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뒤꿈치

잡기장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기분 안 좋을때 술먹고 남산에 올라가다가 발 뒤꿈치를 다쳤다.
빈집에서 남산에 올라가는 빠른 길 중 하나가 초등학교 하나를 가로 질러 가는 것인데, 당연한 일이지만 밤이라 문이 잠겨 있었다. 술 취해 정신줄 놓고, 열 받아 폭주하던 지각생. 그 문을 넘겠다고 올라가서, 뛰어내렸다.
평소에도 날렵함을 자랑하고자 그런 짓을 자주한다는데.. 결과는 착지 후 뒤로 벌러덩~ 술기운에 아픔도 못 느끼고 소월길까지 뛰어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걸을때 왼쪽 발뒤꿈치가 아파왔다.

그 날은 지각생의 빈집 장기 투숙 역사 중 최악의 주사를 보인 날인데, 어떤 짓들을 했는지는 본인의 명예를 위해 말하지 않겠다. 여튼, 지금 지각생은 지난 2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마셨던 술을 이틀째 끊고 있다. 그 주사때문은 아니고 ;; 그 때 내가 왜 화가 났었는지는 말하기 부끄럽다. 근데 발을 내딛일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이 그걸 계속 생각하게 했다.

적어도 세 주는 그래서 절뚝거리며 걸어다닌 것 같다. 발뒤꿈치부터 땅을 디딜 수 없어 발 전체로 혹은 끝으로 땅을 디뎌 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장딴지가 땡기기도 하고.. 미련하게 병원을 안 가고 버티다 오늘에야 빈집 근처의 한의원에 갔다. 아파도 일단 참고 보고, 아프다 말 잘 안하고, 병원가기 귀찮아하는 건 하여간 잘 안 바뀐다.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통증이 안 사라지니 슬쩍 걱정이 된다. 다쳤다고 며칠 안돼서 증산동집 식구들에게 얘기했을때 형이 뼈에 금 간거 아니냐고 하길래 걱정끼치고 싶지 않아 별거 아니라고 했다. 괜찮아지겄지.. 그게 벌써 적어도 삼주. -_-

동네 한의원에 간다. 어제도 갔었지만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라 한시간 반 이후 다시 오란 말에 포기...
어제 저녁엔 갑자기 통증이 완화. 빈집 사람들 그 얘기 듣고 그 한의원 용하다 한다. 들어갔다 나오기만 해도 낫는다.
오늘 그래서 갈까 말까 또 살짝 고민. 이래서 사람 맘이란.. 결국 가긴 갔다.
얼음 찜질하고, 침 맞고, 테이핑. 얼음 주머니를 발에 차고 있는데, 아픈데 보단 다른데가 차가웠다.
침은 아플거라고 했는데 진짜 아팠다. 그래도 내색 안했더니 잘 맞는단다. 치과 치료 받을때도 아플때 내색 안했더니 고통에 달관했냐고 하는데 그 말이 은근히 기분 좋은 이유가 뭘까나 -_-; 나 아직 성장기? -_-;;

세 가지 처치를 했으니 아무래도 나아졌겠지 싶어 왼발꿈치부터 디디며 걸어본다.
아직 살짝 아프긴 하지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몇 주동안 절뚝거리며 걸은게 그새 익숙해졌나보다.
원래도 빨리 걷는 편인데 발 뒤꿈치를 안 디디면서 왼발을 더 빨리 딛었다 떼다보니
천천히 왼발을 내딛는 것이 영 어색하다.
이래서 가끔 아픈게 좋다.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알게 되거던.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고 집에 돌아왔다.
발을 씻기 위해 테이프를 떼는데..
그 테이프는 발만이 아니라 내 장딴지까지 쭉 올라와 있다. 그리고 그때야 이 테이프가 나의 다리털을 꽉 움켜쥐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X됐다. 내 기색을 눈치챈 빈집 장기투숙객들. 뭔 일이냐.
다리털이 우두둑 뽑힐 상황을 설명하자 갑자기 이 사람들 눈이 번뜩인다.
얼굴에 미소를 띈채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는 이들.
"한번에 뜯어야 덜 아픈거 알지?" 압니다. 알아요. -_-;

먼저 발바닥에 붙은 부분을 뜯어내고, 숨을 크게 들어쉰 뒤 다리 부분에 붙은 부분을 휙하고 뜯어낸다.
그리고 내 입에선 단말마의 비명이 새 나오는데... 테이프에는 내 털이 2,30개가 붙어있다.
이걸 일주일 동안 해야 한답니다. -_-

이래서 아프지 말아야 한다.
얼릉 낫고 뛰어 다닐 수 있게 되길. 산에도 가고.
무엇보다 그 날의 기억을 완전히 떨치고 잘 살아보자. -_-;;;;;

블질, 이제 다시 자주 할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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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 01:58 2008/10/2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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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2008/10/29 02:23 URL EDIT REPLY
곧 괜찮을거야. 하루 이틀이면... 널 괴롭히는 다리털 따위는 남김없이 빠져버릴테니까. ㅋㅋㅋㅋ
암튼 간만에 재밌는 글 보니까 좋네. ^^
공룡 2008/10/29 10:17 URL EDIT REPLY
지각생이네~ 반가움.
오락가락 반 쯤 기억나지 않는 그 날의 추억 속에 당신. 맑은 미소 뒤에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 테이프를 다시 붙이기 전에 미리 면도를 하면 어떨까요...염려 ㅋ
2008/10/29 13:58 URL EDIT REPLY
나이 생각좀 해요...ㅡ.ㅡ;;
나루 2008/10/31 12:35 URL EDIT REPLY
연영석이 출연한 다큐를 보는데 지각생도 한 장면 나왔어요 ^^
아픈 와중에 블질을 자주 하실거라니 불행 중 다행...
요꼬 2008/10/31 14:29 URL EDIT REPLY
푸하하 위로를 해드려야하는데 그테이프와 다리털?떨어지는상상에 웃음밖에.....그나저나 아프면 너무 불편한데 빨리 낫길바래요 그리고 왠만하면 주사는^^;
지각생 2008/11/01 02:19 URL EDIT REPLY
지음// ㅋㅋ 두 사람의 그때 그 미소는 잊을 수 없을 듯
공룡// 반이나 기억나지 않는다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ㅋ 자주 놀러오삼
존// 나이 생각하는데? 거꾸로 먹는다고 ㅎㅎ
나루// 배우 지각생이라고 불러주삼
요꼬 // 감사요 ^^ 주사는 정말 간만에 한번 한거임
zxcv 2008/11/02 04:42 URL EDIT REPLY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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