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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16
    그녀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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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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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2/01/26
    그녀의 일상
    외딴방

그녀의 일상

예인은 할 수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선배의 시선끝에 있었고 그 시선이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 뭐야, 저거...산발을 해 가지군... "

예인은 말을 먼저 하고 동공에 들어온 영상을 머리로 옮겼다. 느리게. 생각하기를 하긴 싫었지만 의식 속에서 이미 언어로 형상화되었다.

' 얌전하게 생겼네...'

안 그럴 것 같았는데. 예인은 이 진 선배의 여친이 그저 수수하고 평범한 여자라는 것이 얼른 이해가 안 갔다. 선배처럼 루즈하거나 아님 대조적으로 화려한 미인이거나 뭐 적어도 몸매라도 잘 빠진...

' 작은 여자구나...이쁘장하니...'

예인은 대학시절 즈음에는 훨씬 더 젊고 예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안미모.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촬영장의 한쪽, 밀어둔 테이블과 의자들 너머로 쌓아둔 카메라와 기자재들 사이에 그녀가 있었다. 무언가에 걸터앉은 듯, 한참 키가 작아 보인다. 배우들을 직접 본다는 것에 흥분했는지 뺨을 살짝 물들인채 가끔 무언가를 적기 위해 노트를 얹은 무릎 위로 고개를 숙였다. 다시 볼 때마다 맨 먼저 셋트 안을 보고 연기 중인 배우들이 보이지 않으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중간중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저 스탭은 무얼 담당하는 사람일까? 하는 표정으로.

 

 " 취재를 하려면 인터뷰를 하지, 왜 저렇게 앉아만 있대? "

예인이 던지듯 묻자 조감독은 뭐? 누구? 하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보더니 곧 알아먹었다는 듯이 이마를 편다.

" 나중에 하겠대요, 며칠은 그냥 보기만 하겠다고. "

" 며칠이나? 왜? "

" 글쎄요. 뭐, 탐색기같은 거겠죠. "

뭔 탐색을 그리 오래 하누? 했더니 이제 이틀째이니 내일은 안 할지도 모르지만. 하면서 조감독은 싱긋 웃는다.

" 누구랑 틀려서 느긋한 성격인가 보더라구요. "

예인은 댓거리할 생각 없다는 듯, 조감독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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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상

예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학시절부터 이감독을 알고 있었다. 이감독은 몰랐지만.

의상학과를 때려치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기 위해 중퇴를 결심했을 때, 미련이 없었던 것도 순전히 그가 졸업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그가, 같은 단대에서 부지런히 강의실을 중복시키고 매점이며 식당을 찾아다니고 피아노과의 연주회란 연주회는 모다 참석하며 얼굴 부딪히기를 시도하던 예인을 알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처럼.

예인은 촬영장의 한 쪽 구석에 서서 노려보듯 이감독과 이감독의 시선을 쫒았다.

지금도 이감독은 시선을 멀리 두고 있다. 곁을 더우기나 뒤는 결코 돌아보지 않는 감독의 시선.

그는 왜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까.

이 감독 외에 누구나, 누구나 ! 알고 있었다.

예인이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가 있는 모든 곳에 예인은 다가갔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예인을 동시에 알고 있었다. 그가 말 거는 사람들에게 예인도 인사를 했고 관계를 가졌으며 지속적인 우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예인에게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는 늘 바빴다.

피아노과의 정기연주회에 불참하기 시작했고 학점을 이수하지 못 해 5년째 대학에 머물렀다. 학적부상으로만. 그는 항상 캠퍼스를 빠져나가 점심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언젠가부터 인근의 거리에서도 술을 마시거나 까페를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그를 잃어버리고 예인은 학교를 떠났다. 의상학과에서 더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대학로의 연극단을 쫓아다녔던 오년 동안 예인은 그의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이미 드라마의 엔딩크레딧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예인은 연상시킬 수 없었다.

" 말도 안돼 !! "

 극단의 스탭이었던 옛날 대학동기한테서 정말 몰랐냐고 재차 질문받으면서도 예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

" 어떻게 이 진 선배가 드라마 연출을 한단 말야? 전혀 관계없쟎아. 선배는 피아니스트라고 ! "

" 졸업연주회 간신히 통과했쟎아. 난 그 선배, 피아노 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 2학년 땐가 이후로는. "

동기는 잠깐 예인과 함께 들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의 피아노 & 락밴드의 공연을 떠 올렸다. 중간 이후 난장판이 되기 전까지 울려퍼졌던 선배의 피아노 독주. 거기서 뻑 간 이후 몇 년을 쫓아다녔던가.

" 선배가 감독이 되나니! "

예인은 운명적이라고 느꼈다.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당연히 다시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정확히는 이번에야말로 그에게 자신을 알려야 한다고 결심했다.

삼년이 지나지 않아 예인은 충무로에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배우생활을 때려쳤지만 별로 미련 없었다. 원래 그렇게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정할 수 있었다. 괜찮다. 중요한 건 감독을 영입할 수 있는 기획사를 차렸다는 것이다. 물론 예인의 아버지가 극장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에 크게 힘입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다 좋은 일이었다. 아들들을 믿을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후계자 인정을 받은 것도, 비위 맞추기 힘든 아버지와 함께 집안을 다 내어맡기는 것에 큰 올케는 좀 서운해했지만 워낙 통크게 경제적 지원을 해 주는 시누이에게 어깃장을 놓을 수는 없는 일. 예인은 영화관을 소유한 프로덕션의 오너가 되었다.

왜? 당연히 드라마국에서 월급감독으로 찌들리고 있는 선배를 스카웃해 오기 위해서였다.

한참 걸렸다. 방송국에 진출해 있던 대학로 시절의 선배들에게 욕도 어지간히 먹었다. 뭐 어떠랴. 예인은 중요하지 않은 타인과의 관계가 망가지는 것엔 쉽게 대범해졌다. 처음 방송국 미팅룸에서 이감독을 만났을 때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떠들었다. 드라마 외주 제작을 협의하려던 국장도, 대외협상팀의 부장도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 했다. 기획부터 광고수주에 이르는 드라마제작의 전과정을 혼자 프리젠테이션 하는 예인을 이감독은 흥미롭다는 듯 주시했다. 그 후 작가와 공동작업을 주선하고 캐스팅, 오디션, 셋트제작, 협찬물 계약 등 모든 장면에서 예인은 적극 개입했고 수시로 감독과 의견을 조율했다. 방송국 드라마에선 최고의 자율성과 재량권을 보장해 주었다.

"그래도 부족하면 얘기해요. "

예인은 이감독과의 모든 대화의 끝에서 이렇게 말했다.

" 네. "

이감독이 그리고 나서 한마디만 더 하면 스카운제의를 할 참이었다.  방송국에선 한계가 있으니 충무로로 나오라고. 곧 그렇게 될 판이었다. 예인은 낙관하고 있었다. 촬영을 시작한 이번 드라마의 시청률이 어떻게 나오던 그걸 빌미로 이 감독을 빼낼 것이었다. 잘 나오면 후한 계약금을 걸고 보다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권유하면서. 못 나오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아도 되는 매니악의 작품활동을 보장하겠다고 큰 소리치면서.

" 같은 대학이었구나. "

 하면서 이감독이 말을 낮췄을 때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제부터 바래왔던 관계인가. 선후배 사이.

그런데 이게 뭐람 !

예인은 소리질렀다. 촬영 중인 셋트와 배우들과 모형인형처럼 움직이고 있는 스텝들, 그 모두를 한 눈에 넣고 있는 이 감독의 시선을 쳐다보면서 조용히 속으로, 이를 악 물었다. 여전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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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상

effect

" 그때 왜 그애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을까? "

상량한 표정의 소년은 낮게 중얼거렸다.

굳게 닫히는 수도원의 철문, 철창의 안쪽에서 흔들리는 커텐. 첨탑을 바라보는 소년의 높이 쳐든 턱. 목줄기. 가늘게 이어져 숨어드는 가슴골. 그녀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소년은 직감했다.

가슴이 서늘해지며 폐부 속에서 무언가가 빙결되는 게 느껴졌다. 닫힌 문 앞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무릎이 꺾였다.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웃음. 빛나던 눈동자. 새된 숨소리...오, 그녀를 다시는 안을 수 없을 것이다.

새로이 덧칠되어 양감되는 부조처럼 확신에 찬 절망감에 소년은 부르짖었다.

" 널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 ! "

fade out.

 

시사회는 성공적이었다.

3대 일간지의 문화면에 기사가 실리고 5대 검색엔진의 메인에 article 이 떴다.

" 감독님, 축하드려요. "

연예부기자의 인터뷰와 출연배우들의 광고성 멘트들이 이어졌다.

 

" 무슨 일 있으세요?"

" 아니,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 아닐까? 별로 색이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지인들과 평론가들의 블라인드토크가 시사회 끝난 후의 리셉션장에서 건네지고 있었다.

" 해피엔딩 아니쟎아요. "

" 맞아요. 남는 감정이 슬퍼요. 막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 "

" 속상해요. 그쵸? "

" 응, 이상해요. 지금까지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비통해하거나 절망적인 감정으로 엔딩샷된적 없쟎아요. "

" 감독님...무슨 일 있으신거 아네요? "

 

예인이 소리를 낮춰 조감독에게 물었다. 방송국에서 이감독을 끌고 오는데 톡톡히 한몫 한 그녀로서는 충무로판에서의 입봉작이 어떻게 평가될지 여간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다. 왜 갑자기 색이 변했지?

" 그렇게 색이 변한건 아닌 것 같은데... "

조감독은 말하면서도 영 자신이 없다.

" 여전히 정확한 구성이고 스토리라인도 한 줄로 잘 짰고 분위기는 좀 어둡지만 원래 그 스타일이고..."

" 희망이 안 보이쟎아요 ! "

예인은 딱. 그거라는 듯 소리쳤다.

" 지금까지 남주가 여자애 보내놓고 울면서 끝난 적 있어요? 항상 다시 만날 꺼라는 전제 하에 크게 짜여진 에피소드였쟎아요. 이감독, 원래 트레이드 마크가 그거쟎아요. 옛날 이야긴데, 그 자체로 주제 잡아내고 그 속에서 재밌고 예쁜 사랑하는, 그러다가 헤어지지만 금방 다시 만나든가 아니 만나는거 안 나와도 언젠가 만나질게 예측되어서 그냥 그렇게 편하게 볼 수 있는. "

예인은 분명 뭔가 달라졌다는 데에 확신을 걸면서 조감독을 다그쳤다.

" 이감독, 애인 찾았죠? 그 뒤에 어떻게 되었어요? 그거 깽판 난 거 아네요? "

" 예에? 그건 또 무슨? "

피디로 평생 가겠다고 충무로에선 밥 먹기 힘들다며 애 둘 딸린 자기는 건드리지 말라더니 결국 이감독이 사표 내자 따라서 사표내고 예인에게 끌려왔던 조감독은 아무리 저희들의 운명을 거머쥔 기획사 사장이지만 너무 사생활 침해스러운 거아니냐고 항변할 듯 했다.

" 잡아떼지 말아요. 내가 수삼년 공들여 이감독 스카웃해 오면서 그 정도 정보 없을 줄 알아요? 유감독은 방송국 입사할 때부터 이감독이랑만 파트 짰으니까 알꺼 아네요. 기존의 드라마들하고 완전 딴판이쟎아요. "

" 그러니깐, 드라마하고 영화는 다르다구요. "

" 뭐가 달라요? 시간 차이? 노출 차이? 개런티?  "

" 에...왜 그래요..."

" 제작비 적게 줬다고 비난했었죠? "

" 크랭크 아웃했으면 끝난거죠. 배우들도 개런티에 불만 없었어요. "

" 제작사는 맘에 안차도 감독이 맘에 들었으니까? "

" 에...왜 그러세요...대표님도 감독보고 시작한 거면서... "

" 시작했지만 계속 할 자신이 없어요. "

" 대표님 ! "

예인은 영 불안을 지울 수 없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이마에서 길고 풍성하게 틀어올려졌던 머리카락 한 올이 풀려 흔들렸다.

" 내가 이감독 콜했을 때는 이렇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영화 만들라는 거 아니었어요. "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 무서울 지경이에요. 엔딩샷 말이에요. 주인공이 희망을 놓고 있어요. 후회, 절망. 자책...앞에서 실컷 보여줬던 소녀와의 사랑, 은밀함, 부드럽고 개구졌던 행동들, 그런 것들이 전부 망각될 정도에요. 멜러로 도배해놓고 호러로 끝냈쟎아요. "

" 대표님. 드라마 아니니깐 그정도 틈은 보여도 되쟎아요. "

조감독은 짐짓 무거운 어조로 얘기했다.

" 틈? 무슨 틈? "

" 감독님, 원래도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았어요. 추억 이야기 늘어놓으면서 뭐 얼마나 희망적이겠어요. "

예인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쳤다.

" 아, 그래요. 고등학교 때, 아니 중학교 때인가. 국어선생님이 그런 말 한 적 있어요. 추억을 새기는 사람은 현실이 불행해서 그런 거라고. "

히죽 웃으며 조감독은 사십대 이른 나이에 충무로에서 빠지지 않는 기획사를 홀로 꿰어차고 있는 이 재벌집 외손녀를 바라보았다.

" 맞아요. 감독님 드라마 다 그랬어요. 현실에 힘들어하면서 추억으로 위로받고, 그거 필름으로 만들어놓고 돌리고 또 돌려보면서 때워내는 식이었죠. "

" 뭘 때워내요? "

" 힘든 현실? "

" 뭐라구요? 지금 말장난 해요? "

예인은 그러나 화내고 있지는 않았다. 조감독이 웃으면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추억으로 위로받는다고 진짜로 행복해 지진 않쟎아요. 감독님은 항상 절망적이었어요. 더 힘들고 아프고 절망감에 사무칠 때, 더 밝고 예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 만들곤 했었죠. 그 자신에게 그게 필요했으니까. "

" 그럼 지금은요? "

" 지금이 뭐 어떻다는게 아니라, 영화니까 단막으로 끝내야 하고 그래서 러브라인을 질질 끌지 않으니까 슬퍼보이는 거에요. "

" 그렇게 보인다구요? 그렇게 느끼면 그것으로 영화리뷰는 끝나는 거에요. "

" 맞아요. 기쁨이 길지 않고 슬프게 끝나기는 마찬가지니깐 결과적으로 슬픈 영화가 되어도 할 수 없어요. 감독님이 그 정도 자기 마음밭의 한 고랑도 안 보이고 영화를 마무리할 수는 없쟎아요. 그러면 거짓말이 되어버려요. "

" 절망의 엔딩샷이 없으면 거짓말이 된다구요? "

예인은 여전히 다는 납득이 안 된다는 듯 중언부언했다.

조감독은 잠시 말을 끊고 예인을 쳐다 보았다. 흥행이 안 될까 봐 걱정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면서.

" 감독님...지금 애인이랑 안 좋은 건 사실이에요. "

" 뭐라구? "

예인은 어린애처럼 되물었다. 자신이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는 듯이.

" 이전 작품하고 달라질 수 밖에 없긴 해요. 절망적이었지만 그걸 생각만 하고 있는 거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현재 진행형으로 체감하고 있는 건 다르니까요. "

" 그래서요? "

예인은 뭔가 꼬리를 잡아내고 말겠다는 태세로 표정을 굳히고 짧게 질문했다.

"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는 거에요. "

" 뭘? "

" 힘들다고요. 자긴 지금 절망하고 있으니까...도.와.달라고...? "

영화평론가처럼 해설하듯 말하는 조감독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스쳤다. 예인, 아차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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