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하하하

잡기장
내일 11시 인터넷 라디오 세미나 기술지원을 위해 일찍 자야하건만, 결국 컴을 켜고, 블로그에 와서, 몇개 덧글을 남기고는 다시 이곳에서 "쓰기"를 누르고 말았다. -_- 오늘도 4시 전에 자는건 어려운걸까? 8시에 모닝콜해달라했는디.

말했듯이 밀려있던 실무들을 많이 처리해 놓고 생긴 아주 약간의 여유.
그동안의 허기와 갈증을 달래기 위해 최근들어 사놓고 못 읽은 책 보고, 시간 없어 띄엄 띄엄 읽었거나 읽었어도 발전된 고민을 하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근데 너무 오래 굶었다가 급하게 먹는 탓일까? 소화불량 증세가 보인다. 배설을 하려 해도 뭐 나오는 건 없고.

그냥.. 혼란스럽다. 점점 더 모르겠고, 내 자신이 어디까지 푹 삭아 있는 건지 바닥이 안 보이는 느낌.
오늘 회의 마치고 간단히 한잔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집에 와버렸다.
전에는 항상 이럴때면 술에 의지해 이때를 넘겨 왔다. 그러면.. 결국 고통을 유보한 대신 그걸 덮기 위한 오바액션을 한동안 취하고.

다른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 목구멍까지 와 있으나 차마 겁이 나 -_- 못하는 말들.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내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건 ...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말하기 전에 발견해서 -_-;) 그래도 말은 말대로 하고 자기성찰로 가면 좋을 것 같긴한데, 이게 아무래도 한번 말을 해놓고 나면 자기 성찰보단 뒷수습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잘 못하겠다. ㅋ

뭐... 어디 그런게 한 둘이어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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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언제나 가장 부끄럽게 하는 건 역시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강변할 수 있을만한 이력서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뒤늦게 문제 의식을 갖고 고민한 (내 아뒤가 지각생인 이유다) 한계를 아직도 갖고 있는 남성으로서,
28년의 삶동안 푹~ 고아온 이 사고와 행동 방식은 언제나 나를 화끈거리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첨에는 의식의 문제로 생각했다. 공부 좀 하고, 그냥 보편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면 큰 무리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이게 내 깊은 곳의 스위치들, 생각과 반응의 회로를 하나 하나 바꿔야 되는거구나.. 이거 못하면 다른 걸 아무리 그럴싸하게 해내도 의미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해커 지향성 인간으로서, 노동, 여성, 환경... 어느 분야건 깊이, 철저하게 파고든 적은 없었다. 모든 문제의식은 막연했고, 활동은 착취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과 의무감에서 시작했다. 모든 활동가는 다 순수하다고 생각했고, 그저 어느 길이던 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주면 그럭저럭 양심적인양 살아갈 수 있겠거니.. 했다. 그저 내가 있는 곳이 노동운동진영이이니,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방식을 그저 따라하면 "활동가", 노동운동가가 되겠거니 했고, 이 길이 그 중 가장 나은 길이겠거니 했다.

느슨한 환경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한 것으로 "난 환경에 관심있어", 노동운동단체(를 표방한 정체불명 조직)에 상근활동을 하는 것으로 "난 노동운동을 해"라고 생각하는 아주 두심한 의식수준을 가진 나로선 다른 "부문"에는 조금 소홀해도 괜찮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여성, 동성애, 장애인, 평화, 인종 ... 수 많은 이슈에 대해서, 그래서 아직 내 의식과 고민의 정도는 걸음마 수준이다. 그런데, 분명 그 모든 것을 다할 순 없지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현재의 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는 것에서 멈추면, 성찰을 통해 내 깊은 곳에서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오지 못하면 사실 별 의미가 없는 것인데, 지금 나에게 여성주의가 그렇다. 아직 앎도 부족하지만 그것이 내 28년의 역사를 하나 하나 반추하여 바로 잡고, 매순간 순간 힘들게 바로잡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부끄럼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아직 멀은 것 같다. 더 일찍 시작해야 된다. 어릴때부터 양성평등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면서 자라도록 해야하고...

한국을 사는 남성으로서, 그리고 활동가랍시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특히, 여성주의에 대한 학습과 반성, 고민이 최우선의 과제로 놓여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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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맡고 있는 역할때문에 올해는 꼼짝 없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 책임이란게 있으니. 쩝

내년 초가 되면 자유로워진다. 임기가 끝나니깐.
그때가 되면 계속 활동을 할 것인지, 아님 잠시 거리를 둬야 할 건지 고민중이다.
뭐 멋있게 말하면 "현장"으로 가는 거고,  "대중"의 삶에 파묻히려는 것이지만, 사실 돈을 벌려는 목적이 크다. =_=;
전에 말한대로 믿었던, 순수한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지금 운동판의 지배적인 방식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이유다.

한.. 80% 정도는,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뭔가 내 개인적으로도 수련이랄까 그런게 필요한 것 같고.
근데, 막상 그런식으로 생각을 하다보니
지금 내가 하겠다고 덤벼들었던, 지금은 부담으로만 느껴지는 일들이
갑자기 새삼스럽게 중요하게 느껴지며, "이것, 이것만은 마치고 홀가분히 뜨자"하는 생각에, 전혀 예상 못한 열의가 생기는 중이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오래 "이 바닥"에 있을거라는 생각때문에 점점 내 처신이 정치적으로 되간다는 의심을 스스로 떨칠수 없었는데
올해만 있을거고, 이 바닥과는 왔다 갔다 하더라도 일정 정도 거리를 둘거다. 이곳에 얽매이지 않을거다. 이런 생각을 하니깐 .. 뭔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확실히 "사심"이랄까 그런게 있었다가 힘을 잃은 모양이다.

물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사람이 운동진영에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기에
1년이던 2년이던 운동진영을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하는 생각은 남아있다. 그게 20%다. 내가 너무 내 개인의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는건 아니냐. 지금 힘드니까 괜히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런 저런 말을 갖다 붙이고 있는거 아니냐.

근데, 확실히 실보다는 득이 클것 같다. "미련 없이, 헛된 기대나 욕심 없이, 떠날 준비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잘 해놓겠다"는 생각.
당장 눈앞의 성과를 내기보단 진정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작은, 더딘 그러나 분명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이런게 들기 때문이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난 살짝 돌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진영 내부에서는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려 도모하지만, 실제 활동은 단기적인, 당장 눈에 드러나는 성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보이는건 나의 편협한 시각때문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반대가 되야 되는건 아닐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뭔가 기대하기 보단, 당장 눈에 안띄더라도 장기적인, 진정 세상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하는 활동을 해야되는게 아닐까?
이런 건방진 말을 하다니 나도 많이 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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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8 03:29 2006/06/28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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