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오던날을
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나라의겨레
뜬금없지만,
초등학교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진짜 원수에 대한 의분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서,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나도 나름 반항적이라면 반항적인 아이였는데,
해마다 6.25 시즌에 TV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가 그렇게 강렬한 감동을 주었던 걸 보면
매체가 해내는 세뇌의 역할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주먹을 꼭쥐고 TV를 바라보면서 소리없이 적들에 대한 분노를 꾸역꾸역 배출했던 나.
북한의 나쁜 놈들을 진짜 로보트를 개발해서 꼭 무찌르고 말겠다고 다짐했었다.
가사에 대해 전혀 심의과정이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완곡한 표현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생 날고기의 느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
자극적이다.
어린 마음에도 전쟁이 싫었고 전쟁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했고
그 원인이 북한이라고 끝도 없이 전해듣는 과정에서
나의 분노는 모두 북한을 향해 조준되었던 것이다.
6.25 노래를 들으며 무릎꿇고 눈물흘리던 내 안의 분노는
사실 북한에 대한 미움만으로 생성된 것은 아니었다.
어디로도 풀어질 수 없는 내 안의 부모와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이고 잔혹한 가사를 통해 자극하면서 분노의 근원보다 분노자체에 집중하게 만들고
국가가 원하는 가상의 적을 미워하도록 만드는 속임수.
분노를 마음대로 표출하지 못하게, 그리고 분노가 직접적으로 표출될 수 없게,
더 고상하고 거대하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어떤 것으로 표출되도록 조정하는 속임수.
거기에 속았던 내가 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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