄 모른다.

엄마가 해주는 김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30년 후에는 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김치를 만들 줄 모른다.

세상에서 엄마표 김치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김치가 사라진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하지만 김치를 배우기엔 너무 늦었다.

 

나는 사무직에 걸맞는 인간형으로 개발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개발된 프로세스, 아니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너무 복잡한 과정이고, 굉장한 트라우마, 아니 삶을 파고든 아픔들이 있어서

나는 그 과정으로부터 벗어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나는 돼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소설에서 돼지에 대해 읽었다.

형광등불 아래 돼지만한 우리에서 가만히 서서 끝없이 먹는 돼지들에 대해서.

내가 돼지를 먹지 않으면 돼지들은 자유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똥과 오줌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자동차와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나는 누워있다.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을 한다.

 

어느 순간 내 배위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예수가 태어날 것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잘라내 사용했다는 그 나무들을 닮았다.

나무들은 싱싱하게 보인다.

나는 나무에 달린 잎파리들을 만져보았다.

잎파리들은 플라스틱이었다.

나무도 역시 플라스틱이었다.

내 몸에서 플라스틱 나무들이 자란다.

나는 "직접" 플라스틱 나무들을 키우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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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9 19:12 2006/12/19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