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야해

잡기장
회의가 끝나니 어느새 12시가 다가오고, 하루를 늦게 시작한 탓에, 그리고 열흘간 외유(?) 탓에 생긴 업무 공백을 메꾸느라 아직 집에 갈 수가 없다. 출출하다.. 사 놓은 땅콩도 다 먹었고, 생각해 보니 저녁도 안먹었다. 이 시간에 밥을 하는 곳은 뻔하다. 그리고 뻔한 것을 먹을 밖에. 비빔밥을 먹고 왔다.

시차 적응이 덜된 탓일까? 주말과 월요일에는 일찍 일어난 편인데 오늘은 정오가 넘어 잠을 깼다. 원체 자율적인 출근인데다, 밤샘이 잦고 늦게 출근해 버릇해서 이때 일어나도 큰일이 났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혹 부러운 사람 있나요? 새벽 4시에 서버 죽었다고 전화 받고 일어나 작업하고 다시 자야 한답니다 -_-) 그 전 같으면 깜짝 놀라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나왔겠지만, 오늘은 그러려다 문득 그럴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만히 엎드린 채로 있다가 천천히 씻고 밥을 차려 먹고 나왔다.

아들이 채식한다고 안 먹는 반찬이 많으니까 요즘 부쩍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채식반찬을 많이 해 주신다. 감사히 먹으며 생각하길.. 보관이 어렵고 손이 더 가는 채소로 반찬을 하려면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건데.. 내 개인적 실천이랍시고 다른 사람에게 실제적인 부담을 안기는게 아닌가.. 역시 밥을 직접 해먹을 각오 없으면, 다르게라도 어떻게든 가사노동 참여 비중을 높이지 않으면 그것도 껍데기일 뿐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치만 여전히 일에 치여 사는 내가 요리를 많이 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귀찮다. -_-

비빔밥을 먹고 걸어 오며 생각한다. 즐겨 먹던 우유를 두유로 대체했다. 난 원래 두유를 싫어했다. 값도 더 비싸다. 이제 어느정도 맛들이긴 했지만 역시 두유를 마실때 우유 생각이 난다. 이래저래 개인이 감내할 고통이 지금 당장은 분명 커졌다. 당장 실제로 다가 오는 여러 어려움. 그러나 이게 얼마나 내가 원하는 것에 기여를 하는지. 이게 혼자만의 자기만족 혹은 자학으로 끝나지 않고, 뭔가 흐름이 만들어져야, 가시적인 움직임으로 번져 나가야 할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더 익숙해지고, 직접 해 먹게 되고 해야 할텐데. 채식 공동체나 세미나가 있으면 참여해 볼까.. 지금의 작업, 생활 패턴을 바꾸기 전엔 다 어렵지 않을까..

개인적인 실천, 조용한 목소리, 꾸준히 번져나감, 스며듬.. 이런 방식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효소"를 작용시킬 필요는 있을 것이다. 아직 공부도 부족하고, 먼저 채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뭔가 그들이 공동으로 목소리를 모아 낼 수 있는게 있으면 좋겠다. 다양한 "채식주의"들.. 그 중에 분명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함께 밖으로 표출해 내면 어떨까. 혹 지금은 흩어진 개인이, 저마다의 특수한 상황에서, 계속 스스로를 방어하며 (물론 지금 내 모습을 가지고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유추하는거임) 힘을 소진하고 있지는 않을까? 개인적으로 하면 공격이고,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공적 영역에 함께 말하는건 그런 부담이 적지 않을까?

예를 들면, 생명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아예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생태적인 이유로 남기게 됐을때만 고기를 먹는 사람, 직접 키우고, 죽일 수 있는 것만 먹겠다는 사람, 계란, 유제품, 생선 등 특정한 선을 그어 먹는 사람, 채소도 생명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아예 과일만 먹는다는 사람, 남성지배문화의 상징, 강화라고 거부하는 사람, 사막화등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 다양한 주장과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리고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도, "육류의 (잔혹한) 대량 생산"이 문제가 있다는 건 폭넓게 동의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곡물로 대량 생산하는 육류..

그래서 이런 식으로 슬로건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대량 생산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맙시다)". 특히 잔혹한 수난을 겪는 3대 동물 - 소, 닭, 돼지. 그냥 "난 채식을 합니다" 보다는 이런 구체적인 이유를 적시한 문장이라면,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가 아니라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내걸고, 평소에도 사람들에게 권하기에 적당할거라고 생각된다. "소보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곡물을"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건 다양한 채식의 이유중 한 가지에 집중한게 되서 앞의 것보다 조금 그렇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고 어떻게 함께 밥을 먹으러 가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데(심지어는 술 안주 먹을 게 없지 않냐며, 그렇다고 나만 빼놓고 갈 수 없으니 술자리를 아예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_-) 먼저 저런 주장을 한다면, "소, 돼지, 닭 등 말고는 먹어도 쟤가 나를 이상하게 볼 일은 없으려나?" 정도로 "한숨 돌리"진 않을까? 그리고 먼저 얘기하기도 쉬울 것 같다. (지금 생각난거라 아직 안해봤음)

하여간, 내가 아직 모르는 그런 움직임이 "이미" 있었다면 누가 알려주면 고맙겠다. 어려운 실천을 함께 하자는 게 아니라, 작은 실천을 제안하는, 그리고 많은 채식주의인들과 채식선호?인들이 함께 외칠 수 있는 그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면, 거기에 함께 하련다. 그리고 없거나 지금 주춤하다면, 내가 그런 제안을 하고 싶다. "당장 모든 고기를 먹지 말라는건 아니고, 소, 닭, 돼지 등 심하게 수난당하는 대량 생산 고기는 조금이라도 덜 먹자" 다음에 언제 불로거들이 모여 집회에 나가거나 하면 이런 슬로건을 함께 걸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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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5 01:36 2006/10/25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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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rady 2006/10/25 10:38 URL EDIT REPLY
즐겨 먹는 우유-> 역시 우유를 많이 먹어서 키가 크셨던 건가요
OTL 한 20살 될때까지 우유를 잘 못 먹었던 라디 ㅠㅠ
그 결과.........
지각생 2006/10/25 11:37 URL EDIT REPLY
제 키를 키운건 팔할이 우유와 콩나물 :)
아마 그것말고도 농구가 도움이 됐을지 몰라요. 중학교때까정 키가 반에서 젤 작은 편에 속했는데 (키순으로 2번까지 -_-) 어쩌다 체육시간에 농구파에 끼게 됐지요. 보통 나 같은 스타일은 가드(게임 풀어가는, 패스위주)나 슈터가 되기 쉬운데, 전 "리바운더"였습니다. 키 큰 애들 사이를 비집고 가서 "내꺼야~" 하고 달려들어 공을 낚아채는.. ㅋ 거의 로드맨이었죠. 그래서 하늘을 오래 쳐다보고 있다가 목 뒤 성장판이 자극을 받지 않았을까 합니다 :D
지각생 2006/10/25 11:51 URL EDIT REPLY
아.. 혹시 누가 "대량생산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를 이미지로 만들어주실 분 안계실까요? 배너로 달고, 버튼으로도 만들고.. 그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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