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성

from 우울 2002/06/10 14:22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이성의 힘을 빌어오는 것이
가끔은 오히려 더욱 비겁한 것처럼 느껴진다

집안에서는 온통 쓰레기 국물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쓰러져서
그 안에 들어있던 오래된 국물이 쏟아져나왔다
잘 때는 몰랐는데...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계속 냄새를 맡고 있다

어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지난주에 먹고 남은 맥주병들
입고 벗어놓은 옷가지들

이렇게 망가지면 안되는데

하루종일 월드컵을 피해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가
내키지 않는 자위를 하고
짧은 희열을 아쉬워 하고
또다시 리모컨을 들고

도망치고 싶어

EBS에서 [율리시즈의 시선]이라는 영화를 해주었는데
아무런 열정없이 보다가 잠이 들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자꾸 뜨는
동그라미 안의 15라는 숫자가 영화를 한없이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호흡이 길고 긴 영화인데
짜증이 났다
15살이 안된 사람들 중에서
저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주변에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15살 미만의 사람이 있다면 사랑스러울 것 같아

어떻게든 저 15라는 숫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잠이 들었다

참 웃기지도 않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2/06/10 14:22 2002/06/10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