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 혹은 오만함 - RMS 강연 후기

IT / FOSS / 웹
(참세상에서 교정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원본.. 보관용)

만남

"크게 말하세요" 그가 내게 한 첫마디다. 시작하기 전, 살짝 인사말을 나누고 싶어 조용히 다가가, 짧은 영어지만 내 소개를 했다. 이미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리고 영어가 안돼 X팔려했기 때문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개인의 문제라기 보단 한국의 어떤 특성이랄까? 그러자 잘 들리지 않는다며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그가 내게 말한 것이다. 당황해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으.. 많은 사람들이 뭔일인가 싶어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렇다고 작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이름이 뭐고, 무슨 일 한다고 살짝 말하고는, 그냥 아는척이다, 라고 하고는 도망쳐버렸다. ^^
리차드 스톨만, 그를 가까이서 본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자유 소프트웨어" 철학을 접한 것이 내가 리눅스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계기이니 벌써 8년전이지만, 그는 멀리 있고, 나는 돌아다닐 돈이 없으며, 결정적으로 영어가 안된다. -_- 몇년 전 한국에서 강연을 했을때 간 적은 있으나 그때도 너무 늦게 간데다가 지금보다 더 소심해서 강당 맨 끝에서 그의 목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말을 알아 듣지 못했으니 "목소리"를 들었다가 맞는 말이다)
그는 익히 "듣던 대로"의 사람이다. 그의 장발과 유달리 시선을 모으는 바디라인, 그리고 어디서 누구와 있어도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듯한 편안함(그는 편안해 보이나 주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죽이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목소리. 그의 강연은 성공회대 피츠버그홀에서, 동시통역 노동과 통역기 기술의 협력, 진보네트워크 사람들의 "운영" 노동과 함께 이루어졌다.


강연

강연이 시작됐다. 주제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과 기술적 보호조치". 소문에 의하면 이런 주제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한미FTA를 통한 미국의 지적재산권분야 압박이 엄청난, 한국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내용을 준비해왔다. 통역기를 통해 들으니 굉장히 말이 빠르다. 그는 느긋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역시 동시통역은 힘든것 같다.

저작권(Copyright)의 역사와 성격에 대한 얘기로 시작됐다. 인쇄기술이 나타나기 이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별도의 기술과 장비의 도움 없이 원하는 글을 복사할 수 있었다. 사본을 갖고 싶으면 그저 스스로 그 책을 "쓰면" 되었다.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직접 필사를 하기 보단 중앙화된 시스템에서 대량 복사를 하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배포하는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물론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필사를 해야 했겠지만, 그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은 아니었다.

(원시) 저작권법은 영국의 검열제도에서 파생됐다. 이것은 정부가 출판사를 규제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고,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정부에게 있었다. 18세기에 들어, 저작권은 저자에게 돌아가고, 보호의 목적도 검열 대신 작품 창작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보호기간도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고, 이것은 사회 진보를 위한 것이었다. 저작권법의 본래 목적은 이처럼, 출판사를 규제하고 사회 진보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지 독자를 규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 그것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유용한 법이었다고 하겠다. 논란도 적었고, 공중의 혜택을 증진시켰으며, 집행 또한 용이했다.(출판사만 추적하면 되었기 때문에.)

기술의 진보로 디지털 출판 시스템이 일반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기존의 인쇄 시스템이 갖고 있던 규모의 경제와, 출판 시스템의 사회적 의미가 변화되었다. 이제 대량생산을 하지 않아도, 개별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저자와의 직접적 관계, 독자들간의 관계를 통해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저작권법이 초기의 의도대로 계속된다면, 진정한 공중과 저자의 협력,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법은 초기의 의도에서 벗어난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제약대상은 출판사가 아니라 독자가 되었다. 저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출판사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자와 독자를 분리하고, 제약할 수 있게끔 법이 바뀌어지도록 했다. 이제 일반 대중이 누리던 혜택은 심각하게 축소되었고, 처벌의 위협 속에서 살게 됐다. 기술적 진보와, 정치적 성장으로 개인의 자유는 신장해 갔지만, 정작 원하는 저작물을 작성, 향유할 수 있는 권리는 점점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스톨만은 여기서 정권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민주정권이라면, 공중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대중의 "사용권"을 주장해줘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중에 대한 제약만이 계속 확대되고 있으며, 더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 이후 강연을 통해서도 스톨만은 "정부와 기업의 공모", "기업 제국주의"와 "꼭두각시 정부"등의 속 씨언~한 표현을 써가며 당당하게 모두가 듣고 싶어하는 말들을 해주었다 :)


보호기간, 보호조치

보 호기간 연장은 어떻게 실제로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가? 이미 죽은 사람의 저작물에 대한 보호기간 연장이 실제로 그 창작물이 세상에 "의욕적으로" 나오게 기여한 것인가? 과거의 것에 대한 연장이 지금 새로 창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의욕을 고취시킨다는 것은 거짓이다. 이것은 연장을 주장하는 측이 실제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저작자의 의욕을 명목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직 출판사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출판사에 의해 제약 받으며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보호기간을 턱없이 연장하는 것은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하는, 오직 출판사에게만 이익이 되는 90%의 거짓말이다. (그는 100%의 거짓말보다 진실이 포함된 거짓말이 더 나쁘다고 했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실제로 그 긴 기간을 내다보고 사업을 하는 기업은 오늘날엔 존재할 수 없다. 10년 앞도 어찌 내다볼 수 있는가? 게다가 기술, 생산력의 발전과 여러 환경의 변화로 "싸이클"이 빨라졌다. 그에 비하면 보호기간은 오히려 축소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들의 거짓말이 진실이라면. 공중의 이익과 창작 활동 장려, 사회 진보를 위해서.

적용 범위도 점차 특정한 영역에서 포괄적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1998년에 미국은 DMCA(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 ..?)을 제정해 출판사, 기업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 보호 범위를 정할 수 있게끔 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의회를 매수했다고 공공연하게 그는 말한다. 기술적 보호조치를 통해 사용자의 선택권은 심각하게 박탈되어 간다. 예로 DVD 재생기에 "숨어", 사용자가 "변경할 수 없게끔" 된 장치가 특정한 장비와 환경에서만 재생하도록 강제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검열되는 것이다. 이런 사용자 제약을 탈피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유 소프트웨어가 GNU/Linux 에 있다.


파시스트

스 톨만은 미국에 대한 이미지 -자유와 민주주의- 는 한때는 진실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날 미국이 하고 있는 것들은 파시스트 국가의 그것이다. 선거는 깨끗하지 않고, 재판절차는 공정하지 않으며, 고문이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외국에 대한 침략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자국내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의 모순을 외부에, 전 세계에 전가시킴으로서 피해간다. (물귀신 작전이라할 만하다.) WTO등의 국제 교역 기구와, FTA를 통해서(요즘은 이걸 즐겨쓴다). 대표적인 예로 NAFTA를 드는데, 각국의 민주화 정도를 끌어내리고, 국가의 기능을 기업에 종속되게 만든다. 과다한 제소권 때문에 공중보건, 환경, 삶의 질을 기업에 구걸해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부자들보다 서민에게 힘을 실어줘야 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정부에게 부여한 힘이 기업에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FTA가 체결되면, 똑같이 그들의 제도를 한국에 강제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뿐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엄청난 착취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지금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부분으로 지적재산권 분야가 강조되고 있다.


공유

 스 톨만은 어떤 대안을 말하는가? 우선 그는 보호기간을 10년으로 놓고, 실제로 그 정도 보호기간이 부족하면 다시 늘리자고 한다. 지금까지 말한 이유에서다.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일반적인"저자의 입장과 "대중"의 입장이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오직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의 입장만이 공공연하게 전달되고 있다. 적용 범위도 컨텐츠의 내용/성격에 따라 3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어떤 매체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첫번째는, 기능, 실용적인 내용을 담은 것들. 프로그램, 요리, 교육, 사전들. 이것들은 자유소프트웨어와 마찬가지 이유로 "자유"여야 한다. ("자유"를 말할때 스톨만은 이것이 "무료"가 아닌 말 그대로의 "자유"로 통역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실제로 쓰는 사람이 자기에 맞게 내용을 변경해 보관하고,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용자를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아도 충분히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공중의 협업이 보다 원숙한 성과물을 만들어낸 사례를 우리는 이미 많이 갖고 있다. 위키페디아(wikipedia)가 좋은 예다. 20년전 우리가 한 우려는 허상임이 밝혀졌다.

 두번째는, 아이디어와 그의 표현. 이런 부분은 개작이 유용하지 않을 수 있기에, 절충적인 저작권 체제를 적용할 수 있다. 비상업적으로는 복제권을 허용하지만, 상업적으로는 보호한다. 최소한의 필수저인 자유는 보호하고, 산업적으로는 규제를 가하는, 현제 체제 수준을 그대로 적용한다.

 세번째는 예술, 엔터테인먼트인데, 이것은 개작과 수정으로 인한 긍정적, 유용한 혜택이 많고, 새로운 창작에 기여한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에 나온 바로 그때 시급하게 수정되어야 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니 10년 정도의 보호는 허용하고, 역시 비상업적인 용도로는 복제와 배포까지는 허용하자. 10년후에는 퍼블릭 도메인(공공의 영역)으로 해서 새로운 예술로 승화시키자.


음반 산업

음 악 파일이 인터넷으로 공유되는 것은 출판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수, 작곡가와 공중 모두에게 이롭다. 음반 판매 수익은 실제로 창작자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건 홍보 효과 뿐이고, 슈퍼 스타가 돼지 못한다면 실제로 아무것도 얻어갈 수 없다. 그 홍보 시스템 또한 음악 자체로 평가되기 보다는 돈의 힘으로 인기를 조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음악을 사랑하는 창작자와 대중에게는 이런 음반회사, 시스템이 기여하는 것이 없다. 없어져야 한다.(이렇게 말할 수 있는게 신선하다.)


행동

FSF(Free Software Foundation, 자유소프트웨어 재단: 리차드 스톨만이 창립한, 자유소프트웨어 지원 단체)는 실제로 다양한 행동들을 하고 있는데, DRM에 대항해서 5월 부터 캠페인을 벌여오고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RM 솔루션을 발표하는 컨퍼런스장 앞에서 시위를 했는데, 그것이 "독"과 같음을 나타내는 의미로 방독 보호장구를 입고 와, 독성을 상징하는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등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저작권 체제가 아니어도 실제로 저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들도 제안했는데 세금 지원, 혹은 자발적 지불 시스템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작곡자들이 지금 시스템에서 1년에 받는 실질적 평균 수입은 2달러에 그친다고 한다. 이것보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게 하면서 "작곡가에게 1달러를 보내기"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만들어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더 크다. 지금 "공유는 해적질이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캠페인이 공공연하게 시행되고 있는데 이걸 우호적인 홍보캠페인으로 바꿀 수 있다.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버튼을 누르세요 :)"

DRM 으로 사용자에게 특정한 것들을 강요하는 것은 불법이 아닌가?! 기업들이 담합하여 대중을 규죄하는 것은 범죄가 아닌가? 서민 대중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정부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스톨만은 너무나 옳은, 너무나 당연한 말을, 그러나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는 말을 그냥 당당하게 말한다. 어찌 보면 그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가 아닌가하고 생각하게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찌보면 정말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우리 주위를 옭죄어 오는 것들로부터 방어하기에, 도망치기에, 끌려가기에 급급하다.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그들이 먼져 펼쳐 놓은 그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일 뿐인 건 아닐까? 철학이 아닌 구체적 각론 차원의 반박 논리를 제시하라는 요구, 그리고 그렇게 해야한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왜 그들이 먼저 내지르고, 펼치고, 뻗어놓은 것에 우리가 따라가 반박하고, 피흘리고, 그래서 기껏해야 원점으로 돌아오는 싸움을 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런 당연한 말을 계속 하면서, 저변을 넓히는 것, 정부 관료와 기업, 엘리뜨를 보는 것이 아닌, 대중과 소통해서 그들이 거짓으로 꾸며 놓은 "합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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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6 00:51 2006/11/2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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