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군사문화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04
    진급하는 삶(2)
    나은
  2. 2009/02/13
    사진전, 39조 2항. (1)(4)
    나은

진급하는 삶

  • 등록일
    2009/03/04 12:55
  • 수정일
    2009/03/04 12:55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이란 책이 있다.

남자들은 한 번 볼 만 하다고 권유하길래 빌려서 읽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집 안에서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경험은 이해는 가도 확 와 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라 온 환경에 조금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필자의 어린 시절은 시골 마을의 옛 형식의 가옥이었다. 즉, 농촌의 삶에 가까웠다. (비록 농사를 짓는 집은 아니었어도)

반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가족 간의 위계는 필자의 그것보다는 살짝.(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자체는 전근대와 근대를 왔다갔다 하지만) 약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남성 가장은 가족을 부양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가장이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다만 내가 명절 때 시골 조부모 댁에 내려가고, 아버지 형제가족들 다수가 시골집에 모였을 땐 확실히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 눈에 확 드러났다.

 

내가 더 깊이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필자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후의 경험을 적은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은 선택이 아니라 진급이다"란 언급이 참 적당하다.

김어준도 <건투를 빈다>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계속 '아이'로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데 비슷한 얘기다.

 

태어나서 유치원에(혹은 유사한 유아교육기관) 가고, 그 다음엔 초등학교, 다음엔 당연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서, 남자는 군대에 가서 이병에서 일병으로, 상병으로, 병장까지 진급한 다음,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애를 똑같은 싸이클로 잘 키운 다음에 애들을 취직, 결혼시키고, 그 애들이 또 손주를 낳으면 그 손주를 봐 주면서 또 똑같은 싸이클로...

 

이게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편타당한' 라이프 싸이클이고, 여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날라 치면 주변에서 온갖 간섭과 회유와 협박과 걱정이 휘몰아치면서 당사자는 계속 불안과 스트레스에 놓이게 되고 꿋꿋이 자기 선택대로 밀고 나가거나 아니면, 결국 굴복하고 마는 비극이 참 다채널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한편 삶이 곧 진급이란 얘기는, 우리 삶에 '계급'이 실재하고 있단 얘기다. 어느 집단, 모임에서든 신분의 위 아래를 구분하는 게 가장 먼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권위주의는 곳곳에 살아 넘친다는 얘기. 하물며 서로 '동지'라고 호칭하는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학번의 권위와 성별의 권위와 기타 등등은 다 깔려 있다.

다음에 기회 되면 좀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초중고 학교에서의 경험과, 학생운동에서의 경험과, 군대에서의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다.

 

"권위주의와 커뮤니케이션은 정반대 위치에 있다"는 필자의 말도 그래서 참 와 닿았다.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거나 구성원이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있는 곳은 권위주의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맞는 얘기다. 경험상으로도 충분히.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도 그대로 진급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이후엔, 약간의 파열음을 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거스르며 살아왔냐.. 그것도 아니다. '동굴 속 황제'의 모습은 아직 내 안에 있으니까... 군대에서도 무사히 진급해서 보편 라이프 싸이클에서 군대까지 일단 찍었다. 집에서는 이제 다음 단계로 진급하라고, 취직과 결혼을 종용한다.

 

내 안의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얼까.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제자리뛰기는 시작했는데 아직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진전, 39조 2항. (1)

  • 등록일
    2009/02/13 21:58
  • 수정일
    2009/02/13 21:58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전희경의 [오빠는 필요없다].

생생한 사례가 지금 눈 앞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제 웬만한 단체나 조직은 반성폭력 내규 쯤은 하나씩 갖고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뻔하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남자들의 '24시간'을 바꾸지 못했다. 24시간동안 일어나는 모든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남자들은 '입으로만' 수용했을 뿐이다. 제스춰를 취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나는 여기서 이 굳건한 가부장성을 떠받치는 하나의 집단에 주목한다. 군대. 그리고 군대가 만들어내는 사고방식과 문화, 이른바 군사문화가 가부장성을 확대재생산하는 튼튼한 뿌리임을 확신한다. 지난 2년 동안 몸소 체험해 왔다.

 

내 인생의 일부를, 지워야할 기억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지금 커다란 숙제를 껴안고 있다. 나의 군대경험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깔린 군사주의와 가부장성을 성찰하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전시회, 39(2)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

 

F15K, 넌 참 좋은 기계인데 요즘 살인기계로 보여.

내가 이 기계를 몰게 될 수 있을 텐데,

실수로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한 공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의 블로그에서 시작된 파문.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노순택 작가의 "좋은 살인"이란 주제의 사진들이 내 눈을 붙잡았다.

 

창공을 가르는 수천억원의 첨단 군용기들에 한 껏 매료된 사람들.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어린이와 양 옆에서 '환한' 미소로 V자 포즈를 취한 미군들.

패트리어트 미사일 사이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 어린이들.

아이는 아빠에게 기관총을 쏴는 자세를 취하고, 아빠는 디카로 그 장면을 자랑스럽게 사진에 담고.

군인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게 수류탄 투척하는 자세를 바로잡아 준다.

 

군대를 홍보한다는 명목 하에 에어쇼가 펼쳐지고, 지상군 무기들을 전시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강한 정신력을 길러준다며 군사훈련 캠프가 열린다. 나도 중학생 때 최첨단 전투기를 볼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에어쇼에 갔었고, 부모로부터 해병대 캠프 참가를 권유받기도 했다.

 

최첨단 무기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기계의 목적을 보지 못한다. 눈앞에서 보여 주는 기계의 '아름다움'에 현혹된다. 이렇게 해서 군대는 그들의 홍보문구를 사람들의 뇌리에 남기는 데 성공한다.

"강한 친구"

 

한편, 아카데미과학사의 프라모델 부품들을 렌즈에 담은 사진들은 어떤지.

 

나, 중학생 때까지 취미가 프라모델 만들기였다. 탱크, 비행기, 군함... 안 만들어본 종류가 없다. 어린 시절, 베레타 권총이니 M16A1이니 우지 기관총이니 콩알만한 플라스틱 탄알이 발사되는 총기류, 다 가지고 놀아 봤다.

 

또각또각, 니퍼로 이음매들을 끊어내고, 살짝 본드칠 해 부품들을 끼워 맞추면, 금새 눈앞에선 전투기가 탄생하고, 각종 폭탄과 미사일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조립한 이는 그 조형미와 설명서에 적힌 가공할 파괴력의 제원에 열광한다. 그 '힘'의 축소판이 내 눈 앞에 있다! 힘 앞에 매료되면서 그 기계의 존재 이유는 뇌리에서 잊혀진다. 눈앞의 조형물이 가자에서 죄없는 이들을 죽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대체 왜. 프라모델의 세계는 무궁무진한데, 문방구에는 그토록 탱크, 전투기, 군함만이 많이 있었던 걸까. 왜 나는 그런 것들을 만들며 열광했었나.

 

 

http://a39c2.wordpress.com/ (전시 블로그)

http://www.artsonje.org/asc/kor/exhi/2008/081201.html (아트선재센터 소개글)

 

 

전시제목 “39(2)”

전시제목인 “39조 2항”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명기한 헌법 제 2장 중에서 제 39조의 2항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조문에서 인용하였다. 헌법은 39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기하였고, 2항의 조문은 군복무에 대한 헌법상의 보상규정으로 원용되어 왔다. 전시 제목에는 헌법에 명시된 한 줄의 문장으로 개인의 불이익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담겨있다. 5 명의 참여작가들도 한국의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지를 그들의 작업 안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러니와 수수께끼를 담아내고 있다. 이 전시가 한국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하나로 군사문화와 전쟁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39조 2항”을 전시의 제목으로 인용하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