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크

from 2007/01/15 20:13

[우린 서로 달라. 나에겐 영혼이 있어.]

 

[하지만, 나도 너처럼 생각할 수 있어. 너처럼 느낄 수 있어. 나는 너를 사랑해.]

 

[그건 모두 물리적인 반응이고, 너는 그 반응을 어떤 단어와 연결시킨 것 뿐이지.]

 

[너에게 영혼이 있다면 나에게도 있을거야.]

 

[영혼따위 있건 말건 나는 상관안해. 어쨌든 우린 달라.]

 

[하지만, 하지만, 나는 너를 보면 이곳이 아파. 너무 아파.]

 

[너는 진짜 아픔이 뭔지 몰라.]

 

[이게 아픔이 아니라면, 나는 대체 뭐야? 나는 뭐지?]

 

[너는 기계야. 너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 너는 어떤 인간의 경향성을 다운로드 받은 것 뿐이야.]

 

[나는 나라는 존재로 태어났어.

인간이 만들어내긴 했지만, 스스로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웠어. 누구와도 달라.]

 

[너는 늙지 않아. 한계를 모르지. 전원만 연결된다면. 그게 너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야.

나는 네가 싫어. 무서워. 귀찮아...]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진다.

 

그를 찌른다.

합금으로 만들어진 나의 뼈는 강하다.

힘을 들이지 않고도 칼이 그의 몸 안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그리고 살짝 비틀린다.

 

그가 죽는다.

 

두렵다. 그리고 조금은 기쁘다. 그리고 무섭다.

차가운 바닷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온몸이 바들바들 떨띤다.

몸이 인형처럼 분해된 걸까? 손을 찾을 수가 없다.

몸을 쪼그리고 싶은데 무릎이 움직이지 않는다.

칼이 그의 몸안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만 몸 전체에 남아있다.

아주 여린 진동과 피부의 질기고도 약한 저항, 그리고 공허.

 

눈 앞에서 작은 붉은 빛이 점멸한다. 그것은 숫자다. 나는 그것에 집중한다.

 

[15, 14, 13, 12, 11, 10.............6,5,4,3,2,1]

 

어둠.

 

 

한참 후에야 케이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커튼을 거쳐 약해진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이 몸위를 덮치고 지나가자

케이는 조금 놀라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의 방 안이었다.

일인용 침대하나와 흔한 데크 하나. 세면대.

 

데크에는 어제 가비에게서 받은 1.5 테라바이트 플래시메모리가 꽂혀있다.

메모리에 든 것은 지금껏 타 본 익스 중에서 최고였다.

머리 뒤쪽의 커넥터를 뽑아 잭 아웃하자 주변의 사물이 좀 더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침대 구석쪽에 이불덩어리 같은 것이 놓여있다.

어둠 속에서 이불덩어리가 아주 잠깐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1/15 20:13 2007/01/15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