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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상

이사하고 발끝도 내어놓지 않고 하루내 집안에만 있다.

그녀도, 아이들도.

 

- 넓으니까.

 

그녀는 아이들이 거실에서, 안방으로 다시 작은방으로 옮겨다니며 놀고 있다고 한다.  지붕카를 타고 놀이집을 꾸미고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주방놀이용 씽크대 안에서 오색가지 한복들을 꺼내기도 한다.

 

- 어쩌자고.

 

그녀의 집이 아이들의 놀잇감과 약간의 동화책들로 온통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하하. 웃고 말았다. 여기서.

 

여전히 커텐을 달지 못 하고 있는 그녀의 창들은 유난히 크고 많다. 상가주택이라. 하면서 그녀는 웃풍이 심해 춥다고 중얼거린다. 그 어조에 불만도 실망도 저며있지 않는 것에 유심히 그녀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의 네 변 중 하나가 주욱 창으로 이어져있었다. 길게 이어진 창턱 위로 그녀는 작은 소품들을 줄지어 올려 두었다. 카페처럼. 시선의 대부분을 창 쪽으로 두면서 정작, 그녀는 밖으로 나가지는 않고 있다. 바깥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여기서 그녀의 공간은 어디인걸까.

고등학교 시절, 자그마한 제 방의 창가에 50*70의 책상 위에 빨간 스테레오카셋트를 하나 두고 그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안온했던 그녀에게 스무살 이후, 밖으로  떠돌기에 바빴던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가진 적이 없었다.  도망치듯 감행했던 결혼 이후에도 그녀의 공간은 책상 하나, 걸상 하나를 그토록 원했건만 아직까지도 갖지 못 하고 이제는 별로 필요치도 않다는 듯 익숙해하고 있었다.

 

- 뭐...별로.

 

무엇이든 욕구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필요한 법.

그러하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망. disire. 이다.

 

그녀는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 생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도. 가치로운 것. 실존적인 의미, 노동이나 마르크스도.

- 맑스주의 이상의 답을 얻지 못 했어.

라고 말하면서 그녀는 대학을 떠났었다.

다른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길을 가는 것에 힘들고 지쳐했던 그녀는 어느날 문득, 손을 놓았다. 그때, 투쟁의 어느 즈음에 문득 포기를 입에 담았던 것처럼.

 

말이 되어 나온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되었었다. 투쟁의 끝도. 결혼의 시작도.

어느 선배가 충고하기를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면서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침묵으로 긍정하였으니 자연스럽게 아이도 낳았다. 아이.

아이를 낳았다. 라는 말은 좀처럼 쉬이 끝나지 않는 현실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그녀의 방황, 절망, 화내고 혼자 울고 누군가를 향해 요구하는 것을 보고 지켜왔던 것은 그녀의 벗이었다. 이제 그녀가 남편에게 가졌던 작은 소망을 걷어내고 벗에게 요구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한 지금,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나 외에는. 언제나 열외였던 배제가 이제는 특권이 되어 표정 없어진 그녀의 곁을 지키는 유일한 자가 되었다.

 

그녀의 집에는 여전히 걸려지지 못한 커텐과 부러진 커텐봉, 그리고 짝이 맞지 않는 커텐고리들이 남아있지만 더이상 그녀는 창을 꾸미고 싶어하지 않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먼지를 그대로 놓아두면서 시선의 높이로만 바깥쪽을 바라볼 뿐, 찬바람 들어온다면서 창문 열기에도 인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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