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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눈이 옵니다

어제 저녁부터 간간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늘도 하루 종일....

아직도 가는 눈발이 날린다.

 

오늘 토끼님 가족들한테 밥풀처럼 붙어서 애팔레치아 산맥(오호....)의

아주 눈꼽만큼을 돌아보고 왔다.

눈이 어찌나 많이 쌓여 있는지 snow shoe를 신고 가는데도 발이 푹푹 빠져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밟았을 때 쑤~욱 하며 몸이 빨려들어가는 느낌... 예상한 깊이에서 바닥이 나오지 않을 때, 눈 속 허공에서 발이 자유롭게 움직일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란.....

 

넘어진 횟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눈 신발에 적응이 안 되다보니 발이 꼬여서 넘어지기도 하고, 눈 바닥이 너무 깊어 훌러덩 뒤집히고 하고... 비스듬 오르막길에서 눈이 자꾸 무너져내려 옆의 나뭇가지들을 잡고 필사의 사투를 벌이느라 고생했는데, 남들이 보면 진짜 웃겼을거다. 별것도 아닌 오르막에서 혼자 계속 굴러떨어지며 엄한 나뭇가지들만 다 부러뜨리고.... ㅡ.ㅡ

 

마지막에는 토끼님 사진찍다가 크게 한 판 했다. 

어디 계곡에서 떨어지기라도? 

그럴리가 있나.

사진 찍는다고 맨 손에 사진기 들고 후진하다 뒤로 넘어져서 손도 꼬이고 발도 꼬이고..

토끼님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눈 속에 꽈배기처럼 파묻혀서 얼어 죽을 뻔했다 ㅡ.ㅡ

 

아래 사진은 늠름한(?) 토끼님의 모습... 여기까지만 늠름이다. 조금 있으면 체력이 바닥나서  헥헥..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갔다. 김치까지... 애팔레치아 산맥에서 김밥에 김치 펴놓고 한국인의 기개(흐엑)를 과시했다. 뿌뜻해하는 토끼님 모습....


 

알고 보니, 우리가 갔던 길이 원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갈쳐준 등산로가 아니라 난이도 엄청 높은 크로스 컨트리 스키 코스란다. 그럼 그렇지... ㅎㅎㅎ

 

오는 길에 눈꽃도 무지 예쁘고, 경관도 예술이었는데 다리도 아프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허리까지 쑤셔서 다른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다. 그나저나 사진기 들고 넘어질 때 케이스가 날아가면서 그 안에 여벌로 담아놓았던 32M 메모리가 없어졌다. 한국 가면 김가한테 뺐어야지.

 

대략 산에 대한 정보를 파악했으니, 내년 겨울에는 진짜로 한 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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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보기

하버드 필름 아카이브에서 3월 21에 다큐멘터리 [송환]을 상영한단다. 김동원 감독이 직접 참석한다는군....

 

오늘 영어 선생한테 같이 보러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봤지만, 웬지 미국 친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도 남의 나라 역사를 잘 모르지만, 미국 사람들은 정말 바깥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 애국애족심이 넘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우리의 현대사를 보여주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야.. 오늘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우리네 현대사에 대해 엄청 썰을 풀어놓았다. 일제 점령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 남북의 대치, 국가보안법, 군사독재 등등등.. 되도 않는 영어로 이 파란만장한 사실들을 전달하려니 식은 땀이 삐질삐질...  내용이 맞았는지도 좀 의심스럽고....  이전에 볼 때, 영어 자막이 같이 나오는 걸 봤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내용 전달이 안 될 것 같아 사전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경제발전과 군사독재 이야기를 하다가 전태일 열사를 언급했는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고가 났냐고.. 아니라니까 그럼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영어로 이를 표현하다보니,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던가 스스로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보아왔기에 둔감해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누가 죽었고, 누가 죽음을 시도했고 뉴스를 통해 진도를 따라가기마저 힘들지 않았던가.... ㅡ.ㅡ

 

그 불에 타 숨진 노동자의 어린 여동생이 힘들게 공부해서 영국에서 여성 노동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에 돌아왔고,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더니만, 이 양반 진짜로 감동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드물고도 극적인 인간 드라마...

 

송환에 관한 대략의 줄거리를 알려주었더니만, 이제는 남북한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이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다고 했더니만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이산가족 상봉 후에 여전히 남북 가족들이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니까 황당해하기까지 했다. 내가 말하고도 상황이 진짜 어처구니 없어 보이긴 했다. 원래도 부당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막상 사전 지식 없는 외국인에게 설명하려고 보니 역사적 맥락이고 정치적 배경이고를 떠나서 진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한국 사회에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나 자신의 역치가 무섭도록 높아져 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관성의 무서움, 그리고 낯설게 보기의 소중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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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눈

밤 눈

 

 

기 형 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온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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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하고 둘 째 주에 저게 웬 난리란 말인가.

거센 눈보라 땜시 창문이 떨어질 지경이다.

커텐 뒤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에 장난 아닌 눈보라의 포스가 느껴진다. 흑....

사나운 밤은 절대 고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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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위지 추모 모임

김 모 선생님의 소개로 Dr.Himmelstein의 집에서 열린 스위지 1주기 추모 모임에 댕겨왔다.

사실, 그가 좌파적 시각의 빼어난 자본주의 분석 서적을 냈고 monthly review 편집장을 오래 했다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의 전부...

 

가서 고인의 신문기사 스크랩과 저서들을 둘러보니... 오호... 훌륭한 분이더군.

 

허나 하늘도 불공평하지... 지금 시티뱅크의 전신이 National Bank 부사장의 아들로 태어나, 머리도 어찌나 좋은지 명문 고등학교에 하버드 대학, 거기에 런던 정경대... 30대 초반의 나이에 "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를 집필하고... 심지어 얼굴까지 정말 잘생겼다고 하니 원..... 생전의 지인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운동도 잘 하고, 요리도 잘하고, 정원마저 잘 가꾸었단다.... 이럴 수가....ㅡ.ㅡ

 

모임 분위기는 전형적인 미국식 슬렁슬렁.... 딱히 공식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명 나와서 고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주변에 관련자료들 펼쳐 놓고 간식 집어 먹으며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 나누는.. 근데 뭐 아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이전에 로웰 대학에서 만났던 산업보건 연구자 한명을 보았는데 그런 곳에서 보니 반갑기는 하더라만... 근데..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장난이 아니었다. 고인이 93세에 돌아가셨다 하니 그 친구, 동지들이라는 양반들이 다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 할배들.... 한 할배 나와서 말씀하시길 "내가 그를 를 처음 만난 건 1943년...어쩌구...."  이크... 거의 내가 제일 젊은이가 아니었나 싶다..... 미국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갔는고....  지난번 하워드 진 강연 때도 젊은이들은 안 뵈고 나이 지긋한 양반들만 줄줄이 앉아 있었는데....

 

어쨌든, 뭐 학술적인 업적과 정치 활동들을 다 떠나서, 50년 이상 꾸준하게 Monthly Review를 발간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불같은 열정을 폭발시키는 사람이야 많지만, 오랜 세월 한결같이 꾸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더구나 이런 적대적 환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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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기사 (상) 2004.3.3 - 김민웅 목사 기고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40303180428&s_menu=문화

 

프레시안 기사 (하)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40303180549&s_menu=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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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잣대

미국 사회에 살아온게 어언 반 년을 지나면서, 나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던 두 가지 잣대를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첫 번째 경향.

정치경제적 토대에 주목하지 않고 단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현상을 설명하는 (특히 건강 형평성 관련 논문들) 분석들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다. 이를테면 "세상 물정 모르는걸. 순진하기 이를데 없군. 윤리라는 모호한 대의명분에 호소를 하다니, 자본주의를 물로 보는 거여? ...."

 

두 번째 경향.

현실에서 마주치는 여러가지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유독 "건전한 상식 있는 인간"의 자세를 강조함. 남의 연구 결과를 비판할 때의 냉철함(?)은 사라지고, 대략의 기조는 "이론이고 뭐고 인간들이 저러면 안 되지. 너무 하잖아..."

 

이래서 나타나는 문제점 들로는...

남의 연구는 우습게 보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감정과 인의를 내세우면서 통찰력 있는 이론적 작업을 방기...ㅡ.ㅡ

"인권"이 갖는 무 당파성, 계급 은폐적 성격을 과도하게 경계하느라 내가 지향하는 인간 해방이 그것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인것처럼 사고...

 

이러한 측면에서, Wright의 책은 대오각성(ㅡ.ㅡ)하게 만들고 있음.

착취(exploitation)라는 단어가 개별 자본가의 도덕성을 힐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존재 조건을 개념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상황의 "부도덕성" 에 대한 비판을 여전히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

 

 사족이지만....

 어렸을 때는 오만방자해서 (지금도 쪼금...) 도대체 누굴 존경할 줄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존경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거의 유일하게 존경했던 부르디외에 이어 Richard Levins, Howard Zinn과 Erick Wright도 조금씩 존경의 마음이 생겨나고 있음... 그 통찰력 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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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 이 글은 뻐꾸기님의 [토성에서 왔다니] 에 관련된 글입니다.

 

해왕성이라니....

 

타고난 영적 능력을 가진 당신은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당신은 음악, 시, 춤을 좋아하고 그 무엇보다 넓은 바다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정신은 가능성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당신의 가슴에서는 열정이 샘솟습니다.

당신은 친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을 때도 외로움을 느낄지 모릅니다.

한 가지 생각에 너무 깊이 잠기지만 않으면, 당신의 영성이 예리한 통찰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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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시, 춤이라.... 가장 거리가 먼 것들만 줄줄이 ......

거기다 영적 능력에 몽환과 신비라니...  

그리고 외로움이란 걸 평생에 별로 느껴본 적이 없는데.... 인간이야 원래 고독한 존재 아니겠어. 근데, 넓은 바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담?

 

영성이 예리한 통찰력을 가져다 준다니 감나무에서 감떨어지기를 기다리듯 한번 기다려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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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원틴과 레빈스의 글 하나

* 이 글은 marishin님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의 오류] 에 관련된 글입니다.

딱히 관련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변증법적 생물학자"들인 두 공저자의 [과학의 상품화]에 관한 글의 일부 ...

 

"............. 과학의 상품화는 특별한 변환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논의하는 것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 활동에서의 이러한 변화가 낳은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과학의 상품화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자고 호소하기 위해 과학의 상품화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트러스트를 야기했던 과거의 바로 그 상황들을 재현하고자 했던 반(反) 트러스트 법만큼이나 쓸데없는 짓이다. 우리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과학의 상품화, 자본주의 생산 과정에의 전면적인 결합은 학술 활동을 위한 삶에서 지배적인 사실이며 과학자의 사고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의 힘에 종속된 채로 남아 있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를 향한 첫 걸음은 우리 부자유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과학자로서, 우리는 과학의 상품화가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그들 노동의 산물로부터 소외되는 일차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는 과학의 강력한 통찰력과 이에 상응하는 인류 복지의 향상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때로는 공표된 목표와 모순되는 결과들을 생산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굶주림이 지속되는 것은 식량 공급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방해하는 어떤 강력한 걸림돌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농업이 이윤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반면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는 단지 간접적으로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건의료 조직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기업이며 사람들의 건강 필요에 의해서는 단지 부차적으로만 영향을 받는다. 과학적으로 정교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성들은 지성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집요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는 또한 부산물로서 인간 지성을 유산시킨다.

  일부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갈라서고 있는 현실에서, 현재 과학의 존재 방식이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의 구조는 자연의 섭리가 아닌 자본주의에 의해 부과된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방식을 열심히 따라할 필요는 없다. "

 

 

혹시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진보넷 메일로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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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ieties of capitalism

일단 제목만 적어놓고...

 

한국말로 뭐라 하는지 찾아보았지만 없구만. 자본주의의 다양성.. 이건 아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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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장관의 오지랍....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이 엊그제 한국의 가장 큰 뉴스거리였던거 같다. 좋아하던 배우 중에 하나인데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고인의 명복을.....

 

그런데 말이다....

김근태 장관, 이건 분명 오바질이다. (언론의 호들갑은 논외로 하자)

 

그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하던 젊은 여배우의 죽음에서 전태일 열사를 떠올렸단다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2/005000000200502241623001.html). 

아서라..... 오히려 장국영, 아니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리버피닉스나 제임스 딘을 떠올렸다고 했어야 했다.

 

사실 이 날 비슷한 또래의 여성 학습지 교사 노동자 한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울증 병력 이야기도 있고, 회사측의 부당업무 강요와 위약금 문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50492) 그녀 말고도 김근태 장관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여기저기서 생활고 혹은 비정규 문제로 인한 자살과 그 시도가 줄을 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대목에서 전태일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면 여배우의 죽음 말고 "다른" 안타까운 죽음들이 있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이들의 죽음이야 말로 진짜 "보건복지"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퍼뜨리고 대권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해줘야 한다. 이런 문제는 "노동"부 장관의 소관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은주씨 추모는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넘겨 주었어야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 오지랍 넒은 행동은 "조바심" 과 "과욕"말고는 해석할 길이 없다.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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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 8장

1. Chap 7. The scorecard on globalization 1980-2000: its consequences for economic and social well-being

 

- 1960년과 1980년 시점에서 각종 지표들을 5개 군으로 층화하여 각 층에 속한 국가들의 이후 20년(1960-1980, 1980-2000) 구분하여 두 시기 동안 지표의 평균 변화율을 비교. 이를 통해 80년 이후(즉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된 후) 성장이 더 가속화되었는지 판단하고자 했음. diminishing returns의 효과를 통제하기 위해 시작 시점에서 5개 군으로 층화 : 이렇게 해보니 GDP, 기대여명, 어린이 사망률, 교육 수준 등에서 모두 세계화 이후 성장이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나며 저개발국가들일수록 그 둔화 폭이 훨씬 크게 나타남 (즉, 세계화가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는 기존 논리에 대한 반증)

- 바뜨, 과연 이렇게 해서 비교를 하는 것이 적절한가? 이를테면 60년 시점에서 3분위군 소득에 속하던 국가가 80년 시점에서는 4분위 군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여전히 3분위군끼리, 4분위군끼리 비교하는 것이 타당한가? 실제로 각 군별 분포도 후반기에 훨씬 상향 분포하고 있지 않은가. 종적 비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운 분석틀

- 시간적 속발성을 살펴본다면, 자본주의의 침체가 결국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대응 전략을 낳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후반기의 성장 둔화를 "세계화"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불합리.

- 하지만 어쨌든 세계화의 영향이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은 눈여겨볼 결과이긴 한데, 과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  

 

2. Chap 8. The widening gap in dealth rates among income groups in the United States from 1967 to 1986

 

- 두 시점(1967 & 1986) 미국의 사망 조사자료를 이용해 흑/백, 남/녀 군에서 소득격차에 따른 사망률 격차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파악하고자 하였음 : 절대적 차이 (slope index of inequality)의  경우 공히 감소했으며, 상대적 차이(relative index of inequality)로 측정할 경우 불평등 심화. 특히 흑인 남성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남.

- 논문에 오타 심각 (ㅜ.ㅜ)

- 흑/백 사이의 차이보다는 소득군간의 차이에 보다 집중. 실제로 기존 연구결과들에 비해 흑백 차이가 덜 심하게 나타나는 편. 상대적으로 소득 문제를 강조하면서 인종 불평등의 문제가 덜 기술된 측면이 강함.

- 왜 사망 불평등이 심화되었는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음. 흑인 남성의 사망률 격차가 가장 극심하게 변화된 것은 아마도 흑인 민권운동 이후 계급 포섭에 따른 흑인 사회 내부의 분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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