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조직이 IT를 잘 쓰려면

비영리단체 IT지원

  "비영리조직이 IT를 잘 못쓴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현실을 아실 듯합니다. 현실이 어떻다는 증언은 많지만 한국의 시민사회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연과학적으로 잘 분석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 현실이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처방은 늘 부족하지요. 저도 깊이 있게 연구하는 타입은 아닙니다만, 자연과학에 대한 책을 읽는 일이 가끔 생기면 그것을 한국의 시민사회에 적용해보려는 무리한 시도를 늘 합니다. 물론 제가 시민사회단체를 다니며 보고 느낀 점을 바탕으로요.

  시민사회단체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넓은 의미의 '비영리조직'들에서 참 좋은 사람들이 좋은 뜻을 갖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열정에 비해 성과를 잘 못 얻고, 좋은 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같은 느낌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비영리조직의 IT활용에 주목하여 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애써오고 있습니다만, 많은 시도들이 무위로 돌아가거나 반짝 성과로 그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이 더 깊어지곤 하죠. 한국에서는 힘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개인이나 조직이 있으면 그들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혼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여러 맥락이 있기에, 단순히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를 정말 해결하려는 자세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많은 비영리조직들이 부족한 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IT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종종 합니다. 계기는 대체로 새로운 자원활동가 중에 IT기술인이 있거나, 젊은 활동가가 상근활동을 시작해서 상대적으로 IT를 잘 쓰는 것처럼 보일 때, 그리고 대표가 어디 가서 좋은 얘길 들어서 '우리도 IT를 잘 써야해'라고 한 마디를 던졌거나 할때 등이죠. 이 글에서는 모든 비영리조직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IT를 좀 잘 써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잘 안됐던 곳에 대해 한 가지 제안을 풀어 봅니다.

 

 비영리조직에게 IT란

 IT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만 구성된 단체라 할지라도, 활동가에겐 멈추지 않는 컴퓨터가 필요하며, 단체를 소개하는 홈페이지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모두 갖고 있습니다. 다만 거기까지일뿐, IT로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무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힘들어 합니다. 제가 본 바로는 일반적인 비영리조직들이 IT에 대해 갖는 생각들은 이런 것 같습니다.

  • IT를 안쓰면 시대에 뒤쳐지니 쓰긴 써야 한다.
  • IT는 전문가나 하는 것이다. 비전문가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 IT는 돈 많고 규모가 큰 곳이 됐을때야 제대로 활용해 볼만한 것이다.
  • IT기술인은 뭔가 기괴하고 소통하기 어려워 오래 같이 할 수 없다.
  • IT는 위험한 것이다. 너무 깊이 활용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각각에 대해 따져보는 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며, 이런 생각들을 한 마디로 표현해보면 결국 "IT는 필요악이다"로 되는 것 같습니다. 모금과 기부 문화 등 사회적 지지 기반이 약해 늘 재정이 충분하지 않고, 그래서 IT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조직들은 "꼭 써야 하는 최소한의 수준"만 어떻게든 갖춰 놓고, 그것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아 몇년간 신경을 안 쓰게 되길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그만큼도 쓰지 않으면 안되기에 IT를 쓰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보편적인 상황에서 비영리조직이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과 자원을 쪼개 지속적으로 IT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조직에서 IT가 이슈가 될때는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입니다. IT가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때가 아니라 컴퓨터가 뻗고, 프린터가 고장나고, 웹사이트에 스팸이 범람하더니 안 열리는 등 "차라리 없을 때가 좋았다" 싶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서야 IT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실 비영리조직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영리조직도 마찬가지이긴 하죠. 그러나 영리조직은 IT가 싫어도 매년 혹은 중장기 예산에 IT 관련 비용을 책정하는 반면, 비영리조직은 연말에 IT 시스템들이 멀쩡하면 내년 예산에 IT관련 비용을 먼저 책정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돈은 없고, IT보다 중요한 것이 많은데 마침 문제가 안 터지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홈페이지는 적어도 4~5년 정도에는 한번 개편해야 하니 그때야 약간의 예산이 배정됩니다. 시가 기준으로 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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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가 필요악일 뿐 조직의 안팎으로 긍정적인 (질적)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기에, 대부분의 비영리조직은 IT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맞추게 됩니다. 양적인 지원 축소보다 중요한 이슈는, IT 역량을 "조직"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본다는 점입니다. IT를 잘 다루는 사람이 다행히 비영리조직에 있으면 "IT를 잘 쓰는 조직"이 되고, 그 사람이 활동을 그만 두면 한동안 겨우 유지하다 옛날의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즉 사람이 없어지면 조직에 남는게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열정적인 자원활동가가 나타나 초기에 어떤 제안들을 하거나(아무래도 초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 상근 활동가가 조직 내부에 어떤 제안을 강하게 할 때, '체인지온' 컨퍼런스 등에 대표나 이사급이 참가한 직후에는 이런 저런 시도들이 일어납니다. 학습을 하거나, 소문난 이런 저런 도구들을 시연해보거나, 지금 사용중인 시스템에 대해 리뷰를 해보기도 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언젠가 보면 그런 시도들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역시 다뤄야할 절박한 사안이 많아 모두 바빠서이겠지만, 그 IT가 예쁜 콘텐츠를 만드는 등 개인적인 능력에 관한 것이라고여기거나, 이리 저리 떠들어도 결국엔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혼자 붙잡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화가 그것을 주창하는 사람의 존재로 시작되긴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조직"이라는 심지로 이어 붙여 지속되게 할 수 있을까요?

 

비영리조직이 노력을 계속하려면

IT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시작한 비영리조직이 그 노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1. IT를 '안 쓰면 안되기에 쓰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혁신하는 긍정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인식한다.
  2. 혁신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적절한 권한 체계를 설정한다.

 1번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얘기해왔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새로운 IT 환경이 조직에 정착되는 과정은 일직선으로, 한번에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내부의 누가 제안했던, 외부의 유행이 불어 따라 했던 간에, 새로운 기술 환경을 접하는 활동가들은 이런 심정일지 모릅니다.

  • 초기 : 새로운 방식이 신비롭게 느껴지고 그 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줄 것 같은 높은 기대감을 갖는다
  • 중기 : 써보니 신비감은 사라지고 이전 것과 크게 다른 점을 못 느끼거나 한계가 드러난다.
  • 후기 : 기대를 접고 쓰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있고 그래도 전보다는 이게 좀 괜찮은 것 같다.

  조직이 IT 활용을 늘린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그 시스템이 정착하기 위해서 내부의 여러 방식과 문화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극단적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기대와 달리 새로운 환경이 바로 효과를 내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새 시스템에 익숙해지며 그에 걸맞는 내적 변화가 충분히 일어났을 때 처음 기대했던 효과를 체감할 수 있게 되고, 그 때부터는 가속이 붙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안정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위의 그림은 생태계에서 특정한 안정 상태가 파국을 맞아 새로운 안정 상태로 이르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한 상태(실선)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것은 임계점(F1, F2)에 이를때까지는 느리게 이뤄지다가, 임계점을 넘은 순간 급격히 변화하게 되며,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또 다시 '길고 느린 변화'의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여기서 관건은, 눈에 안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그 시기 동안 새로운 IT 환경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조직적인 의지입니다. 저는 많은 비영리조직들이 IT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을 해왔지만 결국 성공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 정책 연구나 콘텐츠 생산에 비해 미디어, IT는 조직 내 우선순위가 밀리는 경향이 있다.
  • 대표/임원급의 활동가가 대체로 IT에 관해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 IT 혁신을 제기하고, 그것을 수행하게 되는 사람은 대체로 '젊은 활동가' 혹은 '평간사'이다.
    • 수직적 의사결정 조직에서 이들은 보통 충분한 권한이 없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변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환기하며 추진력을 만들 수 있어야 하며, 조직의 여건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수행할 수 있는 통찰력과 권한이 필요합니다. 또한 성과에 대한 보상은 없더라도 실패했을 때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부담을 나눠갖는 구조는 적어도 있어야 합니다. 대체로 "IT는 젊은 사람이 잘하니까" 젊은 활동가에게 위임하고, "이건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평간사 (영리 기업으로 하면 말단 사원이겠죠)에게 일임하고 관심을 끊는 수직적 구조의 조직에서는 그런 것이 어렵습니다. "말 꺼낸 사람이 책임지는" 풍토에서, 제안해 봤자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어디 한번 해서 보여줘바라" 정도의 반응만 보이며, 마지막에는 제안자가 뒷감당하느라 쩔쩔매야 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IT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기엔 어렵지요.

 H 단체의 사례

 H 단체는 역사가 오래 됐고 규모도 큰 단체입니다. 그 단체에는 2~5명의 IT전담 인력이 있었는데 원래 맡은 일에 비해 훨씬 다양한 온갖 일을 다 수행해야 했습니다. 웹개발자는 "IT전문가"라서 많은 활동가들이 컴퓨터가 망가지면 당연히 정비를 요청하고 있었고, 그것을 거부하지 못해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습니다. 웹디자이너는 거의 모든 부서의 모든 활동가가 콘텐츠를 작성할때 시각화가 필요했으므로 거의 끊임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요청을 받아 이미지 작업을 해줘야 했습니다.

 이 활동가들은 엄밀히 말하면 그 단체와 분리된 법인에 속해 있었고, 그 법인은 고유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그 활동분야의 정보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 등이 그것이었으나 현실적인 이유로 언제나 모단체의 여러 사안에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그 법인의 대표와 임원급 등은 실질적인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수년간 이리 저리 휩쓸리며 끝없이 모단체의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던 활동가들은 조직을 떠나거나,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법인의 실질적인 독립을 추진하며 본래의 사명인 활동정보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조직적 지원이 부족한 상태로 진행했으나 결국엔 그마저 무산되면서 모두 활동을 정리하고 말았습니다.

 

  높은 수준의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 조직에서는 대체로 모든 사람이 권한과 책임을 함께 나눠 갖게 되므로 이런 어려움이 적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전문가에게 몰리는 경향이 없지는 않지요. 어느 정도의 규모와 역사를 가진 대부분의 비영리조직은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수직적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단체 운영에 관해 통찰할 수 있고,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으며, 스스로 책임 범위를 설정하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은 임원급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IT역량 강화를 위한 과정을 이상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임원급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IT를 주로 다루는 실무자에게 임원급 권한을 부여하거나, 임원들 중 적어도 한 사람이 IT기술을 익혀 실무를 맡아야 하는 걸까요?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며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구도는 "IT 실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담 활동가"와 "조직 운영에 대한 충분한 권한이 있는 임원"이 함께 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IT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비영리조직의 임원이 꼭 IT에 대한 지식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많으면 당연히 좋구요) IT 전담활동가나 자원활동가가 있을때, 그들의 아이디어를 조직의 여건에 맞는 기획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도와주면서, 실제 수행과정을 뒷받침하고 사후 처리를 해줄 수 있으면 됩니다. IT실무자를 구하긴 어려워도 임원 중 한명이 IT거버넌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많은 조직에서 가능하며, 그런 사람이 존재할때 비영리조직에서 IT는 필요악이 아닌 조직혁신의 수단으로 인정받으며 지속적으로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IT실무자가 부재중이거나 IT자원활동가들이 불규칙적으로 참여하더라도 조직의 IT역량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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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3 06:48 2014/02/03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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