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쳐짐

잡기장

난 학교를 마치지 않았다.

어릴때 몸이 약해서 재밌는 경험을 별로 못해봤다. 이를테면 여행.

건강해지고서는 알바와 학습이 내 시간표의 전부였다.

남들 다하는 연애도 안했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아직 20대후반으로서, 60~70정도 되는 삶의 절반도 살지 않은 내가

뒤쳐짐을 얘기할 단계는 아니고,

낙천적으로 상황에 맞게 살면서 의외로 주워가진게 많아

사는데 필요한 것들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삶에서 중요한 것.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즐겁게, 재밌게 사는 법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갑갑하다.

 

아직 뒤쳐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작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그냥 흐름을 따라가면

그 안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에는 "뒤쳐짐"의 길을 밟아갈 것 같다는 것이다.

 

1년동안 열심히 발버둥쳤다. 피곤하다.

한가지 알고 있는 것은

남들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순간, 나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껏 본능적으로 중요한 갈림길에서

소수의 길을 택하면서 그런 평가들을 피해왔다.

 

성적이 안나오고, 격차가 벌어짐을 느낄때

나는 자유인을 행세하며 더욱 더 노닥거림을 즐기고,

운동권의 언어를 습득하여 "대중"학생들과의 차별성을 추구했다.

 

내가 대기업에 취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때와

리눅스를 접하고 집착하기 시작한 시점이 비슷하다.

해커의 기술은 갖지 못했지만 해커의 마인드와 자세만은 가지려고 했다.

 

지금 나는 기업같은 사회단체와, 거대 조직을 가진 사회단체 두 군데에서 일한다.

리눅스를 만지는 일로.

나보다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많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곳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나라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 속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탈때

흐뭇해 하는 내 모습은 술이 깬뒤 스스로를 혐오하게 한다.

 

소수를 지향하는 듯하면서 사실은 세간의 평가를 벗어나려고 하고

많은 일을 하는 듯하면서 내 "정체"상태를 변명하려 하는 나.

 

"...하지 않는" 삶을 어떻게 "...하는" 삶으로 바꿀 수 있을까.

뒤쳐지지 않는 삶이 아닌 함께 나가는 삶을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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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6 11:39 2005/10/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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