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IT의 3원칙

사회운동

이 주제의 글을 쓰다가 새벽 4시에 날린게 어느새 2주가 지났다. 그때 그걸 쓰려 했던 이유는 지금 만들고 있는 비영리IT 단체 준비 논의에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실제로 준비 논의하면서 이런 질문이 나왔고, 나는 글을 날려서 논의의 밑밥을 충분히 깔 기회를 날린 것에 더 아쉬움을 느꼈다. "비영리IT란게 대체 뭐냐". 저장만 했어도.. 이 얘기를 더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하는가를 따지는 건 대체로 재미 없는 일이겠지만, "앞으로 뭔가 좀 해보자"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이런 저런 것이 비영리IT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들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중시하는 것만 세가지를 꼽아보면 이렇다. 

 

 

1. "좋은 IT"를 활용한다. 

 여기서 좋은 IT란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파괴하는 용도의 IT, 침입하고 왜곡/변조하는 IT, 감시하고 검열하는 수단으로서의 IT 같은 "부정적으로 활용되는 IT"가 아닌, 창조적이고 건설적으로 활용되는 IT를 말한다. 

비영리조직들이 다양한 차이는 있어도 거의 모든 활동에 있어 "극복할 대상"은 있다. 그것이 정부일 수도 있고, 특정 정치 세력일 수도 있고, 우리 모두의 마음의 벽일 수도 있다. 그런 대상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각자 쓸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그것이 위에 언급한 "부정적 IT"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는 식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장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예를 들어 횡포를 부리는 기득권층의 홈페이지를 변조하고, 통신 내용을 염탐하거나, 거짓을 조장해서 그들을 곤란에 빠뜨리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대개 부작용이 꼭 있고 소수의 뛰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으며, 그 활동의 과정과 결과가 비영리조직의 역량을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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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기프트"의 한장면. 감시 시스템 에셜론

 

 좋은 IT의 예는 "자유소프트웨어 혹은 오픈소스SW"이다. 독점 소프트웨어의 제약과 비용때문에 사회가 평균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의 IT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단체들이 많다. 이런 곳들이 자유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그 피드백을 자유소프트웨어 커뮤니티에 줘서 더 유용하고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모두가 발전하는 형태가 가장 좋다. 

 

 좋은 IT는 위에서 말한 "부정적 IT 활용"의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원칙을 꼽은 이유는, 비영리IT활동을 통해 비영리조직들이 IT를 일시적으로 사용한 후 멀리하게 되서(해롭고 위험하다, 믿을 수 없다는 느낌) 장기적으로 IT역량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비영리IT"라면, 그 활동을 통해 IT의 사회적, 긍정적 가치들을 드러내고 키우면서, 지원을 받은 이들이 IT가 재밌고, 생각만큼 어렵지 않고, 무서운 것만은 아니며, 긍정적 가능성이 아주 아주 많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면 좋겠다. 비영리조직에게 IT가 당장의 수단으로만 그치지 않고 계속 심정적으로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 제안하는 원칙이다. 

 

(이런 목적이라면, 지나친 하이테크보다는 쉽고 친근한, 보편화된 기술 위주로 IT지원활동을 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2. 공동체가 함께 보상을 주고 받는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이다. 

* 보상의 주체 : IT 기여 행위를 받은 당사자와, 영향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함께 보상을 할 수 있다. 

* 보상의 대상 : IT 기여 행위의 보상을 그 행위자가 속한 공동체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할 수 있다. 

 

시장의 방식으로 서비스를 직접 1:1로 구매/판매하는 관계만 있으면 구매력이 없는 주체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어느 가난한 단체가 작은 IT지원만으로도 크게 역량을 늘이고 그로 인한 좋은 영향이 많은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상황이라 가정하자. 그 단체가 IT 서비스 구매력이 없고, 모든 IT지원이 "판매"만 되는 상황에서는 그 단체가 필요한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 경우에는 두가지 "우연"을 바랄 수 밖에 없는데, 단체에 갑자기 어떻게든 돈이 생기는것과 아주 선량한 사람이 IT자원활동을 헌신적으로 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 지금 한국의 비영리조직들이 IT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아름다운 우연도 좋지만 그것만 기다릴 수는 없으므로, 지속적인 IT지원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보상 체계가 보완되면 좋겠다. 주체 측면에서는, IT를 필요로 하는 가난한 주체들이 공동으로 보상 수단을 마련하거나 서로 조금 더 어려운 작은 단체들을 돕는다. 보상의 대상 측면에서는 IT를 지원/판매하는 주체들도 공동체(생태계)를 만들어 간접적인 보상을 공동체 전부가 받아 나눈다. 즉 제공한 IT기술에 가격을 매겨 그것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즉각적으로, 직접적으로, 돈으로서 받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간접적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유소프트웨어를 지원 받은 비영리조직은 그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경험과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에 제출하기로 하고,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도 좀 더 깊이 있고 체계적인 지원을 오래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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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판매 관계를 아예 없애자, 보상을 받지 말자가 아니라 받는 측, 주는 측 모두 어떤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 함께 이로워지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IT기여활동을 하자는 주장이다. 활동의 지속성을 위해 보상을 받되, IT지원 대상에게 돈을 직접적으로 모두 받아내는 방식만이 아닌 다양한 보상 방식을 만들어낸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비영리IT활동이 지속될수록 공동체가 확장된다. 

 

* IT인의 헌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 보상을 꼭 받는다.

 

* 보상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 대상 비영리조직만이 아니라, 여럿이 협력해서 할 수 있는 보상 방식도 강구한다. 

  - 돈 말고도 유형,무형의 다양한 보상의 방식을 찾는다. 비영리조직이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가 있다면 그것을 받을 수 있다. (이게 서로에게 더 좋을 수 있다) 

 

* 보상을 "함께" 받을 수도 있다. 당사자가 직접적 보상을 전부 받는게 아니라 예를 들면 기술 커뮤니티가 받아 모두에게 이로운 사업을 한다. 

 

이 원칙의 요점은, 주는 이, 받는 이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나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3. 자발적 2차 확산을 유도한다.

내가 가장 중시하는 최고의 원칙이다. 1명의 뛰어난 사람이 1000명을 다 직접 만나서 돕는 것이 아니라, 1명이 10명에게, 그 10명이 100명에게, 100명이 1000명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모두가 그 과정에 참여한다. 그 과정은 단순히 내가 잘 쓰고 필요 없게 된것을 남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소화해서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해진 상태로 또 다른 이에게 전달함으로써 최초 1명의 그 수준보다 향상된 상태로 1000명이 모두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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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바이러스 감염 경로등을 표시하는 생체 네트워크 모델

(http://www.stanford.edu/~thkim7/research.html)

 

(http://www.stanford.edu/~thkim7/research.html)

 

사실 쉬운 얘기는 아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려면 많은 것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 "2차적으로 전달하기 좋은 형태"를 고안해서 제공한다. 

  - 가볍고 쉽게 만든다. 어렵고 난해하고 거대한 지원은 다시 퍼져 나가기 쉽지 않다. 

  - "세트"를 잘 만든다. 제공하는 알맹이 뿐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것들도 잘 챙겨준다. 참고할 문서, 패키지 등

   

* 받은 이가 실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받은 이가 일시적, 소모적으로 IT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도록 충분히 오랫동안 도와준다. 

 

* 부작용들을 사전에 예측하고, 조절해 간다. 

  좋은 것을 주려다가 나쁜 것까지 주면, 자발적 2차 확산을 나중에 막아서야 할지도 모른다. 

 

* 과정을 투명하게 한다 - 오픈 소스 (Open Source) 

  처음엔 받는 이가 여러 과정들을 모르는게 나을 수도 있지만, "오랫 동안 실제 성장을 돕는" 과정을 통해 그 "주는 행위의 과정과 원천"을 공개하는 것이 좋다. 받은 이가 또 다른 이에게 나눠주고 싶을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모르면, 주고 싶은 마음까지 멈칫하다 없어질 수 있다. 

 

뻔한 얘기 같아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1. 현실적으로 이렇게 (자발적 2차 확산 유도) 하는 것이 실제로 더 많은 이에게 혜택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2차 확산을 염두에 두고 "주는 행위"를 할때 정말 받는 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방식들을 채택할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3.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때 "일방적 시혜", "진정성 없는 과시", "자기만족에 그친 행위"로 그칠 수 있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3원칙을 통한 "비영리IT"

 

이 밖에도 사람마다 다른 원칙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우선 이 세가지만 꼽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 "비영리IT"들을 접할때 그것이 이 세가지 원칙/기준에 충분히 부합하면 "바람직한 비영리IT"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3원칙을 한 문장으로 묶어보면,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비영리IT"란:

 

"좋은 IT를 공동체가 함께 나눠 모두가 원하는대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 원칙에 충분히 부합한다면, 그 행위의 주체가 정부/공공기관이나, 영리 기업이라 하더라도 비영리IT를 할 수 있으며

그 직접적 대상이 꼭 비영리조직이 아니어도 비영리IT일 수 있다. IT인들은 이미 많은 비영리IT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러 IT기술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던지, 자유소프트웨어/오픈소스SW에 기여한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이런 활동은 언뜻 보면 보편적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닌 "IT인들의 세계"에 제한된 공익(혹은 사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지속되고 잘 연결된다면 그런 활동의 성과는 충분히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룬다. 다른 예로, 정부가 국민들을 감시, 통제하는데에만 IT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만한 건설적인 프로젝트를 한다면 거기에 기여하는 것도 넓게 보면 비영리IT이다. 

 

물론 비영리IT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 주체가 자발적 개인/민간조직이고 대상이 비영리조직인 IT기술지원활동을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한정지으면 거기에 포함되기 어려운 "의미 있는 주변활동"이 또 너무 많다. 그렇다고 아주 범위를 넓게 잡으면, 절박한 필요를 오랫 동안 느끼지만 개선이 안되는 곳들에게 "초점을 맞춘 직접 기여 활동"을 강조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원칙과 현실..

 

최근에 비영리IT에 대한 글을 많이 쓴 것은 비영리IT단체를 몇 년간 여러개 만들 생각으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칙을 세워도 구체적 현실에서 해석을 달리할 수 있고, 애초에 철학적 바탕들이 다른데 원칙을 완벽히 동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지금 단체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런 저런 걱정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조금 쓸쓸해지기도 한다(요즘 몸이 다시 약해지는지 감정 조절이 때때로 안된다 ^^;) 

 

어찌 됐던, 앞으로 한국에서 비영리IT가 더 활발해져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좋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IT의 덕(?)을 많이 보게 되길 바란다. 졸려서 마무리를 잘 못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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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5 02:14 2012/09/15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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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hin 2012/09/15 15:35 URL EDIT REPLY
비영리 IT에 대한 고견,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대학생들을 상대로 비영리IT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대학에서 IT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조차도 스스로가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데에는 상당한 자신감과 노력, 이타적인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행정구역 내의 문화센터에서 컴퓨터 강좌를 하는 것도 거의 '봉사'에 가까운 개념으로 많은 사람들이 했었지만, 요즘엔 전문강사들도 늘어나고, 서로 견제하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아주 기초적인 학습 내용에 대해서는 꽤 경쟁율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적절한 IT 기술 전달이 안되는 이유는 각자의 사정에 맞춘 맞춤 교육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지식과 자신감을 갖춘 사람들도 조건이 되는한 한 사람이라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효율을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전달하려고 하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실천을 강조하며 시작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각생 | 2012/09/17 17:43 URL EDIT
대학생에게 리눅스를 가르치는거 계속하시는거죠? 요즘은 어때요 좀 여유가 되면 함 봅시다

혹시 너무 느린 것을 못 견디는게 아닐까 싶어요. 한번에 한 명씩 돕는 것이 길게 봐서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퍼져 나갈 거라는 믿음 없이는 그 느림과 비효율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결국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관건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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