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홍콩 - 2부

독립미디어

전에 얘기한대로 끼니를 먹거나 필요한 물건을 살때외에는 스튜디오 밖을 나갈 일이 없었다. 홍콩에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소식은 활동가들이 찍어온 영상과 홍콩의 TV를 통해 접했으니 이런 얄궂은 일이 없다. 더구나 그 영상이나마 제대로 보는 것도 아니다. 눈에는 보이는데 머리까지 가지 않는거다. ㅋㅋ 잘 나가고 있는 건가. 지금은 어떤 자막을 내보내야 되나. 누가 의견 올린 건 없나 이건 어케해야 되나...

 

직접 현장을 본 것은 촛불 집회 한번과 이날이 전부였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 다시 스튜디오에 돌아와 진정이 될리 만무다. 약해지긴 했지만 계속 남아있는 최루가스 냄새, 창 밖으로 보이는 경찰들.. 옆에 있는 홍콩의 라디오팀은 여전히 정신이 없다.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경찰은 어쩔셈일까. 달아날 곳을 열어 놓고 쫓는 것이 상식이거늘 저렇게 완전히 막아놓다니.

 

부산 아펙반대 투쟁때 홍콩 경찰이 한국 경찰을 벤치마크했다는 얘기가 있다. 홍콩에는 집회가 많지 않은데, 그나마 경찰의 통제를 자~알 따른다고 한다. "이리로 가세요" 하면 "예~" 하고 간다는.. ㅡ,.ㅡ 이러니 홍콩 경찰이 이번과 같은 경험이 많지 않을터였다. 혹 저들이 흥분한 나머지 사고를 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만 계속 들었다.

 

완전 봉쇄된 뒤 한동안은 저러다가 적당히 빼겠거니 했다.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을 설마 다 강제연행하겠어.. 한국투쟁단을 수용할 감옥을 새로 지었다는 얘기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홍콩에서 그만한 규모의 집회도 드물거니와 그만큼 사람들을 한꺼번에 잡아 넣은 적도 없다. 좀 쉬다 한두번 더 붙고는 자진해산하거나 강제해산 당하는 정도 아닐까.. 그저 더이상 크게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뿐. 그리고 우리 팀 사람들도 무사히 스튜디오로 돌아오기를 바랬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하지만 포위는 풀리지 않았다. 사람도, 물건도 오고 나가지 못하는 상황. 밤이 깊을 수록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쌀쌀해져 갔다. 홍콩은 한국보다 따뜻한 곳이긴 하지만 이 날은 좀 쌀쌀했다. 긴장한 탓도 있으려나. 홍콩 활동가 S가 준 45도짜리 술이 눈에 보인다. 조금 마시니 춥지도 않고 긴장도 풀렸다. 하지만 지금도 포위된 사람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을꺼다. 괜히 미안해서 다시 내려놓고 소식이 들어오기만 기다렸다.

 

봉쇄가 되어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 테잎이 올 수가 없다. 방송은 계속되는데 내보낼게 부족하다..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은 기자증을 가지고 있는데도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다. 준비해간 테잎도 거의 떨어졌을거고, 카메라 배터리도 불안할텐데... 누군가는 그곳으로 가야된다. 하지만 그 쪽으로 가는 도중에는 3~4 겹의 경찰 포위망을 지나야 한다.

 

 

조PD카메라를 빌려 다시 밖으로 나갔다. 기자증은 있고, 카메라를 갖고 가면 어케 들여보내지 않을까 싶었다. 길거리는 과연 여기가 어제 거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썰렁했다. 영화에 많이 나왔지만 홍콩의 거리는 요란하다. 화려한 간판들이 건물을 덕지덕지 도배하고, 길을 가득메운다. 다닥다닥 붙은 상점들, 이층 버스와 차량들, 그리고 사람들. 상업과 금융의 도시답게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홍콩에 비하면 한국은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일 정도다. 신호등 체계가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데도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서슴치 않는다. 오히려 신호를 잘 지키는게 바보 같을 정도로.

좋게 말해주자면 활기찬 홍콩 거리. 하지만 이날은 황량한 폐허와도 같았다. 내려진 셔터, 불꺼진 편의점, 가로등과 미처 끄지 않은 몇개의 간판, 지하철 역에서 나오는 불빛이 전부인 길을 오직 경찰만이 가득 채우고 있다. 묘한 기분을 느끼며 경찰의 포위망으로 접근했다. 역시 첫 관문부터 막혔다. 뭐라 뭐라 그런다. 그나마 조금 뚫렸던 귀가 다시 막혔나보다. 뭐라그러는지 모르겠다. ㅡㅡ; 그냥 기자증과 카메라만 보여주고 들어가겠다는 시늉을 했다. 조금 망설이더니 길을 비켜준다. 저만큼 앞에 또 경찰이 막고 있다. 앞에서 들여보내주는 걸 봤던지 기자증 한번 보더니 그냥 통과시킨다. 이제 한 블럭만 더 가서 코너를 돌면 투쟁단이 포위된 곳이다.

 

거기가 끝이었다. 세번째 폴리스 라인에서는 더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들어가지 못해 까치발을 하면서 안에서 뭔일이 벌어지는지, 사람들이 어쩌고 있는지를 보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과 여기는 꽤 거리가 있다. 조금 높은 곳은 이미 기자와 시민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순 없지.. 망설이다가 그나마 착해보이는 경찰을 붙잡고 ^^;; 더듬더듬 잠깐만 들어갔다 오겠다고 했다. 맞게 말하고 있는건지 몰겠지만 하여간 최대한 단어들을 짜맞추고 손짓발짓 해가며 얘기를 했지만 경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덴장 ㅡㅡ^ 부족한 영어 탓은 아닌게 내가 얘길 시도하자 다른 기자도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사람은 영어가 유창했지만 역시 안됐다 ㅋㅋ

 

지하철 역이 2층높이라 올라가봤다. 사진이라도 찍어가면 그거 슬라이드라도 방송에 내보낼 수 있다. 하지만 거기도 경찰이 막기는 마찬가지. 사진 찍으라고 살짝 공간을 냅두고는 (그나마 겨우 살짝 보일 정도) 고무총을 어깨에 둘러맨 경찰들이 노려본다. 그 약간의 공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사진찍는 사람들, 기자들로 아우성이다. 창에 방충망은 이미 곳곳에 구멍이 났다. 한참을 기다리고 머리를 들이밀어 겨우 창쪽으로 갔다. 사진을 찍었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 영 아니다. 몇개 찍고는 일단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밤은 점점 깊어간다. 경찰은 계속 "해산하라"는 방송을 내보낸다. 길이나 열어주고 그러던가 ㅡㅡ; 갇힌 투쟁단의 고통은 말이 아니다. 춥고 배고프고... 피곤하고 졸리고... 아니 그것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화장실이다. 홍콩은 원래 공중화장실이 거의 없는데, 여기는 도심이고, 근처 건물들은 모조리 문을 닫았으니 갈 수 있는 화장실이 하나도 없었다. 참는것도 한계가 있다. 포위가 시작된지 벌써 3시간이 넘었다.

 

밖에 있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다.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홍콩 경찰이 하는 짓이 분통을 터지게 한다. 아무래도 이건 악의에 차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각료회의는 진작 끝났다. 지친 투쟁단은 경찰이 치고들어가도 제대로 저항조차 어려울 것이다. 물론 투쟁의 의지는 꺾이진 않았지만. 계속 이렇게 막아만 두면 어쩌자는 거냐.

 

포위된 활동가중에 홍콩에서 구입한 핸드폰을 가진 사람이 있긴 했지만 밧데리를 아껴야 되니 통화하기도 어려웠다. 안에 있는 고통과 비할 순 없을지 모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의 답답함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간다.

 

1시가 넘어, 포위되어 있던 활동가 중 2명이 밖으로 나왔다. 계속 틀어막고만 있던 경찰이 기자들만 내보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연행을 하려는가... 결국 할거라면 더이상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빨리 해라.. 속으로 말하며 그들이 전하는 소식을 듣고, 속보를 방송했다. 방송 창에도 올리고, 게시판의 뉴스도 업데이트했다.

 

2시 20분, 경찰이 "최후 통첩"을 내보냈다. 20분후 집회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강제연행하겠다고 한다. 나랑 함께 빠져나왔던 활동가와 다시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가져온 영상도 다 틀었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급도 해야한다. 아까처럼 2번째 포위망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3번째에서 또 막혔다. 이번에도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와야 했다. 답답하지만 더이상 밖에선 뭘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다. 포위 시작한지 벌써 5시간 가까이 흘러간다. 밖에 있는 사람도 진이 빠져가는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막막한 심정으로 기다리다 3시가 되었다. 홍콩 활동가들이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드디어, 홍콩 경찰의 강제연행이 시작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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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6 03:37 2006/01/1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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