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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갈등이 없는 것이라는 착각도 이 희생이라는 미덕과 연계되어 있다.
예컨대, 뭔가를 꾹꾹 참거나 덮어 주는 것이 사랑의 기술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는 건 참는 것일 뿐이다.
참고 견딘다는 건 속에다 꾹꾹 눌러 담는 것이지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고로, 반드시 언젠가 폭발해 버린다.
그리고 그땐 이미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남은 것은 환멸과 상처뿐! "왜 나만 참고 살아야 해?" "죽여버릴거야!"
더 나쁜 건 관계가 종결된 다음에도 그런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대개 그 감정적 상흔을 무슨 훈장처럼 떠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흔적 속에 자신을 웅크린 채 더 이상의 소통을 거부한다.
비련의 주인공이 탄생되는 순간!
이 코스를 밟는 한, 희생이라는 미덕은 사랑이 아니라, 불운의 모태일 뿐이다.
이 불운의 코스를 자명하게 간주하게 되면, 할 수 있는 건 동정과 연민뿐이다.
대부분의 심리서들이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위안과 동정으로 가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환기해야 할 것은 동정과 연민만큼 인간을 나약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고미숙, 호모 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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