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가 짧은 중국 남자애

from 2001/08/12 15:03
상해의 작은 가게에서 이것 저것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대나무로 만든 손톱 만한 인형에서 눈과 손과 발이 각각 튀어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는데, 곁에 대나무 향이 풍기는 한 남자애가 다가와서는,
[도와줄까요?] 하고 영어로 물었다.
난 점원인 줄 알고 좀 부담스러워서 [아니오. 그냥 혼자 구경하려구요.]하고 대답했다.
[내가 사면 여기서 훨씬 더 싸게 물건을 살 수 있어요.]
혀 짧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그 애는,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얗고, 입술이 붉었다.
[이걸 봐요.]
그는 대나무 손톱 인형을 살짝 살짝 흔들어 마치 그 인형이 살아있는 것처럼 팔 다리가 동작하게 했다. 가끔, 놀랐다는 듯 튀어나오는 눈이 너무 우스워서, 나는 한참동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왔나요?]
[응.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
가게를 한참 구경하고, 대나무 손톱 인형과 몇 개의 기념품을 더 고른 다음, 그가 주인과 값을 흥정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싸게 물건을 사 주었다.
우리는 시끄러운 거리를 조용히 걸으면서 각자 무슨 생각인가에 잠겨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부두가 나타나고, 거대한 건물아래, 햇살이 사라진 곳까지 걸었을 때, 나는 내가 그에게 키스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멈추어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내 이마에 키스를 해 주었다.
그 것만으로는 참을 수 없어서, 내 입술이 그의 입술을 찾아 헤매는데, 그는 얼굴을 돌려 내 입술을 피했다.
[난 혀 끝이 잘려나가고 없어요.]
혀 끝이 잘려나간 그의 혀를 느끼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끝이 잘려나간 그 부분은 조금 매끄럽고, 편편했다. 눈을 감은 채로 그의 혀 구석구석을 느끼고 그의 입술을 잘근 잘근 빨아들였다.
눈을 떴을 때, 우리는 거대한 정원 안에 있었다. 중국식의 높은 돌담이 정원을 감싸고 있었고, 우리 뒤쪽으로는 커다란 기와집이 있었다. 돌담 아래에는, 마치 나무열매처럼, 잘려진 사람의 머리들이 즐비하게 떨어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풍경에 당황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툭'하는 소리가 나면서 잘린 머리가 또 하나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려는데, 그가 내 눈을 가리고 말했다.
[여기서는 하늘을 보면 안 돼요. 내 혀를 잘라서 먹어버린 마법사의 집이에요. 다행히 집에 그가 없는 것 같으니 빨리 빠져나가야겠어요.]
우리는 높은 담장을 기어올라, 돌담 위의 좁은 기와에 올라섰다.
기와 끝에는, 경직된 채로 기와를 꼭 붙잡고 죽어있는 머리가 잘려진 시체들이 매달려 있었다. 하도 많은 시체들이 있어서, 담을 타려고 해도 내려갈 틈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시체들 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내려갈 만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나도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발목에 부딪는 잘린 목과 가끔 실수로 밟게 되는 손 때문에 멈칫 멈칫 소름이 끼쳐왔다.
가까스로 시체들 틈에 한 사람이 내려갈 정도의 공간을 찾아, 우리는 담을 타고 내려왔다.

외진 곳이어서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많은 시체들이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에게 다시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몸이 떨려왔다.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의 팔이 무겁게 몸으로 파고 드는 것 같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흐릿한 땀냄새와 함께 그의 대나무 향이 머릿속으로 파고 들자, 나는 이오카난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살로메가 되었다.
*
그의 향기는 짙은 녹색 풀숲에 진주보다 영롱하고
수정보다 투명한 이슬을 묻힌 갈색 노루의 향처럼
신선하고 건강하고 따스하고 천진하오.
아니, 그의 냄새는 숨막히게 뜨거운 여름 막노동판에서
미적지근한 소주를 마시고 흘린 땀 냄새처럼,
힘든 육체노동 뒤에 찾아간 588 창녀촌의 늙은 사타구니에서
나는 저속하고 피로한 애액처럼 더럽고 세속적이오.
그의 젖빛 피부야말로 오래된 소나무 아래 모인
버섯처럼 풍성하고 폭신하고,
긴 겨울로부터 깨어난 흰토끼의 털처럼 부드럽고 포근하오.
아니, 그의 푸른 피부는 담배진으로 가득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데킬라의 뜨거운 공기처럼 음탕하고
흰 대리석 위로 소리 없이 기어가는 노란 뱀의 뱃가죽처럼
탐욕스럽고 의심스러울 따름이오.
그의 단단한 가슴에 비한다면!
가장 매끄럽게 세공한 보석보다도 매끄러우나,
여름의 거대한 바다보다도 따스하게 물결치는 그의 가슴에 비한다면!
아니, 그의 가슴 따위는 물컹거리는 썩은 사과에 불과하오.
갓 피어난 장미 꽃잎보다 더 붉은 그의 입술을 열면
신들의 질투와 시기에 희생당한 가엾은 그의 어린 혀가
어찌나 가볍게 떨리우는지,
아니, 그의 교활한 혀는 거짓이고 교만이고 믿을 수 없는 어떤 것.
깊은 우물처럼 끝을 알 수 없이 어두운 그의 눈동자를 본 적이 있다면,
그 심연에 담긴 푸른빛의 에메랄드를 향해 뛰어들 수만 있다면...
**
나는 담장 아래 눕혀지고 그의 몸을 받아들였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마법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순간, 그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는 인적이 없는 부둣가 건물의 그늘 속에 쓰러져 있었다. 파란 하늘이 있었다.

[*~**부분은 개토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증언'에서 부분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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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2 15:03 2001/08/12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