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내가 결혼했다.

  • 등록일
    2006/08/13 21:33
  • 수정일
    2006/08/13 21:33

이 소설은 일단, 재미있다.
그러나 재미만으로는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아직까지 이 이야기만큼 사랑, 연애, 결혼, 가족에 대해 쿨하게, 신선하게 생각하게 해 준 것이 없었다.

*
어쩌면 과감하게 두 남자와 결혼을 선택한 이 여자야말로 혁명적일지도 모르겠다.(물론 그 자신은 혁명가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지금까지 술자리나 잡담판에서 "나중에 사유재산제도가 사라지고 나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나오는 집단혼의 형태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야 진정한 자유로운 결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현실로 생각하진 않았다. 일부일처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정작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랑, 연애 등의 공식에 가두어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도 그랬고. 그러다 보니 '감정의 낭비(질투심, 자괴감 등등)'와 '시간의 허비(에잇! 아무것도 하기싫어!)', '돈 낭비(퍼마신 술값 등)'가 걷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런지.....

*
폴리피델리티 : 가족 확대를 통해 친밀감을 강화하는 것이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집단 결혼과 공동 양육, 완전한 재산 공유,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발상. "폴리피델리티는 자발적으로 함께 만드는 평등한 결혼이다. 그것은 개인적 선택, 자발적인 협동, 건강한 가족 생활, 그리고 달콤한 낭만적 사랑이 한데 어우러진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이다. 폴리피델리티는 성적 평등, 소유욕 없는 관계, 그리고 배우자 간의 친밀성과 진정한 사랑을 모두 아우른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이런 생활이야말로 꼬뮌의 단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오바인가?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

둘만의 사랑에서 다자간 관계로 확장될 때 생기는 성적 질투심에 대한 대안은? -> 컴퍼션compersion. 성적 질투심과 반대되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생기는 따스한 감정.

호오. 이런 기똥찬 생각을 하다니.
작가는 은근히 자료분석을 꽤 한 모양이다. 뒤에 참고자료 목록까지 주욱 나열해 놓은 것을 보면. 인터뷰와는 달리 그냥 소설로만 읽히길 바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면 단순히 서비스용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의 집단혼 유지기간에 대한 연구를 인용한 것을 보면 5년 이상 지속된 관계는 매우 작은 비율이었다고 한다. 이건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일부일처제를 공식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둘러싸인 섬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
지금까지 결혼, 가족 등에 대해서는 이렇게만 생각했다.
가부장적 결혼과 가족제도 등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전제해도 가장 확고한 결론은 "활동가가 기존의 결혼/가족제도에 편입되면 운동하는 데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결혼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물론, 같이 사는 건 해야지), '애는 절대 낳지 말아야지!'(공동책임 하에 피임을 철저히!) 정도다.
그런데 활동가들만으로 혁명을 할 수도, 세상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낀다. 그건 이데올로기의 측면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긍정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터. 그걸 강요로 바꿀 수는 없을 게다. 남은 것은 끊임없는 설득과 대안을 꾸준히 연구하고 함께 그려보는 것일 뿐.
그래서 이 소설은 훌륭한 상상의 나래라고 본다.

*
어쨌든, 말랑말랑한 사고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연애 과정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떤 실천을 하려고 했을까.

자신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는 얘기는 사실 자만심의 표현이다.
외부관찰자의 지적이 오히려 더 정확할 때가 많다.
'애정결핍, 욕구불만' 98% 정도 옳다고 생각한다. 잔차질만으로 도무지 해소가 안되는 게 사실이다.

근데 이건 단지 연애를 못하고 있어서 생기는 불만은 아니다.
총체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 (내가 생각하기에) 인생을 걸고 있는 운동 속에서의 동지적 관계에 대한 욕구불만이 겹쳐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 같이 하고 있지 못한 수많은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를 생각하거나
까닭없이 완전히 연락을 두절한 이들을 떠올리며 신경질을 부리는(꼭 그래야만 하는걸까? 서로 이해와 용서의 시간을 가지면 안될까?).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