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10살에 발견하게 되는 세상

10살 쯤 되면,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를 그대로 드러내면 타인에게 배척당하는 세계.
3일이면 인간의 냄새가 사라지고 괴물과 같이 살게될 그 세계.
숨을 죽이고 세상에 들어서면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또다른 '나', 일하지 않으면 않되는, 소외되고 작은,
남들과 똑같이 하나일 뿐인 '내'가 남게 된다.
믿음과 숭배의 대상이었던 엄마와 아빠가
단순히 욕망에 휘둘리는 돼지일 뿐이라는 것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가슴아프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만을 특별하게 느껴줄 누군가를 찾게 된다.

센의 목욕탕은
세상을 바라보는 치히로의 마음이다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시기,

치히로는
괴물들 사이에서 인간적인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되고
사랑해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던 세상에서
이제 스스로 지켜야만 하는 세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성에 눈뜨기도 한다.

치히로가 통과한 터널을, 우리는 여러번 다시 통과하고 통과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괴로운 일이다.

초등학교 3~4 학년 쯤이 아??었을까 싶은데,
신문보기에 맛이 들어서 엄마가 보던 조선일보를 옆에서 따라 읽곤 했었다.
어떤 기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갑자기 나는 너무 놀라서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며칠 전에 같은 주제의 기사에서 읽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가 너무나 뻔뻔스럽게 쓰여져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어른들과 신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문의 진실성을 너무나 아름답게 각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의 추악함을 견디기가 힘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느껴지곤 한다.

그 괴로운 경험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두려워 하지 말고 자신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겪어나가라고,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얼굴없는 괴물은 세상이 '나'에게 만들어주는 욕망이다.
이 괴물은 어떤 세상에 가느냐에 따라서
나만을 위해 사람들을 잡아먹을 만큼 무서워지고
계속 커지기만 하는 욕망이 되기도 하지만
세상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잘 대해주면
모두를 위해 작은 일을 하고 싶어지는 귀여운 욕망이 되기도 한다.

마녀의 커다란 아이는 아마도 아이들 모두를 대변할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준 방안에서 안전하게 지내기보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고 싶다고.

미야자키는 아이들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이렇게 풀어놓으면 도식적인 이야기가 - 영화를 도덕 교과서 같이 풀어놓았군...
그가 만들면 환상이 되고 숨 쉴 틈 없이 즐거워진다.

음악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나머지 부분은 지금까지의 미야자키 영화 가운데 최고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싶다.

아, 또 하나!
치히로가 어린 시절에 물속에서 하쿠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의 그 따듯하면서도 쿨한 성적인 느낌이,
내가 원하는 그런 성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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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9 23:13 2002/07/09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