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가 읽은 소설'에 해당되는 글 43건

  1. 기억해두자. 2001/08/14
  2. 아아~ 일하기 싫어 2001/07/18
  3. 빵굽는 컴퓨터 2001/07/11

기억해두자.

from 책에 대해 2001/08/14 14:46
나는 고등학교 때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그 책들 가운데, 몇 권은 내가 갖고 있지만, 대부분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
대학을 들어간 뒤로는, 일정한 거처 없이 지내는 일이 많아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보면,
아끼는 책이었는데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때때로 그 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에 너무 괴로울 때도 있다.
책이 절판되어서, 더 이상 출판되고 있지 않은 경우라던가,
출판이 되고 있어도, 왠지 미심쩍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을 경우에는
다시 사서 볼 수도 없으니, 더더욱 괴롭다.

어쨌든, 그런 와중에, 늘 생각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무언가 잊을 수 없는 것을 가진 책들.
고등학교 이후에, 다시 보지 못했지만, 꼭 다시 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책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글 쓰기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들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 진정한 유미주의란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준 놀라운 작품이었다. 살로메가 이오카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부분에서, 나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짧은 희곡이어서, 수 백 번도 더 반복해서 읽었고, 문장으로는 기억할 수 없지만, 완성된 연극처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거대한 흑진주나, 다이아몬드처럼, 그 자체로 완결된, 나무나 꽃과 같은 자연물들처럼, 다른 그 무엇을 상상해 볼 수 없는, 그런 작품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가운데, [살로메]와 [장미와 나이팅게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소설, [질투] - 이 책은 어린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새로운 글 쓰기 방식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밀한 묘사를 통해 화자의 심리가 나에게 전이되는 것을 느끼면서, '질투'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보기도 했다. 두 손가락 사이의 10cm 거리에 대해서, 혹은, 내 삶의 어떤 상황에 대해서 로브그리예 식으로 바라보는 버릇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 상황을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머리 속에서 멈추어 둔 채로 관찰하여 그 안에 든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단편들 - 사실, 내가 무엇을 읽었었는지, 제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이것이야말로 교과서이다...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아~ 갑자기,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너무나 다시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세로쓰기 방식의 누런 책이 아닌, 깨끗하게 제본되어 큰 글씨로 쓰여진 사강의 책이란, 매력이 반감, 반감 되어버리는 것이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 성장 소설은, 성장기에 읽어야 가장 맛이 난다.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책은, 그래서, 요새 다시 읽어보면 예전 같은 저릿함을 느낄 수가 없다. 나만 그런가? 어쨌든, [자기 앞의 생]은 성장 소설이 아니다. [살로메]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 주제라는 것이, 흔하디 흔한 사랑과 죽음인데, 아름답게 사랑하고 아름답게 죽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써나간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예 출판사에서 다시 장정하여 출판하고 있던데, 나는 내가 가진 2500원짜리 책이 더 맘에 들어.

비평을 하려고 했던 것은 절대 아니고, 나는 소설의 비평을 절대로 읽지 않는 만큼, 쓰는 것도 정말 싫어한다. 그저, 기억해두고 싶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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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4 14:46 2001/08/14 14:46

아아~ 일하기 싫어

from 책에 대해 2001/07/18 14:27
"무슨 무슨 주의로 자신이 하는 모든 일들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요. 이 일만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시대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어린 시절부터 길러주어 좀 더 자본주의적인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인데, 이 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일말의 죄악감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거리낌 없이 주잖아요? 이런 일을 하면서, 보다 아티스틱한 분위기를 찾는다는 것이, 제게는 속물적으로 느껴져요."

전화기를 꺼버렸다.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행하는 많은 일들은, 왜이리, 치사하고 구차하고 더럽단 말인가?
라고 과장되게 괴로워 하면서, 사실은 그냥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고 싶은 것이다.
습관적으로 나의 괴로움에 적당하게 합리적으로 보일만한 핑계거리를 찾아서는 잘 쓰여지지 않아 반짝반짝한 말들로 포장하여 상대에게 던져주고는 또다른 괴로움을 찾아 헤매이는 것이다.
이렇게 꿈틀꿈틀해봤자, 나는 15분 후 일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새,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라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혹시,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좋아하더라도, 그녀의 소설은 읽지 말라고 아는 사람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녀가 훌륭한 이론가라고 해서, 이런 허접 쓰레기를 소설이라고 쓸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다면, 정말 그녀에게 실망, 또 실망이다.
그 명성에 힘입어 그녀의 이 재활용쓰레기가 한국에서 까지 출판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부연설명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바빠서 이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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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8 14:27 2001/07/18 14:27

빵굽는 컴퓨터

from 책에 대해 2001/07/11 17:31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보통 4시간에 한갑정도의 담배를 피우게 된다.

어제는,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읽으면서
낮동안은 일을 위한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에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빵굽는 타자기]를 계속 읽었다.
보통은 멀미때문에 버스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어제는, 책을 읽지 않으면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책에서 눈을 떼면 어지럽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빵굽는 타자기]를 마저 읽고 잠이 들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책도 다 읽지 못한 채였다.
머리안에 메스를 든 난장이가 있어서 내키는 대로 쿡쿡 찌르고 다니는 것만 같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담배를 많이 피운 날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카페인의 각성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 괴롭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기가 있었다.
가끔씩 엄청나게 큰 소리로 빗방울이 지붕을 때렸고 공기는 습하고 뜨듯했다.

불을 끄고 누워 해가 뜰 무렵까지, 모기와 메스를 든 난장이와 공기, 빗방울 그리고 폴 오스터의 인생이 내 몸을 온통 헤집고 다니면서 잠을 괴롭혀댔던 것 같다.
그들은 충분히 즐긴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나는 잠을 끌어안고 쓰러졌다가 방금 일어났다.
지금은 오후 3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역시 나의 인생에 대해 커다란 불만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내가 원하고 내가 선택한 삶인 것이다.
주어진 세상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원하는 것들을 선택해 왔다고 생각한다.
최선의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선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째서 예술이 정치적인가 하면 그들이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야.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이미 자유인 것 같아.]

화두는 돈이다.
그것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싸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죽거나 혹은 싸우거나.
물론 그렇게 싸운다고 해서 내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덜 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아, 시간이 너무 없다.
나는 오늘도 일하러 가야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을 때 글을 쓰는 것은 그만 두어야 겠다.

아, 중요한 것을 빼먹을 뻔 했다.
폴 오스터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면,
[스퀴즈 플레이]를 읽은 뒤 [빵굽는 타자기]를 읽어야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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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1 17:31 2001/07/11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