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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39조 2항. (1)

  • 등록일
    2009/02/13 21:58
  • 수정일
    2009/02/13 21:58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전희경의 [오빠는 필요없다].

생생한 사례가 지금 눈 앞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제 웬만한 단체나 조직은 반성폭력 내규 쯤은 하나씩 갖고 있는 시대다. 그런데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뻔하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남자들의 '24시간'을 바꾸지 못했다. 24시간동안 일어나는 모든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남자들은 '입으로만' 수용했을 뿐이다. 제스춰를 취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나는 여기서 이 굳건한 가부장성을 떠받치는 하나의 집단에 주목한다. 군대. 그리고 군대가 만들어내는 사고방식과 문화, 이른바 군사문화가 가부장성을 확대재생산하는 튼튼한 뿌리임을 확신한다. 지난 2년 동안 몸소 체험해 왔다.

 

내 인생의 일부를, 지워야할 기억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지금 커다란 숙제를 껴안고 있다. 나의 군대경험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깔린 군사주의와 가부장성을 성찰하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전시회, 39(2)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

 

F15K, 넌 참 좋은 기계인데 요즘 살인기계로 보여.

내가 이 기계를 몰게 될 수 있을 텐데,

실수로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한 공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의 블로그에서 시작된 파문.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노순택 작가의 "좋은 살인"이란 주제의 사진들이 내 눈을 붙잡았다.

 

창공을 가르는 수천억원의 첨단 군용기들에 한 껏 매료된 사람들.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어린이와 양 옆에서 '환한' 미소로 V자 포즈를 취한 미군들.

패트리어트 미사일 사이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는 어린이들.

아이는 아빠에게 기관총을 쏴는 자세를 취하고, 아빠는 디카로 그 장면을 자랑스럽게 사진에 담고.

군인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에게 수류탄 투척하는 자세를 바로잡아 준다.

 

군대를 홍보한다는 명목 하에 에어쇼가 펼쳐지고, 지상군 무기들을 전시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강한 정신력을 길러준다며 군사훈련 캠프가 열린다. 나도 중학생 때 최첨단 전투기를 볼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에어쇼에 갔었고, 부모로부터 해병대 캠프 참가를 권유받기도 했다.

 

최첨단 무기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기계의 목적을 보지 못한다. 눈앞에서 보여 주는 기계의 '아름다움'에 현혹된다. 이렇게 해서 군대는 그들의 홍보문구를 사람들의 뇌리에 남기는 데 성공한다.

"강한 친구"

 

한편, 아카데미과학사의 프라모델 부품들을 렌즈에 담은 사진들은 어떤지.

 

나, 중학생 때까지 취미가 프라모델 만들기였다. 탱크, 비행기, 군함... 안 만들어본 종류가 없다. 어린 시절, 베레타 권총이니 M16A1이니 우지 기관총이니 콩알만한 플라스틱 탄알이 발사되는 총기류, 다 가지고 놀아 봤다.

 

또각또각, 니퍼로 이음매들을 끊어내고, 살짝 본드칠 해 부품들을 끼워 맞추면, 금새 눈앞에선 전투기가 탄생하고, 각종 폭탄과 미사일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조립한 이는 그 조형미와 설명서에 적힌 가공할 파괴력의 제원에 열광한다. 그 '힘'의 축소판이 내 눈 앞에 있다! 힘 앞에 매료되면서 그 기계의 존재 이유는 뇌리에서 잊혀진다. 눈앞의 조형물이 가자에서 죄없는 이들을 죽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대체 왜. 프라모델의 세계는 무궁무진한데, 문방구에는 그토록 탱크, 전투기, 군함만이 많이 있었던 걸까. 왜 나는 그런 것들을 만들며 열광했었나.

 

 

http://a39c2.wordpress.com/ (전시 블로그)

http://www.artsonje.org/asc/kor/exhi/2008/081201.html (아트선재센터 소개글)

 

 

전시제목 “39(2)”

전시제목인 “39조 2항”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명기한 헌법 제 2장 중에서 제 39조의 2항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조문에서 인용하였다. 헌법은 39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기하였고, 2항의 조문은 군복무에 대한 헌법상의 보상규정으로 원용되어 왔다. 전시 제목에는 헌법에 명시된 한 줄의 문장으로 개인의 불이익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담겨있다. 5 명의 참여작가들도 한국의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지를 그들의 작업 안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러니와 수수께끼를 담아내고 있다. 이 전시가 한국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하나로 군사문화와 전쟁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39조 2항”을 전시의 제목으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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