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방.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드디어 난 편안해진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난 여전히 팽팽히 긴장하고 있다. 누가 문을 열고, 방 안은 어두워 그 사람 얼굴은 안보이는데 나를 불러 일으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팔이 순간 파르르하다가 약간 위로 들린다. 난 금방 응답할,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를 받았다. 6시 40분. 미안한 듯한 말투로 서버가 이상 트래픽을 내고 있다고. 그 말만 들어도 난 어느 서버가 문제 있다는 것을 안다. 제대로 해결 안하고 그때 그때 증상만 수습하고는 말아버리니까. 자꾸 반복된다. 그때는 늘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 급한 불만 끄곤 나중으로 미룬다. 하지만 언제나 또 다시 문제가 불거졌을때나 그것을 떠올리게 되니, 계속 조금씩 이렇게 괴롭게 시간을 뺐기고 만다. 어제는 3시에 집에 들어와 4시 가까이 되서야 잠이 들었다. 잠을 마음껏 못자니 짜증이 난다. 이짓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난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식구들이 짜증난다. 하지만 짜증을 낼 처지는 아니다. 요즘 들어 집에 자주 안들어왔는데 그건 그만큼 내가 집안 일에 기여를 안하고 있다는 거고, 각자의 사정을 모르고 있다는 얘기니까.
대충 수습하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릴랙스... 신경이 곤두선 탓도 있지만 내 몸이 긴장하는게 느껴진다. 이게 지금만 이런게 아니라 평소에도 늘 긴장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느낀다. 내가 살이 안찌는 까닭은 그것인가 보다. 난 왜 긴장을 할까. "응답"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바램을 들어주기 위해? 왜? 난 아직도 속죄중인가. 도대체 무얼. 군대에 있을때가 생각난다. 그래, 그때 난 누구보다 시원하게 대답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노예였지.
숨을 크게 들이쉰다. 될대로 되라. 계속 중얼거리니 조금 나아진다. 이건 내 모습이 아냐. 난 원래 낙천적인 게으름뱅이였다고. 오히려 부름에 응하려 긴장하고 사는 요즘이 전보다 순발력도 떨어진 거 같다. 늦었다고 서두르니 다음에도 점점 늦게 되는 것처럼. 언제부터인지, 왜인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지금까지는 예전의 나를 부정하고 살았지만, 이젠 그런 모습들, 지금의 나의 모습들이 다 그대로 괜찮게 여겨지니 돌아갈 수 있어. 내가 기억에서 지우려 했던 시간들, 그 가운데서 새로운 발견들. 난 스스로에게 공정한 평가를 내려줘야해. 난 그때 충분히 아름다웠지. 멋있었지. 집착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았지. 만족할 줄 알았지. 조급하지 않았지. 그것들은 아직 내게 살아있다.
긴장하고 사느라, 조바심 내고 사느라 최근 몇년간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살았는지. 그 많은 스쳐감을 그대로 보내고 말았는지. 내가 하고자 하던 걸 잊고 보낸 시간들. 나이 먹었으니 어쩌구 하는게 아니라 계속 이렇게 있다가 결국 나중에 쓸쓸히 어쩔 수 없었다 중얼거릴 걸 생각하니 답답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더 이상 미루지 않고 해버리자. 망설임은 시간의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