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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9/01
    수종사에서(4)
    나은
  2. 2009/06/29
    문턱 없는 밥집~(3)
    나은
  3. 2009/03/20
    2년 만에, 동해.(4)
    나은
  4. 2007/02/25
    모란공원에 발걸음
    나은
  5. 2007/02/16
    등산 : 삼성산
    나은
  6. 2007/02/09
    가봐야 할 곳 - 소안도
    나은
  7. 2007/02/06
    서산이란 곳
    나은
  8. 2007/02/05
    서해안 일몰
    나은
  9. 2007/01/28
    마지막, 강진, 해남(3)
    나은
  10. 2007/01/27
    엿새째, 광주.(1)
    나은

문턱 없는 밥집~

  • 등록일
    2009/06/29 16:02
  • 수정일
    2009/06/29 16:02

서교동에 배달을 끝내니 12시 반 쯤.

점심때가 되었으니 밥이나 먹어볼까 하다가 근처에 "문턱 없는 밥집"이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12시부터 1시 반까지는 유기농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

돈은 내고 싶은 만큼만...^____^

 

 

 

처음 왔다고 하니 남자 분이 설명을 해 주신다.

먹고 싶은 만큼 맘껏 먹을 것, 하지만 빈그릇을 만들 것, 숭늉과 무로 깨끗이 닦아줄 것~

음식을 남기지 않기, 그릇을 깨끗이 닦아 세제 사용을 줄이기... 다들 정말 필요한 일 아닐까?

 

유기농 비빔밥 잘 먹고, 숭늉으로 헹궈 먹고, 무로 닦아 먹고 해서 그릇을 나름 깨끗이 닦고 나서

안내해 주신 남자분께 "이 정도면 됐나요?" 하고 여쭸더니

처음 오신 분치고 "퍼펙트!!"하단다. 기분 좋았다. ^^.

하긴 다른 사람들 보니 대충 닦고 가는 사람들 꽤 있더라.

그 남자분 말은 다음엔 더 깨끗이 닦아주세요, 하지만 맨날 그 잔소리 하려면 좀 짜증도 날텐데..

 

기회 되면 자주 가야겄다~

 

이게 바로 유기농 비빔밥. 계란만 빼면 된장, 감자, 또 뭐더라 여튼~

 

 

숭늉으로 한 번 헹궈 줬지만 개운치 않아서 무를 이용해 사사삭~

 

이게 바로 칭찬 받은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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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동해.

  • 등록일
    2009/03/20 02:19
  • 수정일
    2009/03/20 02:19

 

바다로 뻗어 나간 다리를 건너, 속초 영금정에서 바라 본 동해 바다.

서해와 남해와는 또 다른 느낌. 무엇보다도 끝없이 펼쳐진 듯한 그 느낌.

저 수평선 너머 무엇이 있을 지 알 수 없는 기분에 두렵기도 한 그 바다.

시원한 바닷 바람에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2년 전, 답답한 마음에 시간에 쫓기며 경포대를 찾았다.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진 지 오래여서 앞은 캄캄하고 두려운 파도소리만이 가득했던 그 밤.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닿을 수 없음에 대한 애통,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만났던 그 바다에

다시 가 보니 이제는 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릴까,

내륙의 산줄기를 타 넘으며 동으로 달릴까,

수없이 계획만 하다가 끝내 떠나고 만 여행.

중간에 세 밤을 자고 크고 작은 고개를 넘어 무거운 허벅지와 무릎을 이끌고 당도한 바다는,

가 볼 만한 곳이었다.

 

중간에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혼자 여행하면 심심하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빠른 길 대신 둘러 가더라도 조용한 옛 길을 따라

묵묵히 땀 흘린 만큼만 앞으로 나가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내 몸의 정직한 반응을 느끼며 오히려 정신은 또렷해지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조금은 선명해지는 기분에

바로 그 맛에, 나는 홀로 자전거로 여행한다.

 

 

 

굽이굽이 미시령 옛 길. 저 아래로 미시령터널이 생겨 차들은 그 길로 씽씽 달리고,

옛 길엔 종종 녹지 않은 눈과 바람 소리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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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에 발걸음

  • 등록일
    2007/02/25 10:19
  • 수정일
    2007/02/25 10:19

1월엔 광주의 열사묘역을 돌아봤고, 얼마전엔 경남의 열사묘역을 돌아봤다.

모란공원엘 안 가 볼 수 없지 싶었다.

 

아는 이들과 함께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자전거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했다. 인제 자전거로 여행할 일도 당분간 없으니까.

 

전철을 타고 덕소역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팔당댐, 양수리를 지나 북한강을 따라가다가 마석으로 가는 길. 일부러 한강 따라가고 싶어서 한참을 우회한 길이다. 짧은 길로 갔으면 왕복 30km면 되었지만, 오늘 달린 총 거리는 60km.

 

덕소역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반만에 모란공원에 도착했다. 무슨 노릇인지 모르겠지만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첫 교외 데이트 장소였던 정약용 유적지에 들러 보았고, 양수리 갈대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한가롭던 물새떼들은 갑자기 난리를 피웠고 올려다 보는 산허리 부근에는 자그마한 절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수종사에 꼭 다시 한 번 올라가서 차 한 잔 마셔보고 싶었는데. 두 물이 합쳐 만들어진 바다같은 호수를 호젓하게 내려다 보면서...

 

모란공원에 도착하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중간에 배가 고팠지만 도착해서 먹자며 참고 참았으니까. 무덤 옆 아무데 바윗돌 깨끗해 보이는데 엉덩이를 걸터 앉고 미리 사 간 김밥 두 줄을 씹었다. 김밥은 매우 맛있었다. 마침 참배를 마치고 나오던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보기에는 참 처량하고 웃겨 보였겠지마는...

 

김밥을 잘근잘근 씹고 있으니 모란공원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났다.

 

대학 새내기때,

과 총MT 때였다.

 

흔히 MT장소는 대성리, 강촌이 유명한데 우리과는 서울에서 대성리 가는 길에 있는 샛터란 곳으로 자주 갔다. 한강가에 있는 자그마한 MT촌인데, 난생 처음 보트 타며 물놀이도 해보고, 밤엔 모닥불 피워놓고 술도 먹었다. 그런데 이 MT의 둘째날 프로그램이 바로 아침밥 먹고 모란공원을 참배하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학생회 다웠다.

 

그런데 문제는 샛터에서 모란공원까지 걸어갔다는 사실! 버스로도 수 정거장인데다 지도상으로는 지금 보니 거의 6km. 이 정도면 한시간 반 가까이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런데 그 길을 밤새 술먹고 토하느라 헤롱거리는 이들을 이끌고 가는데다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MT에서 참배를 간다니. 대부분의 신입생들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던 게다. 버스비가 모자라서 걸어갔는지는 모르지만, 꿋꿋이(?) 선배들은 대열을 끌고 갔다.

 

결국 도착은 했지만 몇몇은 그대로 잔디밭 위에 널부러져 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그 꼴을 생각해 보니 참 우습기도 하다. 이미 진지한 선배들(!)과 친밀해진 일부는 고학번 선배(참 우러러 보였다)의 설명을 들으면서 묘 하나하나를 둘러 보았고 거기에 나도 끼어 있었다. 그게 나의 모란공원에 대한 첫 기억이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서점에서 전태일 평전을 사 보았기 때문인지 전태일의 묘를 눈앞에 두었을 때 감회는 남달랐다.

 

그리고 3년 전 쯤인가, 또 무슨 활동가들과의 엠티가 끝나는 길에 일부와 함께 들렀고, 내가 신입생 때의 그 고학번 선배처럼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고, 묵상을 이끌고.. 했다.

 

막상 도착하니 별다른 감흥도 살지 않아 간단히 전태일과 박종철의 묘 앞에서 사진을 좀 찍곤 묵상도 제대로 못한 채 허겁지겁 내려왔다. 내 자신이 운동을 하고 있다고 규정했던 시기의 열사들 -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박일수 - 보다는 아무래도 느낌이 좀 멀다. 그렇다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2000년에 노조활동을 하고 파업집회에 가는 도중 전철역에서 깃대를 뽑다가 전선에 걸려 감전사한 한 분의 열사 이야기가 참 안쓰러웠다. 광주에서 보았던, 검문을 피해 기차에서 뛰어 내리다 목숨을 잃은 한 학생열사의 죽음처럼...

 

모란공원엔 또 언제 다시 갈 지 모르겠다.

언젠가 또다시 발걸음 할 수 있었으면,

또 나도 언젠가 혼이나마 그 옆에 있을 수 있었으면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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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 삼성산

  • 등록일
    2007/02/16 03:19
  • 수정일
    2007/02/16 03:19
중학교 때 마지막으로 등산을 해 본 이후,
십 수년 만에 처음 등산이었다.
햇빛도 좋고. 의외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아주 높은 산도 아니고,
거기다 다른 힘들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중간 능선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왔으니.
등산화란게 참 좋긴 좋군 하는 생각도 했고.
아- 지리산에 가고 싶다-



관악역에서부터 올라갔으니 서울 끝자락에서 안양 쪽으로 이어지는 풍광이 내려다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게 KTX광명역이로구만-




경인교대 주차장.
일행 중 한 명이 저거 보고 생선뼈대 같다고 해서 보니 정말 그렇더라구~^^




사람들 정말 많았다. 이렇게 산에 많이들 오는구나-




전망 좋은 바위 위에서 쉬기도 하고-
하여튼 좋은 시간들.
나중에 다시 보면 좋은 추억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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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봐야 할 곳 - 소안도

  • 등록일
    2007/02/09 13:47
  • 수정일
    2007/02/09 13:47

어제 친구의 말로는,

완도 근처에 있는데,

섬 주민 1100여명 중에 1000명이 사회주의자였고,

무장민병대가 존재했으며,

일제에 운동지도자가 잡혀가자 마을 주민 모두가 연대하는 의미로

겨울밤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잤다는

뭐 사실상 소비에트 내지는 꼬뮌과 비슷했다는

섬이라 한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구체적인 수치는 쪼오끔 차이가 있지만,

언젠가는 한 번 자전거 들고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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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이란 곳

  • 등록일
    2007/02/06 22:01
  • 수정일
    2007/02/06 22:01
허리가 아파 쉬고 있는 동지를 만나기 위해 작별인사(?)차 들른 곳.
어떤 동지는 앉아서 얘기할 만한 까페 같은 것도 제대로 없다고 푸념을 하길래
되게 쬐끄만 도시인가 보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상당히 큰 도시.
여기저기 아파트도 많이 들어서 있고. (혹은 많이 짓고 있고)
어디나 그렇듯이 터미널 주변은 복작복작하고.

동지 차를 빌려서 잠시 태안 바닷가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대도시에서의 운전은 익숙하지만,
신호등이 거의 없는 시내에서의 운전은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다.
차 별로 없을 때 눈치껏 들이밀기~

나즈막한 야산 자락에 들어서 있는 동네에서 하룻밤을 잤다.
그 동지의 집은 정말 커다란 원룸.
피둥피둥 살찐 고양이 녀석 두 마리가 맘껏 뛰놀고 있었다.
덕분에 다음날 오후 그 집을 나올 땐 한참동안 테이프로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은 고양이털을 떼 주어야 했지.

밤에는 횟집에서 새조개를 먹기도 하고.(사진을 못 찍었다. 아쉽~)
맥주집에서 육포를 뜯기도 하고.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되씹기도 하고.
하여간 간만에 술 좀 먹었다.

양옆으로 작게 화단이 조성되어 있는 골목길이 인상적이었고,
집에서 5분만에 자전거로 터미널 도착.
원래는 자전거로 안면도를 종단하려 했으나
숙취와 늦잠으로 뎅글거리다가 그냥 서울로 왔다.

그 동지는 시내 나갈 때도 항상 차를 끌고 다니는 것 같은데,
그 정도의 중소규모 도시야말로 자전거가 시내에선 최고의 이동수단일텐데~

가보기 전에는 서산이란 도시는 참 멀리 있는 것 같았지만.
서울에서 서산은 고속버스로 1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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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일몰

  • 등록일
    2007/02/05 23:01
  • 수정일
    2007/02/05 23:01
태안의 어은돌 해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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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진, 해남

  • 등록일
    2007/01/28 11:57
  • 수정일
    2007/01/28 11:57
에이쒸!!!

한 시간 동안 썼는데, 날렸다!!!

"등록" 버튼을 누르고 나니깐 왜 아무 내용 없이 텅 빈 내용만 뜨는 것이야.
뒤로가기 몇 번 해 봐도 안 뜨네.
우엑우엑우엑.

아씨.
다시 쓰기 귀찮어.

일단 메모와 사진만 남긴다.
나중에 시간 나면, 혹은 땡기면 보완해야겠다...

<메모>

영랑생가. 관심없어 그저 그런
다산초당 옛길. 좋았다.
반찬이 다 김치라는 할아버지.
두륜산 옆자락을 넘고 넘어.
솔직히 힘들고. 1단 잘 안 내려가고. 빨리 가고픈데 시간도 쫓기고.
스트레스 ↑
그래도 소나무 우거진 북일 초교에서 김밥 한 줄 먹고 진정.
끝없이 오르락 내리락
지나치는 여행자, 인사 놓치다.
쇄노재 매점 아주머니.
귤2, 가구마5. 투어가이드.
자식들이 비슷한 또래.
부동산 얘기. 역사 이야기.
40분 앉아 놀다.
77번 도로 힘들더라.
땅끝.
버스.
7일 만에 엔진.
이상한 기분.
이렇게 빠를 수가.
이틀만에 160km 내려왔는데 정신이 없다. 뭐가 뭔지 모를.



영랑 생가.


영랑 생가.


영랑 생가.


강진에 청자 도요지가 있다나.


다산 초당가는 옛길


다산이 걷던 길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라 한다.


유배가 풀릴 것을 앞두고 새겼단다.
똑같이 돌에 새겨도 어떤건 문화재가 되고, 어떤건 자연훼손이 되고.




초당에서 몇 걸음 가면 나오는 정자에서. 바다가 보인다.


쉬어갔던 북일 초등학교.


동백꽃이 피려 하고 있었다.


쇄노재 매점, 그리고 아주머니.
여행 중 가장 길었던 대화.


겨울이 보는 파릇파릇함.


배추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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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째, 광주.

  • 등록일
    2007/01/27 23:50
  • 수정일
    2007/01/27 23:50
찜질방에서 잤던 날 중 가장 잘 잤다.
수면실 시설도 매우 좋았고,
무엇보다 군산 찜질방의 경험을 살려 휴대용 귀마개를 미리 준비한 것이 압권이었다.
앞으로도 찜질방에선 얇은 상의 한 벌과 귀마개 정도면 매우 편안히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광주를 돌아보고, 부지런히 강진까지 가야 한다.
그동안은 하루에 6~70km 정도 탔지만 광주시내에서 망월동까지 갔다가 강진으로 가려면 사실상 거리는 100km가 넘는다.
시간이 부족하면 밤에도 잔차질을 해야 하는 거리다.

밤에 잔차질 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아서 최대한 피하려고 했는데...
화요일에 전남 남해안 지방에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오는 것은 더 최악이다.

월요일에 땅끝에 닿기 위해 강진까지는 간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광주에서는 518관련지를 많이 돌아보고 싶었는데...
전남대와 망월동만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전남대


뭐. 별 느낌 없었다.
정문은 그 때의 정문이 아니라 새로 지어진 정문이라고 하니.
'용지'라고 불리는 연못이 크고 좋아 보이더란 생각 밖에는...
학생회관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싶긴 했는데 시간도 많지 않고 해서 금방 나왔다.


연못에서 노니는 오리들.
나 너네 좋아하는거 알잖아~


망월동



광주시내에서는 대따 멀다. 가는데 한 10km. 40분 넘게 걸렸다.
게다가 길도 안 좋고 차들도 많고 해서 좀 위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도착.

남들은 학교 다닐 때 가보곤 하더라만 나는 어쩐지 한 번도 와 보질 못했다.












거대한 국립묘지가 서 있었다.
이 묘지가 완공되면서, 어찌 보면 박제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잠깐 했다.
묘비 사이를 돌면서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 비문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윤상원 열사의 비석 앞에선 좀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학 1학년때,
월간 노동해방문학에 실려 있던 윤상원 평전.
지금은 변절한 시인 박노해가 쓴 그 글을 읽고 나는 전율했다.
그 글을 읽은 후 나에게 518은 더이상 광주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광주노동자계급의 무장봉기였다.

그 후로 임철우의 장편소설 '봄날',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깃발' 등의 소설책을 쥐곤 했다. 어제 본 '오래된 정원'을 보면 518이 사람들을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20여 년이 지났지만 나에게도 그러했다...

국립묘지를 돌아보고 사진전을 보면 수없이 봐 온 사진들을 감상했다.
여전히 가시지 않는 분노. 한편으로는 허탈함.
문득 다음에 연재되던 강풀의 만화 '그 후 20년'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볼 만 했는데..

구묘역으로 갔다.
안 갔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열사들이 쉬고 있는 곳.
이용석 열사의 묘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용석 열사가 분신하던 그 장소에 나도 있었지.

집회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할 때쯤 뒷쪽에서 연기가 나길래 여느때처럼 유인물, 쓰레기 등을 모아 불을 피우나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었다.
그 때 전신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물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근로복지공단 진입을 위한 몸싸움라인에서 마주쳤던 1001들의 야수같은 폭력도.

그 날 집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최로 열린 첫 전국집회였다.
원래는 상징적인 몸싸움 정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모두는 그냥 그렇게 시늉만 하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날은 그랬다.


구묘역에는 광주, 전남 지역이 고향인 열사들이 묻혀 있는 것 같았다.
87년 6월 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도 있었고,
많은 학생 열사, 노동 열사들이 있었다.

한 학생 열사의 사연이 가슴에 남았다.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다 검문을 피하려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목숨을 잃은 한 학생.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죽음일 지 모르겠지만...

구묘역을 돌고 나니 다른 묘역들도 한 번씩 가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박일수 열사 장례식 때 가 보았던 양산 솥발산과 마석 모란공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남도 땅을 달리며

부지런히 광주 시내를 벗어나 나주를 지나 영암으로 향했다.
먼 거리. 만만치는 않았다.
중간 중간 쉬기도 하면서.



영암읍을 얼마 남기지 않은 고갯길에서 뜻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왠 6.25 희생자 위령탑?


비문을 읽어보니 내용이 영 심상치 않다.
영암군 금정면 연보리.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돌아와서 찾아보니 맞다.

전남 영암 보련학살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1949년 결성된 '국민보도연맹(國民輔導聯盟)'의 취지는 과거 좌익 경력을 가진 사람이나 그 가족을 '도와서 올바른 데로 인도한다(輔導 또는 補導)' 였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정권을 반대한 이들을 모두 보도연맹원으로 가입시켰고 또 지역에서는 할당된 수를 다 채우지 못하자 사상과 무관한 주민들을 대거 보도연맹원으로 가입시키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예비검속되어 학살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약 30만 명이 이렇게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보도연맹원과 함께 좌익 경력자 및 좌익 가족에 대한 예비검속으로 이들 또한 보도연맹원과 함께 모두 학살되었다. 예비검속 및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은 이후 물고 물리는 보복학살의 시작이었다.

1950년 7월 13일(음력 5월 30일) 영암군 금정 덤재에서 경찰이 200-250명의 보도연맹원을 학살하였다. 전쟁이 발발하고 예비검속이 된 보도연맹원들이 며치 구금된 사이 경찰은 이들을 살리고 싶으면 돈을 가져오라 하여 갔더니 이미 보도연맹원들은 사라진 후였다. 당시 유족들은 학살지를 찾아 시신을 확인하였는데 한 구덩이에 5-6명씩 묻혀있었고 이런 구덩이가 40-50개 정도 되었다고 한다.

또 1950년 10월 17일(음력 9월 7일) 영암군 구림에서 경찰이 80여 명을, 1950년 12월 18일(음력 11월 10일) 영암군 연보리 차네골에서 군인이 161명을, 1951년 1월 2일 (음력 1950년 11월 25일) 영암군 구림에서 경찰이 12명을 빨치산 소탕과정에서 학살한 사건이 있다. 이 외에도 영암군 풀씨재 고개, 금정 남송리 등지에서도 학살이 있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자료 : http://www.genocide.or.kr/  )

그 외에도 찾아 보니 이런 자료가 있다.
http://www.dailian.co.kr/area/news/n_list.html?page=2&t_name=gj_news&sel=&search=&kind=mno&keys=3277&idx=&id=9807&room=&area=&sno=&sdate=

http://blog.naver.com/uuuau?Redirect=Log&logNo=40010166441
20세기 전반 동성마을 영보의 정치사회적 동향

특히 위 글을 읽어 보니
내가 넘어온 고개는 바로, 월출산을 배경으로 한 빨치산들의 활동 무대였던 것이다.

고갯마루를 넘으면 나오는 영보리라는 마을은,
좌익 인사들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한때 '영암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했단다.


고갯마루를 앞두고.











고갯마루에 서니 월출산과 탁 트인 남도 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역사의 현장이었다.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은 채 꽂아 둔 이태의 '남부군'이나 다시 봐야겠다.


한밤중에 강진으로

영암읍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졌다.
영암읍은 마치 죽어있는 도시처럼 조용하고 사람도 거의 없어 보이고..
문 연 식당도 별로 없어 보이고(내가 못 찾은 거겠지만)
겨우 고깃집 하나를 찾아서 들어가 밥을 안 먹고 고기나 한 번 시켜 먹어 보았다.
2인분은 시켰는데 혼자인지라 왠지 박대하는 분위기라 좀...;

술은 못 먹고 사이다로...

밥을 먹고는 캄캄한 밤길 30km를 달려가기로 결심했다. 중간에 터널도 하나 지나야 하고.
그리고 강진으로 가는 길.

처음 출발할 때는 바로 머리 위해 오리온 자리가 떠 있었다.
"오리온, 날 지켜줘~"

가끔씩 차들은 쌩쌩 지나갔지만
왠지 오싹한 느낌.
귀신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

시가지가 아닌 곳은 정말 '캄캄'하다.
자전거로 긴 오르막을 오르는데 힘든 건 둘째치고,
 캄캄한데 멈춰 서 있는게 더 무서워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결국 터널 하나를 지나고 부지런히 간 끝에 한 시간 반만에 강진읍 도착.
저 멀리 시가지 불빛들이 보이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터널 속의 환한 불빛 바로 옆에서 나는 잠시 쉴 수 있었다.
빛이 있고 없고에 따라 인간은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하는 것인지.


강진 진입.
이렇게 20인치 바퀴로 100km를 끊었다.
26인치 바퀴로 다닐 땐 100km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ㅠ.ㅠ

찜질방은 없고,
여인숙은 못 찾고,
온돌 있는 모텔방을 찾아서 옷도 말리고, 씻기도 하고..
아무래도 너무 무리했나 보다. 오른쪽 허벅지가 찌릿찌릿 했으니.
자다가 다리에 쥐 나지 않을까 싶어서 문득 겁이 났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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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째, 담양.

  • 등록일
    2007/01/26 16:52
  • 수정일
    2007/01/26 16:52
여행 다섯번째 날. 목적지는 담양, 그리고 담양을 넘어 광주에 도착해 자는 것.
그런데 이날은 구경한 것보다 예닐곱 개의 고갯길을 넘었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정읍에서 담양으로 갈 수 있는 코스는 두 가지.

장성으로 좀 돌아가거나, 내장산을 직접 넘어서 가거나, 내장산 옆을 돌아 순창을 걸쳐 담양으로 넘어가는 길.
전라도는 경상도에 비하면 정말정말 평야가 많지만,
전북에서 전남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노령산맥 줄기가 뻗어나와 내장산 자락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아마 장성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나마 언덕이 좀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순창을 걸쳐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분명히 계획을 짤 때는 장성으로 가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왜 당일 아침에 코스를 바꿨는지 모를 일이다.

"1번 국도 타고 장성으로 가면 엄청 돌아가는 거야~"
라는 택시기사의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내가 잤던 찜질방의 위치가 1번국도로 쪽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내장산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이 날.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아침 7시 30분에 출발.
장장 다섯 시간 가까이 자전거를 타다가, 질질 끌고 가다가...;;
10km의 오르막과 10km의 내리막을 지나 겨우 담양에 도착했다.

하지만 담양에 도착한 것으로 고개 넘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광주로 가기 위해 나는 그 날 무등산 자락도 넘어야 했으니깐...


처음 찜질방을 출발해 내장산을 향하는 드넓은 도로에서는 참으로 상쾌했다~
그러나. 담양으로 향하는 표지판과 함께 등장은 높다란 언덕길.
나는 이 길로 갔던 것이다.



고개 하나를 넘어 보니 저 앞에 더 큰 고개가 또 하나 보이고.
지도에서 M자로 꺾인 곳을 겨우 넘어 경계선을 넘으니 드디어 순창군이 나왔다.


내가 넘어온 길. 과연 오늘 안에 담양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저~ 밑의 평지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내장산이 거의 눈높이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씨는 흐리고,
햇빛은 나지 않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몸과 옷은 흠뻑 땀에 젖은 상태.
길은 깨끗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눈은 여전히 녹지 않고 곳곳에 쌓여 있었다.
8km가량의 긴 내리막을 내려오는 동안, 정말 추웠다.
싸구려 등산자켓은 땀을 자기가 흡수해서 다 머금고 있는고로 정말 얼어죽는 줄 알았다.


옷을 보니 이렇게 얼음이 얼었다.
이건.... 여의도에서 겨울에 물대포에나 맞았을 때나 봤던건데 헉.

한 시골 마을을 지나가는데 연기가 나고 있었다.
모닥불이 있나보다! 싶어서 달려가 보았더니

보기에는 따뜻한데 제대로 불을 쬘 수는 없을 정도.
이틀 전 격포에서의 그 커다란 장작불이 어찌나 그립던지.
솥 안에는 과연 뭐가 끓고 있었을까?

할 수 없이 몸을 녹이는 것도, 옷을 말리는 것도 실패하고 다시 달리다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어느 교회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싹 갈아 입었다. 그러니 조금 낫더만.

순창군 쌍치면을 지나 담양군으로 들어간다. 순창에서 담양을 넘는 경계도 고갯길이다.
아... 차 타면 금방인데 이 고생을 왜 내가 사서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큰 고개를 하나 넘어 담양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은 가벼워 진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담양 가는 길. 원래는 개장 앞에 수많은 닭들이 뛰놀고 있었는데
사진 찍으려고 어물어물 하는 바람에 개장 뒤쪽으로 닭들이 다 숨었다.
고갯길을 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개그야의 "킬리만자로의 걔"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더니, 니가 '쳐다본다'냐?"
"아니다. 내 이름은 '닭 쫓던'이다. 너야말로 '쳐다본다'냐?"
"아니다. 내 이름은 '지붕'이다."
"그럼, 누가 '쳐다본다'냐~~~~~"
(정말 불쌍한 얼굴로 김완기가 등장한다)
"내가............. '쳐다본다'다..........."
그 다음엔 어떻게 했더라? ㅋㅋ

담양으로 접어드니 왼쪽에는 거대한 담양호가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전남5대 명산 중 하나라는 추월산이 나온다.
추월산 참 범상치 않게 생기긴 했다.


담양호. 전망좋은 곳에서 찍은 사진.


추월산 옆구리도 다시 넘어넘어 드디어 담양읍에 도착.
죽녹원에 도착했다. 작은 산등성이에 만들어진 대나무숲 공원 정도 된다고 할까?


죽녹원.
겨울이라 춥긴 했지만 도통 녹색을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마음껏 녹색을 즐길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운수대통'이란 건데. 여기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질 지 모른다나~
이건 '어린이용'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의 꿈은 의사, 박사, 예술가밖에 없단 말인가~~


이건 어른용.
'대박' 뭐 이런 것도 있고. 나도 하나 던졌는데 '사랑'에 골인~ 음하하!

대나무숲 곳곳에 소풍 다녀간 고등학생들의 소원지를 매달아 두었다.
이거 보는게 참 재미있었다. 소원의 대부분은 '수능 대박' 고3애들이 왔다갔나 보다.






가끔 이런 애들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보다 부자가 되려면..
이건희 친척 정도는 되야 조금 가능성이라도 있을텐데?


캬. 멋지다.


우주 정복의 첫 관문은 수능이로군. 음..


응. 그래 뭘 기다렸니?


오늘의 베스트.

지구가 역자전 하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런지 ㅡ.ㅡ;
잠시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일단 지구가 거꾸로 돌면.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
그리고 계절풍, 무역풍 따위의 방향이 바뀌면... 기후가 달라지나...?
아 그러면 기후재앙이 생길 수도 있고 혹시 세계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아닐까.
나 원 참.












죽녹원은 괜찮았다.

관방제림도 둘러 보고 메타세퀘이어 길도 둘러 보았다.
생각보단... 역시 가을에 왔어야 했나.
그래도 담양 읍내를 흐르는 천변은 잘 가꾸어 놓았다.






담양읍내 김밥천국을 찾아 밥을 먹었다.
다음 목적지는 소쇄원. 지도가 있었지만 그냥 현지 사람에게 말도 붙일 겸 식당 아저씨한테 물어봤더니 한 번도 못 가봤다면서 잘 모르더라.
아저씨도 내가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 보길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자기는 연중무휴로 식당을 해야 해서 어디 놀러가거나 할 여가가 없다고.
왠지 말 속에 아쉬움이 배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괜히 물어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이제 담양과 광주의 경계 쯤에 있는 이른바 '가사문학문화권'의 중심지인 소쇄원으로 출발.
지나다 보니 광주호가 나온다. 참 곳곳에 인공호수가 많다.


먼저 도착한 곳은 식영정. 여기가 참 경치가 좋았다. 광주호를 내려다 볼 수도 있고.










반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온 소쇄원. 한국식 전통정원이라는데.
솔직히 1000원 내고 들어간 것 치고는 대실망.
겨울이라서 그랬나. 아니면 해 지기 직전이어 햇빛이 없어서 그랬나.
무슨 수해 당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어차피 건전지가 다 돼서 사진도 얼마 못 찍었다만. 하여튼...


소쇄원을 나오니 해가 다 졌다.
이제 광주 시내로 들어가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소쇄원 쪽에서 광주로 가는 길은 두 개. 대체로 평탄하지만 거의 'ㄱ'자로 돌아가는 코스가 있고, 무등산 자락을 넘어 거의 직선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
또 살짝 주유소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얼마 안 걸린단다. 자전거로 20분이면 된다나.
설마... 20분은 아니고 3~40분은 되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침 세부적인 지도가 없었다. ㅡ.ㅡ 그 부분만.

주유소 아저씨 말을 믿는 바람에 나는 또 캄캄한 밤에 두 개의 고개를 넘어 한시간 반만에 광주 시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쌩쌩 달리는 차들을 욕하면서.
에휴~


두번째 고갯마루에서 만난 광주 시내 야경.
어찌나 반갑던지-

시내에 들어가 저녁은 대충 때우고.
찜질방을 찾았다. 광주 시내 굴지의 찜질방. 마침 토요일 밤이어서인지 진가 수백 명이 복작복작하고 있었다.
과연 잘 잘 수 있을까...

자기 전에 내일 코스를 점검했다.
이왕 가는 거 땅끝까지 간다. 그러면 내일은 무조건 강진읍까지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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